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 답게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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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
1. 도입
2. 확실한 성경적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2. 확실한 성경적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단어를 찾으라고 하면, 바로 “쓰다" 일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여기서 “너희에게 씀"이라는 표현이 나오지요.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새 계명을 쓰노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절 부터 14절까지는 반복적으로 “쓰다"는 표현이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기독교인의 별칭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책의 사람들"이 바로 기독교인의 별칭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쓰여진 성경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믿음의 근간은 바로 이 기록된 말씀인 성경입니다. 우리는 결코 성경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혹 주변에서 성경이 아니라, 갑자기 꿈을 꿔서, 혹은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100% 사기이거나 가짜입니다. 결코 하나님은 이 기록된 성경을 떠나 다른 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고 믿음을 가지게 하지 못합니다.
그럼으로 성경을 한번도 읽지도 않고 갑자기 믿음을 가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항상 성경을 읽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다고 자신하지 마십시오. 절대 그러한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해 줍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우리는 성경을 통해 죄와 그 해결책에 관해 알 수 있습니다.
2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성경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않게 합니다. 또한 우리는 연약하기 때문에 혹 실수 또는 의도치 않게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죄를 위해서 대신 하나님앞에서 용서를 구하는 분이 계시는 데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 그것을 복음이라 하지요. 그 복음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바로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규범, 즉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알려 줍니다.
7,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가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그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둠이 지나가고 참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7절의 옛 계명이란 , 구약의 모세 오경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즉, 구약성경을 말합니다. 8절에서 요한 1서 저자는 새 계명을 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 계명이란, 구약의 계명을 다시 신약성경에서 설명 한다는 말입니다. 즉, 옛 계명은 구약성경이고, 새 계명은 신약성경입니다. 사실, 신약성경 내용 대부분은 구약성경을 인용하거나 재해석한 것들입니다. 따라서 신약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구약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 구약과 신약을 통 틀어서 성경이라 부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하여 매우 자세한 지식을 알려 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여 성경지식을 확실히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태도입니다.
<전환문> 그러나 확실한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만으로는 그리스인이 되는 것은 부족합니다.
3. 지식은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3. 지식은 반드시 실천해야 합니다.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성경 지식을 아는 것 만으로 우리는 그리스인 답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반드시 아는 지식을 실천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수학의 개념을 잘 이해한다고 수학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응용문제를 잘 풀어야 수학을 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 문법을 잘 안다고 해서 영어를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이 4대 영역을 잘 해야 영어를 잘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 지식은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 해야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성경 지식은 많이 있는데,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 즉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말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즉, 아무리 성경 구절을 많이 외우고, 신학 박사가 되었다고 해도 삶에서 도덕적인 실천이 없으면, 그는 거짓말 쟁이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우리가 읽고, 묵상하고, 공부한 성경말씀은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어떤 부분에서 실천해야 할까요?
첫째,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도 하나님의 큰 두가지 계명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계명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웃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 함을 지난 시간에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이웃을 미워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다른 말로 “그의 안에 있다"라고 표현합니다.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어떤 드라마에서 유명한 대사가 있지요. “내 안에 너 있다" 이 대사가 바로 “사랑한다”라는 시적 표현입니다. 성경도 이와 유사하게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아마도, 그 드라마 작가가 성경을 많이 읽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의 안에 있다"라는 표현의 같은 의미의 또 다른 표현이 하나 더 있습니다.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빛 가운데 있다"라는 표현이 있지요. 그렇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 라는 표현이 바로 “우리가 그의 안에 있다"와 같은 뜻의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안에 있다라는 것은 빛가운데 있다와 같은 표현입니다. 그래서, 보통 그리스도인들을 “빛의 자녀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때로는 목사들끼리 모여서 농담조로 하는 말이 우리는 모두 “빚의 자녀들"이다라고 하는데, 모두 다 여기저기서 빚을 얻어 살기 때문에 그러한 농담을 합니다.
그런데, 9절 말씀에서 ,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둠에 있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반대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즉,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것은 같은 말 다른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십시오.
또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일까요?
둘째,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1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다", 간단히 말해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을 미워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반대지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세상을 미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세상에 있는 것 이란 무엇일까요?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바로 정욕과 자랑입니다. 정욕이란 강한 갈망, 욕심, 탐심을 말합니다. 흔히 말하기를 주가는 실제 경제 사항의 6개월을 반영한다고 합니다. 즉, 경제가 매우 안 좋아도 주가는 상승할 수 있습니다. 금번 코로나 시기 때 경제는 매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주가지수는 올라갔습니다. 경기는 안 좋은데, 주가가 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때문에 그렇습니다. 주식 용어로 모멘텀이라고 하지요. 이러한 모멘텀이 좋으면 사람들은 돈을 벌수 있다 생각하고 열심히 주식을 삽니다. 그런데 모멘텀이 나쁘면, 사람들은 돈을 잃을까바 또 열심히 주식을 팝니다.
이처럼, 주식이란 실제 기업의 벨류에이션에 의해서 가격이 상승하기 모다 모멘텀에 의해서 가격이 상승하거나 하락합니다. 모두 다 사람들의 욕심때문에 생기는 일입니다.
우리는 근 두어 달 동안, 이러한 욕심으로 매일을 살아왔습니다. 코인 시장이야 말로, 벨류에이션 보다 모멘텀으로 투자한 시장입니다. 일확천금을 꿈구거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없는 돈을 다 끌어다가 코인에 투자 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물려 있지요. 그러한 주식, 코인 시장은 대표적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판을 치는 곳입니다. 그러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즉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이생의 자랑"의 자랑이란 무엇일까요? 자아도취, 거만함, 자만함, 오만함을 말합니다. 왜 주식을 합니까? 왜 코인을 합니까? 자랑하려고 하는 것 이닙니까? 돈을 많이 벌어, 좋은 집과 좋은 차와 좋은 옷, 가방을 사서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요. 자랑하고 싶지요, 한번 떵떵거리며 살고 싶지요. 뿐만 아니라, 왜 우리의 자녀들이 공부를 잘 하고, 좋은 대학을 보내고 싶은 걸까요? 자랑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 아닙니까? 조카인 효찬이가 연세대에 들어간 것 만으로 우리 집사람은 매우 자랑스럽고 뿌듯해 합니다. 효찬이 아버지는 효찬이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이생의 자랑입니다. 그러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즉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4.마무리
4.마무리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번 주에 이즈미 마사토의 “부자의 그릇"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일본 최고의 경제금융 교육 전문가인 이즈미 마사토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설 형식으로 쓴 대표적인 베스트 셀러 책이지요. 그 책의 주제를 한 마디로 이야기 하라면, “돈에 본질을 이해하고 돈에 지배를 받지 말고 돈을 지배하라"는 내용입니다. 돈이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도덕적인 가치는 없습니다. 다만, 그 돈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돈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욕심에 기인하면 그것은 “정욕"입니다. 정욕, 욕심, 그리고 이생의 자랑으로 돈을 대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의 그릇에서 그것을 돈에 지배를 받은 것이라 말합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주인공인 파산한 사업가 역시 돈의 지배를 받다가 파산했습니다. 말로는 아픈 딸을 위해서 돈을 번다고 했지만, 정작 그 실패한 사업가는 돈을 벌고 모으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 무리한 투자로 인해 하루 아침에 잘 나가는 사업이 망하고 빚만 떠 앉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결국, 가정은 파탄나고, 아픈 딸이 수술하는데 가지도 못하는 처령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비록 그가 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딸의 행복과 건강을 위해서 사업을 했지만, 결국 딸과 아내와 자신이 힘써 온 사업을 다 날려 버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욕과 자랑으로 돈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읽고, 또 오늘의 본문을 읽고 묵상하면서 매우 유사한 점이 많이 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사업에 투자하고, 부동산을 사고, 주식과 코인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안에 욕심과 자랑이 자리잡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이즈미 마사토의 말처럼 돈의 지배를 받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배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이란 이웃을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주변의 이웃을 사랑하면서, 욕심과 자랑에 이끌리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투자해도 좋습니다. 주식을 한다면, 모멘텀보다 벨류에이션을 쫓아 투자하는 그런 것 이겠지요. 그리고, 주변에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 그 마음을 멈추고 그를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