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아, 아비들아, 청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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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솝 우화에 박쥐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새들과 동물들 사이에 아주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양쪽 다 막상막하라 누가 이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박쥐는 이 싸움에서 피해를 입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수도 많고 몸집도 큰 동물들 편에 서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박쥐는 날개를 접고 동물들에게 가서 그들 편인척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독수리가 새들 편에 합세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 새들이 이길 기세로 싸움이 이어졌습니다. 그러자 박쥐는 얼른 날개를 펴고 새들 편으로 가서 함께 동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박쥐가 예상한대로 새와 동물 사이의 싸움은 새들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그런데 많은 새들이 박쥐가 날개를 접고 동물 편에서 싸웠던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결국 박쥐는 새들에게 쫓겨나서 빛이 없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박쥐가 새들과 함께 싸워서 승리했지만 새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것은 의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동물 편이면 동물 편, 새 편이면 새 편에 서서 끝까지 함께 했다면 홀로 쫓겨나 동굴에 가지는 않았을텐데 의리 없이 눈치를 보며 이곳에 붙었다, 저곳에 붙었다 하니 어느 쪽에도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의리 없이 무리를 옮기는 사람에게 우리는 ‘박쥐 같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박쥐 같은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 사랑하라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본성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게 되어있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본성이 끌리지 않습니다. 악한 옛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믿을 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바꿔 주셨습니다. 새 마음을 우리에게 심어 주셔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고해서 옛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려는 새 마음과 세상을 사랑하고 싶어하는 옛 마음이 자주 싸움을 일으킵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 사라지고 박쥐 같이 세상을 사랑합니다. 그러다가 주일 말씀을 듣고는 다시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는 그런 박쥐 같은 사랑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서 오늘 본문 말씀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요한서신을 받아보는 신앙 공동체의 성도들 뿐만 아니라, 지금 대구청구교회라는 신앙 공동체에 속한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동일하게 경고하십니다. 이시간 하나님의 경고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렇게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Link.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것입니까?
첫째,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면 안되는 자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면 안되는 자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12절에서 14절까지의 말씀을 보시면 ‘자녀들아’, ‘아비들아’, ‘청년들아’라고 부르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녀나, 아비, 청년에게 각각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통틀어서 부르는 말입니다.
12절 말씀은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라고 말합니다. 자녀들의 죄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비들이나 청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의 죄를 용서받지 못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렇기에 자녀들, 아비들, 청년들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을 아우르는 표현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내가 아비라고 아비들에게 하는 말씀만 유의해서 듣고, 청년들은 청년에게 하는 말씀만 잘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12절에서 14절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에서 14절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악한 자를 이기었습니다.
용서 받고, 알고, 이겼다고 말합니다. 이 세 동사는 완료형으로 쓰여져서, 그 때 한 번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에게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남녀노소 차별이 없고, 예수님을 믿는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주어졌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도 용서 받는 은혜를 여전히 누리고 체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4절 말씀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통해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악한 자를 이기는 것 역시 날마다 체험하는 승리입니다. 본문 14절 후반부를 보시면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한다는 것이고, 지금 내가 강하고, 지금 내가 능력을 입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계속해서 우리가 악한 자를 이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4절과 5절 말씀에서도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인 우리가 곧 세상을 이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계십니까? 죄의 결과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을 받으셨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어 사탄을 이기는 승리를 맛보고 계십니까? 이 놀라운 은혜를 매일의 삶에서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이제 하나님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에서도 그 관계에서 많은 것을 누려 놓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못쓸 사람’이라고 합니다. 인간이라면 그런 사랑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입었습니다. 재물이나 명예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사랑을 통해 얻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 밖에 없는 마음을 엉뚱한 데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사람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나의 마음을 세상에 주는 것이 아니라, 진실되게 하나님께만 드려서 올바른 사랑을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Link.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하는 자가 되었기에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또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둘째, 손해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손해를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깊고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반면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배타적입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멀어집니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서로 붙지 못하고 밀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떠납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세상이 떠납니다.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주문하는 치킨처럼 세상 반 하나님 반 사랑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이 부분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의 마음이 두 가지로 나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 사람을 좋아하면 저 사람은 미워하는 것이고,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면 저것은 가볍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2019년에 방영된 보도 프로그램의 일부분을 인터넷을 통해 본 적이 있습니다. 무속인 생활을 하다가 이를 청산하고 경찰과 가수로 살아갔던 이호 라는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강력계 형사로 13년을 근무하며 상도 받았던 세상에서 인정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단체사진 속에 어떤 예배 현수막이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신앙도 가진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도박의 맛을 본 뒤로 그의 삶은 180도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취재 당시에 그는 강원랜드 근처 여관에서 겨우 눈을 붙이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 근처에서 무료 급식으로 나온 도시락으로 겨우 한끼를 떼우며 살아갑니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이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제 머리 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바카라가 나의 진짜 하나님이다!” 그 도박 게임이 자신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TV 화면에 비춰진 그의 모습에는 돈에 대한 갈망 밖에 없었습니다. 도박을 한 것이 적발되어 경찰에서 퇴직 했는데, 그 퇴직금을 카지노에서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딸이 돈을 보내주면 그것으로 도박할 마음밖에 없는, 돈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돈이 한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니 다른 것이 그 마음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돈돈 거리는 인생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분이 얼마나 신앙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마음에 돈이 들어가니 하나님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돈에 사로잡힌 인생, 도박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인생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도박에 빠진 사람, 즉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평안이 있겠습니까? 기쁨이 있겠습니까? 진정한 행복이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손해가 눈 앞에 뻔히 보이는데도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출애굽기 20장 5절 말씀은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분이셔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즉 세상을 사랑하는 자의 죄를 갚으시는데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반면 바로 다음 6절에는 무슨 말씀이 있는지 아십니까? 출애굽기 20장 6절 말씀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자자손손 하나님이 책임지고 은혜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거절하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 도리어 하나님의 저주가 보장된 세상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을 사랑해서 얻는 손해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본문 16절 말씀입니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옛 사람의 본능에서 일어나는 욕망입니다. 에베소서 2장 3절에서 말하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려고 하는 욕망입니다.
안목의 정욕은 외관에 미혹 당하여 일어나는 욕망입니다. 눈을 통해서 내 마음에 정욕이 자극을 받아 일어나는 욕심을 말합니다.
마지막 이생의 자랑은 세상에서 자신의 생활에 긍지를 가지고 자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돈이 많아 괜히 유학을 가서 공부는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다 돌아와서 자신의 스펙에 한줄을 적어내는 그런 것입니다. 큰 집, 좋은 집 사고서는 자랑하기 위해 괜히 사람들 초대해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욕구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먹고 마시고 자는 욕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건강한 욕구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욕구가 어떤 동기에 있어서 좌우되느냐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동기가 있다면 우리의 욕구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수단으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분별력이 있습니다.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무엇을 가까이하고 멀리해야 할지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욕구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고 나 자신을 위한 동기가 조정하는 욕구라면 그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에게서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서 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악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서 그 마음을 세상에 줘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입니다.
내가 성공함으로, 물질을 쌓음으로 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성공과 물질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에게 주어진 재물과 명예가 우리의 마음을 세상으로 향하게 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세상으로 향하게 하는 그런 악한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습니다.
본문 17절 말씀은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갑니다. 일시적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가치를 줄 수 없습니다. 잠깐은 즐거울 수 있지만 함께 망하게 됩니다. 우리가 정욕대로 살고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요한일서에서 지금까지 나온 것들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니 영원히 거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거하며 영생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교회를 다니면서 ‘주여 주여’ 한다고 하더라도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이 구원 받지 못한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얼마든지 그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극심한 손해가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세상을 사랑합니까? 세상에서는 작은 것 하나 손해보지 않으려고 온갖 비교를 하고, 계산기를 두드려 놓고서는 왜 정작 중요한 것에는 이렇게 무감각하십니까? 원래 다 그런 것이라며,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살아왔다며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결말을 분명하게 성경이 말함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세상을 사랑하시겠습니까?
올해 초 보았던 「시지프스」 라는 드라마 이야기를 하면서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한반도에 핵전쟁이 일어나는데 이를 막기 위해 미래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사람들이 넘어오고, 또 악당들은 이 전쟁을 이용해서 이익을 얻으려고 이를 막는 것으로 드라마가 진행이 되었습니다.
악당이 현재로 넘어와서 가장 먼저하는 일은 돈을 가지고 주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래에서 왔기 때문에 어느 시기에 어느 주식이 오를지 정확히 알았기에 주식을 통해 돈을 엄청나게 벌고 나쁜 일들을 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착한 사람도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 부탁해서 로또 번호를 알려주어서 은혜를 갚는 그런 모습도 드라마에 나왔습니다. 착한 사람이나 악당이 이처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시기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정확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6, 21, 36, 38, 39, 43. 이 여섯 숫자가 어떤 숫자인지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지난주 토요일 로또 당첨 번호라고 합니다. 우리가 저 드라마의 등장인물이었다면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서 로또를 구입하면 여러분도 로또에 당첨되실 수 있습니다. 저번주는 열명이 당첨되어서 한 명당 당첨금이 23억이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다면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식을 하거나 로또를 사서 많은 돈을 가질 수 있습니다.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알고 있다면 그 사건을 피하거나, 또 참여해서 많은 이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드라마처럼 미래에서 오지 않았지만 미래에 일어날 일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세상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망하니 이 세상에 있는 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가치를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가치,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은 누구를 사랑하시겠습니까? 세상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시며, 죄를 용서하시고, 악한 자를 이기게 하는 삶을 살게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망할 세상이 주는 잠시 잠깐의 행복을 쫓아 살아서 이 모든 은혜를 놓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 은혜를 영원히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