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금보다 귀한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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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에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이는 다 총명 있는 자가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가 정직하게 여기는 바니라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원하는 모든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내게는 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
나로 말미암아 왕들이 치리하며 방백들이 공의를 세우며
나로 말미암아 재상과 존귀한 자 곧 모든 의로운 재판관들이 다스리느니라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공의도 그러하니라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순은보다 나으니라
나는 정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의로운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서론
잠언 전체의 서문을 이루고 있는 1장부터 9장 18절에서는 아버지의 가르침 열 개와 두 개의 지혜 강론이 나옵니다. 오늘의 본문인 8장은 두번째 지혜 강론으로서 지혜가 의인화된 여성으로 등장하며 의인화된 지혜가 지혜에 대하여 강론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1절부터 3절의 말씀을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그가 길 가의 높은 곳과 네거리에 서며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이르되
먼저 지혜는 3인칭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구절들은 지혜가 자신에 대해 말하기 보다는 어떤 이가 지혜를 소개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지혜를 소개하고 있는 자는 지혜를 길가 높은 곳이나 사거리 광장이나 성문이나 다른 여러 출입문 앞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장소들은 전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공공의 장소로서 지혜가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향해 외치기 위해 서있는 것입니다. 특히 길 거리 가장 높은 곳, ‘성문들' 입구에서 외치는데 고대의 성문은 법정이 서는 장소이며 상거래를 비롯해 사회적인 교류의 중심지였습니다. 정의를 실행하는 사법적인 활동과 경제 활동의 중심에 자리를 잡고 분주한 삶의 현장을 오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혜가 누군가 숨겨둔 보물과 같이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는 삶의 현장 가까이 찾아와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주한 삶에 쫓겨 세상의 가치관을 좇아 그저 앞만 보고 달려가다보니 모든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지혜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지혜가 무슨 말을 하고자 이렇게 소리치고 있는지 4절과 5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지혜는 인자들, 즉 온 인류를 대상으로 소리를 높입니다. 그런데 그 관심은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을 향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생에서 훨씬 큰 위험 부담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는 자들로서,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생각이 얕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악한 자들에게 속기 쉬우며, 때로는 지혜를 미워하고, 지혜의 말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들 역시 밝은 지성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혜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세계로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세상 여기저기에서, 우리 삶의 모든 구석구석에서 큰 소리로,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안 듣고는 우리의 몫입니다. 우리 마음 밭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 지혜를 따르면 명철해지고 지각을 얻게 되어 하나님께서 경영하시는 세상이 보이고, 하나님의 뜻이 읽히고, 하나님의 의지가 느껴지게 됩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자인 우리를 향해 유혹하는 속삭임을 버리고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크게 외치는 지혜의 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 입니다. 죄악에 빠지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삶으로 초대 받은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는 우리를 향해 외치는 지혜의 소리에 귀기울여 우리의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각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지혜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또 그분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하심에 즉각 반응하는 우리 새순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6절에서 지혜는 왜 자신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먼저는 자신이 가장 선한 것과 정직을 말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진리를 말하며 악을 미워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하는 말은 모두 의로우며 거기에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말 같은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총명한 자와 지식을 찾은 자들, 즉 분별력이 있고 어느 정도의 지식을 얻은 사람들은 이미 그 지혜의 가치를 알고 있기에 지혜의 가르침을 깨닫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지혜는 청중을 향하여 자신을 선택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금과 은보다 진주보다 우리가 원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혜는 이제 지혜의 유익을 말하며 자신이 이 세상의 역사와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을 합니다. 12절에서 지혜는 ‘나 지혜는’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지혜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은 고대 세계에서 왕들의 비문과 신의 선포에서 나타나는 자기 소개 형식으로 지혜는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는 것처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라는 표현은 ‘명철에 살고 있다’라는 뜻으로 자신이 명철과 함께 살며, 지식과 근신을 소유한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지혜는 기예와 영리함, 침착함과 신중함을 마치 동거하는 가족처럼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명철과 동일하지 않지만, 명철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올바른 판단력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존재로 자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13절에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악을 미워하는 것이기에 지혜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 패역한 입술을 미워한다고 합니다. 지혜와 악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를 통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성도님들, 오늘 말씀에서와 같이 지혜는 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는 정금보다 귀하고 진주보다 낫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지혜에 따라 그 가치의 무게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그 어떤 것도 지혜의 가치에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혜가 곧 생명의 근원이며,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얻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에 있어 최고의 가치는 내가 더 많은 재물을 얻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데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속이고 농락하는 것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이 세상이 말하는 지혜입니다. 세상의 지혜는 그것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대신 전략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 최고의 가치는 내가 높아지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리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데 있으며 그것이 진정 복된 길이라는 걸 알려주는 겁니다. 비록 지금은 거짓을 말하는 것이 손해 보지 않는 것 같고 그 길이 더 빠른 것처럼 보이지만 정직하게 진리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진정으로 사는 길이라는 걸 알려주는 겁니다. 지금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있다면 가장 먼저 내가 선택하는 길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길인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길인지를 먼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경외하는 참된 지혜를 따라 걸어가야 할 길을 선택하여 지혜의 유익을 누리게 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사람이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요? 함께 17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지혜는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고, 자기를 찾는 자를 만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표현은 사랑의 상호적인 성격을 반영하고 있는데 이는 인격화 된 지혜를 찾는 것이 지혜 사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지혜를 사랑하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물질적 혜택에 대해서도 나열하며 자신을 사랑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성도님들, 지혜가 아무리 큰 유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고 찾지 않는 이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지혜이지만 그 지혜는 마음을 다하여 그를 찾는 자들만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그 무엇보다 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 무엇보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지혜가 이끌어가는 길에서 지혜의 유익을 풍성히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지혜의 참된 가치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지혜의 가치를 깨닫는 만큼 지혜를 향한 우리의 사랑이 커져가게 하시고 지혜를 갈구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그래서 그 지혜의 유익을 삶으로 풍성히 경험하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도록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나라와 열방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코로나 백신접종이 원할하고 안전하게 이루어지게 하셔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평범한 일상의 은혜를 누리는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또한 고통 받고 있는 북한과 미얀마 땅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게 하옵시고, 그 땅 가운데 복음의 능력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나라와 열방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간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교회의 각 가정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한 가정이 되게 하시고 믿지 않는 가족들을 하루 속히 구원하여 주셔서 하늘 나라의 가족으로 살아가는 은혜를 주옵소서. 교회가 주님의 사랑으로 더욱 하나 되게 하시고, 주님 주신 평강을 누리며 든든히 세워져 가는 교회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선교사님과 환우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H국 염미족 정부흥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실 때 5월 12일부터 20일까지의 일정으로 카자흐스탄 알마티시를 답사하는데 주님의 눈과 마음으로 그 땅을 보고 올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환우들을 위해 기도하실 때에 김인애 집사님, 김영자 권사님, 김찬준 집사님, 정순금 권사님, 김복남 권사님, 조금열 집사님, 안행순 집사님, 최혁기 성도님, 정성회 집사님의 어머님, 그외에 아픈 환우들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이 시간 선교사님과 환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