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신자반(이재철) - 7장 교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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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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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Intro

사람이 어떤 단체에 속해 있을 때,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사실상 그 단체와 무관한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교회’에 다니는 교인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교회’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실로 가슴 아프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1. 교회의 정의

Q. 당신이 생각하는 교회란 무엇인가? & 은혜를 받은 부분도 나눠보자
#215
새신자반 교회의 정의

일반적으로 ‘교회’하면 사람들은 종탑과 더불어 잘 지어진 ‘건물’을 연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배당’이지 교회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예배당을 세우기 위해 단 한 장의 벽돌도 쌓으신 적이 없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예배당을 ‘집’으로 비유한다면 교회는 ‘가정’이다. 집과 가정은 같은 말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제도’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교회 내에 제도가 존재한다고 해서 제도 그 자체가 교회인 것도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제도도 세우신 적이 없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우리말로 교회라 번역된 헬라어 ‘에클레시아ejkklhsiva’자체가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란 의미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1–3).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 그리고 ‘각처에서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이라 규정하였다. 교회는 건물이나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성도들의 모임’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 모여 무엇을 하는 모임인가?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5–18).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인간의 죄를 대속하러 이 땅에 오실 구원자, 임마누엘 하나님 되시는 메시아,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실 그리스도를 학수고대해 왔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하였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당신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대망하던 구원자이심을 믿는다는 고백이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마치 반석과도 같은 베드로의 그 신앙고백 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천명하셨다. 따라서 교회는 베드로의 이 신앙고백을 자신의 고백으로 삼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회의 주인은 목사, 장로, 집사 혹은 교황, 추기경, 주교, 신부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반석과도 같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즉 주님의 교회를 세우신다고 말씀하셨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고,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교회는 주님의 교회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그 주님을 경배하며, 그분의 뜻을 이 땅 위에 이루어 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다시 정리하면 교회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그분을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경배하며, 그분의 사랑과 뜻을 이 땅 위에 자신의 삶으로 심어 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교회는 제도도 아니다. 교회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타락했다면 그것은 건물이나 제도가 썩었다는 말이 아니라, 교회인 우리 자신이 부패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교회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다운 교회이기 위하여, 교회 된 우리 자신을 어떤 모습으로 가꾸어 가야 하는가?

2. 교회의 특성

둘째,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221
새신자반 둘째,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둘째, 교회는 거룩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태연하게 서로 ‘성도’라 부른다. ‘성도’는 거룩한 사람이란 뜻이다. 과연 그리스도인은 모두 거룩한가?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찌 성도일 수 있는가? 어찌 그런 사람들의 모임인 교회가 거룩할 수 있는가?

먼저 하나님께서 거룩하다고 인정해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이미 제3장에서 상세히 배운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고 우리를 거룩하다 인정해 주신다.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 1:7)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기 때문에 거룩할 수 있고,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역시 거룩할 수 있다.

교회가 거룩한 또 하나의 이유는 거룩하신 주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요, 머리이시기 때문이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그리스도]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2–23).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머리 되신 주님의 몸이다.

우리나라에도 온 적이 있는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 호킹Stephen W. Hawking은 온몸을 쓰지 못한다. 사지를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머리가 이 세상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천재이기에, 불구인 그의 사지도 어디서나 천재의 몸으로 귀하게 대접받는다. 이처럼 교회 된 우리 자신은 쓸모없는 인간들이지만,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 되시므로 우리 또한 거룩한 교회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도라 부르시고, 또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심으로 보잘것없는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러므로 계속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다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거룩하지도 않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거룩타 구별해 주셨으므로, 지금부터 거룩한 삶을 살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증언할 의무를 지닌 사람들이 바로 교회 된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교회가 이 신성한 의무를 망각한 적이 더 많았다는 것은 거룩해야 할 교회의 수치다.

AD 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외부의 박해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는, 교리 싸움으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을 죽이기 시작했다. 영어로 된 성경을 읽는다고 불태워 죽이기도 했고, 정신병자는 마녀라 하여 죽였다. 아프리카에서 땅을 강탈한 사람들, 사내아이들의 체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소년들에게 담배와 섹스를 조장한 사람들,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무참하게 학살한 사람들, 그들의 손에는 한결같이 성경이 쥐어져 있었다. 오늘날 이 땅에서도 대형 사건의 중심에는 늘 그리스도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성령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능력을 겸손하게 구하면서, 우리 자신이 정말 거룩한 교회가 되어 가야 한다. 그렇게 되기를 끝내 원치 않는다면, 주님께서 머지않아 그대와 나를 이렇게 질타하실 것이다.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 21:13).

Q. 교회와 거룩은 무슨 연관성이 있는가? 교회는 왜 거룩해야 하는가? 우리 교회는 어떤 거룩함이 있어야 하는가?

셋째, 교회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223
새신자반 셋째, 교회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셋째, 교회는 보편적이어야 한다

본래 교회는 ‘보편적’이란 용어를 ‘가톨릭Catholic’으로 표현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구교와 구별하기 위하여 ‘유니버설Universal’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가톨릭이든 유니버설이든 그 의미는 동일하다. 교회가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인종, 지역, 재산, 학력, 신분, 나이를 따지지 않는, 다시 말해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구별하지 않는, 문자 그대로 만민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만민을 위하여 오셨고, 또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a).

교회가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2천 년 전에는 가히 혁명적인 사상이었다. 당시에는 노예가 있었고, 귀족과 천민이 구별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보편적이란 말을 하기는 쉬웠지만 실천하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모든 교회가 다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에는 백인 전용교회와 흑인 전용교회가 따로 있다. 교인의 자격을 심사하는 교회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온 교인이 명실상부하게 한 형제자매로 어우러진 교회는 드물다.

교회는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사기꾼도 들어올 수 있어야 하고 술주정뱅이, 살인자, 거지, 독재자도 들어와 편한 마음으로 예배드릴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만민을 구원하시는 주님의 집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이기를 꺼리는 교회는 주님의 교회일 수가 없다. 주님께서 이 땅에 계실 동안 주님 곁에는 어부, 세리, 장교, 학자, 정치인, 군인, 부자, 거지, 병자, 창녀, 강도, 남자, 여자, 노인, 아이 등 문자 그대로 남녀노소 빈부귀천이 섞여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 인간에게 그와 같이 보편적인 구원을 내려 주시지 않았던들, 그대와 내가 지금 이렇듯 교회 되어 있지는 못할 것이다.

Q. 교회가 정말 누구든지 들어올 수 있는 곳인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우리교회는 문턱이 없는가? 높은 담장이 있지는 않은가?

3. 교회의 사명은 에덴의 복원

Q. 교회의 사명은 무엇인가? 교회는 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가?
#228
새신자반 교회의 사명은 에덴의 복원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 이것이 교회의 목적이요 사명이다. 천국은 이 땅에서 죽은 뒤에 가는 곳만을 뜻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얻었고, 또 천국을 얻었다. 우리에게 이미 천국이 임하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그러므로 교회는 이미 우리에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구현해야 한다. 바꾸어 말해 우리 가정과 일터, 그리고 사회를 천국으로 일구어 가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목적이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한다는 것, 가정과 일터와 사회를 천국으로 일구어 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천국의 모형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신 적이 있다. 에덴동산이다. 죄로 말미암아 상실했던 바로 그 낙원이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잃어버렸던 그 에덴동산을 이 땅 위에 복원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이 땅 위에 구현하고 복원해야 할 에덴은 대체 어떤 곳을 의미하는지, 이제 그 동산으로 함께 가 보자.

첫째, 에덴은 강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228
새신자반 첫째, 에덴은 강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강은 물이고 물은 생명이다. 참다운 생명은 언제나 사랑이다. 생명을 상실한 것은 사랑일 수 없다. 사랑의 특징은 자기희생이고, 희생은 곧 자기낭비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살리시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의 제물로 삼으셨다. 혹 그것을 가리켜 낭비라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사랑의 특성이 낭비인 것을!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보라.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자기희생과 자기낭비로 드러난다. 자신의 건강을 쏟고, 시간을 붓고, 정성을 바친다. 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자기희생과 자기낭비 없는 사랑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의 자기희생과 자기낭비는 완벽하다. 물은 자신을 소멸시킴으로 사람에게 생명을 제공한다. 물은 자신이 더러워짐으로 사람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 준다. 사람이 깨끗해지는 만큼 물이 더러워지는 것이다. 그래도 물은 사람의 필요를 거절하지 않는다. 물은 완전한 생명, 완전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에덴은 복원된다. 자기희생과 자기낭비가 없다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는 예배당일지라도 그 속에 에덴이 일구어질 수는 없다. 그래서 교회는 계산에 밝아서는 안 된다. 계산에 밝은 곳이라면 그것은 기업이다. 교회는 모든 것을 아껴야 한다. 근검절약을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러나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낭비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낭비하고, 인력을 낭비하고, 물질을 낭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고서도, 마치 자식을 위해 자신을 낭비한 어머니가 즐거워하듯, 인간을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를 낭비하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듯, 교회는 사람 살리는 낭비를 즐기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에덴에서 발원한 강은 특정한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았다. 그 강은 네 근원으로 갈라져 동서남북 사방으로 흘러갔다. 그냥 졸졸 흘러간 것이 아니다. ‘비손פִּישׁוֹן’ ‘기혼גִּיחוֹן’ ‘유브라데פְּרָת’란 강의 이름은 각각 ‘퍼진다’ ‘내어 뿜는다’ ‘열매를 거둔다’는 동사에서 유래한 단어들이다. 그 강들은 열매를 거두기에 충분할 만큼의 물을 뿜어내는 강들이었다.

특정인만을 사랑하는 곳에는 에덴이 복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가 이기심을 버리고, 나눌 것이 있는 한 동서남북 어느 곳이든 필요로 하는 곳으로 그것들을 내어 뿜을 때, 에덴은 이미 그 속에 복원되어 있다. 내가 섬겼던 주님의교회와 현재 섬기고 있는 100주년기념교회가 헌금의 50퍼센트를 ‘이웃사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은 교회의 이 본질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결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Q. 주님이 교회의 머리, 교회는 그의 몸이라는 뜻이 무슨 의미인가?
박리부가 사모님의 예화
<기도> 우리 교회가 회복되고 부흥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합니까?
‘교회’는 바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내가 먼저 회복되고 부흥이 되기 전에, 우리 교회의 회복과 부흥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회복과 부흥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의 사람은 ‘예수님 한 분으로 충분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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