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3 더리버 새벽예배 (왕상21:17-29) '무엇이 먼저인가?'
본문
서론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아합은 그의 왕궁 가까이에 있는 이스르엘에 나봇이라는 사람이 소유한 포도원을 가지기를 원하여 그에게 팔도록 요청했다(왕상 21:1–2). 그러나 나봇은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셨다”(왕상 21:3)라고 하면서 거절했다. 하나님은 토지를 팔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다(레 25:23–28). 이러한 나봇의 대답을 들은 아합은 ‘근심하고 답답하여’왕궁에 돌아와 침상에 눕고 식사도 하지 않았다(왕상 21:4). 여기서 ‘근심하고 답답하여’라는 표현은 아람과 싸운 두 번째 전쟁 이후에 무명의 선지자로부터 책망의 말을 듣고 보인 반응(왕상 20:43)과 동일한 것으로 아합이 몹시 불쾌하고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아합은 왕이 가진 힘으로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본론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하나님은 율법을 지키려다 죽은 나봇의 억울함을 보셨다. 그래서 엘리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라고 책망하게 하고,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왕상 21:19)는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또한 그에게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할 것이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할 것이라고 전하게 하셨다(왕상 21:22; 참조. 왕상 15:29; 16:3, 11). 아합이 나봇을 죽인 데는 이세벨의 충동이 있었다(왕상 21:25). 그런데도 엘리야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께 악을 행했다”라고 책망함으로 아합의 책임임을 강조한다(왕상 21:20). 여기에 ‘네 자신을 팔아’(히트마케르카, הִתְמַכֶּרְךָ֔)라는 뜻은 히브리어로 재귀태이며 강조형이다.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합이 자신의 의지대로 행하지도 못하고 언약 백성을 보호해야 할 왕의 직분도 수행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세벨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세벨이 충동한 것을 아시고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그를 먹을 것이라고 심판을 선언하셨기 때문이다(왕상 21:23). 하나님은 이세벨이 아합을 충동했다는 것을 아셨다는 것이다.
이 말씀대로 아합이 죽어서 개들이 피를 핥았고(왕상 22:38; 왕하 9:26), 이세벨 역시 죽어서 개들이 그의 시체를 먹었다(왕하 9:36). 하나님은 나봇이 언약 백성으로서 율법대로 살려고 하다가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죽은 것을 아시고 그들을 심판하셨다.
ㅇ 해결방법
아합은 엘리야로부터 책망하는 말을 듣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했다(왕상 21:27). 여호와께서는 아합이 겸비한 모습을 보이자 의외의 반응을 보이시고 재앙을 그 아들의 시대에 내릴 것이라고 하셨다(왕상 21:29). 이것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신 사건이다. 회개로 인하여 심판이 당대에 이루어지지 않거나 연기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회복의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