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 (88~91문)

Jooahn Kim
제네바 신앙교육서 해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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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John 14:16–17 NKRV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서론

지난 주

예수님의 내려오심 그러니까 다시 내려오심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얼굴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내려오심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얼굴은 무엇이었나요?
바로, 양은 양대로 오른쪽에 구분하고, 염소는 염소대로 왼쪽에 구분하는 모습으로 심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내려오심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얼굴인 심판은 바로 주인이 멀리 타국으로 떠나며 자신의 재산을 종들에게 맡겼다가 오랜 시간 후에 주인이 다시 돌아와 결산하는 모습을 다루고 있었던 “달란트 비유”의 모습이었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재산을 종들에게 맡기면서 종들이 주인 자신의 뜻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얼마나 주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섬기기를 원하는지를 테스트 해보고자 했었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승천하심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 열쇠를 소유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내려 오실 때,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천국 열쇠를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했는가?라는 것을 결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천국열쇠는 받았고, 이제 결산할 날만 남아 있는 이 때에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저게 됩니다. 과연 나는 어떤 종의 모습인가?라고 말이죠.
내가 과연 어떤 종의 모습인가?라는 질문을 조금 더 현명하게 바꾸면 나는 천국 열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남았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론

오늘본문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John 14:16–17 NKRV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실 것을 구하시겠다라고 말씀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

여기서 무엇인가 이상한 것을 찾으셨나요?
네, 바로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왜 이상하냐면, 지금 또 다른 보혜사 라는 말은 보혜사가 이미 있었다라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지금 아버지께 구하여서 또 다른 동생을 주실 것을 구할 것이다. 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바로, 이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단번에 아버지께 구하는 나에게는 이미 동생이 있고, 또 다른 동생을 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보혜사를 구하시겠다라는 말은 바로 또 다른 보혜사 말고 이전에 이미 있었던 보혜사가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가 살펴볼 “또 다른 보혜사”를 알아보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있었던 보혜사를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먼저 있었던 보혜사를 살필 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구하여서 주실 “또 다른 보혜사”를 알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처음 있었던 보혜사: 예수 그리스도

요한1서 2:1 에 보면 그 해답이 놓여 있습니다.
1 John 2:1 NKRV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음, 지금 여러분들의 심정을 좀 헤아려 보자면, 아니, 여기에는 전혀 보혜사와 관련된 내용이 없는 것 같은데, 어디에 있지? 라는 마음을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요한1서 2:1 에서 보혜사라는 단어는 대언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보혜사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라고 번역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사용되어진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과 요한1서 2:1 에서 사용된 대언자라는 말이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라는 것이죠.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로 인하여서 가정하게 되는 것 “또 다른 보혜사"보다 앞서는 보혜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지금 아버지께 구하시는 그 “또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을 살피면 보인다라는 것이죠.

보혜사의 정의

어원적 의미 : parakletos

자, 이제 “보혜사”라는 말의 정의를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원문에서 보혜사는 “parakletos”라는 헬라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합성어 인데요. ~으로 부터, ~과 함께, ~ 옆에 라는 전치사 para와 부르다, 청하다, 이름하다 라는 동사 kalew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으로부터 부르다. ~과 함께 부르다. ~ 옆에 부르다 혹은 ~으로부터 초청하다, ~과 함께 초청하다, ~옆에 초청하다 라는 의미이다 라는 것입니다.
어원적 의미를 살피면 조금 명확한 의미는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요한1서 2:1 에서 얻었던 힌트를 따라서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적 의미 :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다
요한복음 18:15-18, 25-27 을 보면,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길어서 기록해 드리지 못했는데요 재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John 18:15–17 NKRV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John 18:25–27 NKRV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바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하는 장면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서 있는 곳의 장소는 바로 법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스라엘의 법원에서 추긍당하시고 있다라는 것이죠. 죄가 없으셨지만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강제로 법원에 세웠던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쓰시고 법원에 서 있는데, 그때 베드로가 함께 있었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서 변호하고, 예수님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서 힘쓰는 모습이 아니라 법원에서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몰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너도 저 예수님과 함께 하던 사람이 아니냐?”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베드로는 지금 나는 모르는 사람이요. 나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라 말하며 예수님을 배신했던 것입니다.
감옥에 간 베드로
그랬던 베드로가 사도행전 12:5 에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Acts 12:5 NKRV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사도행전 12:1-4 을 보면, 헤롯 왕이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 헤롯은 교회에서 몇 사람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그 첫번째 희생자로서 야고보를 죽였고, 이를 알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베드로도 죽였으면 하는 마음에 옥에 가두게 됩니다.
그리고 “유월절이 지난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어 예수님을 죽였던 것처럼 죽이고자"했다라는 것이죠.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죽게 되실 때, 도망갔던 자였습니다.
벌벌 떨면서 법원에서 재판 받고 계시는 예수님을 모른다라고 3번 부인하며 자신의 목숨을 지켰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자신의 동료인 야고보가 죽임 당했을 때, 도망가지 않고, 숨지 않고 잡혀서 감옥으로 왔다라는 것이죠. 자신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말입니다.
왜 베드로는 도망가지 않고, 숨지 않고 자신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감옥으로 갔을까요?
예수님의 위로 : 보혜사
그것은 바로 요한복음 21:1-25 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후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것은 바로 제자들을 만나신 일입니다.
요한복음 21:1-25 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신 모습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장면에서 우리는 보혜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라는 것이죠.
요한복음 21:1
John 21:1 NKRV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이렇게 기록하며 장소적 배경이 디베랴 호수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렇게 디베랴 호수를 배경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만남이 그려지는데,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었습니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리를 잡으러 가야겠다"라고 하자 다른 제자들도 함께 베드로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렇게 배에 올라 그물을 열심히 내렸다 올렸다 반복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한 마리도 건져 올리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가며, 물가에는 안개가 자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기 육지 쪽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얘들아, 너희가 고기 좀 잡았니?”라고 말이죠.
제자들은 “아뇨,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그러면 물고기를 잡을 것이다"라는 또 다른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제자들은 아리송 했지만, 그 말에 따라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고기가 너무 많아서 그물을 들어 올릴 수 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와 함께 있던 제자 중 한 사람이 베드로에게 말했습니다.
“이 음성은 주님의 음성이다”라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벗고 있던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들었고, 그렇게 육지를 향해 헤엄쳐 왔고,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에 물고기를 실어 베드로를 따라 육지를 향해 왔습니다.
자욱한 안개를 지나, 베드로가 육지에 도착하자 베드로의 눈 앞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고, 그 위에 생선이 굽히고 있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베드로의 시선을 강하게 이끈 것은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주 천연덕스럽게 제자들에게 “너희가 잡은 물고기 좀 가져오너라"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음성을 따라 잡은 물고기 몇 마리를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생선요리를 마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과 생선을 주시며 그들에게 함께 밥을 먹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식사를 마친 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말씀하시자, 베드로는 “네 주님 그러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을 주님께서 잘 아십니다"라고 대답했고, 예수님은 “그래 내 어린양을 먹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또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다시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살아하는 줄을 주님께서 잘 아십니다"라고 대답했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그 대답에 “내 양을 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잠시 고민에 빠진 채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잘 아십니다"라고 대답했고,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래, 내 양을 먹이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신하고 자신을 알지 못한다고 외면했던 베드로를 찾아오셔서 보여주신 이 모습이 보혜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억울한 누명을 쓴채 사형에 처하도록 내버려두었던 자에서 예수님을 위해 도망갈 수 있고, 피할 수 있는 감옥을 자처하여 순순히 들어간 이유가 바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모습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배신한 자에게 찾아오셔서 자신을 배신한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오히려 자신을 배신했던 베드로에게 예수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니?라고 물어보신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성경에서 찾게 되는 보혜사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보혜사 라는 말의 의미이다 라는 것이죠.

역사적 의미 : 위로자, 조력자

이렇게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보여진 보혜사에 대해 역사적으로 논의된 의미는 바로 “위로자", “조력자"입니다.
요한복음 14:26
John 14:26 NKRV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라고 기록하며,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구하실 “또 다른 보혜사"가 예수님께서 하셨던 일을 가르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을 말합니다.
즉, 지금 예수님 자신을 배신하고, 예수님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채 사형당하는 것을 방관했던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셔 그를 위로하셨던 그 예수님의 모습, 그 모습을 “또 다른 보혜사”를 통해 드러내시겠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구하실 또 다른 보혜사는 바로 성령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그 위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예수님과 동일힌 시대에 살지 않지만, 우리가 예수님과 동일한 시대에 살았떤 그 제자들과 같이 예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또 다른 보혜사 이신 성령이 우리 안에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많은 선교사님들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고 박해 속으로 뛰어들어간다라는 것이고,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일날 함께 모여 예배하고 하나님께 은혜와 위로를 받아 다시금 삶의 전쟁터인 세상 속으로 뛰어들어간다라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서 얼마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의 친구들과 여러분들의 가족들, 여러분들의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여러분들을 보며 “너 참 그리스도인 답구나"라는 인정을 받고 계신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포기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늘 타협하고, 늘 포기하고, 늘 무너져 내리는 존대들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모습이 바로 베드로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베드로를 향하여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다시금 그들을 격려하셨던 그 예수님의 모습, 그 예수님이 지금 성령을 통하여 여러부들을 위로하신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어렵고, 힘들고, 포기해야할 것도 많기에 우리는 예수님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의 위로를 누리고, 그 위로 속에서 다시금 힘을 얻고, 다시금 견디어 내며, 다시금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죠.
천국 열쇠를 어떻게 사용해야할까? 염려하지 마시라!
천국 열쇠를 가지고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천만의 소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다.
그저 우리는 성령을 의지할 뿐이다.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혼자 이 세상을 감당하고, 이 세상을 싸워 이겨야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여러분들의 마음 안에서 위로하시고 힘을 주시며, 다시금 일어나게 하시는 그 보혜사 성령의 위로하심과 도우심으로 날마나 조금씩 조금씩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위로하시는 그 보혜사를 의지하심으로 여러분들의 어려움과 고민과 갈들과 힘듬과 괴로움을 위로 받으시는 귀한 나날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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