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박해 큰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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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1-8 큰 박해 큰 기쁨
한 주간 즐겁고 기쁜 일이 있으셨나요?
코로나로 인하여 즐겁고 기쁘기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언제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기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주님 안에 기쁨을 누리시는 예배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스데반은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는 자리는 인간의 눈으로 불쌍하고 외로운 자리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죽으셨습니다.
성도가 고난을 받는 자리에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사울이 교회를 핍박하는 중에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은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사울은 “누구십니까?” 저는 오늘 처음 만났는데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성도를 박해하는 것을, 예수님이 직접 박해를 받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절망가운데 있을 때, 온갖 고난과 핍박을 받을 때
그 자리에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함께 아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데반이 순교하는 그 자리에 하늘문을 여시고,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이 일어서서 스데반을 위해 중보하시며, 친히 힘을 주신 것입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사울이 앞장섰던 것 같습니다.
행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의 발앞에 두었습니다.
스데반은 율법을 외곡했고, 성전을 파괴하는 자이며
감히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는 자이기 때문에 죽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이대로 망한 것 같고, 외롭고 쓸쓸한 죽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고 교부 터툴리안이 했던 말처럼
스데반이 순교하며 “저들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가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나님 보좌 앞에 상달이 됩니다.
스데반을 죽이고, 마땅히 여겼던 사울,
그리고 앞장서서 성도를 핍박하고 교회를 무너뜨리려 한 그 사울을 주님이 만나주신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 성도의 믿음, 성도의 기도, 심지어 죽음마져도 헛되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열매맺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발자취,
우리가 주님 때문에 흘리는 눈물
우리의 모든 헌신을 하나님을 기쁘게 보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실 것입니다.
결코 우리의 수고와 헌신이 헛되지 않습니다.
스데반의 순교가 당장은 종교지도자들의 승리이며 사탄의 승리 같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이 부활의 시작이 된 것처럼
스데반의 순교로 인하여, 교회는 더욱더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성도들이,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행8:2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서울에 3000명, 5000명이 회개하고 교회가 세워져서, 서울 중심으로 모였다면
스데반의 순교와 이로 인한 큰 박해가 시작되어
수원, 성남을 비롯한 강원도 부산 제주도 전국으로 흩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3절입니다.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잔멸한다는 것은 사나운 짐승이 먹이를 갈기갈기 찢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사울은 살기가 가득하여 교회를 갈기갈기 찢듯이 핍박을 한 것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사울은 교회를 잔멸하여 남은 성도들도 모두 옥에 갇히는 상황입니다.
이대로 무너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교회역사를 보면
로마황제로부터 핍박과 순교를 당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결국은
로마를 기독교 국가로 만듭니다.
중국도 1950년 선교사를 추방하고, 교회가 살아남기 힘들거라고 생각했는데
50년만에 5000만명으로 성장했고, 지금은 약2억명으로 추산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공산권, 불교권, 이슬람권등 어느 곳이나 지금 성도들이 있고
결국 교회는 소멸되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4절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교회가 박해를 받으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큰 박해를 받을수록 오히려 곳곳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반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바벨탑에서 우리끼리 모여서 잘먹고 잘살고,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하며 바벨탑을 쌓을 때
언어를 통하여 흩어지게 하셨다면
이제는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권능과 능력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스데반의 죽음으로 교회가 큰 타격을 받고 위축될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고,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며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말씀을 전하고, 토론을 하면 이길 수 없을 만큼 영향력이 있던 사람입니다..
이런 스데반이 죽었으니 성도들이 큰 충격을 받고 전도사역이 위축될 수 있습니다.
또 전도대상자들도 “교회에 가면 안되겠구나”라고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어느 한 사람의 영향력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한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교회에 큰 영향력을 주고 있다면 건강하지 않는 공동체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 공동체에 영적인 지도자를 세워서 이끌어 가십니다
그런데 그 공동체가 그 사람이 있고 없고로 좌지우지 될 정도라면
하나님이 이끄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 이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니까
또 등장하는 사람이 빌립이었습니다.
5-6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스데반이 없으니까.
빌립이 등장합니다.
사마리아 성에서 예수님을 전할 때 표적이 일어났습니다,
7절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처음 이런 기사와 표적은 베드로를 중심으로 사도들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성령충만한 스데반을 통해서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더니
스데반이 없으니까. 이번에는 빌립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것도 한사람씩 고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떠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한꺼번에 낳기 시작합니다.
요한복음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고, 믿음으로 행할 때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할 것이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보다 더 큰 일들이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어떤 한 사람만을 통해서, 한 교회만을 통해서 일어나지 않고
모든 하나님의 자녀와 교회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빛과소금교회가, 그리고 우리 모든 성도님들을 통하여
이런 역사들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한 사마리아 지역은 유대인들이 피해 다니는 지역이었습니다.
사마리아는 갈릴리와 예루살렘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사마리아지역을 지나가야 빠른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를 지나지 않고 멀리 돌아갈 정도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고, 심지어 증오하는 관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지역을 일부러 지나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자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이상하다는 듯이 말합니다.
그만큼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지역과 사람들은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에 멀어진 사람들이라 여겼고
사마리아 인들도 자기들이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고, 유대인들이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약속한 메시야인 것을 알려주셨고
이것을 믿은 이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가서 사마리아 인들에게 예수님은 전합니다
요한복음 4:29-30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사마리아 인들이 기다리던 약속의 메시야를 만났다는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온 것입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오는 모습을 보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4:35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이제 영혼의 추수때가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빌립이 사마리아로 가게 된 것은 핍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간 것이지만
이 모든 상황뒤에 하나님의 섭리가 이미 있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을 따라 예수님을 전했더니
사람들이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고,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일어나 걷게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풀리지 않던 인생의 문제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났을 때 해결되는 것입니다.
8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사마리아 인들은 늘 유대인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비난을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우물가의 여인과 같이, 그다지 기뻐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면서
작은 기쁨이 아니라, 성 전체에 큰 기쁨이 사람들 마음을 자리잡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많은 사역의 열매를 맺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가는 곳 마다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웠고, 많은 사역자들을 세운 사람입니다
이와 동시에 많은 표적과 기사도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늘 기도제목이 있었습니다
바로 자신의 육체의 질병이었습니다.
이것이 눈에 대한 병이다. 간질병이다 라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해결되지 않은 병이 있고 기도제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병을 놓고 세 번 간구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저 횟수로 세 번 기도해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작정기도한 것입니다.
세 번씩이나 작정기도를 했는데 하나님이 안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신 응답이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나의 능력은 약한 데서 온전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대단한 사람들을 통해서도 나타나기도 하지만
주로 약한 사람을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지 내가 언제부터 강한자였고, 유능한 자였지?”
“나는 예수님을 핍박한 자요, 깨닫지 못하고 교회를 무너뜨릴려고 했던 자인데
예수님이 찾아와 주셨고, 이방인의 사도로 세워주셨지!
”지금까지 교회를 세운 것도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사람이 변화된 것도 내가 한 것이 아니요“
”복음을 전하며 나타난 모든 기적과 표적도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연약한 나를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고후12:9하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인간적으로 병이 있어서 기뻐할 수 없는데
”이 병마저도 나를 겸손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의 원천이 되는 것이구나!“
그래서 병이 든것에 대해서, 지금 이 근심거리에 대해서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기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잡도록 나를 겸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내 능력은 연약한 나를 알기 때문에 주님만을 의지해서 나온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지금 나를 붙잡고 있는, 내 안에 실망과 좌절이 있나요?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 실패와 나의 연약함이, 더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게 하고, 나를 겸손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형통해서 기쁘고,
장애물이 있어도 기뻐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지금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기뻐하라고 하는 사도바울의 처지는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이, 오히려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격려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자신감입니다.
상황과 환경에 매이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합니다.
왜요? 성령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안이 있기에, 그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기뻐합니다
지금 나에게 기쁨을 빼앗아 가는 어떤 사람이나 환경이 있나요?
나의 연약함마저도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큰 핍박과 환난속에서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복음을 전했고
가는 곳마다 큰 기쁨을 전해 주었습니다.
큰 환난, 큰 고난은, 곧 큰 기쁨을 맛볼 수 있는 반전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한 주간도 우리의 가정에 나로 인하여 큰 기쁨이 넘치고
내가 있는 일터, 교회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로 인하여, 주님 때문에 큰 기쁨을 누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