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막에 대한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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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5 수요기도회
찬송
기도 권사
본문 출25:1-9(구p.)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서론

출25-40 장 중에서 금송아지 사건인 출32-34 장을 제외한 나머지 장들은 전부 성막에 대한 묘사의 내용을 다룬다. 사실 기독교회사에서 성막은 늘 도덕적이고도 상징적인 해석으로 접근했었는데, 가령 예를 들어서 이러한 해석의 기초를 놓았던 필론 이라는 신학자는 성막은 영적 세계를, 성막의 뜰은 물질세계를 상징하며, 성막에 들어간느 색깔들인 청색, 자색, 홍색, 배색은 물질의 기본요소들을 상징하며 등잔대의 일곱 등불은 일곱 행성을 가리킨다고 보았다. 초기 기독교 신학자였던 오리게네스는 성막의 재료인 금과 은과 놋을 각각 믿음이요 선포된 말씀이며 인내를 상징한다고 해석했다. 또한 지성소는 승리한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하고 성막 뜰은 전투하는 교회를 상징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성막에 대하여 각종 상징적이고도 은유적인 의미들을 발견하고 부여하는 과정들은 초대교회 이후로 오늘날까지 이루어지고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은유적인 해석들, 소위 ‘영해’ 라고 하는 것들 중 대부분이 성경적 근거가 희박하거나 비성경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성막과 성막 기구들의 의미들에 대하여 은유적으로 접근하는 방식들을 철저히 배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것은 취하되 철저히 성경을 근거로 살피는 것이 좋겠다.
일반적으로 성경통독을 결심하고 창세기부터 읽어가다가 가장 먼저 큰 벽을 마주할 때가 창세기에 등장하는 족보이야기이다.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성경을 읽으며 내가 왜 이 족보까지 알아야 하나?’하는 지루함에 빠져든다. 그 고비를 잘 넘기면 출애굽기 초반부에서 아주 역동적인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권능이 애굽에 임하며 그 절정은 바다를 마른땅 같이 건너게 되는 사건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또 하나의 커다란 벽을 만나게 되니 바로 율법과 성막에 대한 부분이다. 특별히 성막에 대한 부분들을 보면 재료는 무엇이 들어가고 어떻게 수를 놓으며 만들어야 할 물품들은 무엇이고 거기에 고리는 어떤 식으로 넣게 되는 등... 상당히 지루함을 느낄 법한 내용들이 이어진다.

성막 이해의 중요성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들이 다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이다. 시119편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은 주의 말씀이며, 나의 눌린 영혼을 다시 일으키시는 것도 주의 말씀이며, 주를 경외하게 하는 것도 주의 말씀이며, 주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주시는 것도 주의 말씀이다. 또한 중한 고난 중에도 나를 살아나게 하시는 것도 주의 말씀이며, 우둔한 자들을 지혜롭게 하시는 것도 주의 말씀이며,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주의 말씀이다. 사도 베드로 역시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라고 말씀하면서 우리가 거듭난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쓸모 없는 부분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의미 없이 기록된 부분도 없고, 아무런 의도 없이 말씀하신 것도 없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전능하신 의도대로 말씀하셨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 자신의 권능과 위엄을 드러내시며,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의 구원과 유익을 위해 말씀하셨다. 이를 믿으시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는 성막에 대한 규례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출25-40장까지의 내용은 장치 지을 성막의 규격이나 모양, 디자인을 가르치시기 위한 의도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함이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다 우리에게 필요하고 중요하듯이 성막에 대한 규례 역시도 우리에게 있어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성막의 특징들

본문에서 나타나는 성막의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하나님의 성막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헌물로 만들어진다. 2절 말씀을 보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둘째는, 하나님의 성막은 하나님께서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살기로 정하신 표지였다. 본문 8절의 말씀을 보면,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라고 하신다.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창조주께서 꼭대기도 보이지 않는 산 위 하늘에 머무시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진영 가운데 계실 것이다. 빼곡한 구름과 나팔소리의 시내산에서만 머무시는 것이 아니라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움직이시고, 함께 쉬시며, 그 땅에 들어가기까지 그렇게 하실 것이다.
셋째는, 하나님의 성막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여주신 모습대로만 만들어져야 한다. 9절 말씀을 보라.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미 성막의 서두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보여주시는 대로만 성막을 세울 것을 명하신다. 그리고 동일한 내용, 곧 성막이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하신대로만 세워졌음을 출애굽기 전반에 걸쳐 강조한다. 여기에는 매우 오묘한 뜻이 남겨있다.
광야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조립식으로 만들어진 성막은 그 전체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친히 임재하여 계심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하나님의 처소였다. 또한 성막에 부속된 모든 기구들도 제각각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 하나님의 구속사역, 특별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강림과 구속수난을 정점으로 한 여호와의 구원사역 등을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상징하고 있는 것들이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다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부분만을 이해할 뿐이며, 하나님의 임재 또한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며, 하나님의 구원 역시 하나님의 의지와 섭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의 문제이다. 이것들은 인간의 상상이나 추정, 철학이나 이론에 의하여 아주 작은 부분도 훼손될 수 없는 절대적 진리의 영역이다.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 임재, 능력, 구원 사역들을 의도적으로 상징하는 성막의 각 부분의 모양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야만 한다. 내가 보기에 실용적이지 않고, 내가 보기에 모난 것 처럼 보여서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대로만 설계해야 성막은 온전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적 처소가 될 수 있었고, 성막의 각 부분들도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 하나님의 구원 사역들을 반영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절대성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성막과 성막에 들어갈 기구들에 대하여 일일이 직접 설계하시고 이 규격과 모양대로만 성막을 건축할 것을 명하시는 것이다.
넷째로, 하나님의 성막은 당대 신전들과는 달리 매우 독특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그분께 제사를 드리는 처소이기도 했던 성막은 몇 개가 지어졌는가? 단 하나이다. 하나님은 성전을 여러 개 만들어서 하나가 젖거나 훼손 되면 또 다른 새 것을 쓰라고 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성막을 여러 개 만들어서 이왕이면 단 지파에도 하나 주고, 에브라임 지파에도 하나 주며, 유다 지파에게도 하나 주어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으셨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상징적 처소인 성막을 건축하게 하셨어도, 성막 내부에 하나님 자신을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그림이나 조각상을 만들게 하지 않으셨다. 성막이야 그렇다고 처도 성막 내부에는 하나님 자신을 상징할 만한 조각상이나 친필사인이나 이런 것들이 있을만 한데 전혀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성막을 건립하기 전후로 이미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와 같은 곳에는 참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워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이방 신전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신전들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의 신상들, 아주 우람하고 거대하며,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신상들이 아주 많이 있었고, 그런 신전들 역시 지역마다 있었다. 마치 로마카톨릭의 성 베드로 성당처럼 겉으로 보기만 해도 감동이 있고, 그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만 해도 분위기만으로 압도되는 그런 신전들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막은 이런 것들과 비교할 때 결코 외형이 자랑할만한 것이 없었다. 아주 소박한 이동식 장막에 불과했고, 그 안에도 사모할만한 어떤 것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이 성막 만이 죄사함을 가져다 주며, 이 성막 만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유일한 성소였다.
다섯째로, 구약에서의 성막은 솔로몬 시대 이후로 지어진 성전의 원형이 된다.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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