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됨

요한일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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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쓸 일이 거의 없지만 핸드폰이 제대로 보급되기 전에는 편지를 쓸 일이 많았습니다. 연인끼리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멀리 떨어진 친구와 편지를 보내기도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습니다. 성도님들도 편지에 담긴 이런 저런 추억들이 있을 줄로 압니다. 저도 군대에 있을 때 가족이나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었습니다. 군대 훈련소에서는 전화를 마음대로 쓸 수 없었기에 연락하고 싶은 사람과 소식을 주고 받기 위해서는 편지가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편지라는 것은 멀리 떨어진 사람에게 나의 소식을 전하거나, 수신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보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일서도 편지입니다. 사도 요한이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편지를 보낸 것이 지금 함께 보고 있는 본문의 말씀입니다.
요한서신을 받게 되는 공동체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적지 않은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본문 1절에는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편지를 쓴 목적이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죄를 범하지 않게 한다’는 말은 단순히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죄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1절 하반절에서 이야기하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예수님과 같이 만들기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흔히 예수님의 죽으심이나 구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대부분 ‘우리를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하셨다’는 측면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신 것 같이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라는 측면은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어 천국에 가는 것만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창조 질서가 회복되어 참된 인간의 능력과 모습을 회복하는 것 역시 같이 이야기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죄를 다시 이해하자면, 죄가 단순히 무엇을 잘못하고, 도덕적 ・ 윤리적으로 잘못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참된 구원의 내용과 목적에 맞지 않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에 맞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곧 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지금 1절에서 ‘내가 편지를 쓰는 것은 너희가 구원이 의도하고 목적한 것, 즉 참된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라고 쓴 것이야’라고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어떤 모습을 보면서 그것은 잘했고 이것은 못했다, 죄를 지었니 안지었니 라는 식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보자는 의미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시면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를 아는 것’은 우리가 얻은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고, 어떻게 믿노라고 하는 신앙 고백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닮지 않는다면, 가장 대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서로 사랑할 줄 모른다면, 그것은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진리를 안다고 고백하는 것은 곧 거짓말이 되는 것이고, 구원 얻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6절에서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는 이 말씀은 구원이 가지는 참된 내용인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육군 사관학교에 가면 강재구 소령의 동상이 있다고 합니다. 1965년 10월 4일, 맹호부대 중대장이었던 그는 베트남 파병을 앞두고 병사들과 함께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병사가 병사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수류탄을 잘못 던지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이 터지게 되면 수십명의 사상자가 생기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 순간 강재구 소령은 자신의 몸을 던져 수류탄을 끌어안았고, 온 몸은 산산이 분해되었습니다. 당시 나이 스물아홉살,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그는 어린 아들과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 놓고 삶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이 늘 강재구 소령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재구야, 남을 위해 살고 희생해라”.
그가 산화하던 순간 그의 가슴에는 성경책이 있었습니다. 그 성경책을 펼쳐보니 빨간 줄이 그인 구절들 중 이런 말씀이 있었다고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병사들을 위해 몸을 던진 강재구 소령과 같은 상황에 있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을 보일 것 같습니까? 군 지휘관이니 마땅히, 그리고 담대하게 자신의 몸을 던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아마 그 상황에 처하면 ‘피해!’라는 말 한마디도 겨우 던지고 나 살자고 수류탄을 피해 숨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군인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의 모습을 기억하여서 정말 다른 사람에게 나의 사랑이 필요할 때, 죽음을 불사하고 몸을 던져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이런 사랑의 모습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목숨은 커녕 나의 작은 것 하나 포기하고 사랑하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솔직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또 그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이냐?’고 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 우리에게 허락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 하시겠습니까? 구원 받은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어떤 점이라고 생각하시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보신 분이라면 제가 생각하는 답을 떠올리셨을 것인데, 구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되는 내용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되었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어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잠깐 말씀드린 것처럼 자녀는 자신이 그러고 싶든 그렇지 않든 부모를 닮아가게 됩니다. 때로는 부모의 좋은 모습을 본받기도 하지만, 이런 부분은 본받고 싶지 않다고 여기는 부분까지도 자녀는 부모를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모습을 본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정말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 육신의 부모님과는 달리 본받기 싫은 부분이 전혀 없으신 분이십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감사의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짓을 말하지 않으시는 분이니 우리도 진실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말씀을 통해 알았으면 그 모습대로 닮아가자는 것입니다.
이처럼 말하는 이유는 신앙의 핵심되는 내용을 부각 시키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하는 것입니까? 다른 것을 가지고 신앙 싸움을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를 받아보는 공동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얻은 구원의 핵심이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하는 점에서, 어떤 감격이나 능력과 같은 것들로 신앙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잘못 주장되어서 신앙 공동체 안에서 어려움이 생기지 않았는가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어떠하심과 연결되는 것이 우리가 얻은 구원의 핵심인데, 공동체 안에서 이것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능력이나 감정과 같은 것들이 마치 구원의 핵심으로 여겨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서신서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께 해보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 믿는 것을 그냥 천국 가는 표를 얻은 것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충성 경쟁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모습으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외면당한채 부차적인 것들로 신앙생활을 하니 서로 상처를 주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너무도 쉽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돌아볼 때 한국교회가 가지는 신앙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거창하게 한국교회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에게 있어서 신앙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많은 성도들이 신앙의 핵심을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능력이나 충성 같은 것들이 한국교회 안에서 신앙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요 내용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도 있어야 하고, 능력도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신앙의 내용이 아닌 것이 표준이 되어버리면, 그곳에는 성경이 의도하지 않은 심판과 자랑이 있게 됩니다. ‘나는 했는데 너는 왜 못하냐’는 식의 심판과 자랑이 생깁니다.
신앙의 핵심은 이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용서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것과 또한 용서해 줘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얻은 구원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것들과 결코 싸우지 않게 합니다. 예수님만 있으면 만족하고, 예수님 안에만 거하면 충분하게 됩니다. 다른 문제들로 이웃이나 세상과 싸우지 않습니다. 사랑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갑니다.
문제는 이런 사랑으로 가는 길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완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루어졌고, 신분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그 때에 완성될 것이기에 아직은 불완전합니다. 즉 우리 모두는 어디선가 부족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선가 부족함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서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부족함이 있으니까 사랑을 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용서해 주고 넘어가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교회 오래 다녔다더니 왜 아직도 저런 모습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뒷담화하고 마음 한켠으로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은 저 부분이 부족하구나. 사랑하고 용서해야지’라고 생각하자는 말입니다. 나에게도 부족한 부분이 있어서 나 역시 용서와 사랑이 필요한 존재이고, 다른 사람도 사랑과 용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고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을 줄인 것입니다.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과 타인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중 잣대를 가진 사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잣대를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서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하실 때에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끌을 보고 지적하는 자에게 ‘네 눈의 들보나 깨달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이들을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의 모습부터 돌아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 근거도 없이 사랑과 용서를 베풀어 주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우리가 사랑하고 용서하는 존재들이 결국은 부족함을 벗고 완성될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약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저 사람이 정말로?’라는 마음이 들지라도 말입니다.
사랑은 고통을 견디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포기하면 힘들지 않은데, 포기하지 않고 견디니 고통스럽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도 고통을 참아가며 저 사람을 사랑해 보자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신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윤리 도덕적으로 바른 삶을 살아가거나, 주를 위해서 무언가 해드리는 것이 신앙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라면 어떤 능력과 은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며 비판합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바른 삶을 살아가고, 주를 위해 헌신하며, 능력과 은사가 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유익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핵심이 거기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핵심과 본질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아버지를 닮아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닮는 것 없이 능력과 은사만 있다면 그것은 모두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바로 아버지를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따라 그분을 닮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인 성도 여러분, 다른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른 것에 기준을 두어 싸우지 마시고, 아버지의 자녀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것을 기억하여서 아버지와 같이 사랑하는 자가 되기 바랍니다. 부족함이 있는 나와 내 이웃들을 결국에는 완전하게 하실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함으로 아름다운 신앙 생활을 해 나가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대구청구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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