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없으면 (막 9:16-29)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479 views
Notes
Transcript

도입

-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만나는 여러 선생님들 / 어떤 선생님은 회초리를 들고 다니면서 굉장히 무섭게 학생들은 대함 / 어떤 선생님들은 항상 인자한 미소로 부드럽게 학생들을 대함
- 그런데 실제로는 누가 더 무서울까? 후자!
- 착한 사람이 화낼 때 더 무섭다.
-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기 때문에 그 파급력이 큰 것
-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모습이 그렇다.
-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 사랑이 많으신 분!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계속 책망을 하신다.
- (1) 제자들을 책망; (2)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를 책망; (3) 귀신을 책망
- 그런 점에서 오늘 주님이 주시는 메시지가 더 파급력이 있다. 그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

1. 예수님이 제자들을 책망하심 <14-20>

1) 사건의 발단
-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셨다가 다시 내려왔습니다.
- 산에서 내려오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그들이 나머지 제자들을 둘려싸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보니, 그 중에서 몇몇 서기관들이 제자들과 변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리가 예수님을 보고는 달려와서 인사를 했으며, 예수님께서는 무슨 일로 논쟁하고 있냐고 물어보셨습니다.
- 17절과 18절을 보면, 무리 중의 한 명이 그 상황을 설명하는데, 그는 한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그 말인즉슨, 그 아버지가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만나러 왔는데, 예수님께서 안 계셔서 제자들에게 그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했으나, 그들이 능히 내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한탄과 책망 <19절>
- 그 말은 들은 예수님은 그 상황을 보시며 한탄하시고 제자들을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19절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을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귀신을 내쫓지 못한 이유를 그들의 “믿음없음”으로 진단하고 계신 것입니다.
-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우리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왠만하면 부드럽게 넘어가시고 많이 참아주시는 분입니다. 이러한 예수님께서 항상 거칠게 책망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믿음없는 모습을 보일 때입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책망하시는 내용은 대부분 그들이 믿음이 없을 때입니다.. “어찌하여 너희 믿음이 이렇게 작으냐?”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등등 이러한 책망은 자주 나타나고 그 이유는 대개 그들의 “믿음없음”입니다.
- 제자들은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주님의 크신 권능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심지어 그들도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칠 수 있도록 그 권능을 예수님으로부터 부여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마음이 둔해서 그 주님의 능력을 잊어버립니다. 우리 주님은 다른 것은 몰라도 그들이 믿음이 없는 행동을 보일 때마다 그들을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2. 예수님이 그 아버지를 책망하심 <21-24절>

1) 대 화
- 21절 부터는 예수님과 그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대화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 둘의 대화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평행본문에서는 없는 부분입니다. 다시 말하면, 마가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 22절에서 그 아버지는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사실 크게 문제없는 간구처럼 보입니다. 겸손함이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아버지의 간구도 “믿음이 없다"고 문제 삼으십니다.
2) 예수님이 그 아버지를 책망 <23절>
-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영어성경에 따르면 “If you can?”이라고 되묻고 계십니다. 그 아버지는 “만약에 무엇을 할 수 있으면”라고 했는데, 이 아버지에게는 아무건 기대감이 없습니다. 주님이 보실 땐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19절에서는 제자들의 “믿음없음”을 책망하셨고, 23절에는 그 아버지의 “믿음없음”을 책망합니다. 그만큼 그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참아도 믿음 없는 것은 못 참으시겠다는 거죠.
- 그리고 예수님은 위대한 진리를 선포하십니다. 23절입니다. “믿는 자에겐 모든 것이 가능하다!!” 주님의 약속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주제 제기>

-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임에도 가장 애매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니 믿음을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얼마나 애매한 정의입니까? 믿음이라는 단어를 정의하는데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니요!! 이만큼 의미가 애매한 단어입니다.
- 이 믿음이라는 단어는 마치 전라도 방언 중에 “거시기"와도 같은 것 같습니다. “야~ 너 거시기 했냐?” “거시기 했는데 느낌이 거시기 하더라고" “거시기가 거시기혀~” 문맥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어떤 단어가 생각이 안 날때, 그냥 거시기라고 하면 대충 다 맞다.
- 교회에서 “믿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도 그렇습니다. 문맥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집사님이 “아 우리 아들 결혼을 해야 되는데, 거기 그 집 딸래미 괜찮던데 믿음 있어?” 이 때 믿음은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이고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리키죠. 어떤 안수집사님을 소개하면서, “그 집사님 간증을 들어봤는데 그 분 믿음이 정말 좋아요"라고 말할때, 그 믿음은 “성화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믿음,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닮아가는 그건 거, 신자의 영적인 수준”을 말합니다. 또 다른 상황에서, “우리 목사님은 믿음이 크세요.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걱정 하나 안 하시더라구요"라고 말할 때, 그 믿음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의심하지 하고 신뢰하는 마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일하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리킬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서 그 믿음의 의미가 미묘하게 다릅니다.
-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이 믿음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마지막에 언급했던 그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의심하지 하고 신뢰하는 마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일하실 것을 기대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책망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도 이 믿음이 없어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은 이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 이 믿음의 반대말 “걱정, 근심, 불안, 두려움"과 같은 말이겠죠. 그리고 이 믿음과 비슷한 단어 “신뢰, 의지, 담대함, 평안함, 기대감" 등일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 앞에 있을 때, 걱정, 근심, 두려움의 마음이 담대함, 평안함, 기대감보다 크다면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문제 앞에서 우리가 100% 믿음으로 충만할 수 는 없더라도, 걱정, 근심, 두려움 보다 우리 마음에 담대함, 기대감 등이 더 크다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커보이고, 내가 그 문제보다 하나님을 더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다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아까, 그 아버지는 예수님께 간구할 때, 그 간구에는 어떤 기대감도 없었습니다. 그러니깐 예수님께 믿음이 없다고 책망을 받은 것이죠.
- 이러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진리입니다. 주님의 약속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 말은 우리의 믿음 자체가 어떠한 기적을 만들어낸다는 말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기계적으로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지니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능하시며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분의 기쁘신 뜻을 위해서 역사하실 때,혼자서 일하실 수도 있지만,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일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없음”을 싫어하시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3) 그 아버지의 고백과 간구 <24절>
- 그 아버지가 예수님의 책망을 듣고 정신을 번쩍 차립니다. 소리를 지르며 다시 간구합니다.
- 24절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22절에서도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만 이 똑같은 단어의 문법이 다릅니다. 22절에서는 과거형 요청, 24절에서는 현재형 요청. 학자들은 이 시제의 차이가 이 아버지가 더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합니다.
- 지금 믿음을 고백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불완전. 하지만 이 불신앙까지도 주님앞에 솔직하게 고백하며 믿음없음을 도와달라고 간구합니다. 이전에는 그냥 무미건조하게 그 상황에 대해서 도와달라고 했다면, 이제는 믿음을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이처럼, 주님의 책망은 우리의 불신앙을 깨닫게 하고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킵니다. 오늘 이시간에도 저는 주님의 책망을 사모합니다. 그 책망의 은혜가 오늘 이곳에 임하길 축복합니다.

3. 예수님이 귀신을 책망하시고 물리치심 <25-27절>

~ 예수님께서 이 아버지의 고백을 믿음의 고백으로 인정하시고, 직접 그 귀신을 물리치십니다.
- 25절에서 예수님이 그 귀신을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명령하십니다.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그리고 그 귀신은 예수님의 명령에 굴복하여 떠나갑니다.
- 우리 예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귀신도 굴복하는 능력과 권위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누구든 책망하실 자격이 있고, 그 책망도 우리에게는 은혜입니다.
- 27절을 보면,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사람처럼 누워있는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일으키십니다. “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 우리 주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귀신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을 자유케 하시고, 일으키시고,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에 반해, 사탄과 귀신들은 사람을 파멸시키는 존재들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묘사된 귀신의 행위들을 보십시오. 특별히 22절에는 귀신의 행동의 목적을 “죽이려고”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동사는 헬라어로 “아폴루미”라는 동사로, “파멸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볼루온" 아시죠? 마귀의 별명입니다. 이 동사와 같은 어원입니다.
- 이처럼 마귀와 귀신이 하는 일은 우리를 파멸시키는 일이지만, 우리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그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우리를 일으키셔서 온전케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사역을 제자들에게도 위임하셨고, 우리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도 위임하셨습니다. 사역자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다른 이들을 영적으로 바로 세우고 일으키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제자들은 믿음이 없어서 그것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책망받았습니다.

4. 제자들의 질문과 예수님의 가르침

- 예수님께서 그 귀신을 쫓아내시고, 그 아들을 온전케하시고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 때 책망받았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서 조용히 물어봅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29절에서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가 없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고 영혼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
- 지금까지 계속 믿음을 강조하시더니 마지막에는 기도를 강조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이 문맥에서 마지막 절을 해석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기도해서 귀신을 쫓아내고, 사람을 살리라고 하실 때, 그 기도는 믿음의 기도를 전제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면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 본문 안에 그 예가 있습니다. 그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22절에서 처음 주님께 간구할 때는 믿음이 없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24절에서의 간구는 다릅니다. 다시 24절 읽기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믿음을 고백합니다. 완벽한 믿음은 아니지만 그 부족한 믿음도 채워달라고 주님께 간구합니다. 이 기도는 주님께 인정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였습니다.
- 정리하자면요. 믿음의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는 이 아버지처럼 책망 받습니다. 믿음이 없을 때는, 이 아버지처럼 믿음을 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더하여 달라고 말이죠. 언제까지요? 나 마음에 두려움보다 믿음이 더 커질 때까지!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게 보일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예화

- 제가 살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말씀의 맛을 보고 능력을 경험했던 때가 대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 때 마가복음을 읽고 있었는데요. 마가복음에는 특히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믿음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됩니다. 그런 본문들을 읽으면서 그 믿음을 사모했고, 그 말씀들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 그래서 당시 저의 주특기가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 좋았습니다. 3번째 의미의 믿음.
- 정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했고, 그런 믿음으로 충만했던 것 같다. 문제 앞에서도 걱정이 없었고, 염려가 없었다. 오히려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새롭게 경험할 것을 기대하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경험했다. 크고 작은 간증들이 많다.
- 그런데, 신앙이 자라면서, 성경을 많이 배우면서… 분명히 성숙해진 것은 있는데 너무 고상(?)해진 측면이 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는 나의 지혜와 생각과 힘을 의지하게 되는 경향..
- 예전 같으면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더 기대가 되었는데, 이제는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진다. 가끔은 염려와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는다.
- EX: ROTC 3학년과 4학년
- 3학년 때는 선배들이 기강을 많이 잡아서 힘들다. 제약이 많다. 제복을 입고 팔을 흔들고 다니면서 선배를 보면 멀리서 크게 경례해야했다. 어떤 친구들은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어떤 친구들은 부끄러워했다. 저는 후자. 그러다가 4학년이 되면 선배들이 없으니깐 생활이 달라지고 사고를 많이 치기도 한다.
- 이걸 걱정했던 한 4학년 선배가 졸업하면서, 이제 4학년이 되는 우리들을 모아 놓고 이런 이야기를 햇다.
- 3학년 마크, 4학년 마크: 애국, 용기, 긴장 + 여유
- 4번째 여유를 달았다고 처음의 가치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유를 즐기되 여전히 긴장해야 한다는 것.
-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
- 신앙이 성숙해지고 깊어진다고, 처음의 그 하나님의 능력과 응답을 온전히 신뢰하는, 그 어린아이와도 같은 믿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됨
- 혹시 저와 같은 분들은 안 계십니까? 예전에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름의 믿음 안에서 많은 것들을 구하고 또 응답을 경험하고, 하나님이 하실 일들을 기대하곤 했었는데.. 신앙연차가 쌓여가면서 그런 기대감, 간절함, 믿음이 약해져 가는 분은 안계십니까?
- 요즘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고 경험할 일이 아예 없으시거나, 아니면 그럴 일이 있는데도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내가 가진 어떤 것들을 의지하고 계신 분들...
-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이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분들은 없으십니까?

적용

-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과 응답과 역사를 신뢰하고 기대하는 믿음을 가지기를 요구하십니다.
- 이 믿음이 없다면 책망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의 책망은 마치 텍사스에서 울려퍼지는 커다란 천둥소리와도 같을 것입니다. 얼마나 두려울까요? 두렵기도 하지만 그 책망을 듣고 정신 차릴 수만 있다면 또 얼마나 감사할까요?
- 질문을 드립니다. 지금 이 믿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들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 오늘 본문에서 그 아버지의 관점에서 보면 이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필요합니다. 삶 속에서 그 능력과 응답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믿음이 있어야
- 제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믿음이 있어야 사람을 일으키는 주님의 사역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다른 이들이 이것을 함께 경험하여 그들을 일으키는데 쓰임 받을 사명이 다 있습니다.
- 그런데 우리가 가진 어떤 것들로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결코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 책망만 받을 뿐입니다.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신실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통해 친히 응답하시고 일하실 것이라는 기대감, 확신입니다.
- 오늘 기도할 때
- 기도할 것들이 많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나의 신앙을 위해서! 우리의 문제들을 놓고!
- 근데 믿음이 없는 기도를 한다면.. 오늘 본문에 따르면 책망받습니다.
-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신실하심, 전능하심,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두려움이 떠나가고 왠지 모를 믿음과 기대감이 우리 마음에 찾아올 것입니다.
- 믿음이 없다면? 그 아버지처럼,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면 됩니다. 하지만 간절하게! 우리의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게 보일 때까지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신다면, 주님이 그 아버지의 기도를 믿음의 기도로 인정해주신 것처럼, 우리의 기도를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결론

- 찬양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 유명한 찬양, 다 아는 찬양
- 가사가 오늘 말씀과 잘 연결이 된다! 특히 마지막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 없네"
- 이 믿음의 회복을 바라며 함께 찬양하자

기도제목

-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책망받습니다.
- 이 믿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그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 “무엇을 할 수 있으면 도와 주세요"의 기도가 아니라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내 믿음이 부족하다면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자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