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내공을 키웁시다
Notes
Transcript
우리는 악인의 길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악인의 길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5월은 스승의 날 어버이날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더 느끼겠지만 내게 가르쳐줄 스승이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인생을 미리 살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먼저 살아본 사람들의 지혜를 듣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사막에도 길이 있고, 바다에도 배가 다니는 길이 있고, 하늘에도 비행기가 다니는 길이 있듯이 우리 삶에도 길이 존재합니다.
성경에서 우리 삶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중 하나가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어떤 길로 들어서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선택할 때 중요한 점이 바로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예전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스승이 부모이고, 부모가 스승과 같았습니다.
가정에서 부모님은 스승처럼 자녀들을 가르쳤습니다.
특히 옛날에는 대가족이었기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 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큰 아버지, 작은 아버지, 고모 할 거 없이 다 가까이 살았기 때문에 보고 배우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를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시키는 데 있어 가장 주된 책임이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학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의 도제식 수업이 많았기 때문에 제자가 곧 아들, 딸과도 같았습니다.
스승은 제자들을 자녀처럼 생각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지식만 가르친게 아니고 그들의 인격과 삶의 태도도 가르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요?
핵가족이라서 집에 어른들도 없고 부모들은 바쁘다보니 자녀들을 가르치는 데 있어 많이 소홀합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녀교육을 학교나 학원에 떠맡기려고 합니다.
그런데 학교나 학원은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지 삶의 지혜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배울 수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어디서 이런 것들을 습득하고 살아갈까요?
대부분 친구들을 통해서 배우거나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배웁니다.
또한 요즘 사람들은 어른들이 훈계하려고 하면 꼰대처럼 여겨버립니다.
물론 어른들 말이 다 옳은 건 아니지만 세상의 옳고 그름, 선과 악을 자신이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잘 듣지 않는 겁니다.
그럼 도대체 우리는 어디서 삶의 지혜들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스승이 되어 우리를 가르쳐 줍니다.
잠언서는 바로 이런 훈계의 말씀입니다.
[본론]
먼저 8,9 절을 보겠습니다.
왜 우리 삶에 훈계가 필요한 지 알려줍니다.
처음 등장하는 말이 아이들 입니다.
개역개정에 보면 ‘아들’입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훈계, 가르침을 아들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왜 아들에게 이 훈계의 말씀이 필요할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미성숙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경험이 미천한 초보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을 읽으니까 몇해전부터 관찰예능이 많이 환영받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감정표현을 해야할 지 모르기 때문에 내 감정을 대리로 표현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관찰예능보면 패널들이 나와서 웃고, 울고하잖아요.
그걸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겁니다.
아직 감정 표현에도 이렇게 서툰데 삶을 살아가는 데는 얼마나 서툴겠습니까?
일, 인간관계, 말 등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은 겁니다.
수학은 잘 하는데, 노래는 잘하는데 말하는 법도 모르고, 친구 사귀는 법도 모르는 거에요.
그런 것들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은 그런 내용들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삶을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갈 것인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래서 8절에서 아버지의 훈계를 잘 듣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볍게 여기지 말고, 마음에 새겨서 내게 피가 되고, 살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은 우리가 왜 훈계를 새겨들어야 하는 지 그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그러한 훈계들이 바로 내게 아름다운 관이 되고, 목에 걸 목걸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왕관이나 목걸이는 기본적으로 보석이죠.
그런데 그냥 보석이 아니죠.
왕관이나 목걸이는 고대시대 사회적 지위를 의미했습니다.
그만큼 훈계를 잘 들으면 그것이 마치 왕관이나 목걸이처럼 나를 아름답게 해주고, 존귀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요즘 가진 거 많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이 많습니까?
갑질, 막말해서 욕먹은 사람들 많잖아요.
그런데 이런 훈계를 잘 듣는 사람은 다른 것은 좀 보잘것 없을지 몰라도 사람이 명품이라는 겁니다.
저는 최근에 윤여정씨가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기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 삶의 태도가 참 멋지더라구요.
저도 윤며들다가 되더라구요.
오랜 세월 쌓아온 삶의 내공이 너무 멋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이런 삶의 태도가 결국 그녀를 그 위치에 올려놨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 저예산 영화를 그녀가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더 많았거든요.
그런데 그녀가 선택한 이유가 사람이 좋은 거 같아서 선택했다고 하더라구요.
이렇게 일에 대한 태도와 삶에 대한 태도가 그녀를 만든겁니다.
이제 10절에서는 우리에게 어떤 훈계인지를 밝힙니다.
그게 뭐냐면 악인들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 먼저 악인이 누구일까요?
우리는 흔히 악인이라고하면 살인자같은 범법자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악인은 그런 사람보다 훨씬 더 광범합니다.
악인을 가리키는 단어는 ‘길을 놓치다’ 또는 ‘빗나가다’는 동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마땅히 가야 할 길에서 벗어난 상태, 과녁을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악인들이란 그릇된 삶의 방식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냥 한 두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그 빗나간 상태에 대해 강한 끌림을 가지고 그 길로 계속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위험한 이유는 자기만 그 길로 가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 길로 가도록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에게 이런 악인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삶의 경험이 짧아 악인의 말에 쉽게 동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도대체 악인이 어떤 말로 꼬시길래 우리가 유혹을 느끼는 걸까요?
11-14절은 악인이 어떤 식으로 꼬시는 지 보여줍니다.
11절을 보면 그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죄없는 사람을 죽이려 합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은 폭력적입니다.
우리는 폭력하면 물리적 신체적 폭력만 생각하기 쉽지만 정신적, 심리적 폭력도 있습니다.
자기 이익 앞에서는 남이 죽던 말던 신경쓰지 않는 것도 폭력입니다.
예를 들어, 댓글같은 말로 폭력을 행사하면서 남에게 의도적으로 마음의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때로 그들은 이유를 묻지 않고 닥치는 대로 죄없는 사람을 공격할 정도로 무자비하고 죄책감이 없습니다.
또한 그들의 삶의 방식은 숨어서 기다렸다가 공격할 정도로 비열하고 야비하기까지 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짓밟습니다.
12절에 보면 그들은 잔혹하고, 가차없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여기서 스올, 무덤은 모두 죽음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먹이를 산채로 삼키고, 통째로 삼키는 사자처럼 한치의 망설임없이 남을 짓밟고 죽이려 합니다.
다시 말해서 악인들은 일말의 자비도 보이지 않고 마지막 남은 것까지 다 빼앗아가야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속으로 이런 사람은 완전 나쁜 사람인데 나랑 상관없잖아.
이렇게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 주위에 이런 사람들 많습니다.
무자비하게 갑질하는 사람들, 남의 약점을 노려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 남을 속이고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 등등 모두 성경이 말하는 악인들입니다.
지금 잠언에서 말하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조폭같은 사람을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세세하게 이 조건에 맞아 떨어지는 사람만이 악인이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그런 악의 경향성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악한 삶의 방식이나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13절도 보면 어떤 사람이 악인인지 보여줍니다.
빼앗은 것으로 자기 집을 가득 채우려고 하는 자입니다.
정당한 노동의 댓가로 무엇을 얻는 게 아니라 남의 것을 빼앗아 단번에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탕주의를 노리는 자들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이런 한탕주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악인에게 유혹을 당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이런 한탕주의의 대상으로 로또,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등 많이 있죠.
열심히 일해도 집 한채 못사니 젊은 사람들이 이런 곳에 많이 빠져들게 됩니다.
이런 불공정한 사회구조의 문제가 있다보니 이런 것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게 잘못하면 우리를 악의 길로 빠지게 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또다른 우리 주위에 흔한 예로는 한방에 공부 잘하게 해준다는 말, 한방에 부자되게 해준다는 말, 한방에 살 빼게 해준다는 말 등등 모두 우리를 꼬시는 악인들의 유혹들 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악인들의 말을 잘 살펴보면 계속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우리’입니다.
악인은 자기 세력을 키우기 위해 남을 끌여들이려 합니다.
그리고, 더 대담하고 강력한 악을 행하기 위해서 특히 젊은 사람들을 포섭하려 합니다.
악행은 함께 하면 더 과격하고 대담해지거든요.
14절은 이런 그들의 전략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와 함께 제비를 뽑고, 우리 사이에 돈 주머니는 하나만 두자.’
무슨 말인가요?
자신들이 공평하게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 대담하게 악을 저질러 이익이 커지면 돈 주머니가 더 커지면 너의 몫이 더 커진다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 악의 강력한 유혹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15절은 말합니다.
그들과 함께 다니지 말고, 발을 그 길에 들여놓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이런 유혹들이 많으니 단호하게 거절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길’이라는 단어입니다.
성경은 인생에는 두가지 길이 있다고 말합니다.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입니다.
그래서 시편 1:1 은 이렇게 말합니다.
“복있는 사람, 즉 의인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우리가 어느 길에 들어서느냐는 우리가 무엇에 끌리느냐 무엇에 끌려가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지금 내 발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내 발은 내 마음의 풍향계와 같거든요.
그런데 때론 내 마음을 나도 믿을 수 없으니 내 마음이 끌리는 대로 끌려갔다가는 악인의 길에 발을 들이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16-19절은 악의 길에 들어서면 결국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 보여줍니다.
16절에서 악인들은 주저함없이 발을 악으로 치닫고, 피 흘리는 일에는 서두릅니다.
악인들의 악행과 폭력성을 누구도 저지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훈계를 무시하기 때문에 그들을 막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그들의 치닫는 모습이 어리석은 이유는 그것이 바로 자멸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17절은 그들의 어리석음과 자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작은 생명체인 새 조차도 그물을 치는 모습에는 도망가는데 그 악인들은 자기 욕망에만 몰두하다보니 그물을 보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18절은 그들의 이런 자멸을 잘 설명해줍니다.
그들의 수법대로 몰래 숨어서 남을 죽이려고 덫을 놨는데 그 덫에 자기가 걸려 버린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악인의 길 끝에는 자기 파멸 밖에 없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악인이 잠시 성공한 듯 보일 수 있지만 그 끝은 자기 파멸입니다.
제가 예전에 어떤 드라마를 보니까 사기꾼이 마지막에 자기 돈을 움켜쥐느라고 불에 타 죽더라고요.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돈에 눈이 멀어 그냥 돈과 함께 불에 타서 죽어버렸습니다.
욕망이 결국 자신을 태워버린 것입니다.
악인의 운명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세상이 점점더 복잡, 다양해지고 악인들의 말은 더 교묘하고 더 화려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누구의 훈계도 잘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나를 훈계해 줄 삶의 스승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악인들은 혼자만 악을 행하지 않고 어떻게든 우리를 유혹하려 합니다.
한방에 성공할 수 있다, 돈만 많이 벌면 된다, 어찌됐든 성공만 하면 된다, 나만 잘되면 그만이다 등등 모두 악인들이 사는 삶의 방식입니다.
이런 생각들이 악인의 길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진짜 지혜는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진정한 삶의 지혜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선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 능력이자 기술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의인의 길입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의 말에 따라 삶의 발걸음을 움직여야 할까요?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말입니다.
말씀을 통해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 지 항상 체크해야 합니다.
약간만 틀어져있어도 그게 계속 된다면 악인의 길로 들어설 위험성이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배달의 민족 아르바이트를 해보니까 알겠더라구요.
길을 찾는 것은 방향입니다.
방향이 틀어져있으면 계속 잘못된 길로 가게 되더라구요.
내가 주소지를 잘 찾아가고 있나 자주 방향을 확인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매일마다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고 점검해봐야 합니다.
내가 길을 잘 가고 있는 건지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고, 날마다 묵상을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잠언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경건한 지혜들을 배워나갈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우리 마음에 잘 새기고 순종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일에 결단하는 우리 다카포 식구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