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사랑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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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8일 새벽기도
찬송가 : 195장 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본문 : 잠언 25장 16-28절
주제 :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하여 다양한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칼이나 화살의 비유를 쓰기도 하고, 부러진 이나 소다에 식초를 붓는 비유를 씁니다. 이 비유들은 모두 이웃과의 다툼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웃에게 거짓 증언하는 자는 칼이나 뾰족한 화살 같이 마음을 자르고, 찌르는 자이며, 고통 받고 있는 중에 진실하지 않은 자를 믿고 의지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같고, 고통 가운데 있는 이웃을 놀리는 자는 그 아픔이나 분노를 끓게 만드는 자입니다. 곧 잠언 기자는 이웃에게 해를 끼치거나 그의 아픔에 대해 놀리지 않고 진실함으로 대하고 그를 위로하며 그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21절입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고 이렇게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22절에 이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주시리라’ 따라서 21절과 22절 말씀을 근거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을 믿는 것입니다.’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첫째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일입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부터 48절까지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를 하시면서 원수 사랑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셨다는 것을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 주님께선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때, 이웃 중에서도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있어 원수는 우리에게 화를 들끓게 하고 보이기만 해도 외면하고 싶고, 도리어 그에게 받은 악을 갚아주고 싶으나 주님께선 도리어 그 원수와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사랑하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악인을 향해서도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장 45절입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께서도 악인을 향해서 해와 비를 악인들에게 비추시고 내려주신 것처럼 주님의 자녀 된 우리들에게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따라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닮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 드러내는 것에 있어서 세리와 이방인의 예를 사용하십니다. 세리와 이방인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동족을 배신한 자요, 돈에 모든 것을 팔아넘기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자들인데 이들조차도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한다고 말씀합니다. 자신에게 문안하고 인사한 자들에게 세리와 이방인조차 인사하고 그들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이 이들과 같이 행한다면 무엇이 다르겠냐고 말씀합니다. 곧 사랑과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세리나 이방인들보다 더욱 이웃을 사랑해야 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들의 아버지께서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우리는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 대상은 우리의 배우자나 가족이나 곁에 사는 이웃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박해하는 원수들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박해하고 괴롭히고 보기만 해도 싫은 자들에게 선을 베풀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이 우리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 1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심판하실 것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에 대해서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그들에게 원수 갚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원수 갚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바로 오늘 잠언 말씀 21절과 22절이 이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20절에서 이 잠언 말씀을 인용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예수님께 욕하고 고난을 준 자들에게 맞대어 욕하지 않으시고 위협하지 않으셨으며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입니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우리의 구주가 되시며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모범이 되신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원수를 갚지 않으셨으며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하고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께 맡기셨는데 우리가 예수님보다 앞서 원수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해 바울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악이라는 것은 성도를 위협하는 원수의 행동을 말합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원수의 행동으로 인하여 우리 속에는 그들에게 보복하고 싶고, 그들에게 더 큰 고통을 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바로 그들의 악이 우리를 점령해서 우리로 하여금 그들에게 악으로 갚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이러한 악에 지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에게 악행으로 대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심판하실 것을 믿고 선으로 승리하라고 권면합니다. 악으로 대하는 것이 우리를 통쾌하게 만드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승리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행하려고 하는 패배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심판을 믿는 성도들은 원수에 대해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선을 베풀고 그들을 사랑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즉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원수를 사랑할 때 그들이 하는 행동이나 삶을 사랑하고 화목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화목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진리를 거부하는 원수들과 화목하기 위해 우리가 믿는 진리를 훼손하면서까지 그들과 친밀해지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진리를 수호하고 지키기 위해 그들의 행동과 모습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켜야 하며 그들에게 굴복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경계해야 합니다. 다만 할 수 있는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원수에게 전하며 또 우리의 모든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그들에게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 원수들에게도 회개하는 심령을 허락하시어 우리와 같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을 믿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우리의 삶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한 날마다 우리의 원수 갚는 것이 심판주이신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원수를 위해 사랑하며, 선을 베풀고, 기도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심판하심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