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는 인생, 찾으시는 예수님

Jonah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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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앉으신 분들에게 ‘평안하세요’하고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네 감사합니다. 지난 수요일에는 부산 시장을 새롭게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습니다. 민의를 반영한 좋은 정책들이 우리 부산을 건강하게 하도록 함께 기도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요나서를 함께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요나는 B.C. 760년 경 북이스라엘의 선지자로 활동을 한 분입니다. 당시 국제 정세는 앗시리아에 의해 주도가 되면서 북이스라엘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지역은 앗시리아의 횡포로 인해 많은 고통을 겪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를 부르셔서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반가운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원수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니까 마음으로는 크게 환영할 만한 일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요나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을 하시면 될 일을 자신을 통해 그것을 알리라고 하는데는 다른 뜻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우리 요나 4장 2절 말씀을 봅시다.
요나 4장 2절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요나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려고 한다고 이해했습니다. 심판을 돌이키시고 회개케 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것이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을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순종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너무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요나는 그 이름 뜻이 비둘기라는 단어지만, 흔히 한국 교회는 ‘요 나’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해합니다. 오늘날 성도인 우리들은 요나를 통해 나 자신을 볼 수 있습니다. ‘요 나’는 하나님의 뜻이 내 마음과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을 피해 숨고, 도망갑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도망가서 숨어 있는 요나들인 우리를 찾아내시고는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갖는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도망가는 요나와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통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찾으시는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S2. 본문의 주제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에게 심판을 선포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본문 1, 2절 말씀을 봅시다.
요나 1장 1, 2절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강대국으로 행했던 많은 악이 하나님 앞에 상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 니느웨를, 더 넓게는 앗시리아를 심판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오히려 하나님을 피해 달아납니다.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는 니느웨와는 정반대 방향이 되는 다시스를 향해 도망을 갑니다. 우리 3절 말씀을 봅시다.
요나 1장 3절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다시스와 욥바, 그리고 니느웨를 나타내는 지도를 보면 요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지도를 함께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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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gyusikjung.blogspot.com/2017/11/dbs_52.html
보시는 지도에 의하면 다시스는 스페인과 포르투칼 근처의 작은 항구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다시시는 욥바에서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대체로 2500마일, 약 4,000Km 정도의 거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니느웨는 욥바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약 550마일, 약 900km정도의 거리입니다. 본문에 의하면 요나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갈 계획을 세우고 항구인 욥바로 갔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그러할찌라도 요나는 결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선지자의 소명을 감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바에는 ‘아예 이스라엘을 떠나 이방 나라에 가서 살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북이스라엘 사람인 요나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를 괴롭게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는 앗수리아는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는가 말입니다. 아니 저 사람은 내가 볼 때는 악을 행하는 분명히 나쁜 사람인데 어떻게 그 사람이 구원을 받고 잘 살 수 있느냐 말이에요.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내가 볼 때도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나하고 말 통하는 선한 사람은 잘 살게 해야 하지 않느냐 말이죠. 옛날에 들은 강의가 있었는데 강사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리는 선악을 판단할 때 나 한테 잘해주면 착하고 못해주면 악하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관점에서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요나도 하나님의 뜻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 뜻대로 하나님이 안하시는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한 것입니다. 어떻게 내 생각에, 혹은 내가 알고 있는 선과 정의의 개념과 다른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 있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지 않습니다. 아예 하나님 얼굴을 피해 멀리 다시스로 도망가자 하고 길을 나섰고, 마침 욥바에 다시스 행 배가 있으니 잘 되었던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속성, 심정 그리고 방법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타락하고 부패하여 하나님을 떠난 죄인을 반드시 심판하시고 그 악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인 인류와 만물을 싫어하는 분이 아니시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정을 단순히 우리가 운명적으로 뭘 정한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정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시지만, 그 하나님의 마음에는 세상을 향한 사랑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나가 악의 축이라고 생각하고 결코 구원받지 않아야 할 존재로 생각하는 그 니느웨에 하나님의 중보자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통해 니느웨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요나가 전해주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여 구원 얻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악과 죄를 몰라서 그렇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하심으로 그들을 용서하시고 심판을 물리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가 의로운 구석이 있거나 의롭게 살아갈 어떤 능력이 있어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정말 요나의 마음과 같이 우리 인간은 니느웨와 같은 악을 행하고 죄에 눌려 살지만 오직 아버지의 호의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여 회복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J2. 예수님의 신성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당연히 요나와 같이 우리를 정죄하고 자신이 아니라 우리를 십자가에 못박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죽어야 하고, 왜 하나님께서 죄인을 위해 죽어야 합니까? 오늘 우리들도 요나와 같이 하나님을 향해 왜 잘못하는 사람을 위해 내가 죽어야 하고, 잘못 사는 사람로 인해 내가 고통을 받아야 합니까? 그런 인간의 잘못은 까발리고 드러내어서 창피도 주고 그 댓가를 치루게 해야지 왜 그것을 가려주고 덮어주어야 하느냐 말입니다. 우리 민족을 그토록 고생스럽게 했던 일본이나 대국 중국 같은 나라는 다 심판을 받고 그 악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온 세상에 부끄럽게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야말로 아무런 흠도 없고 악이 없는 분이신데, 오히려 인간인 우리를 십자가에 못박고 우리를 발가벗겨 온 세상에 수치스럽게 만들어 주셔야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죽으시느냐 말입니다. 요나와 같은 선지자도 왜 하나님이 죽으십니까? 당당하게 일어서셔서 저 원수들, 저 악의 축들을 없애셔야지 왜 자신이 죽으시는가 하고 대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그렇게 안하시는 하나님, 심판 안하시는 그 하나님이 너무 싫고 용납이 안되서 다시스로 더 멀리, 더 반대 방향으로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요나의 마음이 의롭고 그의 분노가 정의롭게 보이고, 그가 하는 행동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떠나 이방 나라 다시스로 가서 살려고 도피의 길을 걸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찾아 오심으로 요나와는 다른 길을 가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장 의롭고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내몰아 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인의 땅에 오셨고, 죄인들을 찾아 회개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J3. 예수님의 인성

요나는 다시스를 향해 도망갔지만 주님은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이 있는 땅으로 발걸음을 옮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바다를 통해 이방 나라를 향해 달아나는 요나에게 바람과 폭풍으로 그를 찾으러 오신 것입니다. 우리 본문 4절 말씀을 볼까요?
요나 1장 4절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하나님은 지중해 바다를 바람으로 치시며 요나가 숨어서 쉬고 있는 그 배가 깨뜨려질 정도로 강하게 도전하셨습니다. 당시 요나는 배 아래로 내려가 그곳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5, 6절 말씀을 봅시다.
요나 1장 5, 6절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요나는 하나님만을 피한 것이 아니라 세상도 피해 배 밑층까지 내려가 깊이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을 찾아와 온 배를 뒤흔드시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선장을 통해 깨우고 책망하시며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도록 권고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분노 앞에 서 있는 우리의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의 가는 길을 멈추어 진노의 하나님을 만나도록 인도하시는 우리의 중보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 모두가 아버지를 만나 구원의 은혜를 얻고 회복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내 마음의 완고함과 굳은 마음들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사랑의 사역과 섬김에 동참하라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그 은혜의 부르심에 함께 참여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W1. 예수님은 달아나고 도망가는 죄인을 부르러 오신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요나는 아버지의 사랑이 싫고, 아버지의 구원의 은혜가 싫어 멀리 바다 건너 이방 땅을 향해 가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자 배 밑으로 내려가서 그냥 깊이 잠을 청해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구원자 예수님 안에서 도망가고 숨어 있는 우리를 아버지 앞으로 인도하고자 우리를 부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W2. 도망가는 죄인을 찾는 이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도망가는 요나는 배 밑에 숨어 잠을 청하고 세상을 잊고 지내려고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사랑의 사역에 동참케 하십니다. 요나의 마음 안에 있는 그 모든 완고함과 고집스러움들을 찾아 치료하시고 회복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그를 찾아 풍랑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더 이상 잠자지 못하도록, 더 이상 숨어 있지 못하도록 우리를 흔들고 깨워서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찾으심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W3. 우리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잃어버리고 깨어진 우리를 찾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로 인해 깨어지고 무너진 삶으로 심판의 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요나와 같이 자기 의에 젖어 하나님의 사랑의 사역에 함께 할 수 없는 이 완고한 선지자를 풍랑의 고통을 통해 찾아 오시며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역으로 불러 주시는 분이십니다. 포기하지 않고 내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주님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이 사랑의 사역에 헌신하는 사역자로 불러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T1. 요나는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누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폭풍으로 요나를 찾으시고, 이방 선장을 통해 그가 하나님을 만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잠이 아직 제대로 깨지 못한 혼미함 속에 있는 요나에게 선장은 그가 잠자는 것을 책망하며 하나님을 구하라고 안내해 줌으로써 선지자의 가는 길을 인도하는 등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요나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 바다를 요동치며 자신을 다시 부르러 오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T2.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은 너무 자신의 판단과 지식에 완고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판단보다 내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더 신뢰합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우리 현대인들은 너무 요나를 닮아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이 내 생각대로 하셔야지, 혹은 내가 가진 의와 도덕의 기준을 하나님도 가지셔야지 어떻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실 수가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이 니느웨와 같은 강국의 수도를 심판하지 않고 구원시키려고 하는가? 다 부수고 다 무너뜨리고 내가 생각하는 그런 정의, 내가 말하는 의로움을 이루어야지 하고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다가 나와 다르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보며 마음 상하고 그래서 삐져서 배타고 저 멀리 다른 나라로 도망 가버립니다. 그 배에서도 세상과 단절하고 배 밑바닥에 내려가 깊이 잠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T3.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인 우리들을 다시 깨우십니다.

일어나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낙심의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나의 생각과 아집과 고집에 매여 살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에 참여하고 그 사랑으로 나도 구원 얻었음을 알고 부르시는 소명에 충성하라고 우리를 찾아 오십니다. 때로는 잔잔한 음성으로 그렇게 하시기도 하시지만, 요나와 같이 이렇게 배타고 먼 길로 떠나버린 극단적인 분들에게는 큰 폭풍과 풍랑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더 이상 잠자는 그 자리, 잠에 취한 그 밑바닥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시는 밝은 소명의 자리로 나올 수 있도록 큰 풍랑으로 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시고, 우리를 새로운 자녀로 회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L5.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항상 하나님의 부르심을 깊이 묵상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옛 자아의 완고함과 굳어진 딱딱한 진에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이 들리도록 항상 마음을 열어 놓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나는 그 완고한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도 마음을 닫고 다시스를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니느웨를 내동댕이치고 다시스를 향해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인생은 잠자는 인생이 되어야 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없어 배 밑바닥을 향해야 했고, 그곳에서 그는 소명과 모든 삶의 목적을 잃고 잠만 자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이 그를 찾아 흔들어 깨웠을 때 그의 마음은 새로운 부르심을 향해 나아갑니다. 아버지를 찾고 만나 구하여 부르시는 길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새로운 은혜가 밀려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음성이 항상 내 마음을 떠나지 않는 삶을 살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L6.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나의 생각과 내 마음의 길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그 부르심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부르심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한 선지자를 보여 줍니다. 그는 자기 마음의 뜻과 다르신 하나님의 뜻으로 인해 소명을 포기하고 부르심을 떠나 다른 길을 향해 달려 갑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를 다시 부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을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 마음과 다르고, 내 생각과 다른 아버지의 뜻에 마음 상해 도망가는 우리에게 오신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먼저 요나와는 다른 길을 걷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힘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나의 가치관과 사고를 바꾸어 헌신하는 일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고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더하여 나를 찾으시는 주님께 항상 마음을 열고 순종하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가 함께 걷는 길은 분명 즐겁고 기쁜일입니다. 내 마음을 내려놓고 구원하시고 치유하는 주님과 동행하는 이 길이 참된 행복과 기쁨의 길임을 기억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결단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찬양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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