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주로 오시는 예수님

요나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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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신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사랑합니다’하고 인사 나누십니다.

S1-2. 분문의 내용

네 감사합니다. 벌써 4월이 지나가고 5월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많이 변한 일상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봄의 기쁨을 풍성히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자신을 찾아오신 하나님 앞에서 죄를 깨닫고 회개의 결단을 하는 요나의 모습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당시 배에 탄 무리들은 갑자기 닥친 풍랑을 보고 원인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제비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요나를 심문하면서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런 재앙이 임했는지를 확인합니다. 요나는 제비의 결과에 순복을 합니다. 자신은 바다와 육지를 창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인데 자신이 그 얼굴을 피했기 때문에 이런 재앙이 임하게 되었다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악한 일을 행한 요나를 원망하고 점점 더 흉흉해지는 바다를 달래기 위해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질문을 합니다. 이에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져 이 위기를 피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처음에 무리들은 이 말을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노하셨다고 해도 그의 선지자를 자신들의 손으로 죽이는 일에 동참하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육지를 향해 노를 저었지만 결국 풍랑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요나를 바다에 던집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결과였습니다. 순식간에 파도는 사라지고 바다는 잔잔해 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기도했던 대로 무죄한 피를 자신들에게 돌리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바다에 노아를 던진 것을 순종으로 받고 전능하신 힘으로 풍랑을 그쳐주셨던 것입니다. 실로 요나의 하나님은 전능의 하나님이신 줄 그렇게 깨닫고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S2. 본문의 주제

우리는 이 본문에서 요나를 찾으신 하나님께서 그의 깊은 회개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회개는 단지 머릿속으로 잘못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벌인 죽음의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회개는 단순히 시인하고 몇 가지 고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죄로 인한 형벌인 죽음을 인정하고 그렇게 죽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참된 회개의 삶이 무엇인지를 함께 묵상하고 구원에 합당한 회개를 하나님 앞에 올려 드려서 참된 믿음의 삶을 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이 급박한 풍랑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자신들 가운데 누군가와 그가 행한 어떤 일이 이 풍랑의 이유라고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그 사람을 가려내려고 제비를 뽑습니다. 결과는 명백했습니다. 요나에게 제비가 간 것입니다. 우리 7절 말씀을 봅시다.
요나 1:7 NKRV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제비를 움직이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런 확고한 마음을 깨닫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이 모든 재앙이 요나로 인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그 일을 요나에게 듣게 됩니다. 9, 10절을 봅시다.
요나 1:9–10 NKRV
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이제 답은 주어졌습니다. 요나가 바다와 육지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맡기신 소명을 버리고 정 반대 방향의 다시스를 향했기에 이 큰 재앙이 임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나를 책망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세상으로부터 책망을 당하는 것이지요.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고 그를 책망한 것입니다. 이제 답을 알았으니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어찌해야 이 풍랑을 피할수 있는가 하고 요나에게 묻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12절을 봅시다.
요나 1:12 NKRV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요나는 자신을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당시 풍랑은 점점 더 심해졌기에 사람들에게 이 말은 그를 죽이라는 뜻으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풍랑이 없더라도 바다 한 가운데 사람을 던진다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격랑의 파도가 이는 바다에 선지자를 내 던진다는 것은 그를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요나가 어떤 이유에서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했는지는 정확하에 읽을 수 없습니다. 일차적으로는 다시스로 가는 배에서 내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의 부르심의 자리는 니느웨였지 결코 다시스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스 행 배에서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에게 죽음을 요구합니다. 배가 다시 회항을 하던지 아니면 중간 항구에서 돌아가는 배를 갈아타던지 하지 않고 그냥 폭풍 가운데 던져지는 것은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결정 자체를 보면 요나가 죽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하나님 앞을 피해 달아난 사역자를 향한 형벌이 죽음이라는 냉엄한 현실을 알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은 죽음의 심판을 초래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데 끝까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죽음이 온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고집, 내 생각의 아집에 매달려 함께 사랑하며 긍휼을 행하자고 하시는 하나님을 거역할 때 사역자의 형벌은, 혹은 제자된 우리들을 향한 형벌은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S3. 문제제기

물론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하면 자살이라도 하기를 원하시는 것인가? 요나가 지금 배에서 자신을 던지라고 하는 이 행위는 자신을 죽이는 일밖에 안되는 데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것을 요구하시는가? 하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요나를 배에서 뛰어 내리라고 하셔도 얼마든지 그를 살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자신이 뛰어 내리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사람들에게 형벌을 집행하라고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바다에 던져지는 형벌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피를 자신의 손에 묻히기 싫어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배를 움직여 육지에 닿아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무엇입니까? 더 큰 풍랑을 만나게 되고, 할 수 없이 그들은 요나의 죄에 대한 형벌을 집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요나가 바다에서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을 외면한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곧 죽음으로만 갚아야 하는 그의 형벌은 요나가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속성, 심정, 그리고 방법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우리의 모든 삶을 다스리시는 섭리의 주인이십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구원의 주로서 세상의 죄를 심판하시는 심판주로 오십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죄를 대하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을 마음에 깊이 기억해야 합니다. 악을 심판하시고,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 삶의 죄성과 그로 인한 모든 죄의 결과들에게 대해 우리 하나님은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타락한 우리의 죄성과 그 모든 죄악을 하나님은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동생을 죽인 가인을 그 땅에서 추방하셔서 유리 방황하는 자가 되게 하셨고, 노아 시대에는 노아 가족 여덟 명을 제외한 전 인류를 심판하셨습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은 자기 백성이라도 앗시리아의 손에 고난과 고통을 당하게 하시며 결국은 멸망시키셨습니다. 요나 이후 약 40여 년이 지난 날에 북이스라엘은 요나가 생각하기에 악하다고 생각했던 그 니느웨 사람들의 손에 망했습니다. 이방보다 더 악한 자신들의 자화상을 보지 못하고 단지 우리를 괴롭히는 자라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소명을 떠났던 요나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방의 경우는 조금만 되돌려도 더 놓아 두셨지만, 자기 백성 이스라엘은 그 범죄로 인해 나라가 망하고 개인들이 유린당하는 심판을 행하신 것입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오심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살과 피를 대신 찢고 흘리신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심판이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악과 죄성들을 하나님은 그저 용서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그 의로우심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으로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성과 죄악들의 형벌을 지시고자 십자가를 향해 걸어 가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회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합니다. 내 속에 있는 죄성에 내 마음과 판단을 맡기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나 자신이 얼마나 죄에 깊이 빠져 있는 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의 형벌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마음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노아 시대에 이미 인간의 모든 생각이 악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 창세기 6장 5-7절까지의 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6:5–7 NKRV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이런 심각한 영적 상태를 아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향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그저 ‘내가 실수 한 번 했네’, ‘이제 안그러면 되겠네’ 하고 가볍게 대하지만, 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범죄는 오직 죽음으로만 갚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 갚는 것이 아니라 갚을 수 없고 죽음의 형벌로 인생이 끝이 나는 것입니다. 어떤 큰 죄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눈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단지 자신이 잘못했다는 데 회개가 있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어야 이 진노가 그친다고 이해한 것입니다.

J3. 예수님의 인성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는 그 죽음을 대신하신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기대했던 대로 주께서 나라를 회복하시는 그 날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왕좌에 앉으시고, 제자들은 그 좌우편에서 권세를 누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공의와 사랑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을 찢고 피를 흘리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참된 회개를 할 때마다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그 주님과 하나가 되고 그렇게 주님과 같이 내가 죽어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죽이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다 용서하시면서 우리가 죽어야 하는 대속의 죽음을 지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을 봅시다.
누가복음 23:34 NKRV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되기 위해 그렇게 죽음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죄인들은 그 의미를 모른 채 회개를 가볍게 여기고 회개는 그저 내가 내 마음 돌이키는 것인 줄 알고, 그냥 자기가 자기를 의롭다고 하는 뉘우침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회개는 죽음임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대신 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태복음 16장 24절 말씀을 봅시다.
마태복음 16:24 NKRV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회개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삶이 바로 주님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내 죄의 형벌이 오직 죽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나를 부인하며 사는 그것이 회개입니다.

W1. 예수님은 죽음을 통해 우리의 회개를 완성해 주셨습니다.

성도의 회개는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단순히 뉘우치는 생각이 아닙니다. 성도의 회개는 내가 죽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의지를 그리스도의 뜻과 하나님의 뜻에 내어 놓고 오직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나는 그 의로 사는 것입니다. 내 의로운 뜻이 아니라 주님의 의로운 뜻으로 사는 것이지, 나는 이미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W2. 참된 회개는 내가 죽고 나를 부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회개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타난 아버지의 사랑과 호의를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눈으로 볼 때 나는 죄인이고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죄성에 의해 더럽혀진 것임을 알고 나를 포기하고 죽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죽음이 없는 회개, 생각뿐이고 말만 하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요, 진정한 회개가 없는 믿음은 거짓 믿음입니다.

W3. 우리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죽음을 참 회개로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요나의 죽음을 진정한 회개로 받으셨습니다. 물론 요나를 그 때에 죽음으로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에게 니느웨 회개의 선포를 감당할 선지자의 직무와 그 열매를 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가 죽음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셨습니다. 내 마음의 의로움, 요나의 마음 안에 있는 하나님보다 더 의로운 그 마음,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에 대해 죽는 그의 결단을 받으셨던 것입니다.

T1. 요나는 이로 인해 놀라운 체험들과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이 죽는 결단을 통해 오시는 예수님, 우리를 위해 이렇게 회개의 열매로 죽으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는 영원한 생명의 구주가 되실 것을 그는 분명히 나타내 보였고, 예수님은 그를 시대의 표적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마태복음 16장 4절을 봅시다.
마태복음 16:4 NKRV
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주님은 요나를 통해 세상에서 사흘 동안 죽음의 무덤에 계실 것을 표적으로 보이셨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요나의 인생을 주님을 증거하는 새 인생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T2. 오늘날 우리들은 죽음이 따르는 회개를 부정하고 삽니다.

우리는 내가 무슨 그리 큰 잘못을 했는지 잘 깨닫지 못합니다. 내 죄성이 얼마나 심각하고 그로 인해 맺는 죄악의 열매들이 얼마나 악한지 모릅니다. 그냥 나는 양심에 좀 미안한 생각도 가지고 하니까 나는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내로남불’이 남발하는 우리 한국 사회는 타인의 죄를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 너무 인색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눈이 심판의 눈임을 깨닫지 못합니다. 내 죄성들이 내게 죽음을 가져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죄를 돌이키는 데는 죽음이 따라옵니다.

T3. 성도는 죽음이 함께 하는 회개에 참여함으로 참 복음의 사람이 됩니다.

내가 죽는 것이 죄성의 형벌을 받은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죄에는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이 있습니다. 참된 성도는 이 형벌을 깨닫고 나를 위해 그 형벌의 죽음을 지신 예수님 앞에서 자신을 포기할 줄 압니다. 자신을 십자가 못 박을 줄 압니다. 그리고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영광의 미래를 바라보며 소망 가운데 사는 놀라운 변혁을 경험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죽으심 안에서 나의 죽음을 깨닫고 내 십자가를 주님의 십자가에 세워 자신을 부인하고 참된 회개의 삶을 이루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나의 죽음의 결단을 통해 참된 회개의 계시를 밝히 깨닳으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에는 많은 회개의 거리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목숨을 통해 갚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주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그냥 뉘우치고, 미안하네, 하나님께 죄송하네 정도로 회개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회개의 시작입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십자가를 세워야 합니다. 나의 십자가를 세우며 나를 죽일 때 우뚝 서 계신 주님의 십자가가 나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서 참된 회개의 삶,죄를 두려워하고 나 자신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사랑을 행하지 못하는 삶에 내 옷을 찢고 통곡하며 울고 참된 성령의 은혜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L6.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도 요나와 같이 자신을 죽이는 성도의 길을 걷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주장하고 내 생각을 믿고 남을 정죄하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 교만한 마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남의 눈의 가시는 크게 보이고,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타인의 눈의 들보를 보고도 내 눈의 가시를 빼는 일에 더 열심인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죽고 죽어야 참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자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나 자신이 죽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져 하나님의 심판을 온 몸에 맞이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죽었을 때라야 그는 구원의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자신을 죽이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죽어서 주님의 죽으심이 나를 살리는 놀라운 은혜의 사랑을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찬송가
260장 -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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