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 성령님의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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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절)
S1. 환영과 인사
S1. 환영과 인사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하고 인사하십시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로 지킵니다. 성령강림절이라 하면 오늘 본문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게 된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40여 일을 이 땅에 계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10여 일 후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셔서 제자들이 성령님의 내주 안에서 구원을 확신하고 주시는 권능을 입고 온 땅에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이 날 이후 믿는 우리에게는 믿는 그 순간부터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중생을 얻게 되고 은혜를 힘입어 영적인 은사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령강림절을 통해 보혜사로 오신 성령님을 마음에 깊이 모시고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누리고 성령님의 권능으로 중생자의 삶을 살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하시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S2. 본문의 주제 제시
S2. 본문의 주제 제시
누가는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도행전 2장 1-4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 봅시다.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은 흔히들 맥추절기의 다른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맥추 감사절을 7월 첫 주일에 드리고 한 해의 중반에 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바로 이 맥추절이 성령님이 강림하신 오순절 혹은 성령강림절을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오순절, 혹은 맥추절을 모세로부터 율법을 받은 절기로 이해합니다. 유월절에 출애굽하여 약 50일이 지나해서 시내산에 도착을 했고, 그 때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율법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유월절은 모세의 율법을 주신 절기이기도 하고, 동시에 신약 성경에서는 주님이 약속하신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을 맏는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에 주신 날이기도 합니다. 이런 까닭에 오늘날 교회는 이 날을 성령 강림절로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S3. 문제 제기
예수님은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나시는 것이 더 유익하고, 주님이 떠나시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떠나시고 성령님을 보내신다고 하셨을 때 제자들은 오히려 근심하고 걱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5, 6절입니다.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함께 사역하고 자신들을 지켜주셨던 예수님, 무엇보다 눈에 보이고 어디에 계신 지 알 수 있는 분이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것이 더 좋아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7절 말씀을 봅시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은 자신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계속 계신 것보다는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사역과 성령님의 사역이 가지는 차이 때문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보혜사 성령님의 사역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실 수 있게 되셨고, 그로 인해 십자가에서 죽음의 형벌을 대신 지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보여 주실 수 있으셨고, 마지막으로 하늘로 승천하시며 우리 인생이 마지막 날에 천국의 백성으로 온전하게 변화된다는 사실을 충분히 보여 주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한 이 모든 예수님의 사역들을 성도인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고, 믿음을 주시는 사역은 성령님께 맡겨진 사역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또 다른 보혜사라고 지칭하셨습니다. 우리 요한복음 14장 16절 말씀을 봅시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헬라어에는 같다, 다르다라는 형용사가 호모와 헤테로라는 말로 나타납니다. 호모라는 말은 한자어 ‘동’자와 같은 뜻입니다. 여기에 반대되는 다르다나 혹은 different하다는 말은 헤테로가 됩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나타나는 ‘또 다른 보혜사’라고 할 때 ‘다른’은 ‘헤테로’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또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과 다른 보혜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실은 이 번역은 나와 같은 보혜사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여기에서 사용하는 말은 ‘알로스’라는 말인데 이것은 영어로는 another 보혜사입니다. another는 같은 종류를 말합니다. 제가 볼펜을 지금 두 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one 볼펜이라면 이것은 another 볼펜이에요. 두 개는 다른 개체이지만 같은 본질, 본성의 볼펜입니다. 그래서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씀은 나와 같은 보혜사라는 뜻입니다.
사도요한은 그의 서신인 요한일서에서 우리에게 계신 보혜사는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여기에서 대언자는 파라클레토스라고 해서 헬라어로는 바로 보혜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같은 요한이 복음서에서는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했고, 요한일서에는 예수님을 보혜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신다고 할 때 보혜사이신 주님과 다른 보혜사를 보내신다는 뜻이 아니라 위격적으로는 구별이 되시지만 같은 보혜사를 보내신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이렇게 본다면 우리는 성령님과 예수님이 한 분 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자신과 같은 보혜사라고 지칭하셨기 때문에 성령님은 바로 예수님과 같은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혜사가 무엇일까요? 보혜사는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라고 합니다. 이 용어는 단어 자체로는 법정적인 용어인데 성경이 예수님과 성령님의 사역을 언급할 때 사용하고 있는 말입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이 단어는 보혜사라고도 번역이 되고, 대언자로도 번역이됩니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중보자로도 번역을 합니다.
그런데 그레코 로마 문화권에서 보혜사라고 하면 법정에서 피고를 대신하여 변호를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래서 대언자라고 한 것입니다. 법정에서 법리를 잘 알지 못하는 일반 시민은 법을 잘 아는 변호인을 고용하여 재판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때 자신의 파라클레토스를 법정에 신고하게 되면 그 사람이 변호인이 되어 모든 재판을 진행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바로 이 법정 대리인, 오늘날의 변호사에 해당하는 직이 예수님의 사역을 보이는 데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언어적으로 파라클레토스는 옆에 있다는 의미의 전치사 파라와 부른다 혹은 도움을 요청한다는 의미의 칼레오가 합해져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성령님은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우리 옆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가 의로운 자가 되었다고 증언해 주시는 분들이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와 같은 신적 본질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보혜사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성령님도 자신과 같은 보혜사로서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신경에서 고백하는 ‘나는 성령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고백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동일한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성령님의 내주하시는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셔 내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가 되고, 성령님이 함께 하시기에 교제를 나눌 수 있고, 성령님으로 인해 죄를 용서받고, 부활과 영생을 얻는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아들이 이루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우리 가운데 적용하시는 보헤사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성령님을 하나님으로 믿으시고, 성령님이 주시는 은혜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성령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복은 어떤 복일까요?
그렇다면 성령님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복은 어떤 복일까요?
우리가 성령님의 오심으로 이루신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해 누리는 복은 사도신경의 고백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만 예수님은 성령님이 오시면 특별히 세 가지 사역을 하실 것에 대해 약속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죄와 의, 그리고 심판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우리 요한복음 16장 8절 말씀을 봅시다.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여기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의 사역을 세 가지로 설명하시면서 이 모든 것에 대해 세상을 책망하시는 일을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다른 편에서 보면 성도의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성령님 안에서 세 가지 영역에서 큰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첫째는 죄에 대하여 그렇습니다. 우리 9절 말씀을 봅시다.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아담 안에서 인간의 죄는 금하신 선악과를 먹는 행위였습니다. 그 행위는 오직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하고 거짓 영, 곧 사탄의 유혹에 넘어질 때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거짓말이 더 믿음직스럽고, 사탄이 보장하는 복이 더 좋았기 때문에 행한 죄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시고 성령님께서 오시면 아담의 이 모든 범죄를 용서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믿지 않는 그것이 바로 죄요 심판입니다. 요한복음 3장 1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심판은 예수님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성도에게는 이 믿음이 은혜로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알고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알 때 영생이 주어진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을 봅시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성도가 영생을 누리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아는 믿음에 있습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이 믿음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의에 대하여 세상은 성령님께로부터 책망을 받습니다. 10절 말씀을 봅시다.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의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먼저 아버지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의가 무엇입니까? 그 의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순종의 전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그 분의 승천 이후로 아예 주님을 알 수 없는 자리에 처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성령님 안에서 믿음의 은혜를 받아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예수님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보이지 않는 주님은 믿음의 대상이요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나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심판의 자리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통해 우리의 의가 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온전히 모시고 은혜 가운데 사는 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은 심판에 대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십니다. 우리 11절 말씀을 봅시다.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성령님은 세상에 심판이 임했음을 성도에게 알게 하십니다. 이는 세상 임금, 사탄이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승리하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계시록 20장 1-3절에 보면 옛 뱀 사탄이 큰 쇠사슬에 결박되어 무저갱에 갇히는 역사를 기록합니다. 우리 요한계시록 20장 1-3절을 봅시다.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사탄의 권세, 곧 세상의 왕인 마귀요 사탄이 무저갱에 갇혀 있는 시절을 보낸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사탄에게서 승리를 얻으시고 세상 나라를 심판하시는 주가 오셨음을 선포한 사건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로 영접하여 사탄과 악의 도전에서 승리하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님께서 세상에는 심판을 통해 책망을 주시고, 성도들에게는 승리를 약속하며 믿음을 붙들어 주시는 은혜의 삶인 것입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성령강림절을 맞아 우리는 성령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성령님이 하나님의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보혜사로 오신 예수님과 같은 또 한 분의 보혜사이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우리에게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알려 주시고,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켜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순종의 백성으로 인치심을 받게 하십니다. 나아가 성령님은 사탄의 패배를 알려 주시며 우리 성도로 하여금 세상의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고 오직 성령님만을 믿고 의지하며 살 것을 가르치십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성령님 안에서 주심 믿음을 굳게 붙드는 분들이 되십시다. 예수님의 순종하신 삶과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그 은혜를 힘입어 내 죄가 사함을 얻고 형벌이 없어지고 영생의 삶이 주어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성도는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순종하신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성령님께서 내주하시며 주신 그 믿음을 항 상 붙드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통해 내게 주신 그 의를 항상 기억하고 내 공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대속의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백성이 된 것을 감사하고 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 모든 성도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매년 기념하면서 성령님이 하나님 되심을 온전하게 믿고 나아가 성령님이 주시는 예수님에 대한 놀라운 지식과 우리의 의인됨에 대한 확신과 나아가 사탄의 패배를 항상 기억하고 승리의 자녀로 아름답게 살아가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성령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은혜의 승리를 경험하고 누리는 자들임을 마음에 잘 새기시고 은혜 가운데 풍성히 사시고 성령님의 오심을 환영하며 증거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182장 찬양 - 이 기쁜 소식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