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06주일설교_3: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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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오디게아 교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상업 중심지 중 하나. 풍요롭고 여유로운 라오디게아 교회. 은행업과 지역의 검은 양모로 만든 의류 제조로 유명. 아주 큰 도시에 유명한 의과 대학을 자랑하는 도시.
이 도시의 특징 중 하나 7천명 이상의 성인 남성 유대인 식민지. 유대인들의 관습을 보존할 권리를 부여 받았음.
교회는 에바브라의 설교로 설립된 것으로 보임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요한이 편지를 쓰는 이 시대에 교회의 상황이 어려워져 있었. 일곱 교회 중 가장 심한 질타를 받은 교회. 처음부터 문제가 있었던 교회가 아니기 때문임.
인사말은 각 교회에 맞춘 메시지라고 설명했었음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아멘, 충성되고 참된 증인 : 신실함을 강조
라오디게아 교회의 기독교인들이 당시에 보인 불충실한 모습과 뚜렷하게 대조를 보임
창조의 근본 : 충성의 대성이 되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창조주. 존재의 기원이 되는 창조주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것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지난번에 봤던 빌라델비아를 향해 ‘안다'고 말한것과 대조되는 라오디게아를 향한 ‘안다'는 메시지.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비난.
이 비유는 온천에서 가져온 것인데, 당시 라오디게아는 엄청난 부를 과시했기에 히에라폴리스로부터의 온천, 골로새로부터의 차갑고 맑은 물을 도시로 끌어왔다.
뜨거운 물은 치유를, 차가운 물은 상쾌함을 주지만, 미지근한 물은 어느 목적에도 쓸 수 없다는 것을 비유로 표현한 것. 당시 라오디게아 교회의 특징이 바로 이 미지근한 물과 같이 어중간한 상태라는 것. 어디에도 쓸 수 없는 현실.
뜨거운 신앙을 가지는 것은 이해하지만 왜 차라리 차갑든지 하라고 하는가? 차가운 태도는 복음에 적대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차라리 이들에게 더 희망이 있다. 오히려 어느정도 아는데 무관심하고 무덤덤한 사람들이 더 문제다.
진정한 믿음없이 게으른 고백을 하는 사람보다 그리스도에게서 멀리 있는 사람들이 없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그러려니 하는 믿음을 가진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함, 그러려니 하는 믿음에 대해 하나님의 대응은 토하여 버리겠다는 것이다. 토해버리겠다는 것은 격렬한 거부를 표현한 것. 미지근한 것을 참는 것은 안된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예 열심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렇게 되었을까?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나는 (지금) 부자다. 나는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게 라오디게아 교회였다. 실제로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부요했다.
라오디게아는 로마 제국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던 재정 자립도시로 부유했다. ad60년에 일대에 큰 지진으로 다른 도시들은 경제적으로 엄청난 어려움을 겪을 때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신들의 부를 이용해 복구했다.
물질적인 엄청난 부가 영적인 영역으로 넘어가면 재앙이 될수도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부유하다 문제없다 여유있다고 느끼는 사이에 영적으로 비참하고 참담한 상태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보며 안됐다고 여기며 저렇게 어렵지 않아 다행이라고 자족하는 사이에 자신들이 영적으로 얼마나 가난하고 참담한지 인식하지 못했다.
세 가지 단어에 주목 : 가난한 것, 눈먼 것, 벌거벗은 것
라오디게아에 이 세 가지가 없다.
금융업의 발달, 의학의 발달, 의류산업의 발달로 떵떵거리는 라오디게아 도시와 그 안에서 함께 부를 누린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의 메시지가 바로 이 세가지다.
필요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라오디게아 교회. 그래서 신앙도 그냥 구색 맞추기로 전락해 버린 현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이들에 대해 주님은 다음과 같은 해결책으로 제시하신다.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냥 금, 부가 아니라 불로 연단된 금
검은 양모로 유명한 도시에서 흰 옷
안약으로 유명한 도시에서 보게 하는 안약
같은 것에 대한 다른 관점.
1) 금(부)가 넘쳐나는 도시.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불로 연단해도 사라지지 않는 금보다 더 귀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
2) 검은 양모로 유명한 명성에 반하는 흰 옷. 검은 옷을 입는 것은 벌거벗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이와 같이 애굽의 포로와 구스의 사로잡힌 자가 앗수르 왕에게 끌려갈 때에 젊은 자나 늙은 자가 다 벗은 몸과 벗은 발로 볼기까지 드러내어 애굽의 수치를 보이리니
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화려한 검은 양모로 치장을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벌거벗은 수치스러운 상태임을 의미. 흰 옷은 주님을 의미하는 것.
3) 라오디게아에 유명한 안약이 있음에도 볼 수 없는 이들. 봐야할 것을 볼 수 없는 그들. 그리스도만이 진정한 시력을 주시는 분.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결국 세 가지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
주님을 소유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주님의 책망의 이유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해서 혼내는 것. 사랑하지 않으면 책망하고 징계할 이유가 없음.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아무런 칭찬이 없이 가장 크게 혼나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임에 주목해야 한다. 징계는 적이 하는게 아니다. 주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징계는 없애고 제거하기 위함이 아니라 다시 열심의 상태, 회개의 기회를 위한 것이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내가 여기 있다.’ 생생한 표현이다. 그래서 주님은 문 앞에서 서 계신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반응을 기대하는 것이다. 시제를 보면 전체에서 개인으로 바뀌었다.
어디에 속해있든지 자신을 향한 문 두드림에 개인적으로 응해야 한다. 전체는 반응이 없을지라도 들을 귀 있는 개인들은 반응할 수 있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주님은 문을 여는 이들에게 들어가겠다 약속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그와 더불어 먹고~ : 데이프논. 이 단어는 그날의 주된 식사를 말하는 것. 서둘러 잠깐 먹는 간식이 아니라 여유있는 식사를 말함. 주님을 믿는 자들과의 적극적인 교제를 약속하시는 것. 지속적인 교제를 강조하는 것.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보상으로 주어지는 보좌는 왕실의 명예와 권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할 수 있는, 진정한 왕과 함께 하는 자리에 선다는 것은 최고의 명예가운데 초대되는 것이다. 십자가로 왕위에 앉으신 주님과 함께 앉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