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기초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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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찬송
93장 / 예수는 나의 힘이요.
기도
기도
성경봉독
성경봉독
14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17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18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19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지나가며 주야로 지나가리니 소식을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20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21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의 일을 행하시리니 그의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의 사역을 이루시리니 그의 사역이 기이할 것임이라
22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
서론
서론
28장 1-13절 요약
28장 1-13절 요약
하나님은 에브라임의 ‘교만함’을 책망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이 ‘술 취해 있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풍요로움에 취해 있었다.
자신들이 누리는 물질을 ‘면류관' 삼고 자랑하였다.
그들은 결국 그 면류관을 빼앗기고 망하게 된다.
그러나 참된 면류관은 누구이신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영화로운 면류관’과 ‘아름다운 화관'이 되어 주신다.
28장 14-22절 조망
28장 14-22절 조망
이제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 예루살렘을 향해 책망하신다.
그들을 향해 ‘오만한 자'라고 말씀한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진정 믿고 의지해야 할 분이 누구신지 깨닫는 시간 되길 소망한다.
본론
본론
14-15절
14-15절
14 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15 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오만한 자
오만한 자
이사야 선지자는 누구를 ‘오만한 자'라고 말하는가?
예루살렘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을 가리킨다.
당시 남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에 살던 왕과 귀족들, 백성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오만한 자'란 어떤 뜻인가?
‘조롱하고 멸시하는 자’라는 뜻이다.
무엇을 조롱하고 멸시하는가?
선지자를 멸시한다.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멸시한다.
사망과 스올
사망과 스올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신다.
이것이 ‘생명'이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다.
이것이 ‘진리'이다. 이것이 ‘공의’다.
이렇게 행하는 것이 너희가 생명 가운데 거하는 길이다.
이렇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답게 살아가는 길이다.
그런데 ‘오만한 자들’은 그 말씀을 비웃으며 멸시한다.
‘틀린 말’이라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말’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리고 자신들 소견에 옳은대로 살아간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 대신 다른 것을 선택했다.
그것을 믿고 의지하였다.
그것이 자신들을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재앙이 넘쳐 밀려온다 할지라도 자신들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자신들에게는 안전한 피난처와 은신처가 있다고 생각했다.
성경은 분명 그것이 ‘사망'이고 ‘스올'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거짓’이고 ‘허위'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만한 자들'인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그 말씀을 조롱하며 멸시하며 그 길을 택한다.
'사망'과 ‘스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사야 선지자는 자세히 밝히고 있지 않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한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앗수르의 공격을 두려워해 애굽과 동맹을 맺은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다.
당시 이방신들 중에는 ‘모트'라 불리는 ‘죽음의 신’도 있었다.
하나님은 이방신들을,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방인들의 우상을 섬겨야 자신들이 복받는다고 주장했다.
죽음의 신을 잘 섬기는 자신들에게 죽음의 재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나님은 ‘애굽'과 같은 강대국을 믿고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다.
애굽에 내려가지도 말고, 그들과 동맹을 맺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강대국을 믿고 의지해야 자신들이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들을 조롱하며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한 가지 일을 행하신다.
16절 말씀.
16절
16절
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한 돌 - 기촛돌
한 돌 - 기촛돌
여호와 하나님은 ‘돌 하나’를 시온에 두겠다고 말씀한다.
시온은 하나님이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그리고 그 돌을 ‘기초'로 삼았다고 말씀한다.
하나님은 ‘집지기’에 비유를 하고 계신다.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이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일차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땅’이다.
땅이 튼튼해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아니라 반석 위에 지은 집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이 ‘기초'이다.
오늘날 우리는 보통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다.
기초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 바닥에 ‘기초 콘크리트’ 타설에 엄청난 양을 투입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목조건물을 보면 ‘주춧돌'이 있다.
땅에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워 집을 지었다.
이 주춧돌을 잘 놓아야 집이 무너지지 않고 오랫동안 잘 서 있을 수 있다.
이스라엘 집도 그런 역할을 하는 돌이 있다.
그 돌을 가리켜 ‘기촛돌' ‘모퉁이돌'이라고 부른다.
구약 시대에는 돌로 집을 지었다.
‘기촛돌’이 집 전체를 안전하고 튼튼하게 받쳐주고 구조적으로 견고하게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하나님께서 시온, 예루살렘에 ‘기촛돌'을 하나 두신다 말씀한다.
그 돌은 ‘시험한 돌’이다.
이미 시험을 거쳐 ‘기촛돌’로의 자격이 확실하다는 뜻이다.
또한 이 기촛돌은 ‘시험하는 돌'이 된다.
다시 말해 그들이 올바른 믿음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는 ‘시금석’이 된다는 말이다.
그 돌은 또한 ‘귀하고 견고한 돌’이다.
존귀할 뿐 아니라 견고해서 그 어떤 것도 부서뜨리거나 무너뜨릴 수 없는 돌이다.
그러하기에 이 돌을 믿는 자는 다급하게 되지 않는다.
재앙이 닥치는 순간에도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신다.
이 돌이 무엇일까?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다.
여호와 하나님 말씀이다.
궁극적으로 이 땅에 성육신하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모퉁이의 머릿돌’이라고 말씀하셨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원의 ‘기촛돌'이자 ‘시금석'으로 삼으셨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심판의 때에 ‘다급하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의 때에 ‘깨어지고' ‘가루’가 되어 흩어지게 된다.
17-18절 말씀.
17-18절
17-18절
17 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18 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측량줄과 저울추
측량줄과 저울추
하나님은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는다고 말씀한다.
집을 지을 때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수평과 수직을 잘 잡는 것이다.
수평과 수직이 잘 맞아야 기울어지거나 넘어지지 않는다.
수평과 수직을 잡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측량줄’과 ‘저울추’이다.
측량줄은 수평을 잡을 때 쓰는 도구이다.
흔히 ‘먹줄’을 띄운다고 말한다.
수평을 잡아 줄을 길게 빼서 줄을 튕기면 검게 줄이 표시된다.
저울추는 수직을 잡을 때 쓰는 도구이다.
줄에 무거운 저울추를 달아 내리면 수직을 잡을 수 있다.
수직에 맞춰 돌과 벽돌을 쌓아올리는 것이다.
정의와 공의
정의와 공의
거꾸로 이야기하면,
측량줄과 저울추는 수평과 수직이 맞는지를 확인하는 기준이 된다.
하나님은 ‘정의’를 측량줄로 삼는다 말씀한다.
‘공의'를 저울추로 삼는다고 말씀한다.
다시 말해 사람의 행위를 평가하고 심판하실 때 그 기준이 바로,
‘정의'와 ‘공의'라는 말씀이다.
정의와 공의의 기준에 합당하지 않는 모든 것은 심판받게 된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거짓’을 자신의 피난처로 삼았다.
‘허위’를 자신의 은신처로 삼았다.
그 곳이 안전한 곳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우박으로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신다.
하나님은 물로 그 숨은 곳을 채워버리고 넘치게 하신다.
그들이 안전하다고 여겨던 그 곳이 다 파괴되고 만다.
사망과 더불어 세웠던 언약이 깨져 버린다.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게 된다.
‘사망'과 ‘스올'과 맺은 약속들은 지켜질 수 없는 허무한 약속들이었다.
풍요를 가져다 주겠다고,
생명을 지켜주겠다고,
안전하게 보호해 주겠다고 한 약속들은 다 거짓이었다.
이방 우상들은 결코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줄 수 없었다.
애굽과 같은 강대국도 예루살렘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없었다.
아무리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우상을 의지하고 강대국을 의지했다 하더라도,
재앙의 날에 그것들은 재앙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지 못한다.
이스라엘은 그저 밟힘을 당하게 될 뿐이다.
계속해서 성경은 재앙을 당한 예루살렘 지도자들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이야기한다.
19-20절 말씀.
19-20절
19-20절
19 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지나가며 주야로 지나가리니 소식을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20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재앙이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재앙이 아침마다 지나간다고 한다.
재앙을 당하고 자고 일어나면 또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아니 더 나아가 낮에도 재앙을 당할 뿐 아니라 밤에도 재앙을 당하게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하는 이 경고의 메시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자신들은 안전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재앙이 닥치는 날, 그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외치던 그 메시지가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오만함으로 비웃고 멸시하던 그 메시지가 진정 자신들에게 생명을 주는 메시지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현실과 재앙 앞에 그들은 ‘두려움'에 떨게 될 것이다.
짧은 침상과 좁은 이불
짧은 침상과 좁은 이불
이사야 선지자는 속담 하나를 이야기한다.
“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한다.”
재앙 가운데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잠자리는 평안한가?
하루 24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침대이다. 잠자는 시간이다.
잠자리가 편해야 하루가 편하다.
혹시 좁거나 짧은 침대에서 잠을 자 본 적이 있는가?
다리를 쭉 펴고 자지 못하고 새우잠을 자고 나면,
자는 내내 불편할 뿐 아니라 잠에서 깨어나도 잔 것 같지 않고 더 피곤하다.
혹시 작은 이불을 덮고 잠을 자 본 적이 있는가?
내 몸 전체를 따뜻하게 덮어주지 못해서,
옆으로 한기가 들어오면 그 추위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피난처와 은신처로 삼았던 것들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그들 눈에는 큰 침대처럼, 넓은 이불처럼 보여서,
재앙이 임할 때에도 그들에게 평안과 안식을 가져다 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재앙이 닥치자, 그들이 믿고 의지했던 것들이,
한낮 짧은 침대였고, 좁은 이불이었음이 들어나게 된 것이다.
그 사실을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21절 말씀.
21절
21절
21 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의 일을 행하시리니 그의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의 사역을 이루시리니 그의 사역이 기이할 것임이라
비상하고 기이한 일
비상하고 기이한 일
하나님은 ‘비상’하고 ‘기이’한 일을 행하시겠다고 말씀한다.
비상하고 기이하다는 것은 낮설고 어색하다는 것이다.
그 일은 바로 ‘진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죄에 대해 공의로 심판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의의 하나님이 죄에 대해 진노하는 것은 마땅히 하실 일이다.
그런데 왜 그 일이 ‘비상'한 일이며, ‘기이'한 일인가?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대상이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컬음을 받는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
사랑만 받을 것 같고, 축복만 받을 것 같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진노를 내리신다고 말씀한다.
진노는 이방인들에게만 내릴 것 같은데,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내리겠다고 한다.
브라심 산과 기브온 골짜기
브라심 산과 기브온 골짜기
여호와 하나님은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신다고 말씀한다.
이것은 역대상 14장과 사무엘하 5장에 나오는 사건을 가리킨다.
다윗 시절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왔을 때,
하나님은 바알브라심에서 그들을 ‘물을 쪼갬 같이 다윗의 손으로 블레셋 군대를 흩으셨다’.
또한 하나님은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신다고 말씀한다.
이것은 여호수아 10장에 나오는 사건을 가리킨다.
여호수아 시절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할 때,
하나님은 기브온에서 태양과 달을 멈추시고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다.
브리심 산에서, 기브온 골짜기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블레셋과 가나안 사람들에게 진노하셨다.
그런데 이제 그 진노를 ‘하나님의 백성'이라 일컫는 이스라엘을 향해 부으실 것이다.
이것이 비상한 일이며 기이한 일이다.
결론
결론
이사야 선지자는 이 모든 경고의 말씀을 전하고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22절 말씀.
22 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향하여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사망과 맺은 언약을 끊고 생명이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말한다.
거짓을 피난처 삼지 말고 진리이신 하나님 말씀 안에 참된 평안을 누리라고 말한다.
선지자인 이사야는 자신의 민족 이스라엘이 당하게 될 일을,
만군의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들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거짓되고 죄악된 이 땅을 멸망시키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경고를 듣고,
죄에서 돌이켜 그 재앙에서, 그 진노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그 경고를 무시하고 말았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 되길 원한다.
‘귀하고 견고하 기촛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되길 원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의와 사랑을 따라 살아가는 자 되길 원하다.
그 안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우리들 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