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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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일 새벽기도
찬송가 ---장 “------”
본문 : 마가복음 11장 27-33절
# “예수님의 권위”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무화과나무를 마르게 하시고, 성전을 청결하게 하신 뒤의 말씀입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을 엎으신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예수님을 보며 사람들은 과연 이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할지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자가 무슨 일을 할지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고는 놀라워하며 두려워했다고 기록합니다. 하지만 반면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놀라워했고 예수님께 모든 관심이 기울여지며 자신들과 결탁했던 상인들에게서 압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님께 ‘권위’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예수님의 권위라는 주제로 잠깐 나누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27절 말씀을 보시면 세 그룹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7절 후반절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예루살렘의 산헤드린 공회 오늘날로 치면 국회의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 가운데 71명을 구성해서 이스라엘의 안건을 결정하고 다스렸습니다. 말하자면 이들이 이스라엘의 권위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정치 1번지, 권위 1번지가 바로 이 사람들이었습니다. 공식적인 권위를 가진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묻습니다. 28절 말씀입니다.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이들의 질문은 2가지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가입니다. 당신에게 어떤 권위가 있기에 성전에서 그러한 일들을 하며 무슨 권위가 있기에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는가 묻습니다. 둘째로는 누가 당신에게 이러한 일들을 할 권위를 주었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을 지적하고 죽이기 위해서 온 이 사람들은 예수님은 분명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런 권위를 주신 것이라고 말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을 신성 모독으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감히 어떻게 하나님의 권위를 가졌다고 말하느냐고 붙잡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선 이들의 질문에 대하여 다시 질문으로 대답하십니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시는 것은 당시 대화 기술 중의 하나였습니다. 오늘날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누가 질문을 하는데 두루뭉술하거나 이상하게 질문을 하면, 대답하는 사람이 네가 정말로 묻고 싶은게 무엇이냐고 되묻지 않습니까? 그런 것처럼 예수님께선 이들의 생각을 아시고 다음과 같이 질문하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대제사장을 비롯한 세 그룹은 아마 예수님께 나아올 때 예수님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나왔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부여하지 않은 권한으로 성전에서 난동을 피웠고, 하나님께 대하여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붙잡을 것이라 생각하며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예수님께 대하여 대답해야 할 입장에 처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난감한 질문이었습니다. 바로 세례 요한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인지 사람으로부터인지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세례 요한의 대표적인 사역이었고, 이것은 곧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인지, 단순하게 경건한 사람의 활동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지도자들은 이것에 대해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만일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라 대답한다면 세례 요한이 말한 것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말한 것, 곧 그의 사역은 예수님을 준비하는 것이었으며 예수님은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시고, 물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곧 이 말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며 성전을 청결하게 하실 권위가 있으신 분이며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 그런 권위를 부여받으셨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렇다고 이들은 요한의 세례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서라고 말한다면 세례 요한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여기는 많은 무리가 반발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마가가 세례 요한의 사역을 기술할 때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들이 그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 대해서 지지하고 있었고 그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세례 요한에 대해서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지지를 계속해서 유지해야 했으며, 논리적으로도 밀리지 않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들은 우리가 알지 못한다고 답을 유보했습니다. 예수님께 대하여 권위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그들이 자신의 꾀에 빠져 예수님께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대하여 권위에 대하여 질문하면서 자신들의 꾀에 자신들이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과 정반대로 비교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계시록 7장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 큰 무리가 겉옷을 깔며 나뭇가지들을 흔들며 호산나 찬양한 예수님께 권위에 대하여 지적하고 죽이려는 계략을 짜서 왔습니다. 하지만 계시록 7장에서는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다고 호산나 하며 외친 이후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계시록 7장 12절 말씀입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해 지적했지만 모든 천사와 천국의 장로들과 네 생물들은 하나님께 영광과 권능과 힘이 영원히 있을 것이라 찬양하며 고백합니다. 비교가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계시록 7장을 기억하고 이들이 노래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참된 권위를 가지신 것을 노래해야 합니다. 성자 하나님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성령님과 함께 하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경륜을 이루신 예수님께 참된 권위가 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또한 그 권위를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고 영광스럽게 하셨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권능이 넘치도록 있으신 삼위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말씀 앞에 바르게 서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회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진리를 떠나려 하고, 진리보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관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대답을 회피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로 서야 합니다.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 우리를 세워야 합니다. 물론 말씀 앞에 서면 우리의 악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 앞에 범죄한 우리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가 말씀에 찔림을 받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지혜와 비밀을 우리에게 밝혀 보여주실 것입니다. 지도자들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셨지만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십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 참된 권위가 있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 모든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권능이 있습니다. 그 앞에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