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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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5일 새벽기도
찬송가 장 “”
본문 : 마가복음 10장 1-16절
#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우리가 읽은 마가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넘어가시는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1절 말씀처럼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갈릴리에서 떠나 예루살렘 입성을 앞둔 부분입니다. 예루살렘 입성을 앞둔 예수님께선 자신의 제자들을 세상의 가치에서 벗어나 예수님의 제자로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선 제자들을 훈련시키는 4가지의 일화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4가지 중에서 2가지를 살핌으로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일화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이혼에 대해서 물어본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찾아와 시험하며 질문합니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바리새인들은 이혼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에 헤롯 안티파스의 이혼 문제로 세례 요한이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곤경에 빠뜨리려고, 더 나아가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선 3절 말씀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예수님께선 모세가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명령했는지 되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의 대답이 재미있습니다. 4절 마지막 말에 ‘허락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했냐고 물어보셨는데 바리새인들은 허락했다고 말합니다. 만일 모세가 말한 것이 확실하다면 명령했습니다 라고 대답하면 되는데 확실하지 않으니 허락했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세가 이혼에 대하여 기록한 것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이 내용은 신명기 24장에 기록하고 있는데 24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신명기 말씀에선 아내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을 경우에 이혼 증서를 써서 보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아무런 사유 없이 이혼하는 것에 대해선 거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5절 말씀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모세가 이 계명을 기록한 이유는 ‘완악한 마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완악하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반역할 때 사용되는 말인데 결국 이혼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마음 때문에 생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부터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루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로 사람이 임의대로 그 하나 됨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요. 하나님께서 직접 두 사람을 짝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혼은 하나님의 목적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입니다. 완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대로 이혼하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곧 아내에게 ‘부정하고 수치스러운 일이 발견되면’, 그리고 그 아내에게 ‘이혼 증서’ 써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던 당시에 유대교 사람들은 이혼을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왜냐하면 힐렐 학파의 학자들은 모세의 말 중에서 수치스러운 일이 드러난다는 말을 가지고 확대 해석해서 음식을 못하거나, 남편의 말을 3번 이상 듣지 않는다면 이혼 조건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의 풍조와는 달리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간음하는 것이라고 못 박으시며 어떤 이혼의 가능성도 열어놓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는 이혼이 자연스러울지 모르나 예수님께선 결혼은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이므로 사람이 깨어서는 안 되며 그것을 깨고 다른 여자에게 가는 것은 간음이라고 못 박으십니다.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일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 일화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어린 아이들을 막은 것인데 제자들과 예수님의 입장이 다른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본문에서 제자들이 아이들을 데려오는 일을 왜 금했는지 명백하게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으로 미루어 볼 때 이것은 어린 아이들의 태도와 그들의 지위와 관련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린아이들을 데려온 사람을 꾸짖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이 예수님의 주의를 끌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자와 어린아이는 그 때 당시 낮은 지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가치 없는 존재들이라고 간주하여 거절한 어린아이들은 예수님께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왜냐하면 14절 말씀처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자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낮은 지위를 가졌고, 그에 걸맞는 겸손한 태도를 가졌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낮은 지위를 가진 어린 아이들은 대화할 가치도 없고, 오히려 주의를 산만하게 한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런 자들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린 아이처럼 겸손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자, 스스로 자신이 낮은 사람임을 깨닫고 간구하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혼 문제와 어린 아이들의 문제는 모두 세상의 가치와 그리스도인들의 가치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세상에선 이혼을 마음대로 하고, 낮은 지위의 사람들을 무시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가치는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고, 직접 짝지어 주신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어린 아이와 같은 낮은 마음, 겸손하고 겸비한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이것은 곧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받아들이도록 제자들을 훈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전혀 다른 십자가. 가장 낮고 비천하며 그 자체로 저주인 십자가를 짊어지실 예수님을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살도록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삶의 기준으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멈추라 하면 멈추는 말씀 앞에 겸비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을 그런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들의 것이니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세상의 가치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기준, 하나님의 말씀을 유일한 우리의 기준과 잣대로 삼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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