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12 세계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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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499장(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502장(빛의 사자들이여)
묵도하심으로 수요기도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찬송가: 498장(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기도: 이미영 권사님 기도하시겠습니다.
성경 본문: 고전 1:18-25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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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열두번째 마지막 시간입니다. 오늘은 세계 선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선교의 어원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선교, 선교사라는 단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선교사를 성경에선 나그네라고 표현합니다.
선교(미션)이라는 용어는 13세기 서방교회의 수도원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단어는 ‘보내다, 파송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헬라어 ‘아포스텔로, 펨포’를 라틴어로 번역한 ‘mitto’(미토)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즉 선교의 어원적 의미는 ‘보냄, 파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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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영은 선교에 대한 명확하고 간결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참된 선교는 그 근본이 하나님 안에 있다. 선교란 용어는 아직 하나님을 모르거나 조금 밖에 모르는 다른 나라들에게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복음을 전하도록 주로 외국에 그들을 파송하는 일을 말한다” 존 영에 의하면 선교의 핵심적인 개념은 파송이며 그 대상은 타문화권, 외국에 있는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즉 선교란 다른 나라 혹은 타문화권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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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선교 개념을 전도와 구분할 수 있습니다. 크게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지리적 구분, 신학적 구분, 문화적 구분으로 전도와 선교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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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 구분입니다. 전도와 선교의 차이를 지리적으로 구분합니다. 본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전도이며, 타국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선교입니다. 이러한 구분은 개신교회가 선교를 시작하던 16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지리적 구분에 따라 전도와 선교를 구분하는 경향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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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적 구분입니다. 신학적 구분에 따르면 복음이 전해져 교회가 세워진 곳의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전도이며, 교회가 없는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선교입니다. 지리적 구분이 장소에 초점을 맞췄다면 신학적 구분은 대상에 초점을 맞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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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구분입니다. 문화적 구부넹 따르면 동일한 문화권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전도이며, 다른 문화권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선교입니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한 도시 내에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문화적으로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면 해외에 있는 우리 나라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전도고, 우리 나라에 있는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면 선교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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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전파인 전도가 모든 신자들이 해야 할 사명이라면, 선교는 성령의 부르심을 따라 교회사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이나 민족, 문화권에 복음을 전하는 사역입니다. 이를 지역적, 신학적, 문화적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즉 선교의 강조점은 성령의 부르심에 있고, 선교의 어원에서 살펴보았듯이 교회의 파송에 있으며, 복음 전파와 타문화 미전도 종족에 대한 관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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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선교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선교가 교회의 파송으로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이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는데 선교를 왜 해야 할까요? 선교의 목적은 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교회의 설립, 이방인의 회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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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의 신실한 백성들은 모든 피조 세계가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에 대한 소망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것을 기다렸으며,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길 고대했습니다. 신약성경의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하셨으며, 천국 복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도록 하셨습니다. 즉 선교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의 성취로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이 하나님께 드려지는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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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설립이 선교의 목적이 되는 것은 교회의 설립과 확장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하나님 백성의 연합체 곧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는 교회가 전 세계로 확장되어야 하고,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자기 백성을 불러 모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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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의 회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방이느이 회심은 교회 설립의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회심이란 단순히 종교를 바꾸는 개종을 넘어서서 성령님의 구원 사역에 의해 사람이 옛 생활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회심으로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 선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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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선교의 목적은 이러한 그림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교를 통해서 이방인이 회심하게 하고, 회심한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가 세워지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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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대 에큐메니컬 운동의 선교 목적은 조금 다릅니다. 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컬은 사회적, 정치적 참여를 더 강조합니다. 이들은 비체돔이 저술한 ‘미시오 데이’(하나님의 선교)라는 책에서 이론적인 틀을 갖추었는데, 이 이론에 의하면 복음과 구원은 우주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선교란 복음을 선포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보다 타종교와의 대화를 통해 사회적인 악을 제거하고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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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에큐메니컬 운동은 복음주의 진영에 영향을 미쳤고, 빌리 그레이엄을 중심으로 스위스 로잔에서 세계복음화 국제대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 대회에서 세계 복음화를 위한 논의를 하게 되었는데 존 스토트의 주도로 지금까지 선교가 식민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행함을 소홀히 했다는 반성이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로잔언약 선언문을 작성했고, 선교를 복음 전도와 함께 사회 정치적 활동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로잔언약은 소홀히 했던 행함에 대한 반성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켰지만 W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컬 운동은 로잔언약 선언문의 사회, 정치적 활동을 복음 전도보다 더 높게 평가하면서 개혁주의에 의해 많은 비평을 받았습니다.
개혁주의도 사회 활동, 믿음의 행함을 강조하고 중요시하지만 이를 복음의 동반자적 위치가 아니라 복음 전파의 결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선교의 목적을 영혼 구원과 교회 설립으로 정의한 뒤에 세워진 교회가 사회적인 역할을 잘 감당할 것을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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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개혁주의 선교 원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개혁주의 선교 원리는 5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하나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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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선교는 사람에 의해 주도되는 활동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에 의해서 주구너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기반해서 선교가 이뤄집니다. 성부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찾으시고, 부르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성부께로부터 보냄을 받으셨고,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의 증인이 되시고, 또 그것을 우리에게 증거해주십니다. 즉 선교는 교회나 개인의 자발적인 헌신 이전에 하나님의 뜻과 부르심에 우선해서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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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사람들을 부르는 일입니다. 영생과 구원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들에게만 허락됩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만인구원설은 잘못된 이론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선교 현장 속에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은밀히 역사하셔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극심한 반대와 핍박,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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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구원에 이르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종교다원주의나 포용주의를 우리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포용주의는 칼 라너가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는 비기독교적인 종교들도 구원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합니다. 복음이 전달되기 전까지 다른 종교가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되어 그 신앙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가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포용주의입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복음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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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는 교회를 통해 수행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에 세상으로 나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위탁하셨습니다. 교회는 만물을 온전히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선교 도구입니다. Missio dei를 주장하는 에큐메니컬 운동은 교회 밖에서도 하나님의 선교적 목적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교욱의 기회 제공, 경제적, 의료적, 정치적 상황 개선을 하는 것이 선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러한 육체의 필요를 모두 해결할 수도 업속, 사회적 필요를 해결하는 것이 선교의 목적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 주님의 명령이고 선교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선교는 교회를 세우는데 목표를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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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화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구현을 지향합니다. 선교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구현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죄인을 구언하시며, 성령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임했고,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헌신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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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상황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문화를 초월하지만, 문화를 배제하고 전달될 수 없습니다. 복음의 의미가 전달되고 이해되기 위해서는 복음이 들어가는 곳의 문화에 대한 적응과 수용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을 선교의 상황화라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화의 예를 590년의 어거스틴 선교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영국으로 파송된 켄터베리의 어거스틴 선교사는 영국 색슨족의 문화와 성일들, 그리고 종교의식을 행하는 장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교황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 때 그레고리 교황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교도의 신전은 파괴하지 말고, 우상을 파괴하며, 이교도의 축제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날로 삼으라” 그레고리 교황의 대답에서 우리는 상황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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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황화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회 소속의 중국 선교사였던 마테오 리치는 중국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하기 위해 중국식 복장을 입었고, 하나님의 호칭도 중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하늘에 대한 언어로 바꿨으며, 조상 숭배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마테오 리치의 주장은 본국의 선교회에 많은 의문들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상황화를 하면서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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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화의 역사를 7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단계부터 7단계까지 있는데 시기별로 상황화를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1단계는 반 상황화 시기입니다. 윌리엄 케리가 인도에 간 1792년부터 선교의 문화간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비거구권 문화와 종교를 열등한 것으로 보고 기독교 문화로 대체하려고 했던 시기입니다. 식민주의와 과학의 발달이 이를 부추겼습니다. 현지인들에게 복음이란 외국적인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고,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서구적 문화를 따르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신학과 문화가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며 기독교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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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는 형식적 토착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는 상황화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토착화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식민주의의 영향 아래 있던 사람들은 식민주의에 대한 대항을 하게 되었고, 고등교육을 받은 현지 지도자들이 점점 등장하자 문화적 다원주의에 대한 필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선교사 네비우스는 현지인들에 의해 교회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자치, 자립, 자전의 원리를 적용해서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온 선교사들도 네비우스의 원리에 영향을 받아 선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토착화라는 개념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피상적이고 형식적 수준으로 이루어졌고, 서양의 제도나 교리 , 예씩 문화를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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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계는 문화인류학적 통찰 단계입니다. 1920년대 이후 문화인류학의 발달이 선교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서 선교 훈련 과정 속에 문화인류학 과목이 포함되었습니다. 유진 나이다는 관습과 문화라는 저서를 통해 현지인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성경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문화 세계 속에서 계시하셨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문화와 상황에 대한 이해가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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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단계는 형식적 토착화 극복 단계입니다. 1958년 윌리엄 스멜리의 논문 ‘토착화 교회의 문화적 함의’는 선교사들의 사고에 돌파구가 되었습니다. 기존의 선교사들은 서양식으로 구축된 인프라, 교회나 학교 의료시설을 현지인에게 넘겨주어 운영하는 것을 토착화라고 생까했습니다. 그러나 스멜리는 서양식 패턴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이해와 공감이 이루어진 예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독교는 외부에서 들어가는 것이지만 외부 문화를 현지 문화로 대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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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단계는 상황화로의 이행입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토착화라는 용어 대신 상황화라는 용어가 선호되기 시작합니다. 토착화는 과거 지향적이고, 정적인 개념이라면 미래지향적이고 역동적인 개념의 상황화라는 용어를 선호했습니다. 그러나 상황화라는 용어가 에큐메니컬 측에서 사용되고,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해방신학과 흑인 신화과 연계되어 상황화라는 단어가 사용되면서 복음주의 진영에선 이 용어에 대한 우려와 거절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인 반응에도 상황화의 용어와 내용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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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단계는 복음주의자들의 상황화 개념 수용 단계입니다. 이 시기는 상황화를 수용하고 이해하는 입장이 지배적이게 됩니다. 찰스 크라프트는 상황화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그가 만나신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 각자의 상황에 맞도록 복음 제시하셨다”고 말하며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크라프트는 성경 번역을 예로 들면서 제대로 된 번역은 영어를 헌지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원어를 현지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 주장하면서 상황화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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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계는 1980년대 이후의 단계입니다. 폴 히버트는 ‘비판적 상황화’라는 논문을 작성하면서 기독교의 실천에 있어서 성경적 타당성과 문화적 적합성을 평가하며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토착적인 것을 자동적으로 기독교와 결부시키지 말고, 성경적인 기준 안에서 상황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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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계나 되는 상황화의 단계를 거치면서 선교에 대한 이해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황화의 문제와 어려움이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상황화를 하면서 본질과 비본질에 대한 탐구는 문화권에 따라 계속해서 이뤄져야되고, 또 그 문화를 성경적으로 평가하면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그것을 실천하려면 현지인들에게 그것을 전달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세대 차이로 인해 그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도 어렵습니다. 선교사님들의 환경이 그만큼 어렵고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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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세계 선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선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해야 합니다. 선교에 대한 어원적인 의미에서 살펴보았듯이 교회는 성령님의 부르심을 따라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이나 민족, 문화권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통해 불신자들이 회심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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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우리는 선교님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선교사님들은 극심한 반대와 핍박, 어려움 속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전하는 복음을 통해 불신자들이 회심하고 교회가 세워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면서 상황화를 고려해야 하는데, 상황화를 하는 과정 속에 복음이 훼손되지 않고, 현지 문화와 현지 언어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의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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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11절 말씀을 보면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합니다. 파송한 선교사님과 후원하는 선교사님들의 상황을 보면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ㄱ사님들을 돕기 위해 선교 헌금을 작정하거나 후원으로 복음의 전파를 도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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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우리는 선교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지만, 우리 스스로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전할 말을 준비하고, 사람을 만나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예배하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사람이 교회로 들어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고, 복음을 간략히 전하며, 자신의 신앙에 대한 간증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지만 조심스럽게 예배에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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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고린도전서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전도를 통해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이러한 선교와 전도로 하나님의 구원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선교와 전도를 위해 기도하고 힘써 일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창세 전부터 저희를 택하시고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령님께서 증거해주시고 믿게 해주심으로 또한 주님께서 선교사님들과 교회를 사용하심으로 저희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처럼 우리도 복음 전파를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특별히 파송한 선교사님과 후원하는 선교사님들과 함께 하셔서 비록 코로나로 어렵고 힘든 시기이지만 그 시기 속에서도 선교사님들의 복음전파를 통해 불신자들이 회심하고, 교회가 세워지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도록 인도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497장(주 예수 넓은 사랑)
주기도문: “주기도문으로 수요기도회를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