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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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십 인의 파송2(누가복음 10:10~16)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오신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가정과 삶의 터전가운데 주님의 은혜와 은총과 평강의 복이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오늘 본문은 3월 14일과 21일에 말씀드리고 살폈던 주님의 파송사역의 계속되는 부분입니다. 주님은 칠십 인의 전도자를 세우셔서 파송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보면 그때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번 파송사역은 파송받는 사람들과 그들을 영접한 사람들을 마음에 둔 말씀이었다면, 오늘 본문은 파송받은 사람들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을 마음에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영접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축복을 선언했다면, 거부하는 사람들을 향해서는 화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또한 두 경우 모두 공통점이 있습니다. 결정적인 말씀은 서로 일치합니다. 9절 끝 부분과 11절 끝 부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받아들이는 사람을 향한 축복의 근거도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는 말씀입니다.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9절 끝 부분입니다. 그러면 11절 끝 부분을 살펴볼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거부한 사람을 향한 재앙의 근거도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바로 볼수 있기를 원합니다. 보십시오! 영접하는 자들을 향한 축복의 말씀이나 거부한 자들을 향한 경고의 말씀이나 그 결정적 내용은 일치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입니다. 그것은 전도자가 마음에 명심해야 할 사실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반듯이 기억하고 명심해야할 말씀입니다. 왜 우리는 나가서 전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우리는 나가서 전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은 또한 전도자의 동기의 순수성을 판정하는 시금석이며 전도자의 사역의 순수성을 검증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칠십 인을 파송하기 바로 앞 사건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고자 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9장 59-62절까지의 말씀은 각각 하나님의 나라에 입각한 결단을 요구합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좇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두 경우 모두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관건입니다. 제자가 되도록 초청 받은 경우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서는 경우나 할 것 없이 시금석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그의 태도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가 점점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사실이 칠십 인을 파송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제자들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했겠습니까? 아니 여러분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때 나라를 구성하는 삼대 요소를 떠올려 보십시오. 영토, 국민, 주권을 기억하시지요? 나라가 구성되려면 영토가 있어야 합니다. 영토가 없으면 망명정부에 불과합니다. 국민이 없는 나라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국민이 있지만 통치권을 상실하면 일제치하의 나라꼴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때는 특히 그 가운데 주권행사, 통치권행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럼 그때까지 하나님의 나라가 없었습니까? 인간이 창조된 이후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 존재해 왔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뜻이 자리잡고 있는 동안 거기를 하나님이 다스렸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떠나서 움직이는 아브라함의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했습니다. 이삭과 야곱의 삶에도 하나님의 나라는 임했습니다. 다윗으로 더불어 다시금 언약을 맺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는 도래했습니다. 그러나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심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그 나라는 이제 가까이 손에 잡힐 만큼 다가온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언제나 있어온 것도 사실이지만 신약이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구약에 존재하지 않던 모습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대망 해온 나라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많은 선지자와 임금이 너희가 보는 바를 보고자 하였으되 보지 못하였으며 너희 가 듣는 바를 듣고자 하였으되 듣지 못하였느니라"고 말하여 새로운 시대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지금 도래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에는 많은 선지자와 임금들이 지금 제자들이 보고 듣는 그것을 들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한 복음은 좀 더 적극적인 표현으로 이 나라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도래할 것을 증거 합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통치권을 세상 가운데 행사하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작정하시면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거기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영역입니다. 우리의 심령이 주의 뜻을 따르기를 즐겨하면 거기야말로 하나님이 다스리는 자리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당신의 통치권을 지금 다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고백했습니다.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대권은 장차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하나님은 통치권을 세상가운데 행사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을 세상에 파송하시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권세를 주셔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도록 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하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새로운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건물 큰 것이 자랑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예배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한명의 성도가 있다 할지라도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단한 사람들, 그들이 자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목숨을 내어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을 때에 교회의 분위기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처럼 다 자기것을 챙기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먼저 드릴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함께 만나게 될 때에 하나님의 역사에 놀라운 장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선포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는 함께 나누는 음식조차도 귀한 예찬이 되고 성찬이 되는 것입니다. 차려 주는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과 더불어서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칠십 인의 뒤를 따라 세상을 향해 가야만 합니까? 우리 교회는 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하고 한 영혼을 위하여 기도에 힘 써야 합니까? 그것은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들의 삶 속으로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할 말씀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모든 유익들을 받아 누리도록 사람들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나가서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그러므로 선포와 치유는 동일한 사실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도래한 것을 말로 전하면 선포요 전도입니다. 강대상에서 전하면 선포하는 것이고 1대 1로 만나서 증거하면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병 고침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사실을 행위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과 행위가 함께 가면 언제나 능력이 나타납니다. 병을 고치는 기적이 함께 할 때에 우리의 선포와 증거는 엄청난 능력을 동반합니다. 자비의 행위가 동반될 때 우리의 전도는 놀라운 힘을 회복합니다. 말기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봉사가 동반될 때 병원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자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의 사랑을 선포하십시오. 그 때 주님의 말씀은 새로운 차원의 능력을 나타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새로운 나라는 예수님이 중심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 우선적인 일입니다. 사랑하는 추동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일보다 중요한 일이 그 나라를 선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위하여 올인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문제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 문제가 아니라 남편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다스리기 전에는 사람은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지음 받은 존재이유 이기도 합니다. 그 나라를 선포하는 일은 그러기에 어떤 일보다 우선적이어야 합니다. 동시에 그 전하는 말씀의 수용여부는 여러분의 운명을 좌우합니다. 여러분의 전도는 추동뿐만 아니라 하장의 내일을 하장의 내일을 결정합니다. 오늘 삼척 시장이 누구냐에 따라서 10년, 20년에 계획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도자 여러분의 발걸음이 하장뿐만 아니라 삼척을 새롭게 하며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전한 말씀을 받아 들일때에 조국의 미래는 밝아져 오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지역과 민족의 축복입니다.
주님은 지금 그 보내는 자를 영접하지 아니할 사람들을 마음에 떠올리며 그 경우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을 이제 말씀하십니다.
10절에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말과 행동이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말하는 것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예부터 하나님 말씀 듣기 싫어하는 백성들에게 선지자들이 자주 하는 방법입니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버리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는 것은 행동을 통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사회에서는 그렇게 해봤자 아무도 무슨 일하는지 알아듣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사회에서는 달랐습니다. 그것은 마지막으로 하는 경고라는 것을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상술이 뛰어난 사람들 아닙니까? 열방을 다니면서 장사하고 자기 고국에 들어오기 직전 마지막 이방 도시에서 발에 묻은 먼지를 떨었습니다. 거룩한 성지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들어올때는 이방의 묻은 먼지를 떨어버렸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동네에서 발에 먼지를 떤다는 것은 너희는 이방동네와 똑 같다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언제나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여러분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면 남는 것은 심판 밖에 없습니다. 개인이나 공동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복음을 거부한 그 동네는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홀로 서야 합니다. 언약 공동체의 모든 축복에서부터 배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만 거기 기다리고 있습니다. 은혜의 하나님을 거절하면 심판의 하나님을 대면해야 합니다.
도래하는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어떤 시도도 하나님은 묵과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을과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말로를 기억하십시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진로를 막고 방해했던 아말렉을 향하여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출 17:14>). "여호와께서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시리라"(<출 17:16>). 신명기에선 그것을 다시금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아말렉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할지니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신 25:19>).
여러분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시간마다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고 있습니까? 매 주일마다 여러분이 듣는 말씀으로 여러분이 삶은 변하되기를 소원하십시오. 주일마다 말씀을 들을수록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기를 소망하십시오. 더욱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소원이 여러분안에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더욱 하나님 뜻대로 살고 싶은 소원이 솟구치기를 바랍니다. 2021년에 우리가 먼저 기도로 회복되고 말씀으로 회복되고 전도의 사명자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사모하시고 기도하십시오 회복하게 하옵소서
메시지를 거절한 동네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나라를 멀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 계획에 따라서 다가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의 수용여부와 상관없이 다가서는 나라입니다. 다만 그 나라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하는 것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다줍니다. 받아들이는 자는 엄청난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거절하는 자에게는 무시무시한 심판아래 빠져 들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이같이 가지면서도 아무런 생각없이 앉았다가 끝나면 돌아가곤 하고 있습니까? 함께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이 결단코 여러분에게 복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물며, 듣기조차 하지 않고 앉았다가 돌아간다면 그에게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누리는 특권을 보통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회는 항상 있지 않습니다. 기회는 지나갑니다. 그러고 나면 무서운 심판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차라리 소돔이 최후에 심판날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여러분 구약에서 악명 높은 대표적인 도시하나가 소돔입니다. 소돔은 하나님 앞에서 아주 범죄하다가 최초로 불에 심판을 받아서 멸망했던 도시입니다. 지금도 여러분이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소돔이라고 하는 단어는 동성연애자들을 가르키는 단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어떤 랍비는 소돔 사람들은 최후 부활도 없을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최후 심판날에는 소돔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는 겁니다. 주님과 주님이 파송한자들의 복음을 거절한 동네의 운명은 그 보다 더 심각하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마음을 활짝 열고 주님의 다스리심을 기쁘게 수용하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거부하면 그 결과 역시 심각할 것입니다. 차라리 나와서 듣지 아니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입니다. 특권이 크면 책임도 크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화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 있을찐저 뱃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복음을 듣는 자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제자들이 전한 소식은 들은 자마다 결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이 듣고 지나가도 좋은 사소한 주제가 결코 아닙니다.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하면 엄청난 축복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거부하는 자에게는 무서운 심판이 기다릴 것입니다. 오늘날도 정확합니다. 동일합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제자들의 사명이 심각하기에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을 차례로 불러서 화있을찐저라고 그분의 입술에서부터 저주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고라신이라고 하는 마을은 성경의 여기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동네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 동네에 주님이 가셨는지는 주님이 이 말씀을 하시니까, 우리가 알뿐입니다. 그에 비해서 벳새다는 여러분 자주 들어보셨죠. 벳새다 마을 그런 동네에서는 주님이 사역을 하셨습니다. 기적을 베푸시기도 하고 은혜로운 말씀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너희들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다면 너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두로와 시돈은 역시 구약시대에 나온 나라들인데 아주 악질적인 나라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우선 순위에 1번 2번을 서로 다투는 동네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로와 시돈 거기서 내가 너희가운데 행한 기적을 행했더라면 너희가운데서 들려주었던 말씀을 내가 들려 주었더라면 그들은 이미 재에 앉아서 회개했을 것이다.
베옷은 회개와 슬픔의 표시로 간주되었습니다. 재 역시 베옷과 더불어 슬픔의 표시였습니다. 재는 머리에 뿌리기도 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이 그 위에 앉기도 했습니다. 누가는 후자로 그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두로와 시돈 그 어떤 도시라도 갈릴리 도시들보다 심판을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말함으로 주님이 파송한 자를 거부하는 대가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제 가장 끔직한 최후의 심판이 그들의 몫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추동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이 듣습니다. 들은 말씀에 순종해야만 합니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가버나움 이라는 동네는 주님의 제2의 고향입니다(<마4:12; >막2:1). 본래는 나사렛에서 쭉 어린 시절 지내시다가 공적사역을 시작하실 무렵에 가버나움으로 이사가서 사셨습니다. 모두다 갈릴리에 속한 마을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가버나움은 다른 어떤 갈릴리 도시보다 정말 많은 주님의 사역의 혜택을 후히 받았던 마을입니다. 그 도시는 예수님과 관련해서 상당한 자부심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씀에 대한 반응은 신통치를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와 주님의 평가는 놀라운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치 옛날 바벨론 왕의 자만심(사14:13절)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를 기억나게 합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하나님은 그의 몰락을 선고합니다. 같은 논조로 주님은 가버나움의 파멸을 선언합니다. 다가올 심판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추호도 의심할 수 없도록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선언하십니다.
그 저주의 심각성을 주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강조합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주님의 파송사는 파송받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나가서 하는 바로 그 일 그것은 주님의 일로서 주께서 간주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그들을 거절하는 것은 주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거절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메시지를 거절하는 것은 그 나라를 제공한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지 않는 것은 설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제사보다 그 목소리를 순종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사울을 향해서 무엇이라고 선포했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여러분의 전도를 받지 않는 것은 여러분을 파송한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계십니까? 설교를 심각하게 듣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는 죄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고라신과 벳새다 보다 못지 않은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성령이 부어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처럼 높아지지 마십시오. 추동교회 교인이라고 자부하면 추동교회 강단에서 선포된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만 합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선포된 말씀에 순종하기까지 설교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소식을 여러분은 들을 때마다 혹은 전할 때마다 사람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을 품으십시오. 12절 이하에서 탄식하시는 주님의 부담을 안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것은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하는 일도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그 선택은 여러분의 영혼을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배우자로 택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껏 몇 십년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누구를 나의 하나님으로 섬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 땅에서 뿐만아니라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듣고도 거부하는 자의 운명은 비참합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통치의 소식을 듣고도 그 분의 다스림을 거부하면 그 결국은 참혹합니다. 그는 결국 구원의 하나님을 거부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냄 받은 자는 말씀의 중심에는 보내신 분이 서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주님의 심각한 경고를 새겨 들어보십시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선포된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듣고 순종하십시오. 주의 뜻을 즐겨 행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에 말씀에 손종하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역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참으로 높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가 되는 신분을 얻게 될 것입니다. 듣고도 영접하지 않으면 아무리 자신을 높여도 하나님의 심판아래 던져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욕망대로 계속해서 살아가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넘기겠습니까? 이제는 한번 생사를 걸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해 보십시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의 생을 드리겠다고 결심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서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눈치 저눈치 살피면서 내가 무슨 직분자인데 그래가지고는 신앙생활하기가 얼마나 힘듭니까? 여러분은 지금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십시오.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결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늘의 기쁨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로 소원하면 하늘의 기쁨이 우리의 몫이 됩니다. 여러분의 소원이 새로워지고 여러분의 생활이 달라질 것입니다. 종교적인 어휘와 관습에 익숙해지는 것은 시간만 가면 해결될 수 있습니다. 하물며, 믿는 집에서 태어나서 10살, 20살, 30살 되었는데 그러면 교회에 와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눈치로도 못할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은 시간이 해결하는 일이 아니라 결단해야만 합니다. 오늘 주님앞에 잘오셨습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선택을 하셨습니다. 이제 내린 결단에 따라서 한 평생 주님의 통치를 따라 사는 것만 남아 있습니다. 그 삶은 어떤 삶입니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삶은 어떤 것입니까? 좋으신 주님을 목숨이 있는 순간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두 가지 입니다. 주님 뜻대로 우리가 사는 것이고 좋으신 주님의 통치를 전하는 그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2021년도도 벌써 4월하고도 둘째부일입니다. 10130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영혼을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고 있으며 30분 이상 말씀을 읽는일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영적 추수를 위해서 여러분 지난주간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전도의 문을 열어 주기를 소원하는 소원이 하나님 아버지의 귀에 들렸습니까? 그냥 한번 지나가면서 부탁하고 말았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생사를 걸고 하나님이 개입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추동교회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 거룩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러분의 동역 없이도 임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순종하면 여러분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주께서 이 시대의 우리 추동교회를 향해서 기도하도록 명하실때에 "예"라고 대답하시는 성도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