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을 제어하라(데칼로그 10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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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Ex 20:17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house;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wife, or his male servant, or his female servant, or his ox, or his donkey, or anything that is your neighbor’s.”
코로나가 시작되고 한동안 모든 비지니스가 문을 닫았을때,
오직 온라인 비지니스가 호황을 맞이했었습니다.
오히려 온라인 비지니스는 매출이 늘어났지요.
직접 매장에서 물건을 보고 만지고 입어보고 살수 없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물건을 산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때 이용하는 것이 상품평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남겼는가 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구매를 결정합니다.
언젠가 ‘아마존’에서 근무했던 어느 한국인의 이야기를 책으로 잠깐 접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아마존에서 미래를 다녔다” 라는 책을 쓴 박정준 씨입니다.
평균 근속이 1년이라는 아마존에서 12년동안 일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쓴 책이었습니다.
배송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본사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살펴볼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물건을 쉽게 편하게 그리고 더 많이 보고 결정할수 있을지에 그들의 역량을 집중하고 아마존 회사를 운영하고 웹싸이트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온라인 장사를 잘하는 기업에 웹사이트는 고객들이 아주 쉽게 물건을 찾아볼수 있도록 항상 고민합니다.
인간의 구매심리를 잘 아는 것이죠.
사람은 보는 것에 그 마음이 향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 조차, 자신의 손에 먹을것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가지고 있는 음식을 보고는 침을 흘립니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속담은 인간의 탐심을 한마디로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1. 무엇보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도데체 무엇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원래 인간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갈망하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한 그 갈망이 오염되고 변질되고 파괴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탐내다” 하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하마드” 입니다.
이 ‘하마드’의 원뜻은 “기뻐하다, 원하다, 탐하다” 하는 뜻이 있습니다.
가치있고, 아름답고, 보물같은 것 을 표현할때도 ‘하마드’라는 단어가 쓰여졌습니다.
창세기 2:9 (NKRV)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Gen 2:9 And out of the ground the LORD God made to spring up every tree that is pleasant to the sight and good for food. The tree of life was in the midst of the garden, and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우리말 , 아름답다. 가 바로 이 ‘하마드’입니다.
그런데, 죄를 지으므로, 아름다운 것을 보던 눈은 망가졌고, 이웃의 것을 하나님의 것을 탐하고 욕심내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7:21 (NKRV)
21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
Joshua 7:11 Israel has sinned; they have transgressed my covenant that I commanded them; they have taken some of the devoted things; they have stolen and lied and put them among their own belongings.
아간은 이 탐심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만, 하나님이 금한 것을 ‘하마드’ ‘탐내어’ 버렸습니다.
그런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이땅에서 이 ‘하마드’를 제어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과연 완전히 지킬수 있을까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나를 따르라’라는 책에서 탐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탐심을 품은 자들은 세상에 속하고 만다.… 음행과 탐욕은 우상숭배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고 세상의 탐스러운 보물에 속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도데체 뭐가 문제입니까?
원래 갈망, 사랑하는 마음, 원하는 마음 은 하나님이 심어 주신것입니다. 그런데 죄로 오염되면서 방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노승수 목사는 탐욕을 “방향성을 잃어버린 사랑” 이라고 정의합니다.
남녀의 대한 사랑은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의 배우자를 넘어서서 더욱 바라본다면 그것은 탐욕인것입니다.
웨스트민스트 대교리 문답 제149문은 이렇게 묻고 답합니다.
149문.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답.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든1) 이 세상에서 받은 어떠한 은혜를 힘입어서든 아무도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없고,2) 오히려 날마다 생각과3)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깁니다.4)
아내와 제가 서로의 배를 바라보며 안타깝게 서로를 바라볼때가 있습니다.
한번은 아내가 제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애를 둘이나 낳았기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도, 애도 안낳은 당신은 왜 배가 그렇냐?”
왜 복부비만이 생깁니까? 자기가 먹을 양이상으로 먹기 때문입니다.
작게는 먹을 것이지만, 결국은 모든 세상에 대한 욕심과 욕망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지키기 어려운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감당할수 있을까요?
2. 탐심을 회개 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5 (NKRV)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Col 3:5 Put to death therefore what is earthly in you: sexual immorality, impurity, passion, evil desire, and covetousness, which is idolatry.
성경은 탐심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많은 욕망들 가운데 하나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탐내는 마음, 탐심을 “우상숭배”(골 3:5)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의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언젠가, 어느 이민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목회 초기에 성도들의 이사를 해준 적이 있는데,
그 집의 여자 집사님의 옷방에는 택을 떼지 않은 새옷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민생활의 외로움과 허전함을 쇼핑으로 달랜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으로 만족해야 하는 우리의 내면을 하나님으로 채우지 않고,
다른 것들로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탐심은 우리의 본성안에 내재된 것이라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베소서 4:22–24 (NKRV)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Ep 4:22-24 assuming that you have heard about him and were taught in him, as the truth is in Jesus, to put off your old self, which belongs to your former manner of life and is corrupt through deceitful desires, and to be renewed in the spirit of your minds, and to put on the new self, created after the likeness of God in true righteousness and holiness.
옛 사람은 자기 자신이요, 새 사람은 예수님 아니겠습니까?
자기 자신을 벗고, 날마다 예수님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안에 소망이 있습니다. 소망이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3. 탐심을 제어하는 삶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Jn 8:32 and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오직 예수님을 알아가는 것이 우리 영혼을 자유케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몇가지 탐심을 제어하는 영적 원리를 찾아본다면,
1)예배 입니다.
예배는 세상으로 흐트러졌던 우리의 눈과 마음과 자세를 다시 하나님께로 향하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예배에 자꾸 틈이 생겨서는 안됩니다.
한가지 우리자신에게 물어봅시다.
나의 예배는 “튼튼한가” 입니다.
나는 견고한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입니다.
예배를 한 두번 빠지는 것에 관대해 지지 마십시오. 모든 것의 시작은 결코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탐욕이 비록 방향이 잘못된 것이지만, 그 안에 사랑이라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 방향을 다시 바로 잡는 것인 “예배” 입니다.
2)자족의 훈련입니다.
탐심은 남의 것을 바라보며 갈망하는 것입니다. 자족하지 못할때 실망하거나 분노하게 됩니다.
“남의 아이에겐 관대하면서 나의 아이들에게는 화를 냅니까? 그것은 아이의 현재의 상태보다 부모의 욕심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분노는 탐욕의 증거인 셈입니다.”
자족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에 대한 욕심을 가지라.
은혜 받는 것에 대한 갈망을 가지자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노후 대책을 잘 세우고, 자식을 잘 키우고 , 건강해 지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은혜속에 살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4)나누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탐심을 제어할수 있는 아주 좋은 도구가 됩니다.
여러분은 작년 한해 여러분의 시간과 재정을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얼마나 사용하셨습니까?
5)마음에 예수님을 모시라는 것입니다.
탐심을 이기기 어려운 것이 행위이전에 마음이 이미 빼앗겼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욕망은 누구도 이길수 없습니다.
윤석준 목사는 하이델베르그 교리 문답해설에서
“우리는 죄의 욕망으로 “떡칠”이 되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나를 망가뜨린 것은 나 자신이고, 나를 새롭게 하신 것은 삼위 하나님입니다” 하고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아무 욕심이 없으셨고, 오직 하나님만 갈망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시기를 원하셨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자신의 소유를 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자신의 소유 삼으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벧전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갈망에 우리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소유가 되기를 원하셨고, 우리가 주님의 소유일때 주님은 행복해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땅에 오셔서 ,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그의 소유 삼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나의 전부로 삼으면,
나는 모든 것을 가진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을 나누면, 그 기쁨과 가치는 그 ‘하마드’는 더욱 커져 갈것입니다.
탐심을 제어하고, 하나님을 전부로 삼고 행복을 누리며 행복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