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회복되리라(호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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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불러주셔서 오늘 저희가 학생부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저희가 하나님을 알아가고 그 뜻에 맞추어 살아가기를 소망해봅니다. 하나님 제게 지혜를 주시고 성령으로 저를 감동히켜주셔서 우리를 가르쳐 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함께 말씀 보실까요?
호세아 1:1–2:1 NKRV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예화

여러분, 혹시 과자 사본 적 있어요? 아니, 이렇게 표현하면 안 되겠다. 혹시 포장된 질소 사본 적 있어요? 과자봉지 안에 과자보다는 과자가 눅눅해지지 않도록 역할을 하는 질소가 더 많아져서 결국 과자가 아닌 질소를 산다는 유머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비본질적인 것 보다 본질적인 것이 덜 소중해지는 현상을 우리는 주객전도라고 부르지요. 여러분 질소가 아무리 아무리 중요하더라도 우리가 과자를 살 때는 질소가 아니라 과자가 필요해서 사는 거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떨까요?
여러분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믿으세요? 왜 하나님을 믿고 있나요? 어느 순간에 믿음이 주객전도가 되어 버린듯 한 느낌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우리가 필요한 건 ‘하나님’ 이예요. 맞죠?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구하고 있을까요? 주님 나 잘 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있을까요?
이런 기도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어요. 과자봉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과자'인 것처럼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당분간 전도사님과 함께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호세아'라는 성경입니다.

본문설명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당시 상황을 한 번 그려볼까 합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호세아는 북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여로보암 때에 활동했던 선지자였습니다.
여러분 선지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쉽게 이야기해서 그 때 당시에 목사님과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을 대신 전해주는 사람들이었지요. 호세아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호세아라는 사람의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시옵소서 라는 뜻입니다.

호세아, 이스라엘의 거울이 되다

2절과 3절 말씀을 한 번 볼까요?
호세아 1:2–3 NKRV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맨 처음 말씀하십니다.
“호세아야, 너 가서 결혼해. 그런데, 한 남자를 보지 않고 이 남자 저 남자랑 다 사귀는 그런 여자랑 결혼해. 그리고 그녀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도록 해.”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요? 여러분 여러분의 남자친구, 여자친구가 있다고 생각해보자구요. 그런데 그 사람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랑 바람을 필게 뻔한데 사귈 이유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명령을 내리신 걸까요? 그 이유는 이랬습니다.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이 때에는 맑고 깨끗한 거울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확실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얼굴에 뭐가 묻으면 누군가를 통해서 보아야 했습니다. 아마 신앙생활도 그랬던 것 같아요.
당시에 북이스라엘 상황을 한 번 볼까요? 왕이었던 여로보암은 이스라엘을 강대국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군사, 정치, 경제, 문화 모두가 발전하는 황금기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이 편안한 시대에 살수록 부작용도 늘어납니다.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변하게 되고 풍요와 다산의 상징인 바알 신을 섬기는 등 우상숭배가 만연하게 되죠. 물질적으로는 부요해졌지만, 영적으로는 심각하게 부패해버려요.
이러한 상황을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서 보여주는 겁니다. 호세아와 그의 아내 고멜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상태에 대한 거울 역할을 했어요. 호세아는 하나님의 역할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람을 피우는 음란한 여인 고멜이었던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너무나도 답답한 나머지 이렇게 시청각교육을 실시해 주십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요즘 신앙상태는 어떠세요? 어떤 것들을 보고 있나요? 여러분, 내 남자친구, 내 여자친구가 바람피우는 것 정말 싫죠? 하나님 또한 마찬가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자신 외에 다른 것들을 보는 것을 싫어하세요. 그것이 공부가 됐던지 친구가 됐던지 돈이 됐던지 상관없습니다. 여러분, 바람을 피우는 상대가 잘생기면 어떻고 못생기면 어떻습니까? 팩트가 뭐예요? 바람을 피웠다는 겁니다. 손만 잡았다느니 안기만 했다느니 이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뭐가 어쨌든 바람을 피웠다는 게 중요하잖아요? 하나님도 동일하십니다. 이거 조금 했다고 또 별 거 아니라고 우상섬긴 죄가 없던 것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 외에 다른 거 섬기지 맙시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해요. 알겠죠?

호세아와 고멜의 자식들의 이름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와 고멜로 하여금 세 명의 자녀를 갖게 하셔요.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의 뜻이 뭐예요? 혹시 여기에 이름의 뜻이 “나는 사고뭉치다.” “나는 틀렸다.” 있어요?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있어요? 없죠? 이름의 뜻은 보통 좋아요 그쵸? 하지만, 호세아는 자신의 아들과 딸들의 이름을 조금 다르게 지어요.
먼저 첫째 아들의 이름은 ‘이스르엘'이라고 짓습니다. 이 이름의 뜻이 무엇일까요? 이 이름은 이스르엘 골짜기라는 곳과 연관성이 깊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왕조는 예후라는 왕의 자손들이 잡고 있었습니다. 예후라는 1대 왕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대학살을 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학살을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피를 예후의 집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왕조에 갚을 것이라고 예언하는 겁니다. 무섭지요? 이스라엘의 활은 곧 군사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패해서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는 거예요. 실제로 이스르엘이라는 뜻에는 씨를 뿌리다 라는 뜻도 있습니다.
둘째 딸의 이름은 로루하마입니다. 히브리어로 로는 아니라는 말을 나타내는 접두사인데요, 여기에 루하마라는 자비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 사랑하다 등의 단어가 붙습니다. 그러니까 너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름인거죠. 여러분, 상상이 돼요? 부모님이 자녀를 부를 때에 사랑하지않는 자야~ 하고 부르는게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행동 때문에 이렇게까지 그들을 미워하셔요.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과 반대 편이었던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어떤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하시겠다고 말씀하세요. 이 예언 또한 히스기아라는 왕 대에 남유다가 전쟁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을 받음으로 성취됩니다.
셋째 딸의 이름은 로암미입니다. 똑같이 로가 들어가고 뒤에 붙는 암미는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요? 맞아요. 너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예요. 이 이름의 뜻도 너무하죠? 나는 너의 아빠가 되지 않을 거야 라는 말과 같은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만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없이 자비로우신 분이신 것 같고 사랑이 풍부하신 분이신 것 같지만 동시에 공정한 심판관이시기도 해요. 아주 매섭게 우리를 심판하는 분이시기도 하죠.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어떤 힘이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다고 하네요?
여러분, 제가 질문 하나 할게요. 여러분 부모님이 여러분들을 부를 때에 사랑이 없이 부르시나요? 그냥 무미건조하게 이름을 불러요? 아닐 걸요? 물론 화 내실 때 빼고요. 그럼 호세아가 자신의 자녀들을 부를 때에는 어땠을까요? 아마 사랑의 마음으로 불렀을 거예요. 물론 그 이름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마음은 찢어졌겠지만요.

회복되는 이스라엘

하나님께서는 이런 호세아의 마음을 아셨을까요? 당연히 아셨어요. 그리고 이 말뜻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렇게 부르셨지만, 여전히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해요.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온전한 충성을 바치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벌해야 하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을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거예요. 참 슬프고도 따듯하지 않나요?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이런 약속을 주십니다.
호세아 1:10–2:1 NKRV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너희 형제에게는 암미라 하고 너희 자매에게는 루하마라 하라
여러분, 바닷가에 모래 세라고 하면 다 셀 수 있어요? 절대 못세죠. 그만큼 이스라엘의 자손의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늘려주신다고 하세요. 이 앞절과는 너무 대조되는 말이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희망의 말들을 전합니다. 내 백성이 아니라고 이름한 그 곳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일컬으실 거래요.
하나님께서 대조되는 말씀을 하신 이유가 있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이제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다시 정해주십니다.
첫째 이름이 뭐였죠? 이스르엘이었어요. 이스르엘은 대학살과 북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지고 뿔뿔이 흩어질 것을 알려주는 이름이었는데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분단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통일될 것이고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땅에서부터 올라올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이 말은 전쟁에서 진 이후에 하나님께서 그 포로생활에서 끌어오실 것이라는 예언이예요. 이 예언은 바벨론 포로기에서 돌아옴으로써 성취됩니다. 말씀이 이뤄진거죠. 하지만 진짜 통일된 이스라엘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의 날에 시온에서 모이는 날을 의미해요. 그러니까 마지막 하나님의 날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등장하는 참된 우두머리는 누구인지 아시겠나요? 맞아요.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악된 땅 가운데에서 하늘로 올리실 겁니다. 이스르엘은 파종의 뜻이었는데요, 이 때에는 흩으시는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린다는 뜻으로 긍정적인 표현이 됩니다.
나머지 두 딸의 이름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부정적인 접두사 로가 빠집니다. 비로소 이들은 나의 사랑, 나의 긍휼을 받는 자가 되고 또 나의 백성, 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이죠.

말씀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오늘 호세아서의 초입을 한 번 들여다 보았어요.
우리는 그 안에서 부강한 때일수록 죄에 빠지기 쉽고 다른 것들을 보기 쉽다는 것을 살펴보았죠? 우리가 평안할 때에 우리가 아무 걱정이 없을 때일수록 조심해야 해요. 왜냐하면 그 때에 하나님을 놓치고 눈 앞에 있는 것들을 쫓을 확률이 가장 높거든요. 그러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모습들을 보여주세요. 이스라엘은 사실 우리의 모습과도 같아요.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있는지, 내가 지금 무엇을 따르고 또 섬기고 있는지 혼자서 알지 못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항상 알려주시죠. 여러분, 이 시간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지금 나도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지는 않을까? 하는 경각심을 갖고 살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너무 연약하기 때문이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죠.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호세아의 자녀들의 이름을 바꿔 주셨듯 우리의 신분 또한 바꾸어 주실 것이기 때문이예요.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와 잘못을 가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 그리고 다시 사셨습니다. 그 분이 우리의 우두머리 되시고 그 분이 우리를 죄악된 땅에서 이끌어 오셨어요. 아멘이죠? 아멘. 그리고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받는 그분의 백성들이 되었어요.
우리 이 믿음으로 또 한 주를 잘 살아가는 동서울광염교회 학생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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