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의지하라
Notes
Transcript
다락방 나눔
일시 : 2021.04.18
본문 : 시편 56편
제목 : 하나님을 의지하라
설교자 : 윤영준 목사
주제: 우리의 유일한 의지 대상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그들이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나를 치는 그들의 모든 생각은 사악이라
그들이 내 생명을 엿보았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발자취를 지켜보나이다
그들이 악을 행하고야 안전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 백성을 낮추소서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시편 56편 1-13절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시인의 첫 고백은 은혜를 바라고 있습니다. 어떤 은혜를 바라는 것일까요?
1-2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내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하게 치는 자들이 많사오니”
다윗의 고난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사람은 때로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지만, 사람만큼 무서운 것도 없고, 사람만큼 잔인한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갈등과 상처를 주는 것도 바로 사람입니다. 갈등은 항상 사람에게 있습니다. 오늘 시를 적은 다윗도 사람들에게 참 많이 치였던 인물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입니다. 사울은 다윗의 장인이였지만, 권력과 질투에 눈이 멀어 다윗의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했고, 다윗은 쫓기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시편 56편에 드러난 상황도 녹녹치 않아보입니다. 부제를 한 번 읽어보실까요?
‘다윗의 믹담 시. 인도자를 따라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사무엘상 21장을 보시면,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과 군대에 쫓기고 쫓기다가 결국에는 타국인 가드로 도망쳐갔습니다. 아마 다윗은 사울이 타국에까지 쫓아오지 못할 것이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마침내 사울의 손에서 벗어난 것이죠. 그러나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가드 왕의 신하들이 망명한 다윗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장차 왕권에 위협이 될 인물이라 모함한 것입니다. 또다시 다윗은 사람들의 모함과 죽임을 당할 위험에 놓였고, 그는 두려움 가운데 결국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미친척을 했습니다.
사무엘상 21장은 말합니다.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두려운 마음에 침을 흘리면서 대문에 몸을 부비적대면서 미친척 했던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상상할 수 없이 무너져 내렸을것입니다. 도망치고 도망쳐 타국으로 왔건만,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미친척해야하는 수치를 당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신뢰하고, 사람을 의지한다는 것은 이런 것 같습니다.
나와 마음이 잘맞고 철썩같이 믿을만하고 의지할만해도, 오히려 그로 인해서 더한 상처와 고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궁극적으로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의존해야 할까요? 3-4절입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그러나 다윗은 이야기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
보통 우리들은 ‘내게 주어진 상황에 의해서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신앙’을 결정하려고 합니다. 상황이 점차 나아지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지만, 상황이 계속 안좋아지면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은 안계시는구나… 계시다면 하나님은 나에게 관심이 없으시구나…’ 여기며 멀어집니다.
다윗의 인생은 억울하고 피곤하고 고단한 인생이였습니다.
무엇 하나 잘못한 일도 없는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모함당하고 수없이 쫓기는 인생이였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은 삶을 살았다.다른 이들이 보았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진짜 살아계시다면, 저렇게 내버려두시면 안되지’라는 삶을 산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악화되는 상황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는 두려움 속에 있지만, 그것이 그를 좌절시키거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포기하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더 의지합니다.
그는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8-9절입니다.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사오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곤고를 아시고 세고 계신다.
아무도 나의 어려움과 처지를 알아주지 못할지라도 주님은 아신다는 것입니다.
나의 곤고함을 하나님께서 하나하나 헤아리고 계신다.
홀로 흘린 눈물을 주님의 병에 담으시고 책에 기록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담대함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담대함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것에서부터 나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내 편이라는 것에서부터 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인데 감히 누가 나에게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내 편인데 감히 누가 나의 생명을 해할 수 있겠는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우리의 편이십니다.
그 사실을 꼭 기억하고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의 허락없이 하나님의 백성, 자녀들의 생명을 취할 수 없습니다.
천로역정이라는 소설을 보면,
크리스천이 순례의 길을 걸어가다가 느닷없이 사자의 울음소리를 듣습니다.
눈 앞에서 으르렁거리는 사자를 만났으니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그 사자는 ‘목에 쇠사슬이 묶여있는 사자’였습니다.
마치 우리가 사나운 개를 묶어놓듯이, 그 사자도 으르렁 울부짖고 있지만, 그의 목에는 쇠사슬이 걸려있고 그 반경 밖으로는 나올 수 없습니다.
누가 그 사자의 목에 쇠사슬을 묶어두셨나요? 하나님이십니다.
세상과 악의 세력들이 때로는 우리에게 사자처럼 울부짖으며 위협할 수 있지만,
그러나 결코 우리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승리하셨고, 그들의 목에 사슬을 달아놓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사자는 두렵습니다. 칼날은 두렵습니다.
어느 순간 찾아오는 삶의 어둠 속에서 두려움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 가운데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는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삶과 내면의 두려움이 찾아오신다면,
오늘의 시인과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심히 두렵고 떨리지만, 그러하기에 더 주님만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이세상의 누구도 심지어 나의 가족도 나를 100프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고단함을 하나하나 이해하고 헤아리시는 분, 나의 슬픔과 눈물을 하나하나 담아두시며 기억하시는 단 한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내 편 하나 없을지라도 그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그 어둠에서 건져내시기까지 포기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의 두려움은 물러가고,
우리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만 남게 될 것입니다.
[예시] 흑사병이 유럽 전역에 돌 때,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준동하는 사탄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는 신자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흑사병의 환난을 이겨내는데는 프리드리히 선제후 같은 귀족의 도움도, 신앙의 동료들의 격려도, 아내와 가족들의 사랑도, 학생들과 주민들의 지지도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루터에게 이것은 유일한 위로가 아니였습니다.
루터에게 유일한 위로는 ‘신자들의 영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는 위로만이 우리를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으며, 내면의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다윗의 시편처럼
우리의 눈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게 되는 은혜를 소망했으면 좋겠습니다.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가 우리를 덮어올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도우시고 구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으며 2021년 상반기를 기쁨의 삶과 예배를 드리시며 나아가는
순장님과 순원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