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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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권세를 물리치신 그리스도(고전15:24)
아담의 범죄 이후로 사망을 지배하는 어두움의 권세가 이 세상에 들어와 모든 사람이 그 어두움의 권세에 종노릇해 왔습니다. 곧 모든 인류 가운데 사망이 왕노릇한 것입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악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망과 어두움의 권세를 자신의 능력으로 물리치시고 완전히 깨뜨리셨으며 승리하셨습니다.
I. 사망을 정복하심(고전 15:54)
. 인류의 역사는 어두움의 정사와 권세에 지배를 받으며 고통 가운데 흘러왔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인류가 왔다 갔지만 아무도 그 권세를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공자나 석가나 마호멧도 그 어두움의 권세를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어두움의 정사와 권세에 굴복 당했으며 온갖 죄와 저주와 고통과 죽음의 처절한 인생을 겪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무덤 가운데서 갇히지 아니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인류의 역사가 새롭게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행 2:24). 이제는 어두움의 정사와 권세가 다시는 죄와 사망으로 왕노릇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영원히 패배한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는 길과 진리가 되시며 부활의 생명이 되십니다(요 14:6)
2. 죽음 그 자체도 멸하심(고전 15:26)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을 멸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은 오늘날까지 죽음을 제일 두려워했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왔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롬 3:23)
죽음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개인에게 임했습니다. 어두움과 사망의 비극이 온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인간이 가장 고통받는 시기에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며 죽음을 파괴시키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성도들이 '사망아 너희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고 담대히 외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의 인류 역사를 생명의 역사로 바꾸신 분입니다. 그리스도는 무서운 사망을 영원히 정복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참빛으로 오신 분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은 흑암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의 빛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는 마치 힘이 없어 자기 백성들에게 못박혀 죽은 것 같이 보였으나 실상은 우리의 어두운 죄악을 짊어지고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주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분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사망을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어둡고 무서운 사망의 권세를 물리치셨습니다. 어두움의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망조차도 정복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어두움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소유하셨습니다. 가장 높은 주가 되시며 가장 큰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시고 온 천하를 다스리십니다. 완전히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능력으로 구원받았습니다.할렐루야
승천하신 그리스도(행1:9)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에 자신의 부활을 많은 사람들 앞에 보이시며 증거하시고 승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실제적인 사건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승천은 제자들과 갈릴리 사람들이 직접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 것이며, 예수님의 부활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높아지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인류에게 큰 소망을 약속한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의 몸은 분명히 부활하신 그대로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승천도 불가능한 일이었을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제자들외에도 5백여 형제들이 목격했으며 예수님을 심히 박대한 바울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고전 15:5). 여러 사람들에게 40일 동안 보이시고 그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가지시고 하늘로 올리 우셨습니다. 부활의 몸으로 승천하셨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영원히 썩지 않으시며 변하지 아니하시는 영광스러운 소망의 그리스도이심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장차 성도들도 예수님과 같은 몸으로 그 영광에 참여할 것을 예표해 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는 직접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의 제자들과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눈으로 보는 데서 올라갔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은 죽은 자로서 무덤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산자로서 존재하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영원하며 그 부활체로 가장 먼저 하늘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또 하늘과 땅의 모든 인생의 산 소망이 되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장차 다시 오실 때에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게 오실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계시록1장7절을 통해서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라고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며 이제도 있었고 전에도 있었으며 장차 올 전능한 자이십니다(계1:8). 사도행전 7장 55절에서는 스데반이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그 부활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승천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무릎을 그리스도에게 꿇도록(빌 2:10) 임금과 주로 삼으신 것입니다(빌 2:11 행 5:31). 예수님는 이제 만왕의 왕이시며(계 19:16)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구름의 영광 가운데서 올라가셨습니다(행 1:9). 구름 그 자체가 영광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부활도 영광스러웠으며 승천도 영광스러운 승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도 구름을 타시고 영광스러운 왕의 모습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눅 21:27). 그리고 그 모든 영광은 세세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가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은 예수님의 높아지신 권세와 최고의 영광을 받으심을 의미하며 또한 우리를 위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심을 의미합니다.
I.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에 있어서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가 생명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생명은 부활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생명이 사망과 만나게 되면 반드시 거기는 부활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이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상여 앞에서 '청년아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고 하실 때 그 사망의 매였더 청년이 생명의 부활로 나왔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 죽음 앞에서 예수님은 '달리다굼'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때 소녀가 잠에서 깨어나듯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베다니의 나사로가 죽어 장사지내어 무덤에 있을 때 '나사로야 나오너라'외쳤을 때 그 나사로는 일어나 나왔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부활은 바로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야이로의 딸과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증거이십니다. 생명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망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며 음부의 권세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바울도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면서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무엇이냐'고 외쳤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확실히 예수님이 생명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사망의 권세는 무엇입니까? 고전 15:55에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죽이도록 쏘아대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죄의 독살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으며(롬 6:23) 약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망의 비통스러운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바로 죽이도록 쏘아버린 죄입니다. 사람들이 죽음은 비통한 줄 알면서 죄는 겁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곧 영원한 사망을 당하고 맙니다. 이것은 참으로 비통 일입니다. 반기독교인이었던 볼테르(Voltaire)는 최후에 '나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했다. 나는 지옥으로 가노라'고 했으며, 토마스 스카트는 "이때까지 나는 하나님도 지옥도 없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이것이 있는 줄을 안다. 나는 멸망에 들어간다"고 외치며 죽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저주스러운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그 무서운 죄악을 다 용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부활은 바로 사망에서 승리하는 증표입니다. 고린도전서 15:57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으니, 바로 죽음에서의 승리가 부활입니다. 히2:14에 그는 또한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자기를 믿는 자들에게 사망에서 승리하게 하시기 위한 부활이요, 그 부활은 승리의 증표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죽음을 대하여 이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하였고, 임종시에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생명의 면류관이 준비되었다'고 하였으며, 요한 낙스도 "그리스도 안에서 살라 그러면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죽음을 당할때 이렇게 감격해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어 이미 사망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 이제 이러한 부활을 믿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승리에 동참하고, 부활의 신앙과 믿음에서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부활이 나의 생명의 부활이라면 그보다 더 행복하고 좋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생을 사는 동안에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항상 우리에게 승리는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견고하며 흔들림이 없는 부활의 신앙과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코로나 19가 속히 물러가게 하옵시고 일상적인 생활 바른 시일내에 회복되게 하옵소서, 가정마다 주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하옵시고 가족들의 건강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대흥교회에 속한 모든 믿음의 권속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