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54 views믿음으로 접근 (1. 믿음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 2. 믿음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
Notes
Transcript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시던 가정,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큰 일이 닥쳤습니다. 오빠 나사로에게 병이 든 것입니다. 매우 위급했는지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렸는데도 조급해 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이 사실을 듣고도 이틀이나 더 계시던 곳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이미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지난 후에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다가 살고 있던 베다니에 도착하십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읽은 본문의 앞부분 1절부터 16절까지의 간략한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11장,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마지막으로 행하신 기적입니다. 다른 복음서에서도 기적들이 등장하지만 아주 정교하게 쓰여진 요한복음에서 기적은 2장에 나오는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던 가나 혼인잔치의 기적을 시작으로 11장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기적, 그리고 기적의 절정인 십자가와 부활사건까지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갑니다. 그런데 이 모든 기적들은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적들을 통하여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길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요한복음 11장 17절부터 44절까지의 본문을 통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라는 제목으로 믿음에 대해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첫번째로, 믿음은 내가 믿는 분이 누구인지 바로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내 생각대로, 또 어느정도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알려주시는대로 내 생각을 가미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르다와 예수님의 대화를 보면 마르다의 믿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나타납니다. 21절과 22절입니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1절의 말씀을 쉽게 이야기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병을 잘 고치시는 분인 줄은 내가 압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늦게 오셔서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죽었습니다." 예수님께 따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예수님께 원망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이 병을 잘 고치시는 분인줄은 알았지만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라는 것은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한정적으로만 믿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짧게 대답하십니다.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다시 살릴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24절에서 다시 마르다는 자신의 관점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합니다.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날 , 즉 종말의 때에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의 믿음은 지금 나사로를 살리실 예수님의 관점과 합치되지 않은 유대인의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믿음입니다.
이런 유대인의 믿음은 여기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라는 시간을 강조합니다. 17절을 보면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39절을 보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나흘이란 단어가 반복됩니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유대인들의 믿음에 대한 관점과 연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무덤에 있은 지 삼 일이 되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어 다시는 살아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느낀 것입니다. 그래서 마르다도 마리아도 그리고 그곳에 위문을 온 수많은 유대인들도 예수님이 조금만 빨리오셨다면 살아날 수 있다고 여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예수님을 제한하고, 나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내 방식대로의 믿음을 고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기도가 막힙니다. 또 그동안 들려오던 하나님의 음성도 잘 들려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해져가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에 인본주의적인 인간의 사고방식이 들어오게 됩니다. "내가 다시 살리리라" 하는 주님의 말씀 앞에서도 "주님 이미 늦었습니다. 이제 냄새가 나고 가망이 없습니다"라고 스스로 포기하고 맙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그런 우리의 왜곡된 믿음을 교정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문제를 인간의 시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십니다. 25절과 26절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마르다의 믿음을 교정하여 주십니다. 여기서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에 일어날 최후의 부활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생명은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의 실재를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26절에서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죽음 이후가 아니라 현재 예수를 믿고 살아가는 가운데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지만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현재부터 그 생명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26절 끝에서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믿음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아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를 둘러싼 모든 문제들에 대해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게 되면 다윗처럼 물맷돌만 들고도 골리앗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배에 모셔두고도 풍랑에 두려워 떠는 제자들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막히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 때, 우리의 믿음을 계속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정하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믿음에 대해서 살펴볼 것은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하고 이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사람들의 믿음없음과 상관없이 기적을 행하심과 동시에 사람들의 믿음없음을 꾸짖고 계십니다. 왜 예수님은 사람들의 믿음과 상관없이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신데 사람들의 믿음없음을 꼭 그렇게 혼내실까요? 그 이유는 사람들의 믿음을 성장시키시고 제자삼으셔서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도 하나님의 일들을 동일하게 제자들을 통해 감당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많이 슬퍼하십니다. 33절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리고 35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 본문을 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너무 슬픈 나머지 비통히 여기시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휴머니스트다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늘 본문에서 비통히 여기시고 눈물을 흘리신 것은 나사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이 울고만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유대인들을 향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죽은 나사로에 대하여 슬퍼하며 우는 것을 헬라어로 보면 '클라이오라'는 단어입니다. '소리 내어 슬퍼 울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실 때 쓴 단어는 이 단어와 다른 "다크뤼오"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이 곳에서 딱 한 번 쓰였는데, 소리내지 않고 깊이 탄식하는 울음을 말합니다. 무엇에 대해 탄식하셨을까요? 부활이요 영원한 생명되신 예수님이 오셨는데 믿음없이 울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상황이나 문제에 대해 슬퍼하지 않으십니다. 바로 우리의 믿음 없음에 슬퍼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예수님은 오늘도 믿음있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 믿음 있는 자들이 여러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여러분의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계속 본문을 보면 예수님이 이제 나사로를 살리시기 위해 나사로의 무덤 앞에 가십니다. 그리고 나사로를 부르시기 전, 마르다에게 말씀하십니다. 40절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 말을 쉽게 표현하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마르다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에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시기 위하여, 또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미리 보여주시기 위하여 사람들의 믿음이 없어도 기적을 일으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승천 이후에는 하나님은 믿음있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에 그치지만, 믿음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통로로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믿음 있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믿음의 역사를 구경하는 사람들입니까?
"부흥의 거장들"이란 책이 있습니다.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던 사람들의 일대기를 모아놓은 책인데, 책을 읽던 중 믿음의 사역자였던 스미스 위글스워스라는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에서 150년 전 활동하던 사역자인데, 이 분이 사람들에게 외쳤던 그 믿음있는 말들이 제 마음에 큰 울림을 주었기에 소개하려 합니다.
성령을 받은 후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는 것은 주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제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믿음으로 먼저 행하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에 반응하여 움직이십니다. 다음의 두 가지로 인해 여러분은 하나님의 더 큰 약속 안으로 뛰어들게 될 것입니다. 하나는 순결함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뒤돌아보거나, 다시 생각하거나, 뒤돌아 가는 사람들 가운데 계시지 않습니다. 성령이 나를 움직이지 않으시면, 내가 성령님을 움직이시게 합니다. 내가 자연계에서 믿음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항상 하나님의 영이 오셔서 기름 부어 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자연계에서 시작했어도 성령 안에서 행하게 됩니다.
스미스 위글스워스의 말은 우리가 마음대로 성령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 문제를 바라본 후, 주저없이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들이 스미스 위글스워스를 통해 일어났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고 이 책을 통해 증언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려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믿음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믿음은 내가 믿는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그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게 됩니다. 또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하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합니다.
부활절 예배 때, 우리는 담임목사님께서 '부활을 넘어 부흥으로'라는 제목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부활하다, 부흥하다라는 뜻의 영어단어는 동일하게 'revive'입니다. 그런데 부활과 부흥은 차이가 있습니다. 부활이 한 개인의 소생이나 회복을 이야기한다면 부흥은 집단이나 공동체의 소생과 회복을 뜻합니다. 부활의 영향력이 곧 부흥인 것입니다. 오늘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 것처럼, 또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것처럼. 오늘 믿음 있는 자들을 통해서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역사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그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교회를 향해 있습니다. 우리 믿음의 눈을 들어 그 영광을 함께 바라봅시다. 그리고 함께 부흥을 경험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