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기업으로서 ‘땅’의 상실과 회복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85 views
Notes
Transcript
본 문 :겔 48:35
1. 땅의 상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땅을 주셨습니다. 땅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야 할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 때는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이 땅을 상실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법을 신실하게 지키지 못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신명기에서는(신 29:24-29) 이렇게 언약을 저버린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추방될 것으로 예견하고 있습니다.
24 열방 사람들도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느뇨 이같이 크고 열렬하게 노하심은 무슨 뜻이뇨 하면 25 그 때에 사람이 대답하기를 그 무리가 자기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더불어 세우신 언약을 버리고 26 가서 자기들이 알지도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지도 아니한 다른 신들을 섬겨 그에게 절한 까닭이라 27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땅을 향하여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재앙을 내리시고 28 여호와께서 또 진노와 분한과 크게 통한하심으로 그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사 다른 나라에 던져 보내심이 오늘날과 같다 하리라 29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이스라엘은 참된 왕이신 여호와 대신에 열방의 왕(삼상 8:5)과 같은 왕을 원했고, 사울은 그 초대 왕으로 세워졌습니다. 왕정 이후 이스라엘 사회는 점점 계층화되어 특권층은 더욱 부하게 되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졌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의 변화가 가속화 되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무시하게 되었으므로 그 나라가 공의가 세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을 그 땅에서 추방하십니다(암 7:17; 미 2:3; 3:12, 렘25).
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아내는 성읍 중에서 창기가 될 것이요 네 자녀들은 칼에 엎드러지며 네 땅은 줄 띄워 나누일 것이며 너는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정녕 사로잡혀 그 본토에서 떠나리라 하셨느니라”(암 7:17)
이스라엘 백성이 살던 땅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땅이고, 그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가 있는 곳이기에 거룩한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모스 7:17에서 이스라엘은 본토에서 떠나 더러운 땅에서 죽을 것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했던 요구는 하나님의 언약을 지켜서 거룩한 나라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되셔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그 은혜와 사랑을 알고 예배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좇았고,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신의 유익을 따라 형제의 것을 빼앗아 자기의 부를 축적 하였으며, 공의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유는, 자신의 행복과 유익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더 이상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21장에는 땅의 관리를 둘러싼 왕과 선지자의 대립이 나옵니다. 아합과 엘리야의 기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봇의 포도원을 통해서 분명한 다음과 같은 분명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나봇에게는 기업의 땅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는 유업(기업)’이고, 아합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땅은 ‘교환할 수 있는 재화’입니다. 나봇은 자신이 하나님이 주신 땅을 맡은 청지기로서 관리해야하며, 하나님께서 다음 세대를 위한 선물로 주신 그 땅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 뿐만 아니라 나의 후손들에게도 이 땅을 기업으로 주셔서, 후손의 하나님이 되어주심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아합 왕은 자신의 특권에만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 일을 세 부분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여호와의 통치를 거부하고 왕이 자신의 특권대로 움직이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청기로서의 책임을 버리고, 자신의 유익을 따라 특권을 누리려고 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여호와 중심의 신앙관에 대한 변화입니다.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이스라엘 정치, 경제를 비롯한 전 영역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의 변질은 땅에 대한 ‘열망’으로 나아갔으며, 다시 땅의 ‘상실’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왕들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당하고 그 약속의 땅에서 추방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특수한 예언자들의 활동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적 특징은 죄를 책망하는 말씀을 선포하는 것에 있습니다(겔 5:5-9).
5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 두어 열방으로 둘러 있게 하였거늘 6 그가 내 규례를 거스려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 둘러 있는 열방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였음이니라 7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의 규례대로도 행치 아니하였느니라 8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저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희 중에 벌을 내리되 9 네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이 죄는 이스라엘의 배도입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랑과 공의의 공동체였지만, 이제는 불의와 부정이 가득했습니다. 이런 불의하고 부패한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호세아의 예언은 땅의 오염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를 떠나 바알 숭배와 다른 우상 숭배로의 종교적 변절은, 언약 파기로 야기된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 상실뿐 아니라 땅의 황폐함도 동반합니다. 지역 산당들이나 제의기물들 아래서 행해지고 있는 이방 종교와 혼합종교 제사의식들로 땅은 오염되었습니다. 그 땅의 정치는 여호와를 떠나 버렸고, 외교적으로는 주변 강대국들의 군사 동맹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9:3에서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땅에 거주하지 못하고, 앗수르에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3 저희가 여호와의 땅에 거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이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니라
여호와의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주신 땅입니다. 그 주권이 여호와께 있으므로 여호와의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애굽으로 가서 노예 생활을 하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정한 것을 먹어야 하는데, 노예 상태에서는 부정한 것을 주어도 배고품을 면하기 위해서 먹어야 합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온 땅이 황폐케 되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받게 됩니다(렘 26;14-39). 땅과 언약, 유업과 신앙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한 덩어리와 실체이기 때문에 언약이 파기되고 신앙이 더럽혀진 지금, 하나님은 더는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약속의 땅은 상실됩니다(렘 25:8-9).
8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은즉
9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소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
그리고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의 문제입니다. 아름다운 땅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신실하게 순종하는 그 보장된 평안과 풍요보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재화인 땅을 소유하려는 열망으로 빼앗고 죽이는 일을 자행했습니다(삼상 8:10-18). 이로써 이스라엘의 역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온 나라는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 완전히 훼파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회복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2. ‘땅’의 회복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흩어진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낼 때에 내가 너희를 향기로 받고 내가 또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여러 나라의 목전에서 나타낼 것이며 내가 내 손을 들어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들일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고 거기에서 너희의 길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미워하리라”(겔20:41-43).
하나님은 포로기의 이스라엘에게 다시금 회복을 선언하십니다. 이스라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였던 이방 대적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맹렬한 분노를 발하십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이 당한 수치를 하나님 자신의 수치로 여기시고, 그 수욕을 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회복’이란 말에 대한 언급은 에스겔 34-37의 내용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다음의 여덟 가지의 회복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① 여호와의 목자 역할의 회복(겔 34). ② 여호와의 땅의 회복(겔 35-36:15). ③ 여호와의 영광의 회복(겔 36:16-38). ④ 여호와의 백성의 회복(겔 37:1-14). ⑤ 여호와의 언약의 회복(37:15-28). ⑥ 여호와의 주권의 회복(겔 38-39). ⑦ 백성 가운데 임재의 회복(40-46). ⑧ 땅에서 여호와 임재의 회복(47-48). 이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땅’의 회복은 궁극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는 양을 먹이는 본분을 망각하고, 오히려 그 양을 먹음으로써 그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36:2). 이제 하나님께서는 목자의 역할을 회복시키고, 한 목자인 다윗을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다윗의 혈통은 그리스도로 이어집니다(3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땅이 열국으로 인해 더럽혀진 것에 대하여, 다시금 거룩한 땅으로 회복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그 회복은 이스라엘 백성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의 더럽혀진 이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36:22).
“22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 할 일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물로 씻어 정결케하고,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고, 돌 같이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여호와의 신을 품으면 약속하신 땅에 거하게 하신다(36:14)고 말합니다.
“14 네가 다시는 사람을 삼키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나라 백성을 제하지 아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율법과 규례를 지켜 행하라고 명하신 후에 하나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36:24~28).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성과 전능성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귀환시키십니다.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귀환시키는 것은, 열방 가운데서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실증하시는 행위라고 선언함으로써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였습니다. 결국 땅으로의 회복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도구가 되었습니다(겔 36:18-23).
에스겔 37:1-14에서는 마른 뼈들의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킵니다. 에스겔 37:15-28에서는 두 막대기 유다와 에브라임이 이스라엘로 회복된다고 함으로써 하나님의 언약이 회복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겔 38-39에서는 종말에 있을 ‘곡’의 침공하고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침략자 곡의 심판하시므로 여호와의 주권이 회복됩니다.
에스겔 40-43장에는 새 예루살렘에 건축될 새 성전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에스겔서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그 결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났으며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성전과 그 성읍을 다시 건설하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떠났던 여호와의 영광이(겔 11:18,23) 다시 건축된 새 성전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고, 땅에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한 것입니다. 땅에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지 않고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 그 땅은 하나님의 거룩한 땅으로 그 안에 성전이 있고, 거기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곳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법을 신실하게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안전과 풍요를 누리고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땅’의 회복은 여호와께서 땅에 임재하시는 것과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회복된 땅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그러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땅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으로서 성전은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와 연결됩니다.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중보자가 되셨으며(히 9:11-15), 에스겔 선지자는 여호와의 종으로서 한 목자인 다윗(34:23-31)을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참 목자로 타락한 이스라엘 목자들이 자기 양을 먹은 것과 대조되며, 자기 양떼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요 10:11). 에스겔서에 나타난 열두 지파의 회복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새로운 경영에 참여하고(고후 5:17), 성신으로 말미암아 영광에서 영광으로 바뀌어 갑니다(고후 3:17-18). 결국 “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여기 계시다)의 뜻이 교회에서 이루어집니다(겔 48:35).
맺으며
오늘은 하나님이 주신 땅의 상실과 회복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주신 땅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하셨고, 그곳에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두셔서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서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서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은 가나안 땅을 떠나시고, 그곳은 부정한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교회에 두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교회에 두시고 교회의 머리로 통치하시며, 말씀을 친히 가르치시고 인도하십니다. 지금도 여전히 땅의 상실은 일어납니다.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쫓겨난 것처럼, 주님의 교회가 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며, 그 영광을 둔 곳입니다. 이곳에 저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오늘도 일하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여전히 회복시키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늘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은 이스라엘과 맺었던 언약과 동일한 언약을 우리와도 맺으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하십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