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위에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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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대표기도
2. 대표기도
3. 성경봉독
3. 성경봉독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4. 설교
4. 설교
서론
서론
루터 이야기
루터 이야기
1517년 한 청년은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하지만 강렬한 한 줄기 빛을 드러냅니다.
그 빛은 당시 자신들의 권력과 명예, 많은 재산을 위해 사람들을 속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팔았던 교회를 향해 그들의 죄를 드러내는 빛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바로 마르틴 루터입니다.
우리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감행했던 시기를 역사 속에서 보면, 교회가 가장 타락했던 시대였습니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직업 중의 하나였다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장 많은 권력과 명예, 많은 부를 누렸습니다. 왕을 그의 발 밑에 두었고, 한 나라를 쥐고 흔들만큼의 힘과 권력을 가졌던 것이죠.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부와 명예, 권력을 유지해 주기 위한 수단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암흑의 시기, 하나님을 눈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고, 복음이 선포되지 않으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그 시대, 바로 암흑의 시기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어둠 속에서 마르틴 루터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하나님의 깨닫게 하심을 따라 아주 희미하고 힘이 없는 그런 흐릿한 빛이었지만, 그 빛은 어둠을 깨트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습니다.
본론
본론
본문의 시대적 배경: 암흑시대
본문의 시대적 배경: 암흑시대
그리고 오늘 본문 15-17절은 루터와 같은 상황 속에서 전개되어 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라고 말입니다.
사실 요한복음 1:15 이전 까지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1절을 필두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방식의 제 2위격이신 성자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진술들로만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요한복음 1:15 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생생하게 그려지는 세례 요한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금 요한복음 1:15 을 보면, 앞부분과 너무나도 상반되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14 을 통해서 요한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격이신 성자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이고 철학적이며 수사학적인 진술을 통해서 이 부분을 듣고 읽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냈습니다.
따라서, 1:15 에서 보일 반응은 굉장한 설렘과 굉장한 영광에 휩싸여 황홀한 상태의 묘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 같은데, 오늘 본문 요한복음 1:15 의 첫 시작은 정반대의 묘사로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5 의 첫 시작인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라는 부분을 원문에 따라 생동감있게 번역해 드리자면, “요한 그는 그에 대해서 증언 할 때, 말하면서 울부짖으며 증언합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요한은 요한복음 1:1-14 을 통해서 삼위일체하나님의 제2위격이신 로고스, 바로 성자 하나님의 모습이 소개되어졌을 때,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의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시며, 세상 모든 만물의 생명의 근원이신 그 하나님이 소개되었을 때의 마땅한 반응은 기쁨과 찬양과 감사와 경배가 넘쳐나야 하는 반응이지만, 지금 세례 요한의 울부짖음을 통해 비추이는 모습은 그 누구도 관심가지지 않는, 듣고 싶어하지 않는 그런 소음에 불과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요한은 지금 그들을 향해 울부짖으면서 말함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자신의 자녀가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날뛰다 큰 어려움을 당해 무너질것을 아는 부모가 그 자녀를 향해 울부짖으며 제발 그러지 말아라라고 하는 것과 같이 지금 요한은 울부짖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신구약 중간기: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심
신구약 중간기: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심
우리는 한 권으로 기록되어진 성경을 보고 있기에 사실 구약과 신약 사이에 있었던 오랜 시간의 공백기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많은 학자들이 인정하는 것처럼 구약과 신약 사이에는 대략 400년의 중간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 성경의 가장 마지막 책인 말라기와 신약 성경의 가장 첫부분인 마가복음 사이에는 약 400년이라는 시간이 떨어져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약과 신약 사이의 시간적 거리가 400년이라는 것은 이 400년 동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었다라는 것입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하나님께서 침묵하셨던 시대가 바로 신구약 중간기의 시대다라는 것이죠.
사무엘상 8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신들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 달라고 때쓰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경고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10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14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18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니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자신들의 욕심과 욕망을 위해 살아가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부르짖을 때 응답하지 않으시겠다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은 곧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떠나,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했다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던 시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죄를 범하였던 시기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교만함 속에서 살아가던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응답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본문적용: 암흑의 시대에 빛을 비추이는 요한
본문적용: 암흑의 시대에 빛을 비추이는 요한
그리고 오늘 본문은 바로 이 모습의 연장선에서 진행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며,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것을 쫓아 살아가는 상황에서 그들은 어둠 가운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어둠의 시기 속에서 항상 기회를 엿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시력을 잃은 때를 기다렸다가 자신이 빛인양 고개를 들어 많은 사람들을 미혹케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 시기에 자칭 그리스도가 아주 많이 빈번하게 나타났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다 라고 외치며 자신을 따라 이스라엘을 점령한 그리스를 몰아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외치며,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 왕국을 회복하자 라고 외치며 칼과 창과 잔인하고도 사악한 온갖 방법들을 동원하여 많은 사람들을 죽음 가운데 내몰며 헛된 꿈을 쫓도록 했습니다.
마치 마틴 루터가 암흑 가운데 자신들의 욕심과 욕망을 위해 하나님을 도구로 삼았던 그들을 향해 죽기를 각오함으로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강권하였던 것처럼 지금 세례 요한은 요한복음 1:1-14 을 통해서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인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이끌어 오시고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유일한 길이신 그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돌아오라 울부짖으며 애타게 부르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5f-17 을 통해서 요한이 증언하고 있는 분,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할 그분은 요한의 뒤에 오시지만, 사실 이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고,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기에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시며,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타락하여 날마다 죄만 짓는 우리가 율법 앞에 서서 죽음을 맞이해야 함에도 우리에게 은혜로 생명을 허락하시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신 그 분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가 믿어야 살 수 있다라고 요한은 지금 애타게 부르짖으며 증언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한은 그 하나님에게로 돌아와라 돌아와라 다시금 하나님께로 돌아와라라며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이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드러난 “은혜 위에 은혜”
오늘 본문에 드러난 “은혜 위에 은혜”
그리고 이토록 울부짖으며 애타게 외치는 그 요한의 외침은 18절을 통해 가장 절정에 달하게 됩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은 지금 자칭 내가 그리스도다라고 했던 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과 자신의 욕망을 위해 너희를 이용하고, 너희를 죽음 가운데로 내 몰았지만, 지금 나의 뒤에 오시는 그 분, 너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그 분, 너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근본적인 이유와 목적이 되시는 그 분 바로 그 분께서 400년동안 너희가 만나뵙지 못했던 그 하나님, 가리워져 있었고, 응답하지 않으셨던 그 하나님의 얼굴을 나의 뒤에 오실 그 분이 너희 앞에 드러내었다 라는 것입니다.
지금 요한은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 가운데 드러내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은혜 위에 은혜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의 의미!
은혜 위에 은혜의 의미!
이 은혜 위에 은혜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은혜 위에 있는 은혜로 가장 최상의 은혜를 말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바로 은혜 중의 가장 최고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은혜 위에 계속해서 은혜가 부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어지는 은혜가 사실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가 시작되면서부터 계속해서 주어지고 있었던 것을 그리스도를 영접함을 통해서 깨닫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요나서에 드러난 은혜 위의 은혜의 의미
요나서에 드러난 은혜 위의 은혜의 의미
이것은 요나서 4장에 나오는 한 장면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요나서 4장을 보면,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가다 우여곡절 끝에 니느웨로 돌이켜 가서 니느웨 사람들에게 40일 뒤에 멸망할 것을 하루만 선포하고 그들이 멸망하기를 바랬지만, 단 하루만 선포한 하나님의 진노에 니느웨의 모든 사람들이 다 회개하며 돌이키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게 되는 것을 요나가 보게 된 때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멸망하지 않은 니느웨를 지켜보며 이내 성을 내는 요나에게 박넝쿨을 예비하셨습니다. 이에 요나는 뜨거운 햇살을 막아주는 박넝쿨로 인하여 아주 크게 기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튿날 새벽에 벌레를 예비하셔서 그 박넝쿨을 갉아 먹게 하셨고, 해가 뜰 때에는 뜨거운 동풍이 불어 오도록 예비하셨습니다.
그렇게 요나가 다시금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니느웨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가를 관찰하기 위해서 나왔을 때, 그의 머리에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었고, 뜨거운 동풍이 불어 왔습니다. 이에 요나는 정신이 혼미하여 지며, 이내 하나님 내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좋으니 나 좀 데려가 주세요라며 원망과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네가 어찌 박넝쿨로 말미암아 화를 내니?라고 물으시고, 요나는 아 쫌 그러면 안됩니까?라며 하나님께 성을 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바로,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앞에 죄를 행하며 사는 것에 빠져 하나님을 찾지도,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 그러면 안된다. 너희 그러면 안된다 라며 애타게 울부짖으며 부르셨지만 그들의 귀가 가리워져서 애타게 울부짖으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그들은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향한 끝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지켜보시고, 그들에게 생명을 허락하시며 그들에게 게속해서 은혜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하며 하나님께로 돌이켜라!라고 선포했을 때, 그들이 하나님의 이 은혜 속에서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품속으로 돌이켰을 때에야 비로서 하나님께서 그동안 부어주시고 허락하셨던 은혜를 발견하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요한이 말하고 있는 은혜 위에 은혜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셨던 400년의 시간 동안 사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계속해서 은혜를 부어 주시고 계셨다라는 그 하나님의 자비로우심과 선하심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났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바로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우리가 받고 누리는 은혜 중의 가장 최고의 은혜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찾지 않고 내 생각과 내 방법을 따라 살아 갈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나를 향해 은헤를 베푸어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
바로 우리가 받은 그 은혜가 이 은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세상을 향해 요한과 같이 애타게 울부짖으며 그들을 향해 증언해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며, 어둠 속에서 그곳이 어둠인지도 모른 그런 어리석은 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 세상을 향해, 하나님께로 돌아와라, 지금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을 없신 여기는 그런 너희를 향해서 끝없이 은혜를 베푸시고, 생명을 허락하시며 너희를 향해 끝없는 사랑을 표현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께로 돌이켜라 제발 돌이켜라 라며 울부짖으며 외쳤던 그 요한과 같이 우리도 요한의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은혜 위에 은혜를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공급받으며, 날마다 넘치도록 채우심 가운데 그 사랑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시며, 나의 이웃을 바라보시며, 요한의 마음을 가지시는 귀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5. 통성기도
5. 통성기도
들은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6. 마무리기도
6. 마무리기도
7. 찬송가: 오직 예수 뿐이네 다함께 찬송(찬양) 하시겠습니다.
7. 찬송가: 오직 예수 뿐이네 다함께 찬송(찬양) 하시겠습니다.
8. 기도회
8. 기도회
이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서
한국 교회를 위해서
개인의 기도제목을 두고
9. 찬양: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9. 찬양: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10. 주기도문
10.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