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복있는사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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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Samuel 13:15–23 NKRV
15 사무엘이 일어나 길갈에서 떠나 베냐민 기브아로 올라가니라 사울이 자기와 함께 한 백성의 수를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라 16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들과 함께 한 백성은 베냐민 게바에 있고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진 쳤더니 17 노략꾼들이 세 대로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나와서 한 대는 오브라 길을 따라서 수알 땅에 이르렀고 18 한 대는 벧호론 길로 향하였고 한 대는 광야쪽으로 스보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지역 길로 향하였더라 19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20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23 블레셋 사람들의 부대가 나와서 믹마스 어귀에 이르렀더라

들어가며

저는 한 때 전쟁 영화를 열심히 찾아보곤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전쟁 영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영화 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찾아보곤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 때는 총기 종류, 전투기 종류 같은 것들의 이름을 기억할 만큼 좋아했기도 했고, 전쟁 영화에 등장하는 특유의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것도 좋아했기 때문에 전쟁영화를 즐겨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쟁 영화를 보다 보면, 또 다른 특이점은 전쟁의 참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고 참혹한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전쟁 영화를 보다보면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어서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전쟁의 참혹함은 어디에서 비롯됩니까? 짧은 전투의 순간에도 수많은 생명이 생사를 오가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버튼 하나에, 방아쇠 하나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 그 참혹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듯 생사가 오가는 전쟁터이기에, 승패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군인들의 사기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탄약이 얼마 남지 않았다든지, 보급로가 끊겼다든지, 기후나 지형이 아군에게 불리하다든지, 이런 불안한 요소들은 아군의 사기를 하락시킵니다. 조금이라도 불리한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면 병사들 개개인이 느끼는 비참함과 암담함은 엄청난 것입니다. 조금만 불리해도 쉽게 죽어나가는 전쟁터이기에, ‘과연 내가 다음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비참한 생각이 온 정신을 잠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불리한 상황1 - 병력의 열세

상황이 조금만 불리해도 이런 생각에 빠지게 되는데,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은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먼저 숫적으로 열세입니다. 오늘 읽은 15절에는 사울이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 백성의 수가, 육백 명 가량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병사’라고 하지 않고, 백성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그다지 훈련된 자들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후에도 살펴보겠지만, 22절에 보면 그들은 칼이나 창으로 무장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농기구들로 무장했을 것인데, 확실히 병사로 훈련된 자들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전 병력이 훈련되지 않은 600명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블레셋의 병력은 어떻습니까? 지난 본문인 5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 Samuel 13:5 NKRV
5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그들이 올라와 벧아웬 동쪽 믹마스에 진 치매
병거만 삼만 대, 마병이 육천 명, 백성이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다고 기록합니다. 병거와 마병은 제쳐두더라도, 같은 체급인 백성, 즉 보병만 비교해보아도,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전장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마병과 병거만 해도 이스라엘보다 더 숫자가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7절에 노략꾼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단어는, 원어적 의미는 ‘파괴자’인데, 새번역 성경의 경우에는 이를 ‘특공대’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주 잘 훈련된, 특공부대가 세 부대로 조직이 협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불리한 상황 2 - 무장의 열세

이스라엘이 불리한 것은 병력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제대로된 무기도 없었습니다. 무장에서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철공이란 대장장이를 의미하는데, 이 당시에 왜 대장장이가 없었겠습니까? 그것은 뒤 이어서 나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블레셋은 이스라엘이 전쟁무기를 만들어서 자신들의 압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꾸준히 괴롭히면서 그들의 대장장이들을 다 데려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농기구를 벼리기 위해서도 블레셋으로 가야만 했던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농기구를 날카롭게 하는 데도 블레셋으로 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제대로된 무기를 가질 수 있었겠습니까?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오직 사울과 요나단 만이 칼과 창이 있었다고 말입니다.

상황에서부터 오는 두려움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병력은 600명 밖에 없는데, 제대로된 무기를 가진 사람은 지휘관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런데 상대방은 병거만 삼만 대가 있었고, 마병이 육천 명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로 특공부대 3개 부대와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상황에서 일개 병사라면, 끝까지 남아서 전투를 치르시겠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내일 아침에 전투를 벌여야 한다면, 전날 밤에 잠이 올까요?
‘내가 내일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마도 내일 전쟁터에서 무기 한 번 제대로 못 휘두르고 죽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잠을 청하기 위해 누인 몸을 비참함과 암담함이 휩쌀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내일 본문에서 다루게 되겠지만, 요나단의 기습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스라엘의 승리고 끝이 납니다. 상황을 볼 때는, 당연히 이스라엘이 패할 것이라고 생각되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자녀를 돌보시고 승리케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상황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믿는 성도들도 때로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비참함과 암담한 처지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나, 건강을 잃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때, 우리는 비참함과 암담함을 느낍니다. ‘하나님 나한테 왜 이러시냐’고, ‘하나님 살아계신 것 맞냐’고.... 도무지 그 상황들을 이겨낼 자신도 없고, 마음도 들지 않을 때...
특별히 지금 한국 교회의 상황 또한 그렇습니다. 코로나19로 한국 교회는 정말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치료제도 제대로 없는 바이러스를 대항하는 우리의 모습은 마치 무기 없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바이러스 앞에서 우리의 모습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코로나로 인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의 상황은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어떠한 어려움에 있든지 우리는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처럼 암담한 상황에서도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을, 성경 곳곳에 상황을 역전시키는 모습을 보이신 하나님을, 연약하고 아픈 자들을 통하여서 큰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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