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성전 새 사람

에스겔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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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문을 닫아 두지 말라 2. 레위인을 폐하라 3. 사독 제사장을 구별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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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새 성전 새사람
- 에스겔 44장 1-31 절 -
1. 서론
2. 본론
먼저 본문을 하나씩 살펴보면
오늘 1-3절까지는 동문을 닫아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동문을 닫아 절대 열지 말고 영구히 닫으라 하시고. 아무도 그곳을 향해 출입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성전의 이 동문은 원래 하나님의 영광이 떠날 때, 통과하신 문입니다. 그리고 그 떠난 하나님이 다시 돌아올 때 들어오신 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동문의 의미는 단지 출입의 의미가 아니라, 멀어짐과 가까워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동문을 굳게 닫으라고 합니다. 이유는 2절 하반절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말할까요? 이제 하나님이 들어온 이상, 앞으로 다시 나갈 일이 없으시다는 선언을 확실히 해 두시기 위함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 입장하지 못하게 할 때 문을 굳게 닫고, 못을 박곤 합니다. 혹은, 문제의 사람을 가택 연금할 때, 문을 바깥에서 지르고 출입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스스로 성전 안에 드시고, 문을 닫으라 하십니다. 그리고 다시는 문을 열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는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자발적 가택연금. 즉 하나님이 성전에 드시고 다시는 나가지 않으시겠다는 굳은 결의요 메시지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스스로 문을 잠그신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돌이켜 보면 에스겔서의, 천사의 어전에 바퀴를 가지신 분입니다. 다시 말해 절대적 자유를 가지고, 이스라엘에 매이지 않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떠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당신의 집으로 다시 돌아와 스스로 문을 잠그시다니.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의심스러울 때마다, 하나님이 스스로 닫으신 그 동문을 생각하십시오. 그 굳게 닫힌 문은, 우리를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 닫으신 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게서 나가지 않기 위해 닫으신 문입니다. 세상의 문이 다 닫혀 있어 보여도, 역으로 보면, 우리 곁에서 떠나시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 문입니다. 동편의 문을 닫으라 하신 하나님, 우리를 결코 떠나지 않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라빈다.
4-14절까지는 레위인의 옛 죄악을 지적하시는 모습이구요
그리고
15-31절에서는 사독의 자손을 새로운 제사장 가문으로 세우시눈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 두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에스겔에게 전심이라는 말을 거듭 사용하면서 성전의 법에 대해 자세하게 알리라 당부하십니다.
레위인의 주요 죄악은, 그들의 직무에 몸과 마음에 할례 없는 이방인들을 구별 없이 성소 직무에 투입하였다는데 있습니다.
7절입니다 – 너희가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내 떡과 기름과 피를 드릴 때에 그들로 내 성소 안에 있게 하여 내 성전을 더럽히므로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 외에 그들이 내 언약을 위반하게 하는 것이 되었으며,,라고 말합니다.
이방인이 무분별하게 하나님의 성소를 섬기는 이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패괴한 일인지? 하나님은 5절에서 에스겔에게 ‘전심’을 다한 변혁을 촉구하십니다. 6절을 보면, 이방과 관련된 그 일이 역겨움을 불러오는 ‘가증한 일’이라고 하십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13절에서 이들 레위인에 제사장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하시며 그 직분을 박탈합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성소의 직분을 신실하게 지킨 사독 제사장이 성소의 직무를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들 레위인에 언제 이방인을 성소의 봉사자로 잘못 데려왔는가? 사실 민족주의가 강한 이스라엘에게 표면적 이방인이 성전의 봉사를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이 이방인은 누구를 말하느냐?
본문을 보면, 7절과 9절에 반복해서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강조용법입니다. 사실 이방인이라는 말 자체에 할례 없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몸의 할례가 없는 이방인의 특성을 통해, 실은 이스라엘 가운데 마음의 할례가 없던 이들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할례가 없는 이.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레위인이었으나, 이면적으로는 이방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일명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말합니다. 사역자 그룹 안에 있는 실천적 무신론자들. 분명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마태복음 7장 22절을 보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심지어 귀신을 쫓는다 하여도,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간판을 내세워 많은 일을 하여도, 주님을 모를 수도, 주님에게 모른다 함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음의 할례가 없이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 논리와 신앙 논리의 구별을 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일을 육적으로 알고 파악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지적하신 레위인들의 잘못은, 마음의 할례가 없는 사람에게 주님의 거룩한 직무를 맞기게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게는 가장 꺼림직스러운 일로 나타난 것입니다.. 보통 추행이라고 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적법하지 않고 자격 없는 이가 신체에 접근할 때, 그 일은 온갖 불쾌함과 수치와 분노를 불러 일으킵니다. 성소란 모름지기 하나님의 가장 은밀한 장소입니다. 그곳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와서 범하였으니 하나님이 분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에 지나는 일은 그것이 어찌 영적인 일이 되겠는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한 톨의 생각까지도 하나님께 의탁드리는 것, 그것이 마음의 할례 아니겠습니까? 우리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으로 일하시게 하는 것. 하나님이 참으로 하나님 되시도록 주권을 내어 드리는 것이 할례 받는 자들의 마땅한 마음인 것입니다
래서, 주님은 이제, 하나님 앞에 수종들 사독 제사장들을 따로 세우시며, 이들에게 철저한 구별됨을 명하십니다. 이들은 베로된 옷을 입고 수종 들며 땀을 흘리게 말아야 했습니다. 술취하지 말 것과 혼인에 대한 거룩을 지켜야 했고, 백성들에게 거룩한 것과 속한 것,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가르쳐야 할 철저한 책임들을 23절에서 말합니다. 송사를 진행함에 있어 율법적인 철저함을 따를 것을 말하지요. 또 안식일 규례와 시체로 인하여 몸을 더럽히지 말아야 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유산은 철저히 거룩한 것이었는데, 곧 세상의 땅이 아닌 하나님 자신이 이들의 기업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부분은, 이상적 다윗 왕국의 제사장들인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에게 모세 오경의 제사장 규례를 회복하신 내용인데. 이를 통해 하나님은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 보여야 할 깊은 헌신과 집중을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영적 지도자들은 끊임 없는 용천수가 되어야 합니다. 이 땅의 많은 신자들이 영적 전쟁의 현장에서 싸우고 씨름하며 불가피 오염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집중된 영적 지도자들의 말씀 사역을 통해, 오늘 본문에서처럼 거룩과 속한 것,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이 항상 회복됩니다. 심지어는 이들의 재산은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귀속이 된 존재들인지를 보여줍니다.
어떻게 보면 이 재미나고 즐길 것이 많은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불쌍한 것인가 생각들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쉬운 것은 아닙니다. 쉽지 않은 것 만큼이나 많은 위선과 종교적 타락이 있습니다. 이렇게 헌신된 종교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즐거움과 이 세상의 육신의 생명을 다 팔아서 얻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있습니다.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
한번 살다, 한 번 죽는 인생, 내 생명이 아무리 절대적으로 중요해도, 그 절대적으로 중요한 생명을 교환해도 아깝지 않은 것이 있다. 사실은 이 일을 발견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함이라고 말합니다. 곧 구원 안에서 살고, 구원을 알려주는 일입니다. 여기에서 행복을 발견하면, 우리는 역으로, 철저한 구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철저하였다는 것이 내 업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복이 나를 갈수록 더 철저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나를 철저히 구별시킴이 전혀 아깝지 않은 영적인 행복, 그것을 더 발견하고 더 그 안에 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는 아침이 되길 바랍니다.
3. 결론
정리합니다. 동문으로 들어오시고 그 문을 영원히 닫아 놓으신 하나님. 결코 떠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이방인의 상태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마음의 할례가 있어야 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독계열의 제사장 되는 일. 그 일은 모세오경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내 생명조차 아깝지 않은 영적 행복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곧 구원 안에서 살고, 구원을 알리는 일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코 떠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마음으로 거듭나, 지극한 영적인 행복 속에서 살기를 소원하는 여러분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월요일 아침 기도와 말씀으로 시작하게 하여 주시고
결코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약속 되새기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한 주, 오직 한 일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는 한 주 되게 하옵소서
마음의 할례를 입어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고, 늘 기뻐하며 살게 하시고
모든 것을 다 팔아도 아깝지 않는 천국의 행복 속에 이 한 주 살게 하옵소서
성도들의 사업터와 일터, 학업의 현장과 가정과 양육의 모든 현장 가운데 함께 하옵소서.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을 붙들어 주셔서 하나님 바라보게 하시고, 승리 얻게 하옵소서
질병 가운데 있는 자 치료하여 주시옵고
연로하신 어르신들에게 더 큰 소망과 믿음의 확신을 주옵시고
군복무와 유학 사업의 일로 출타중인 모든 지체들을 돌봐 주시옵소서
이 하루를 온전히 주님께 맡겨드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말씀 생각하시며, 하나님 없는 재물의 한계를 인정하고, 모든 경제 활동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며 살게 하옵소서
2. 참빛의 모든 성도에게 기도의 영을 부어 주시옵고,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이 없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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