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진정한 자랑거리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37 views
Notes
Transcript
찬송 : 216
본문 : 고후1:12-14
사랑이 충만하신 주님, 오늘도 우리에게 복된 하루를 열어주심에 감사합니다. 하루가 시작하는 이 시간에 단잠을 깨워주시고, 이렇게 영상으로 또한 예배당으로 나아온 성도들을 기억하사 오늘도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고 날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을 닮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코로나 확진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사회적 거리두기가 연장이 되었습니다.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고, 마음껏 하나님을 찬송하지 못하는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속히 코로나를 거두어 주시고 이로 인하여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말씀을 듣습니다. 주의 교훈으로 우리를 친히 가르쳐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다. 오늘 성경본문의 소제목에서도 보듯이 바울은 고린도교회 방문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원래 바울의 계획은 16절처럼 에베소에서 고린도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로 가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계획되로 안 되어 바울은 원래 계획을 바꾸어 두번째 계획을 세웠다. 고전16:2-8 에도 기록되어 있는데, 에베소에서 마게도냐로 갔다가 여기에서 고린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려 했다.
그런데 이 계획마저도 복음을 대적하는 유대주의자들 때문에 무산되고야 만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바울의 대적자들은 고린도 성도들을 선동하여 바울이 변덕스럽다고 비방하고, 심지어 그가 전한 복음까지도 의심하게 만들려고 했다. 이러한 대적자들의 영향 때문인지 고린도교회 안에서도 바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자들이 일어났던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이 고린도 방문을 연기한 것은 그가 변덕스러웠기 때문이 아니다. 17절을 보면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라고 말씀한다. 즉 바울 자신이 계획한 바가 결코 경솔하게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23절에도 잠시 엿볼 수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고린도 성도들을 아끼기 위함이고, 또한 미쁘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함이었다.
12절 말씀을 보면, ‘우리' 라는 그룹이 등장하고, ‘너희' 라는 그룹이 등장한다. 여기서 ‘우리' 라는 그룹은 사도바울을 포함한 전도여행에 함께 하던 자들을 가리키고, ‘너희’ 라는 그룹은 이 편지를 받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인데, 여기에는 바울의 진실함, 바울의 성실함, 바울의 근면함을 신뢰하던 무리들도 있었을 것이고, 또한 유대 대적자들의 간계에 넘어가 바울을 의심하기 시작하던 무리들도 있었을 것이다.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일부는 바울을 의심했고, 복음을 가르칠만한 성품도 못되며, 또한 그가 가르치는 복음이 과연 참된 복음인지를 의심하였다.
그럼에도 바울은 세상에서 특별히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대할 때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음을 말한다. 교회 사역자로서 바울은 세상의 철학이나 학문, 혹은 여러 방법론이나 자기 자신의 교육철학으로 사역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사역을 감당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자신의 자랑거리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교육철학이나 교육방법론, 혹은 자신의 경험이나 자신의 지혜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양육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행한다는 것은 인간적인 혈기를 내려놓고 성령께서 그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도록 인내하며 그분의 일하심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청년들을 양육하면서 때로는 신앙 성장의 더딤에 답답할 때가 있다. 분명 이 정도까진 자랄 것 같은데 그에 못 미칠 때 오는 답답함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섬기실 때, 주변 성도들의 신앙이 너무나도 더디게 자라가는 것처럼 보이고, 내가 친했던 성도들과 마찰이 생기며 덜 성숙한 모습들을 발견하게 될 때가 분명 있으실 것이다.
사랑으로 품었던 성도가 어느 순간 돌변하여 나를 미워하고 대적하며, 나를 향한 온갖 비방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늘어놓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는 경험들도 있으실지 모르겠다. 마치 본문 속의 사도바울처럼 말이다. 그토록 애정하던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 일부가 유대 대적자들의 간계에 넘어가 자신을 의심하고, 자신을 불신하기까지 하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당장 찾아가서 모든 오해를 바로잡고, 몰래 그들 중에 들어온 유대 대적자들을 쫓아내어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인간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12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행하였다.
정말 낙심할 만하고, 화도 날 법 하고, 억울할 법도 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성도들을 변함없이 품어주었다. 나에게 가시돋힌 말로 찌르던 그들이었음에도 그 가시까지도 끌어안았다. 왜 그러했는가?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께서도 자신을 배신한 제자들을 구멍난 손으로 끝까지 안으시고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친히 본을 보이셨기 때문에,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가지고 영혼들을 섬기고, 또한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내 형제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내게 맡겨진 영혼들을 힘써 섬겨야 한다.
두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바울의 자랑이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12절에서 바울의 자랑은 무엇이었는가. 그토록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성도들을 품었던 것이다.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들과 교회를 사랑한 것이다. 또한 14절을 함께 읽어보자.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바울의 자랑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그 자체였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이 되면 모든 것들이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인데, 바울을 통해 예수를 알게 되고, 예수를 영접한 그들 모두가 하나님 보시기에 바울에게 자랑거리가 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큰 도전이 되는 말씀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소유의 넉넉함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혹은 자신이 누리는 사회적 위치를 자랑하고, 자신의 화려한 인맥을 자랑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진정으로 자랑하고 있는가? 세상과 아무런 구별없이 우리도 그런 허황된 것들을 자랑으로 삼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세상 사람들처럼 온갖 아름답게 치장된 화려한 예배당을 자랑하고, 결코 마르지 않을 것 같은 풍족한 재정적인 능력을 자랑하며, 등록교인 중 유명인사들을 자랑하지는 않는가?
14절에서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리라고 말씀한다. 이는 한 영혼, 한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성도로 세워지게 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각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워지게 되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부흥하게 되어 있다. 이 부흥은 단지 숫자가 늘어나는 부흥이 아니라, 성도 한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의 성품을 닮아 성숙해 가는 부흥이다. 이것이 참된 부흥이요 성경적인 부흥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랑이 있기 위해서 가장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영혼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전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여러분들을 통하여 복음을 영접한 자들이 있어야 한다. 세상의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 칭찬받을 만한 열매들이 있어야 한다. ‘전도’라고 할 때 우리는 밖으로 나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쉽게 생각한다. 물론 그런 방법도 있다. 그러나 그 외에도 내가 속한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있겠다. 아파트주민으로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 직장동료들에게 예수를 전하며 그리스도인 답게 살아내는 것, 동기들과의 모임 속에서 예수의 향기를 뿜어내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 중에서 이 시간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전도로서, 여러분들의 가정에 맡기신 아이들에게 예수를 전하는 것도 전도이다. 가장 먼저 여러분들을 가정의 부모로 세우셨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맡기신 언약 자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셔야 한다. 그들의 영혼 가장 깊숙한 곳까지 예수의 복음이 들려질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이셔야 한다.
제가 한 가정을 예로 들 것이다. 실제로 있던 가정이 아니라 예화이다. 어느 부모님은 교회에서 중직자들이시다. 온갖 교회의 큰 행사의 중심에서 아주 최선을 다해 섬기신다. 교회에서 존경받는 어른이셨고, 다정다감하셨으며, 솔선수범하셨다. 그런데 그분들의 자녀들은 복음과 거리가 상당히 먼 것 같다. 아주 기초적인 성경지식도 없고, 경건의 열매는 커녕 경건의 모양조차 없으며, 심지어 회심의 열매조차 보이질 않는다. 이런 부모님들은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교회에서 일을 열심히 하면 자녀들의 믿음과 신앙은 하나님께서 알아서 지켜 주시겠지’ 여러분, 이러한 생각은 믿음이 아니다. 안일하고 게으른 생각이다. 하나님께서 나와 우리 가정에 맡기신 귀한 언약의 아이들을 홀대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언약 그 자체를 홀대하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주 예수의 날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칭찬받을만한 열매를 위해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 예수님을 전파해야 한다. 우리의 삶의 영역 가운데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그런데 다른 대로 눈을 돌리지 말고 먼저 우리의 가정부터 돌아보자.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라도 내 뜻대로 자라진 않더라고들 한다. 복음 가운데 견고하게 세워져 가는 자녀들도 있겠고, 혹은 바르게 세워지길 바랬지만 지금은 잠시 이탈한 것 같은 자녀들도 있을 것이고, 겉으로는 아주 잘 자라가는 것 같지만 실상 속은 아무 것도 없는 자녀들도 있을지 모른다.
바울은 낙심할만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의심하고, 불신하며, 대적하던 무리들까지도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품었다. 비록 그 성장이 더디고, 성숙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던 그 순간에도 사랑으로 그들을 품었고, 오래참음으로 그들을 껴안았으며, 끝까지 성실함으로 그들을 양육했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마주한 모든 성도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마음과 자세로 주께서 맡기신 귀한 언약의 자손들을 품으시길 축복한다. 그래서 주 예수의 날에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차고 넘치시길 간절히 축복한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적인 지혜와 세상의 철학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를 섬길 수 있기를
주 예수의 날에 우리의 자랑이 차고 넘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파하는 우리가 되도록, 특별히 우리 가정에 맡기신 귀한 언약자손들을 위하여.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