소망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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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할때에 확신을 가져야 한다.

Notes
Transcript

힘들고 낙망할때에 소망을 가져라, 그리고 확신하며 나아가라

WHY
요즘 제가 즐겨보는 TV 프로중에 ‘금쪽 같은 내 새끼'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일반인들이 자녀들을 키우며 겪는 에피소드를 가지고 전문가와 함께 힘든 부분들을 해결해 나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저도 딸 둘을 키우는지라 참 관심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유독 힘들어하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소리지르며 우는 둘째 때문에 신청을 해서 나왔답니다. 영상을 보다보니 그 어머니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습니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쌩떼를 부리며 울기 시작했고, 사사건건 울기만 하는 겁니다. 이 어머니는 받아주다가도 지치고, 별별 방법을 다해서 아이를 가라앉혀보려고 하는데 그저 자기 맘대로 안된다고 쌩떄를 부리는 아이로 인해서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는겁니다. 이 어머니가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바로 남편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정말 꾹꾹 참았다가 남편이 오면 눈물이 폭발을 했습니다. 저도 그 영상을 보면서 정말 공감이 되기도 하고, 그 지칠대로 지쳐있는 그 어머니가 안쓰러웠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가 이 프로에 신청 했다는걸 남편한테 말했을때 남편이 엄청 뭐라고 했다는 겁니다. 지금 전국적으로 망신당하고 욕먹게 뭐하는 거냐고. 그런데 이 어머니는 안다고, 본인이 육아를 못하고 망신당하고 욕먹을 수도 있다고, 그래ㄷ 여기 나왔다고, 너무 힘들어서, 이러다가 아이를 망가트릴까봐, 마지막 간절한 마음으로 왔다고 하는 겁니다. 그러고보니 그 프로에 나온 사람들 대부분이, 티비에 나오면 가정의 모습도 노출되고, 아이들에게 하는 방법을 객관적으로 보다보니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걸 알텐데, 그걸 감수하고 나온것입니다. 아마 저라면 그렇게까지 하면서 육아를 해야하나? 이런 마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육아라는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보통 힘든일이 아니라는 걸 여기 계신 많은 성도님들이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 육아만, 자녀를 키우는 것만 그렇습니까? 살다보면 정말 내 뜻대로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게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버티고 버티다 지쳐버리게 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인생에서 무수히 많은 시련들과 고통이 우리 앞에 많이도 찾아 옵니다. 자녀를 키우는 분들이라면, 아이들의 진학 문제, 그리고 취업을 앞둔 자녀가 있으시다면 취업의 문제, 그리고 결혼의 문제, 그 뒤에는 임신과 출산의 문제, 부부 문제, 부모와 자녀의 갈등, 세대간의 갈등과 문제, 우리가 함께 계시는 이 교회 안에서도 구역 안에서도, 기관안에서도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사업의 문제도 있고,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그리고 그 문제들 중에는 우리가 버틸수도 없는, 힘든 부분이 있어서 때로는 좌절과 고통으로 우리를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것도 같습니다. 정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WHO
오늘 본문을 보면, 본문을 쓴 시편 기자도 정말 우리만큼 힘들고 지쳐있는 사람입니다. 첫번째 절 부터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이렇게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1절부터 4절까지를 보면 이 사람은 지금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며 조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며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전도하던 사람인데 지금 마음이 상하여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그러고보면 오늘 읽은 시편 42편을 쓴 사람은 고라 자손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고라자손은 모세의 사촌인 고라의 후손들 입니다. 고라는 다단, 아비람, 온과 함께 모세의 지도권에 도전하다가 하나님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세 아들들은 죽지 않고 살아남아 후대에 성전문지기, 찬송하는 사람, 빵 굽는 성전 요리사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 고라 자손들은 열심히 봉사하며 섬기고,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라자손들이 맡고 있는 자리는 모두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띄는 곳입니다. 이 고라자손들이 하는 모든 일들을 사람들은 평가하고, 쳐다봅니다. 그러다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향해 이런저런 소리들을 하겠습니까? 정말 많은 상심과 낙심, 후회와 절망들로 가득 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지는 않았지만, 오늘 읽은 본문을 쓴 시편기자는 43편 까지 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43편까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지금 저자는 말도 안되는 고통과 힘듦 가운데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고통은 하나님을 잘 믿었고, 하나님을 향해 열심을 다한 사람이 어느 순간 찾아온 하나님의 부재에 대한 고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충만할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진정 계시는지, 나를 돌보고 계시는게 맞는지, 의심하고, 갈증과 목마름 가운데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나선 하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9절에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43편 2절에‘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잊으셨고, 버렸다고 여기며 하나님을 부르짖습니다. 왜냐면 그러지 않고서는 그렇게 극심한 고통과 아픔, 잘망 가운데 있게 할순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과도 너무 닮아 있지 않습니까? 오랜 기간동안 이어져온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예전과는 다른 신앙의 모습을 하고, 원치 않는 비방과 비난 속에 있습니다. 또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삶의 관계 문제와 일상의 힘듦으로 인해 우리는 지쳐있고, 불안해하며, 확신을 갖지 못하고, 절망과 눈물, 고통과 낙심 가운데 있는게 현재의 우리입니다.
WHAT THAN
그런데 오늘 말씀을 쓴 시편 기자는 불안과 고통, 좌절 가운데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서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5절의 말씀처럼 하나님께 외칩니다. 5절 말씀에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이 저자는 아주 당당하게 본인의 처한 처지를 뒤로 하고 스스로에게 낙심하며 불안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낙심하며 불안해 하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낙삼하며 불안해 하는 이때가 바로 소망할 때 인것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이 소망의 히브리어인 ‘이헬'은 기다리다, 바라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현재의 내가 처해있는 이 모든 상황들이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찬송을 했던 상황으로 변활 될것임을 바라며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게 되면, 앞 뒤 옆을 봐도 소용이 없을 때에는 우리는 하늘을 보게 됩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녀답게 꽉 막혀 있는 상황이 되면 비로소 우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저자처럼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를 하게 됩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들을 해결해주시고 하나님께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하게 하실것이라고 희망을 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소망이라는 단어 속에 들어있는 ‘기다리다'는 것을 놓쳐버립니다.우리는 이런 기다리는 것을 잘 하지 못합니다. 분명 소망이라는 것은 바라며 기다리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못합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처해있는 상황이 너무 힘들고 괴롭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문제들이 빠른 시일내에 해결되어야 하는데 어찌 기다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소망의 마음은 쉽게 품을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제일 쉽게 품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소망의 결과는 언제나 내가 원하는 방향이며, 힘듬고 괴로움의 모습들이 전부 기쁨과 감사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언제나 쉽게 품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소망의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질때까지, 기다려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의 저자는 하나님만이 지금의 우리를 도우심으로 찬송을 하는 모습으로 변화시길 것이기에 충분히 소망의 자세를 유지하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HOW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것은 기다림을 동반해야하기에 참 쉽지만서도 어려운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언젠간 이루어질 것이라는 미래의 모습이 그려진다면 기다린다는 어찌보면 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도 말씀드렸다싶이 이 저자는 43편까지 쭉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42편 5절, 11절, 43편 5절에 보면 똑같은 말씀으로 기록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라고 3번을 반복하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숫자 3을 완전수, 완전한 숫자로 쓰이고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되신 하나님을 가리키기도 하며, 처음과 중간 끝, 연합 및 협력, 승인 및 허가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자는 동일한 말을 세번이나 반복하면서 그 말에 확신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저자는 모든 낙심과 불안의 해결은 하나님께 소망을 둠으로 해결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때로는 가정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람과의 관계의 문제, 어떤 경우에는 신앙의 문제 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맡기면 해결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상황에서 반드시 살펴볼 우리는 마음은, 그 안에 진정한 확신을 담고 있느냐 입니다. 오늘 본문의 저자처럼 진정한 확신을 가지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앞서 제가 즐겨보는 티비프로그램을 말하면서 욕먹을 각오로 아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 어머니는 진정으로 절실했습니다. 아이와 본인이 너무 힘들어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손가락질 받을 것임을 알고도 티비에 출연하러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머니는 그곳에서 해결을 제시해주는 소아정신과 박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 박사님이 해결해 줄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방송에 출연 했지만 그 안에,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감당할 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현재의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세상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픔과 절망, 낙심과 고통을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반드시 해결된다는 이말이 세상사람들에게는 웃기는 말이며, 어이가 없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소망할때에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문제들이 사라지고 찬송으로 변한다는 확신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말씀은 익히 잘 알고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이 말씀처럼 우리는 그저 익숙하게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고 말로 고백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할때에 반드시 이루어질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세상의 손가락질과 지탄에도 흔들리지 않고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길 바랍니다. 언제나 그렇게 확신을 사지고 하나님께 소망하심으로 현재 우리를 힘들게하고 괴롭히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 되는 우리 논산 성결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길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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