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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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0:14 불륜은 사랑이 아니다
- 2008년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 어떤 사람이 국가 및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당신 여자관계를 알고 있다. 당신이 여자와 모텔에 들어가는 사진을 많이 갖고 있다. 천만 원을 송금하지 않으면 그 자료를 직장과 가정에 보내겠다.” 말도 안 되는 협박이지만 놀랍게도 그 중 14명의 공직자들이 한 사람 당 130만원에서 800만원까지 모두 4천만 원을 송금했다는 것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이다.
- 이 사건에 대해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가 이렇게 분석했다. “이건 매년 여러 차례 일어나는 사건이다. 신문에 보도된 것만 그렇다. 그러나 신문에 보도되지 않은, 즉 경찰에 적발되지 않은 이런 종류의 사건은 얼마나 많으랴. 한국 드라마의 주축이라 할 ‘불륜 드라마’가 괜히 인기를 끄는 게 아니다. 그게 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고 느끼는 시청자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한국이 세계 최고의 고(高)스트레스 국가니 어쩌니 하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다 나름대로 푸는 법이 있기 마련이다. 간통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현 체제를 온존케 하는 최대의 보호막이 아닐까? 이거 농담이 아니다. 진지하게 심층 연구해 볼 주제다.” 칼럼의 제목이 “한국은 어떻게 간통의 천국이 되었는가?”이다.
- 정말 한국은 간통의 천국인가? 표를 하나 준비했는데 바로 2020년에 나온 통계다. 성인 남녀 702명에게 불륜 경험이 있는지 물었는데 기혼 남성은 41%가, 기혼 여성은 24%가 그렇다고 답했다. 놀랍게도, 남녀를 합해서 무려 30%가 불륜을 저지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자료를 조사하다가 불륜 커플들이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또 한 번 놀랐다. 카페 이름이 ‘금지된 사랑’이다. 회원수가 3만 명이었다. 2015년 간통죄가 폐지된 이후로는 이런 비율이 더 가속화된 것 같다. 간음이 비난받을 만한 행동이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죄는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제가 또 이 드라마의 대사를 이야기해야 할까?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하지만 불륜은 사랑이 아니다.
- 이것은 비단 오늘의 한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사람들의 마음에서 꿈틀거리는 욕망이다. 유대교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머가 있다. 모세가 시내 산으로 올라간 지 40일 만에 내려왔는데 백성들에게 좋은 소식 하나와 나쁜 소식 하나가 있다고 했다. 좋은 소식이 뭐냐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하시는 계명이 수백 가지라 아니라 겨우 열 가지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성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나쁜 소식은 무엇이냐고 하니까 모세가 이렇게 말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끝내 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 성경에서 간음은 심각한 죄라고 말씀한다. 창세기 39:9에서 요셉이 자신을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간음을 큰 악이라고 표현한다. 또한 솔로몬은 간음을 위험하고 무지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잠언 6:27-29에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그를 만지는 자마다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흔히 불륜을 위험한 불장난이라고 말한다. 또한 32-33절에도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
- 간음이 왜 이렇게 심각한 범죄인가? 간음의 일차적인 의미는 이미 결혼한 다른 사람의 배우자와 성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성적 일탈이 아니라 내 이웃의 결혼관계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위기 20:10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여기서 ‘남의 아내’와 ‘이웃의 아내’에 강조점이 있다. 히브리서 13:4에도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무엇을 의미하는가? 음행이나 간음이 결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제7계명의 목적은 일차적으로 이웃의 가정과 결혼을 보호하는 것이다. 나의 결혼과 가정만큼이나 남의 결혼과 가정이 소중하다.
- 특히 결혼은 정말 중요한 언약 행위다. 그런데 우리는 이 결혼을 얼마나 무겁게 생각하는가? 그냥 마음에 들고 필이 꽂히면 결혼하는 것인가? 성경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말라기 2:14에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결혼에 하나님이 증인이 되신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내를 가리켜 ‘서약한 아내’라고 말한다. 중요한 언약이고 약속이다. 미국 성공회 결혼예식서에 이런 구절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셔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영적 연합을 우리에게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존귀한 삶의 상태인 거룩한 결혼으로 이 남자와 이 여자를 짝지어 주기 위해 우리는 여기 하나님 앞과 이 회중 앞에서 여기에 함께 모였습니다.” 저는 요즘 결혼식 문화가 너무 가볍다고 생각한다. 결혼식 자체가 너무나 짧고 그냥 해치운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예식장에서 30분 만에 예식을 해치운다. 요즘에는 주례도 잘 하지 않는 것 같다. 어차피 주례를 길게 해도 듣지도 않는다고 생각한다. 저는 만약 주례를 하게 되면 예비부부들을 먼저 만나서 결혼에 대해 공부를 좀 했으면 좋겠다. 물론 저한테 주례를 안 받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어느 신학자가 결혼을 이렇게 정의했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 언약에 따라 서로에게 자신을 맡기는 배타적인 관계로 엄숙한 서약을 기초로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사람이 개입한다는 것은 그 관계를 깬다는 것이다.
- 창세기 2장에 최초의 결혼식에 대해 이렇게 말씀한다. 창세기 2:22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마치 결혼식에서 신부의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하듯이 하나님이 하와의 손을 잡고 아담에게로 오신다.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여기서 한 몸이 되었다는 말은 단순히 육체적인 연합만 말하는 게 아니다. 두 사람의 육체적 연합을 시작으로 삶의 영적, 정서적, 사회적, 경제적, 법적 측면 즉 삶의 모든 측면의 완전한 연합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왜 불륜, 간음이 나쁜 것인가? 모든 측면의 연합에서 육체적인 연합만 쏙 빼서 그것만 즐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 유명한 기독교 변증가인 C. S. 루이스가 말하는 바가 이것이다. “혼외 성관계가 기괴한 까닭은 그것을 탐닉하는 이들이 한 부분의 연합(성적 연합)을 나머지 다른 연합과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그 모두가 공존해야 전인적 연합이 이루어지는 데 말이다. 기독교는 먹는 쾌락만큼이나 성적 쾌락도 전혀 잘못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성적 쾌락을 분리시켜 (거기에 수반되는 다른 것들을 제외하고) 그것만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먹는 쾌락을 얻으려면 음식을 삼켜 소화시켜야지 씹다가 도로 뱉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 성적인 연합은 오직 결혼 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잠언 5:15-19에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그 물이 네게만 있게 하고 타인과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아내가 여전히 암사슴 같고, 암노루 같이 사랑스러운가? 아니면 호랑이처럼 사나운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여전히 멋진가? 신혼 때 이야기가 아니다. 결혼관계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그렇다면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은 단지 배우자가 아닌 다른 대상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 되는 것인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09번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계명에서 간음, 또는 그와 같은 부끄러운 죄만을 금하십니까?” 답이 이렇다. “우리의 몸과 영혼이 모두 성령의 전이기 때문에 우리가 몸과 영혼을 순결하고 거룩하게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부정한 행동이나 몸짓, 말이나 생각이나 욕망, 또한 그리로 유혹하는 모든 것을 금하십니다.”
- 주님께서도 산상수훈에서 우리의 마음의 동기를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5:27-28에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여기서 “음욕을 품고”는 원문으로 보면 이런 뜻이다. “그 여자를 향해 욕정이 불타오르게 할 목적으로.” 어떤 남자가 여자를 보고 있다면 ‘왜 내가 이 여자를 보고 있는가?’를 자문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여자가 남자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간음은 구체적인 행동이 아닌 이미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주님은 우리 마음의 동기를 먼저 점검하라고 하신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다윗이다. 사무엘하 11:2에 “저녁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우리가 알던 다윗의 모습이 아니다. 이미 마음이 느슨해져 있고 영적으로도 무방비 상태인 것 같다. 저녁에 늦게 자리에서 일어나 어슬렁거리다가 여인이 목욕하는 장면을 본다. 그리고 그 여인이 자신의 충실한 부하의 아내인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그 여인과 동침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것이고 다윗의 남은 평생 그 죄악에 대한 보응이 그를 괴롭힌다.
- 요즘 배우자가 아닌 다른 이성이 자꾸 눈에 들어오는가? 멋있어 보이고 예뻐 보이고 이상한 상상을 하게 되는가? 굉장히 위험한 신호다. 아니면 배우자와 함께 있는데도 옛사랑이 생각나는가? 영숙이와 철수가 자꾸만 떠오르는가? 이것 또한 위험한 신호다. 잠깐 내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까지 우리가 막을 순 없다. 하지만 그 생각이 내 머리와 마음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잠언 4:23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간음이라고 하는 끔찍한 죄를 피할 수 있을까? 두 가지로 생각하려고 한다. 첫째,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의 특징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대로 살라고 하고 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라고 부추긴다. 이건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2012년에 전국 대학생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성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남학생이 50.8%, 여학생이 19%로 나왔다. 성관계를 경험한 1979명 가운데 9.4 퍼센트가 임신을 한 적이 있거나 여자 친구를 임신시킨 경험이 있으며, 이들 가운데 낙태시술 경험이 있는 경우는 78.1 퍼센트였다. 예전에 가수 강균성이 어느 프로에 나와서 자신은 혼전 순결에 찬성하고 그렇게 지킬 것이라고 이야기했는데 거기 나온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정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왕따가 될 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 모든 애들이 다 그렇게 해요.’ 뭐라고 말해 줄 것인가? 미국에서 한인 교회를 하시는 목사님이 딸한테 혼전 순결을 이야기하니까 딸이 말도 안 된다면서 모든 애들이 만나면 먼저 성관계부터 갖는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Everybody does it. 그러니까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 You are not everybody.
- 그렇다면 둘째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아가페 사랑을 회복해야 한다. 저는 불륜은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자신의 만족과 감정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요한복음 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저는 여기서 ‘사랑하사’와 ‘주셨으니’를 강조하고 싶다. 사랑하면 자신을 내어준다. 독생자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고린도전서 7:4에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이것은 부부간의 성관계에 중요한 지침이 되는 말씀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무시할 때가 많다. 내가 원할 때가 아니라 상대방이 원할 때이다. 이것은 자신을 내어주는 아가페 사랑과 닿아있다.
- 마틴 루터가 이렇게 말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귀히 여기십시오. 아내는 하나님이 남편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부부의 정결함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며 존경하며 살 때 이뤄집니다. 서로가 마음을 다하여 성실히 사랑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사랑과 정열을 정결로 옮겨 놓는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이것이 몸에 익으면, 정결은 억지가 아닌 자발적 열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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