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2 초대교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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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79장(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80장(천지에 있는 이름 중)
묵도하심으로 수요기도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찬송가: 31장(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기도: 이환희 권사님 기도하시겠습니다.
성경 본문: 요 1:9-14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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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두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은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된 과정과 그로 인해 신학이 발전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대교회사의 대체적인 논의는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내용 곧 기독론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바로 오늘 읽은 말씀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기독론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일어났고,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차례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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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공인입니다. 이전까지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지엽적으로 박해를 받기도 하고, 전 지역을 통틀어 대대적으로 박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박해를 받던 기독교가 이제는 정식 종교로 공인됩니다. 바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 그렇게 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배경은 이렇습니다. 당시 로마는 4명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다스렸는데 콘스탄티누스는 서방의 카이사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서방을 점령하면서 막센티우스와 밀비안 다리 전투를 앞두고 있었는데, 그때 콘스탄티누스는 꿈에 환상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약자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오면서 이 표식을 가지고 싸워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티누스는 잠에서 깨어나 그리스도의 약자를 자기 군대의 상징으로 삼았고 서방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313년에 동방의 지도자였던 리키니우스와 밀라노에서 협정을 맺게 되었는데 그 때 콘스탄티누스는 협상을 하면서 기독교는 핍박하지 말고 정식 종교로 공인하자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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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밀라노 칙령은 로마 전 지역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칙령 이후에 기독교는 박해를 받는 종교에서 신앙의 자유를 얻은 종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 교회가 공인되었고, 박해가 중지되었으며 정부가 몰수한 재산을 다시 교회에 돌려주었습니다. 이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성직자들에게 병역을 면제하시고 하고, 세금을 면세해주는 혜택을 주기도 했으며 321년에 일요일을 공식적으로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이러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정책을 다윗의 재림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훗날 그의 모습을 봤을 때 정치적인 안목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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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콘스탄티누스는 정치적인 안목으로 기독교에 많은 지원을 했지만 기독교 공인 이후 기독교 신학의 최고 절정기를 맞이했습니다. 신학자들은 이제 박해 없이 자유롭게 신학을 연구했고, 신학적 의견의 일치를 위해 회의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이전에는 박해 때문에 회의를 할 수 없었지만, 황제의 주도로 회의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국교가 되면서 문제점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교인과 비교인의 구분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는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3년 동안 세례 교육을 하고,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받아들였지만 국교가 되면서 교회의 회원 조건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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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교회의 타락이 일어났습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교회와 지도자들의 타락에 실망해서 사막에 들어가 고행을 하거나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이들을 은둔자들 혹은 허밋이라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안토니우스와 파코미우스입니다. 특히 파코미우스는 엄격한 규율과 육체 노동을 강조하며 높은 경건성을 유지했습니다. 이들 외에도 은둔자들은 많이 있었습니다. 높은 기둥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으며, 흰 옷을 입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공인과 국교화는 신앙의 자유와 신학의 발전이라는 이점도 있지만, 교회가 타락하게 되었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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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시기에 신학은 절정기라고 부를만큼 발전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공의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313년에 기독교가 공인된 후로 321년에 일요일이 공휴일이 되었는데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가 열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문제 때문에 300명이 넘는 주교가 모여서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로 모이게 된 배경은 아리우스파가 확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면 유일신 신앙에 위배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존재하지 않았을 때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성부 하나님보다 못한 분으로 인식했습니다. 이러한 아리우스의 주장에 알렉산드로스 대주교는 그를 321년에 파문 했는데, 아리우스는 자신을 지지해주던 유세비우스를 비롯해 니코메이다 지역의 지지자들과 함께 복직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 요청이 거부되었고 니코메디아 지지자들은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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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누스는 이 소식을 듣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니케아에 주교를 소집했습니다. 주교들을 모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했는데 기독교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 전체의 통일성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아타나시우스는 ‘호모우시우스’ 동일본질이란 개념을 제시하면서 성부와 성자의 본질이 동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은 처음에는 지지를 받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으나 아리우스파의 주장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을 지지했고 최초의 신조인 니케아 신조가 채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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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아 신조의 내용은 아리우스파가 주장한 내용을 비판하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과 사람이신 것을 나타내었습니다. 이 니케아 신조는 서방교회 뿐 아니라 동방 교회 그리스정교회에서도 수용하는 내용입니다. 일부 동방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니케아신조는 로마 신경과 함께 초대 교회에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 신조와 신앙고백을 구분할 수 있는데, 신조는 기독교 신앙의 규범으로 기독교라면 모두 받아들이는 내용을 말합니다. 보통 세례 때 니케아 신조와 로마 신경이 사용되었습니다. 반면 신앙고백은 특정 교파와 관련된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보면 우리가 신앙고백서라고 하지, 신조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장로교에서 사용하는 표준문서이기 때문에 신앙고백서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돌아가서 니케아 회의를 통해서 첫 공식적 신조가 채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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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입니다.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380년 다음 해에 이 회의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 회의가 열리게 된 배경은 아폴레나리우스라는 사람이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니케아 공의회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내용을 정리했지만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의가 계속해서 이뤄졌습니다. 아폴레나리우스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주도로 콘스탄티노플에서 회의를 갖게 되었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가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카파도기아 3대 교부 중의 한 사람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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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의에서 니케아 신조를 다시 공식적으로 확정하고 교회의 신앙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을 강조하고 성자의 인성을 변호하고 확정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 있는 니케아 신조에서 내용을 확장해서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를 만들게 됩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논의는 잠시 잠잠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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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회는 431년까지 약 50년 동안 모이지 않게 되는데 그 사이에 중요한 회의가 열리게 됩니다. 바로 418년에 열린 카르타고 회의입니다. 이 회의는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의 의견 충돌이 일어났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를 인정했고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를 인정하기 때문에 유아세례도 주어야 한다고 말했고, 그 원죄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펠라기우스는 원죄를 부인했기에 죄가 없는 유아에게 세례를 주는 것을 거부했으며,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거룩한 생활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보겠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왜곡된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은총만이 죄의 성향을 막을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은총을 강조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교리를 정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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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훗날 종교개혁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재조명하고 받아들이며 그가 기독교 신앙을 정립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펠라기우스 뿐만 아니라 도나투스파도 비판하며 교회론을 정립했고, 예정 교리도 정립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교회사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로 손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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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에베소 공의회입니다. 431년에 모이게 되었습니다. 이 회의는 네스토리우스와 키릴로스의 의견 충돌로 모이게 되었는데 중요한 쟁점은 마리아의 명칭 문제였습니다. 마리아를 향해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냐,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부르냐의 문제였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강조하기 위해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어머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반면 키릴로스는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말했습니다. 이 쟁점을 조율하기 위해 가운데 지역인 에베소에서 회의를 열었지만, 키릴로스가 먼저 에베소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모아 네스토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했습니다. 나중에 도착한 네스토리우스는 이 사실을 알고 키릴로스를 다시 이단으로 정죄했고, 분쟁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주교인 설레스티노의 중재로 다수결로 정하자고 결론나게 되었고 결국 네스토리우스가 이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이단으로 정죄되면 자신의 신앙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로마 지역에서 벗어나든지 결정해야 했기 때문에 네스토리우스는 페르시아를 지나 동쪽으로 향하게 됩니다. 훗날 네스토리우스파의 영향이 중국에 미치게 되었고 경교로 발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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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번째 공의회는 칼케돈 공의회였습니다. 이 회의 때 약 600명 가량의 주교가 모였습니다. 첫 공의회였던 니케아 공의회 때 300명 가량 모였는데 120년이 지나자 600명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만큼 교회가 확장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회의는 유티케스의 주장으로 모이게 되었습니다. 유티케스는 에베소 공의회 때 키릴로스의 지지자였는데,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 키릴로스를 지나쳐서 예수님의 신성만 강조하는 주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성 하나만 강조한다고 해서 단성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어 있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칼케돈 회의에서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의로 다시 모이게 되었고 그 결론은 칼케돈 신조로 나타났습니다. 칼케돈 신조를 보면 “한 존재 안에 두 개의 본성을 지닌 분이시다. 신성과 인성이 혼돈, 혼합, 변화, 분리하지 않으신 채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각 교회사별로 주된 논쟁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사는 기독론이 주된 주제였다면 중세로 넘어가면서 교회론이 강조되고, 종교개혁 시대는 구원론과 칭의론이 강조됩니다. 초대교회사는 기독론을 정립하면서 예수님께서 참된 하나님이시고, 참된 인간이심을 믿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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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초대교회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기독교가 공인되고 국교가 되자 박해는 사라졌지만 교인과 비교인의 구분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세례 교육과 교회 가입자의 생활을 검토했지만, 그 구분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 교회의 거룩성은 어떻게 드러나고 있을까요?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님이 드러나고 있는지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교회의 회원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처럼 아무나 교회의 회원이 되면 많은 문제를 발생시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회의 회원 즉 세례 교인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바른 세례자 교육을 행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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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로 한쪽으로 치우친 사상은 결코 올바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논쟁이 초대 교회만 해도 200년 넘게 지속되면서 교회에 많은 문제들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역사적 정통 신앙을 따라 바른 복음과 교리 안에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 고신 교단의 표어처럼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유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공의회는 황제나 교황의 정치적인 압력에 의해 회의가 열리거나 결정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기득권자의 이익을 위해서 회의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우리의 교훈으로 삼을 때 우리는 우리의 삶과 행동이 우리를 위한 것인지 하나님을 위한 것인지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소교리문답 1문의 답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의 의지가 타락하고, 하나님을 찾을 수조차 없을 때 하나님께서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을 베풀어주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신앙의 정통과 바른 복음 안에 살게 하시고 순결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며 살도록 우리를 인도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32장(만유의 주재)
주기도문: “주기도문으로 수요기도회를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