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리듬대로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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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대로 살아야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대로 살아야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오늘은 시 한편을 소개하며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자연 그대로 간다
창조주가
애초에 설계하고 만든 대로
순리에 따라 조용히 순응하며 간다
억지를 쓰지 않는다
욕심을 내지 않는다
탐하여 뒤돌아보지 않고
역리는 한사코 배척하며 간다
지은 바대로 그저 물 흐르듯이
아무 것도 해치지 않고
서두름도 지체함도 없이
자연의 시간표 그대로 묵묵히 간다.
(오정방, ‘자연의 시간표', 재미 시인, 1941-)
이 시처럼 자연은 자신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럼 과연 우리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야 가장 아름답고 행복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오늘 지혜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본론]
우리는 앞서 잠언의 지혜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 질서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그런 질서는 도대체 누가 정한 것이고, 언제부터 시작한 것일까요?
이런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마치 자신이 인격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혜는 먼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기원을 밝히는 이유는 왜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하는 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입니다.
앞서 8:1절부터 이 본문이 시작되는데요.
지금 이 본문도 지혜가 사람들 다 모인 곳에서 소리치고 있는 겁니다.
“너 제발 좀 나를 배워”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오늘 말씀에서 지혜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던 때부터 자신이 존재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지혜가 하나님과 동급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서 지혜는 주님이 자신을 데리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마치 엄마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있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그 다음 구절들을 통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23절 입니다.
지혜는 “영원 전, 아득한 그 옛날, 땅도 생기기 전에, 나는 이미 세움을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지혜가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24, 25, 26절에서 계속해서 설명합니다.
지혜는 자신이 태초의 깊은 바다, 즉 처음 존재했던 그 바다가 생기기도 전에 자신이 이미 태어나서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산, 언덕도 있기 전에 지혜는 이미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땅도 들도, 첫 흙덩이도 만들어지기 전에 지혜는 이미 태어났습니다.
이런 바다, 산, 언덕, 땅 모두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존재들 입니다.
그 자연이 창조되기도 전에 지혜가 먼저 존재했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핸드폰 사용하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이 어떤 핸드폰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운영체제가 다릅니다.
대표적으로 안드로이드가 있고, IOS체제가 있는거죠.
지혜가 마치 그 운영체제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운영체제가 바로 지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이런 운영체계가 없으면 바탕화면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는거죠.
그처럼 지혜가 없었다면 이 세상의 바탕화면같은 자연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지혜는 왜 이렇게 자신이 다른 피조물들보다 먼저 있었다는 사실을 강조할까요?
그건 자신이 하나님빼고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어떤 시대, 어떤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그런 지혜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지혜는 역사 속에서 모든 것을 보고 경험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지혜는 오랜 세월동안 증명된 신뢰할만 한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100년을 살아온 할머니가 하시는 말씀과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아이가 하는 말중 무슨 말이 더 신뢰할만 할까요?
지혜는 그 말을 하는 겁니다.
이렇게 자신이 오래되었으니까 믿고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혜가 자신의 기원을 알리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바로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지혜 자신이 태어났다고 말하는데 그럼 낳은 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지혜의 출처 근원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보통 지혜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어떤 경험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지혜가 뭐냐고 물으면 단순히 ‘속담’이나 ‘격언’ 이런 말을 하죠.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면 지혜의 시작이 바로 사람이 되어 버린다는 겁니다.
사람들에 의해 지혜가 만들어진 것이죠.
당연히 세상 사람들은 지혜란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잠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지혜를 만드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지혜를 발견한 것 뿐이라는 겁니다.
만약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면 지혜는 언제든지 바뀔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지혜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따를지 말지도 결국 내 선택에 달려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요.
예를 들어, 앞에서 자주 등장한 주제가 ‘간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지혜는 절대 그 길로 가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요즘 중년 남자들보면 유행처럼 애인만드는 사람들 많거든요.
그럼 잠언에서 말하는 지혜는 옛날 방식, 구식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건가요?
간음죄도 폐지되었으니깐 이제 애인 만들어서 간음하고 다녀도 그 사람들 아무 문제 없는 건가요?
그래서 잠언은 지혜가 사람에게서 태어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사람들의 오랜 경험이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지만 원래 그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지혜는 시대가 바뀌어도 사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삶의 진리를 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이제 27절부터는 태초부터 있었던 그 지혜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실 때 어떤 역할을 했는 지 보여줍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하늘을 제자리에 두시고 하늘과 바다의 그 경계를 나누셨는데 그때 그 자리에 지혜가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28절에서 하나님이 하늘에 구름을 띄우시고, 땅 아래 깊은 샘물, 지하수를 만드셨을 때도 지혜가 함께 있었습니다.
여기서 ‘함께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런 것을 만드실 때 지혜 자신도 동참했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지혜를 가지고 만든 것이 바로 이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왜 지혜가 필요하셨을까요?
창세기 1장 2절에 보면 이 세상이 처음에 ‘혼돈과 무질서함’ 그 자체였기 때문에 지혜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는 이 세상에 있는 질서들 속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27절에서 하나님은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나누셨고, 29절에서는 바다와 땅의 경계도 나누셨습니다.
중요한 단어가 바로 이 ‘경계’라는 단어입니다.
바다가 땅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계’, ‘한계’를 정해놓으셨다는 말입니다.
가끔씩 바다가 땅의 경계를 침범하게 된 것을 우리는 ‘쓰나미’, ‘해일’ 이라고 말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자주 일어나면 우리가 살 곳이 없을텐데 딱 그 경계를 정하신 게 바로 하나님의 지혜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끔씩만 넘어가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놓으신 거죠.
우리는 이것을 자연과학으로 설명할 수도 있죠.
지구와 달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때문에 바다가 육지를 침범하지 못합니다.
(지민자매 맞나요?)
그런데 그걸 누가 정했느냐는 것입니다.
그걸 성경은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제 곧 여름이 옵니다.
우리에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주어지는 것도 지구가 23.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거 누가 정해놓으신 것인가요?
23.6도면 안되나요?
0.1도만 틀어져도 아마 지구는 엄청난 재앙이 일어날 겁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과학’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리듬, 질서’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지혜를 가지고 이 세상을 만드셨고, 과학은 그것을 발견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수학자처럼 과학자처럼 수치를 재서 이 세상의 질서를 정확하게 세워 놓으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재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그 질서대로 자연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경계’라는 단어와 관련해서 우리가 한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자연에도 창조질서가 있다면 우리 인간세계에도 창조질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자연세계에만 작용하는 게 아니라 인간세계에도 작용합니다.
우리는 자연이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 안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여름이 겨울이 되고, 겨울이 여름이 되면 문제가 있는 것이죠.
토끼가 사자를 잡아먹으면 안되는 거죠.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놓으신 그 질서와 리듬 안에서 사는 삶,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 한계 안에서 사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잠언이 말하는 지혜입니다.
예를들어 우리 인간이 욕심부려 자꾸 자연의 경계를 넘보니까 박쥐가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코로나라는 이 엄청난 재앙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과학과 경제가 무조건 발전하는 게 좋은 게 아닙니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정하신 자연의 경계를 넘어설 때 코로나 같은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겁니다.
또한 인간이 인간의 경계를 넘어 신의 영역을 넘볼 때 정말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인간복제’같은 문제들은 이제 인간이 신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자연의 경계, 그 질서가 무너지면 재앙이 일어나듯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영역에 들어오면 생명이 아닌 죽음과 파괴, 저주만 있을 뿐입니다.
창조주의 질서에 도전하는 피조물은 이 세상에 인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간의 경계, 한계 안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 경계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지혜로운 삶이며 그 안에 생명의 길, 참된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30,31절에서 우리에게 더 자세히 설명해줍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이 바로 지혜에 있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우리에게 주고 싶은 것은 기쁨과 행복인 것입니다.
30절에서 지혜는 자신이 하나님 옆에서 명공 즉, 장인처럼 날마다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고, 자신도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지혜의 역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혜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이런 표현을 했을까요?
여러분이 여행하셨던 곳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은 어디였나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정말 어렵게 돈 모아서 그랜드캐년에 가신 한 스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스님이 웅장한 그랜드캐년을 보고 내뱉은 한마디가 있습니다.
“Oh my God!”
그런데 자연말고도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게 있죠.
하나님 조차도 만드시고 나서 너무나 감탄하신 작품, 바로 ‘사람’입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자연을 지으실 때는 ‘보시기에 좋았다’라고만 하셨는데 사람을 지으실 때에만 ‘보시기에 참 좋았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서도 기쁨과 치유를 얻기도 하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면 더 큰 기쁨과 치유를 얻습니다.
선한 삶을 살아가는 따스한 사람을 만나보신 적 있습니까?
“참 아름다운 사람이다”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저는 목회자로 일하면서 이런 몇몇 친구들을 만나적이 있습니다.
너무 맑고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이뻐 보이는 거에요.
얼굴 자체는 그리 이쁜 편이 아닌데 세상 누구보다 이뻐 보이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노래중에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이런 사람을 만나면 그 노래가 거짓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런 자연과 인간 말고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지혜로 만든 또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음악, 영화, 책, 그림 뭐 이런거죠.
모짜르트의 천재성을 누가 주셨나요?
헨델, 바흐의 아름다운 선율을 누가 주셨나요?
이렇게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지혜를 잘 활용한 창조활동은 우리에게 생명을 증진시켜줍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책, 그림 등으로 인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해집니까?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창조는 창조가 아니라 파괴일 뿐입니다.
그리고 결국 우리에게 재앙과 죽음을 불러오게 됩니다.
앞서 말한 인간복제같은 과학처럼 이것들도 하나님이 정하신 어떤 경계를 넘어가게 되면 우리의 생명을 갉아 먹으며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음악이라고 다 좋은 음악이 아니죠.
우리의 생명을 조금씩 갉아먹는 뉴에이지 음악들, 해로운 영화들, 책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참된 지혜란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그리고 추구해야 할 것과 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아는 것, 즉 자신의 위치를 알고 주어진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는 마치 자신의 아이들을 부르는 듯 우리에게 호소합니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면 이 지혜의 길을 따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34절에 보면 지혜는 날마다 나의 문을 지켜보며 내 문설주 곁에 지키고 서서 내 말을 들으라고 말합니다.
이건 마치 남자가 매일마다 사랑하는 여자의 집 문 앞에 서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지혜를 우리가 사랑하는 연인처럼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때 그 지혜를 통해 우리는 주님께 은총을 받고 생명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지혜를 무시하고 미워하는 자는 결국 생명도 잃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리듬, 질서를 무시하고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와 한계를 넘어서려는 자들은 죽음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자신의 지혜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리듬과 질서가 숨겨져 있습니다.
그것을 지켜며 살아갈 때 자연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인간의 한계를 알고 그 경계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자연, 그리고 우리의 이웃과의 경계를 알고 지키며 살아가는 삶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선한 삶의 흔적들이 가장 지혜로운 삶입니다.
우리가 이런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되어준다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요?
저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좋아하는 찬양중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저 높이 솟은 산이 되기보다 여기 오름직한 동산이 되길~
내 가는 길만 비추기 보다는 누군가의 길을 비춰준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고, 어떤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나요?
하나님의 지혜의 보인 말씀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지혜로우며 가장 아름답습니다.
우리 다카포 식구들 모두 이런 지혜의 길을 걷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