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 걸스처럼 역주행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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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알고 신뢰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서론]
예전에 ‘뜨거운 침묵’이라는 앵커 백지연의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침묵이 왜 뜨겁다고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읽어보니 그 침묵 다음에 나오는 파워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음지에서 필요한 것은 심호흡이고 긴 호흡이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단거리 선수가 4년을 피눈물 나게 고생한 노력을 담아 출발선에 섰을 때 하는 길고 깊은 호흡말이다.
멀리 뛰기 직전, 최고의 속도로 달려 나가기 직전, 역도 선수가 가장 무거운 역기를 들어올리기 직전, 최고의 프로 골퍼가 홀인원을
기록하기 직전, 성악가가 첫 음을 내기 직전, 피아니스트가 건반에 손을 올리는 순간, 12년 공부의 결실을 맺을 수학능력 시험지를 손에 받는 순간 우리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긴 호흡을 시작한다.'
최근에 차트를 역주행한 걸그룹이 있습니다.
바로 브레이브 걸스입니다.
그들은 자그마치 10여년을 걸그룹을 하면서 인기를 한번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순간에 4년전 노래가 떴습니다.
바로 ‘롤린’ 입니다.
정말 멤버들이 이제는 그만두려고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던 차에 자신들의 노래가 역주행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그들의 10년을 ‘뜨거운 침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이들이 그들이 잘되기를 응원하는 이유는 그들의 이러한 뜨거운 침묵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이런 뜨거운 침묵을 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무려 40년입니다.
[본론 1]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모세는 마흔살까지 이집트 왕자로 살았지만 그 후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는 목자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찮은 목자인 그에게 이집트 최고 권력자인 바로 왕에게 가서 우리 민족들을 다 내보내라고 요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은 모세는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건 마치 제가 시진핑한테 가서 만주가 원래 우리 땅이었으니까 내놓으라고 요구하라는 것과 같은 것이죠.
오늘 말씀은 아니지만 바로 앞 장에서 모세는 하나님께 자신이 뭐길래 이런 엄청난 일을 맡기냐며 물었습니다.
왜 자신을 선택하셨느냐는 말입니다.
모세는 이 일이 자신의 능력을 한참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왜 모세를 선택하셨는 지는 대답해주지 않으시고 단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만 약속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번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묻습니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 핑계를 댑니다.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서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하면 그것을 누가 믿겠냐는 것입니다.
그럼 곧바로 그들이 모세에게 ‘너가 말하는 하나님이란 분이 누구냐’며 이름을 물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묻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자체가 궁금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궁금해서 입니다.
이름 안에는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집트 노예생활을 약 400여년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는 낯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당시 수많은 신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모세가 말하는 조상의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분명하게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요구한 모세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기꺼이 말씀해주십니다.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시장 투표를 하러 갔는데 거기 직원이 신분증과 얼굴을 대조한다면서 대통령에게 마스크를 내려주라고 했습니다.
물론 규정에 따른 것이겠지만 대통령이 한 사람뿐인데 그걸 물어보니 대통령이 좀 황당해 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 이름을 물어보는 것도 비슷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모세의 발칙하고 당돌한 질문에 기꺼이 대답을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14절에서 자신의 이름을 ‘나는 곧 나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개역개정 번역에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영어로 ‘I am who I am’이라고 번역합니다.
15절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어를 보면 원래 자음밖에 없어서 YWAH가 되는데 여기에다가 ‘주인’이라는 단어인 헬라어 ‘아도나이’의 모음을 붙여서 여호와라는 단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어 ‘주님’이라는 의미로 ‘Lord’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너무 오랫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를 내서 불러보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히 어떻게 정확히 발음하는 지는 아무도 알 지 못합니다.
그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하나님이 항상 거기 계신다’, ‘항상 계실것이다’ 이런 의미입니다.
결국 이 말은 하나님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원하신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15절에서 모세에게 이것이 바로 영원한 나의 이름이고,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이 바로 너희가 앞으로도 계속 만날 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이렇게 자세히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제국의 힘을 이길 능력이 결코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모세처럼 자꾸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집중하면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내 연약함, 내 부족함들 묵상해봤자 걱정과 근심 두려움 밖에 나올 게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된다는 것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그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평범한 떨기나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특별한 나무가 됩니다.
평범한 목자였던 모세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거대한 제국의 왕을 상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스스로 ‘과연 내가 교회를 잘 세워나갈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 가능할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탄은 자꾸 내 스스로를 보게 만들고 내 약점에 집중하게끔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의 계략입니다.
우리가 바라볼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하다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길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그 분이 나를 통해 일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는 나의 약점조차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그리고 그 앎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힘, 우리의 능력입니다.
제가 언젠가 아빠랑 아들이랑 장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이제 겨우 3-4살인데 자꾸 쇼파에 올라가서 뒤로 떨어지는 거에요.
아빠가 밑에 바치고 있으니까 대놓고 자꾸 떨어지더라구요.
아빠니까 신뢰하고 몸을 던지는 것입니다.
옆집 아저씨라면 몸을 던지겠습니까?
[본론2]
이제 하나님은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 지도 알려주십니다.
모세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모든 고통을 보았으며 들었으며 아신다고 전해야 합니다.
또한 모세는 하나님이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해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실 것을 전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세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모세가 할 일은 하나님 말씀을 전달하는 일 뿐입니다.
장로들이 모세의 말을 믿을 지 믿지 않을 지 결과에 대해서는 모세가 걱정할 바가 아닙니다.
우리가 때로는 너무 많은 것을 앞서 걱정할 때가 있습니다.
그냥 순종하면 되는 데 그 결과까지 생각하느라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혹시 창피당하면 어쩌나, 혹시 결과가 안 좋으면 어쩌나 이런 걱정이 앞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친구나 가족에게 전하려 할 때 두려움이 앞섭니다.
혹시 이 친구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사이가 불편해지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단지 그 말씀을 전하는 것까지 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자전거를 배울 때에도 제일 먼저 걱정하는 게 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뒤에서 사람이 잡아주잖아요.
그런데 계속 잡아주면 혼자서 절대 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잡아주는 척 하면서 어느 순간에는 놔버립니다.
그러면 혼자서도 잘 타거든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이런 식으로 훈련하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자전거 위에 앉아 바퀴를 굴리는 것 뿐입니다.
넘어지면 어떻해요?
넘어질 수도 있죠.
그런데 하나님이 뒤에서 잡아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고 올라서라는 것입니다.
[본론3]
지금까지는 모세가 장로들에게 할 말을 알려주셨다면 이제는 모세가 그 장로들과 함께 이집트 왕 바로를 찾아가서 해야 할 일도 알려주십니다.
모세가 할 일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멀리 광야로 떠나 예배드릴 수 있도록 이집트 왕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런 모세의 요구에 이집트 왕이 움직일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해도 이집트 왕이 하나님을 믿지도 않는데 어찌 그의 말을 들어주겠습니까?
그럼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그럼 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을 시키신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개입하시기 위함입니다.
물론 바로가 거절할 것이 분명하지만 그럴 경우 하나님이 개입하실 명분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들을 괴롭힌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이집트 왕은 심판받을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데 못가게 한다는 것은 이제 하나님이 나서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일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는 데에만 목적이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예배를 받으시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목적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탈출시켜 가나안 땅에 가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과정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던 이집트 왕 바로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민족을 만들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지 소위 천국이라는 곳, 파라다이스로 가게 하시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구원은 단순히 죽은 후를 보장받는 천국보험증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죄의 노예로 살아가던 우리를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바로는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모세의 요구를 거절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방해하는 이집트를 심판하셔서 엄청난 재앙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놔줄 수 밖에 없게 만들 것입니다.
이 재앙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 주일날 우리가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론4]
그런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해주실 때 몸만 겨우 빠져나오도록 하지 않으십니다.
놀랍게도 이웃 여인들에게 은, 금, 의복 등을 빼앗아 가지고 나올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두가지 정도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스라엘이 지금까지 노예생활한 댓가를 정당하게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이스라엘이 이집트 노예생활을 했지만 정당한 댓가를 받지 못했기에 그것까지 다 받고 떠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절대 손해보게 하지 않으십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승리한 것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전쟁에서 승리하면 패전국의 전리품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들을 마치 이집트에서 야밤도주하는 것처럼 만드시는 게 아니라 승리자처럼 만들어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보면 가져온 금,은, 의복들이 하나님의 집인 성막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나중에 보면 하나님이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내립니다.
그 재앙은 수많은 이집트 신들에 대한 심판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이야기는 전쟁이야기라는 말입니다.
이집트 제국이라는 어둠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라는 빛의 나라의 전쟁입니다.
그 전쟁에서 하나님 나라가 승리하여 그 전리품을 챙기는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모세는 이집트 왕자였지만 자기 민족을 도우려다가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목자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자기 삶은 이제 다 끝났다고 여겼을 지 모릅니다.
왕자의 복장은 사라지고 꾀제제한 목자의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고급학문인 검술과 천문학을 배우던 사람이 이제는 목자의 막대기를 들고 양 떼에게 물을 먹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모세가 자신의 삶을 내팽개친 것은 아닙니다.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목자로서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삶을 40년동안이나 살게 하셨는 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에게 목자의 삶은 제가 처음에 말한 ‘뜨거운 침묵’의 시간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4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따지고보면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40년간 ‘뜨거운 침묵’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제 때가 되어 하나님은 그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40년을 목자로 살아온 그는 이제 자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큰 사명을 받아들이기에는 자기 스스로 생각하기에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모세에게 그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단지 너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십니다.
넘어질까 두려워 자전거를 탈지 말지 고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뒤에서 잡고 있으니까 걱정말고 안장에 올라 페달에 발을 올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신뢰하고 몸을 던지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속에 담긴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며 과거, 현재, 미래 언제나 영원히 계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할 때도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제 모교회를 나와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냥 제가 대학교부터 다니던 제 교회에 목사로 있었으면 더 안정적인 삶이었을 것입니다.
일이 많아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만은 편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이 뒤에서 잡아주시는 자전거 위에 올라타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나님께 제 몸을 맡기고 던져보기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아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게 주신 사명 앞에 내 부족함과 연약함때문에 때로는 힘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루하루 순종하며 나아가려 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직 자신의 모습이 부족하고 연약하다고 느껴질 지라도 한번 용기내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보십시오.
이웃에게 전하는 짧은 위로나 격려의 말도 괜찮습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단지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들의 삶이 마치 브레이브 걸스처럼 역주행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금 내 삶이 뜨거운 침묵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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