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함께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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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표기도
2. 대표기도
3. 성경봉독
3. 성경봉독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4. 설교
4. 설교
도입: 함께한다는 것의 소중함
도입: 함께한다는 것의 소중함
이제 곧 있으면 우리는 우리나라의 고유 명절이면서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날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모습이 비슷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 모습은 바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떡국을 먹으며, 함께 웃음꽃을 피는 그 모습이 바로 설날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함께하는 것에 익숙하고, 함께 하는 것에서 희망도 얻고, 함께 할 때, 힘도, 기쁨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 있고, 가장 비싼 것이 나에게 있다하여도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것, 가장 비싼 것도 결국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서 “함께”하는 것의 의미를 더욱 더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우리는 더이상 타지에 있는 친척들, 친구들,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쉽지 않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혹여나 하는 불안감에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더욱 그립고, 더욱 보고 싶고, 더욱 함께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들이 가득해지면서 진작에 더 함께 할 걸 하는 후회들이, 아쉬움이 더 가득해졌습니다.
이처럼 함께 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원하고, 우리가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면 우리는 좋든 싫든 어쨌거나 함께 해야 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행복의 가장 첫번째 단계가 바로 함께 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연결
본문연결
그리고 이렇게 함께 하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1절의 내용을 반복하면서, 요약하고 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는 말씀을 2절은 단 몇개의 단어를 통해서 요약하며, 반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니라”라고 말입니다.
충분히 1절을 통해서 설명했고,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담겨 있음에도 요한은 무엇인가 더 말하고 싶은 듯 1절을 다시금 되풀이하며 요약함으로 재진술, 그러니까 반복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반복하는 것에는 아주 중요한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자녀들이 그토록 듣기 싫어하는 “공부해라”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은 바로 공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요한은 1절과 2절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강조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1절을 아주 짧고 굵게 요약하면서 1절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는 2절입니다.
“그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2절에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함께”입니다.
즉, 요한은 지금 1절과 2절을 통해서 “함께”라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저작 시기
요한복음의 저작 시기
요한복음의 기록 시기는 AD 50~60년 경에 기록되었다고 보는 견해와 AD 80년 경에 기록되었다고 보는 두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이 둘은 아주 팽팽하여서 그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충분히 납득이 가는 그런 견해들입니다.
이 두 견해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큰 환난을 당한 후의 상황이다”라는 것입니다.
AD 49/50년에 로마의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는 로마에서 유대인을 내쫓아 내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과 모든 명예, 권력을 한 순간에 없애버리면서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추방당했던 유대인들 안에는 바로 예수님을 믿던 유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별의 아픔을 간직한 교회를 향해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셨던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함께”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죠.
또, AD 70년에는 우리가 아주 잘 아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멸망한 해였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기 위해 이곳 저곳으로 흩어지며, 숨어들어가 목숨만 부지한 채 살아가고 있었던 때였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그리스도인들과 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사도 요한은 AD 80년에 요한복음을 통해 “함께” 를 강조하고 있다라는 것이죠.
뿔뿔이 흩어져 있는 그들에게 요한은 지금 함께 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을 설명하며, 자신의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요한은 ‘함께’를 강조할까요?
그렇다면, 왜 요한은 ‘함께’를 강조할까요?
뿔뿔이 흩어져서 각자의 삶 속에 주어진 고통과 외로움 속에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왜 요한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강조하며, 자신의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1장 1-18절을 보면, 크게 세부분으로 나뉩니다.
요한복음 1장 1-18절을 보면, 크게 세부분으로 나뉩니다.
첫번째 부분은 1-5절까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하나님이시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다룹니다.
두번째 부분은 6-8절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로서 먼저 보내진 세례 요한에 대한 소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번째 부분은 9-18절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라는 것입니다.
이 구조 속에서 보면, 요한이 앞에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셨다라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가 드러납니다.
바로,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하나님을 떠나 인간에게로 찾아오셨다라는 것입니다.
분명 요한은 요한복음 1장 1-2절을 통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함께 계신다라는 것을 두번씩이나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떨어지지 않는 관계이고, 떨어질 수도 없는 사이라는 것을 요한은 강조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떨어질 수 없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가 요한복음 1장 9-18절에 오자,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떨어지셨다라는 것 입니다.
바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떠나 인간에게 찾아온 그 이유를 강조하고 싶어 한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떠나 인간에게 찾아온 그 이유를 강조하고 싶어 한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함께’라는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얼굴을 돌려 함께 할 대상을 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함께 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이냐?라고 했을 때, 나의 얼굴을 돌려서 함께 하려는 대상을 향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함께라는 말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없는 상태이다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만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른 것을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보냄 받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향해 찾아 오셨다라는 것, 인간을 향하여 얼굴을 돌리셨다라는 것은 그야말로 위대한 사건입니다.
요한은 이 위대한 사건을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니라라는 말씀과 대조시켜 돋보이도록 만들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이 위대한 사건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오는”(1:9f),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1:10f), “자기 땅에 오매”(1:11f),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1:14f) 라고 말입니다.
즉, 떨어 질 수 없는 사이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토록 위대한 사건이 아주 중대한 문제로 인함이 아니라 그저 새롭게 만들어 내면 그만인 피조물 때문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요한이 앞에서 창세기의 창조 사건을 떠올리게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 위대한 사랑, 떨어질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인간의 땅에 인간과 함께 하도록 보내는 그 결단을 돋보이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라는 것이고,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인간의 땅에 인간과 함께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예수 그리스도의 그 놀라운 헌신과 순종을 요한은 돋보이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받고 있는 그 사랑이 바로 이러한 위대한 사건 속에서 이루어지고 얻어진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의 사건들을 잠시 소개했었습니다.
앞에서 요한복음이 기록될 당시의 사건들을 잠시 소개했었습니다.
AD 49/50년에 있었던 사건으로 로마의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했던 사건,
AD 70년 이스라엘이 로마에 멸망하며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되었던 그 사건
이러한 사건 뒤에 요한복음은 기록되었다는 것을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바로, 요한은 그토록 갈라지고, 고통당하여 아파하며, 외로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서 하나님과 하나님이 서로 떨어지는 고통, 그 극심한 고통 속에서 우리를 찾아 오셨다는 사실을 전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추방당하고, 멸망당하여 아무런 희망도 아무런 소망도 없는 이들에게 지금 요한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떨어지는 그 고통을 선택하신 이유가 바로 지금 아무런 희망도 없는 너희들 때문이다라는 이 복음이 그들 앞에 제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버티고 인내하고 소망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 자신을 갈기갈기 찢으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소개하며 요한은 고통 가운데 놓여 있는 이스라엘의 가슴 속에 불을 지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살아가야 할 소망을 꿈꾸게 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게 하며, 그들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가지 견디고, 버티고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오늘 우리의 가슴 속에도 불을 지핍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오늘 우리의 가슴 속에도 불을 지핍니다.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이 시대 속에서 우리는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우리를 위해 떨어질 수 없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떨어지셨던 그 떨어짐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이었는가를 깨닫게하며, 그 떨어짐이 우리를 위함이었다라는 사실에서 우리의 가슴은 그야말로 뜨겁고도 뜨거운 용광로와 같은 감동의 도가니 속에 깊이 빠져 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가슴 속에 불타오르는 이 감동은 우리로 하여금 고통과 외로움이 가득한 이 세상 속에서 희망을 얻게 하고, 위로를 얻게하며, 기쁨을 누리도록 만듭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이러한 기쁨과 위로와 희망을 얻었고, 누리며 살아갈 자들로 부름 받았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삶에 기쁨이 넘치시고, 하나님의 위로가 가득하시며, 날마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귀한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5. 통성기도
5. 통성기도
들은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6. 마무리기도
6. 마무리기도
7. 찬송가: 장 다함께 찬송 하시겠습니다.
7. 찬송가: 장 다함께 찬송 하시겠습니다.
8. 기도회
8. 기도회
코로나19 가운데 어려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서
한국 교회를 위해서
개인의 기도제목을 두고
9. 찬양: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9. 찬양: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10. 주기도문
10.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