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I (90~91문)

Jooahn Kim
제네바 신앙교육서 해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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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오늘 본문

John 16:8 NKRV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서론

지난 주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며, 예수님을 죽음 가운데 내버려둔 베드로가 변하여 자신의 목숨을 지키지 않고 예수님의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전하다 감옥에 들어가게 된 그 힘을 살펴보았습니다.
즉, 베드로를 바꾼 것은 바로 자신을 배신하고 죽음 가운데 버렸던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용기를 불어 넣어주시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베드로를 바꾼 그 예수님의 모습이 보혜사의 모습이었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금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보혜사를 보내어 주시겠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과 같이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에게 다시금 일어날 용기를 주시며, 이겨낼 수 있도록 하신다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 열쇠를 가지고 무엇인가 할 필요가 없다라는 것을 살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우리가 천국 열쇠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천국 열쇠를 사용하기에는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힘이 완전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 열쇠를 가지고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위로자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위로자가 바로 예수님이셨고, 예수님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본론

오늘은 보혜사로서의 성령이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3위격으로서의 성령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즉, 보혜사가 우리의 마음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에게 용기를 심어주시며, 다시금 일어나게 하셨따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 3위격인 성령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살펴보자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의 중심이신 그 성령을 살펴보자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할 : 척추!

에배소서 1:22-23 을 보면,
Ephesians 1:22–23 NKRV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를 “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몸의 머리가 예수 그리스도시요 우리는 몸의 각 부분들이다라는 것이죠.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람에게 있어서 심장을 뛰게 하고, 폐를 움직여 산소를 공급받고, 이산화 탄소를 뿜어내도록 하는 것은 머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머리는 우리의 행동에 있어서 의식적인 행동을 담당합니다.
이렇게 심장이 뛰는 것, 우리가 숨을 쉬는 것은 머리의 담당이 아니라 이것의 담당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를 보호합니다.
공이 날아올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중요한 곳을 손으로 막습니다.
뜨거운 것을 잡게되었을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손을 놓아서 손을 보호합니다.
이처럼 이것은 우리의 머리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죠.
이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척추입니다.
머리를 받치고 있으면서 각 신체 부위를 연결해 주는 기둥인 척추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 비유에는 드러나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은 바로 이 척추에 해당합니다. 예수님의 모든 명령을 모든 부분에게 전달해주는 연결의 중심이고, 때로 위험 속에서 우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반사신경을 일으키는 척추 말이죠.
왜 그런지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성령의 기능 : 드러내는 분!

오늘본문을 보면,
John 16:8 NKRV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라고 기록합니다.

본문해설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는 바로 ‘책망하시리라’로 번역되어 있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원어로 보면 ‘엘렌코’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사실 책망하다라는 의미 보다는 드러내다라는 의미가 더 강한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책망하다라는 말의 의미가 숨겨진 것을 드러내다라는 의미 위에서 형성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어떤 잘 못을 했다라고 했을 때, 저의 잘 못을 책망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가 무엇을 잘 못했는지를 드러내야 합니다. 저의 잘 못이 들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저를 책망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책망하다 라고 번역된 ‘엘렌코'라는 단어는 드러내다라는 의미가 더 정확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그가 와서 드러내실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을 드러내나요?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말이죠.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죄, 의, 심판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오늘 본문의 바로 뒤에서 설명해 줍니다.
John 16:9–11 NKRV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요한복음 16:9-11 에 따르면,
죄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의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는 것으로 인해 증명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논쟁하며 부활은 없다라고 주장했고, 예수님의 부활을 거짓말로 숨기려 했던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부정하고 숨기려 했던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목격했다는 것 그것이 주는 의미는 바로 오직 예수님이 의로운 기준이시다 라는 것이죠. 그토록 자신들은 의로운 기준을 지키고, 의로운 기준을 따라 살아가는 자라 얘기했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및 유대인들이 온 갓 거짓말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이 예수님의 부활과 하늘로 올라가심을 통해 온 천하에 드러났다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심판이라는 것은 바로 이 세상의 임금 이 세상을 지배하고, 주도하는 사망과 어둠을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다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성령이 드러내신다 라는 것이죠.
다르게 이야기 하면, 예수님을 믿게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예수님의 승천하심을 통해 드러난 그 의로운 기준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되도록 만들며,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망과 어둠의 영역에서 벗어나서 사망과 어둠을 이기신 예수님의 빛의 영역으로 옮겨진 자들이 되도록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누가요?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3위격이신 성령이 그렇게 하신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은 성령을 드러내시는 존재라 말합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우리는 “성령의 조명하심"이라 합니다.
어려운 단어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쉬운 단어입니다.
성령께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밝히 드러내신다 라는 말이 바로 성령의 조명하심입니다.
어둠 가운데 빛이 비추어 우리가 사물을 분별하고,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길을 잃어 버렸을 때, 우리가 네비게이션을 통해서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것처럼 바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드내시기 때문에 우리는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오순절 사건 이야기!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 후 유대인들이 보였던 반응은 바로
Acts 2:37 NKRV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이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왜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것은 베드로의 설교 속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Acts 2:22–23 NKRV
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언하셨느니라 23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유대인들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것을 동의하고 밀어 붙였던 자들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서 베드로는 그들의 죄를 드러내면,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베드로의 설교가 단순히 베드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갈릴리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무식함의 대명사로 불렸던 그 갈릴리 사람말이죠
베드로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Acts 2:4 NKRV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라는 말씀에 의하면, 바로 성령이 베드로에게 말씀하도록 하셨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베드로를 통해서 말씀하셨던 성령은 그 말씀을 듣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Acts 2:37 NKRV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라는 반응을 일으키셨던 것입니다.
바로, 성령이 하시는 일은 사람의 마음에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드러내심으로 깨닫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조명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몸된 우리를 이어주는 척추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성령이 중심인 이유!

마가복음 1:14-15 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Mark 1:14–15 NKRV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것은 바로 성령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드러내시는 그 모습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을 이어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성령이 이어서 하신다라는 것이죠.
머리가 내리는 신호가 척추를 통해서 우리 각 신체 부위로 가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어 드러내셨던 일을 성령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전달 받은 우리는 그 뜻을 따라서 예수님의 뜻을 드러내는 존재가 된다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하늘로 승천하지 않으시고 이 땅에서 계속 보여주시면서 계셨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왜 굳이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시고 성령이 그 일을 이어서 하도록 하셨을까요?
그것은 원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면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존재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몸을 입은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은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셨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마지막날 다시 내려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결산하셔야 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성령을 보내신다라는 것이죠.
성령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특정 지역이 아니라, 특정 시간이 아니라 거하시고 싶으신 곳 모든 곳에, 거하시고 싶은 모든 시간에 계실 수 있으시다라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성령이 오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이 오심으로 인하여서 우리는 우주적 교회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희생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시간과 공간 속으로 들어오셨을 때, 예수님은 희생제물로서 아주 중요하고도 중요한 일을 감당하셨지만, 인간의 몸이 가지는 제한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스라엘 지역에 국한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한 희생제물로서의 임무를 완성하신 후에 죽음을 이시기고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은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의를 완벽히 드러내시고 완벽하게 의를 보이셨습니다.
그 의를 지금 성령이 이어받아 온 세계를 향하여, 온 세계 가운데 그것을 적용시키시고 드러내시며, 태양빛이 온 세상을 비추이는 것처럼 예수님의 그 의를 이 세상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인다라는 것이죠.

결론

저는 지난 주에 우리가 천국 열쇠를 들고 무엇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라는 고민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고 말씀드리면서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지 마시라 말씀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의 척추가 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 속에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의로운 기준을 날마다 생각나게하시고, 드러내실 것이고, 죽음과 어둠을 이기신 예수님의 영역에 속한 자들로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살아가도록 우리를 견디고 인내케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 열쇠를 주인의 뜻대로 사용하기 위해서 우리는 단 한가지만을 구하면 됩니다.
바로, 성령의 충만하심을 말이죠.
여러분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신다면, 말씀을 통해 여러분들의 마음에서 죄를 드러내실 성령, 말씀을 통해 의를 가르치실 성령, 말씀을 통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실 성령을 구하십시오.
말씀을 읽으시고, 그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조명하심을 기대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고,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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