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빚지게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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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3 views지혜로운 삶의 몇가지 방식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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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의 몇가지 방식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지혜로운 삶의 몇가지 방식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오랫동안 잠언의 말씀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지혜로워지셨나요?
저는 더 마음이 찔리기만 하더라구요.
그렇게 남 흉보지 말라고 했는데 험담했을 때도 있었고, 분노의 미련함을 설교했는데도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도 많았습니다.
남의 말 듣기보다 내 말하기에 바쁠 때도 많았습니다.
잠언을 연구하면서도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제 스스로가 한심해보이기도 했습니다.
난 어리석은 사람이구나.
그런데 이렇게 느끼는 것만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아니깐 말이죠.
잠언을 통해 여러분 마음이 찔렸다면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고방식과 삶의 습관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말씀을 따라 우리의 생각을 조정하고 삶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때 이뤄져 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등장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 한번 진단해보시기 바랍니다.
Mbti처럼 하나 하나 체크해보고 난 어떤 미련한 사람인지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본론]
16절과 23절은 옷색깔만 다른 쌍둥이 형제처럼 매우 비슷합니다.
16절에서 계명을 지키는 삶이 삶과 죽음을 가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명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기 때문에 23절에서는 주님을 경외하면 생명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목숨과 생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잠언에서 목숨과 생명은 ‘행복한 삶’을 의미합니다.
23절 후반부를 보시면 주님을 경외하는 자는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며, 재앙을 만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그 중간에 나온 이야기들은 모두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삶이 바로 지혜로운 삶이자 행복한 삶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일까요?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게 17절인데 지혜로운 사람은 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위의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가난한 사람이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대표하는 명칭입니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부터 신경써야 할 거 같은데 제일 먼저 등장하는 말이 가난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남을 돕는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또한 겉으로 남을 도울 수는 있어도 그것조차도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돕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만족이나 자기 필요때문에 기부를 하기도 하고, 어떤 우월감의 표시로 이웃을 돕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을 돕는 이유가 이런 이기적인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을 돕는 이유는 그것이 곧 하나님을 돕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17절 보십시오.
가난한 사람 돕는 게 바로 하나님께 꾸어드리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그들을 돕는 것은 하나님을 돕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선행은 하나님을 빚쟁이로 만드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한테 대통령이 돈 좀 빌려달라고 하면 어느 누가 안 빌려주겠습니까?
아마 천원 빌려달라고 하면 만원, 십만원 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돕는 게 마치 하나님이 내게 갚아야 할 빚을 만들고 있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 하나님이 나중에 넉넉하게 갚아주신다고 말합니다.
주님이 이렇게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을 지으시고 사랑하실 뿐 아니라 그들이 의지할 사람이 바로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돕는 게 바로 하나님을 돕는 게 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빚지게 만들어도 그게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빚지게 만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두번째, 지혜로운 사람은 가정이 평안한 사람입니다.
가정이 평안하려면 자녀교육을 잘해야 합니다.
18절에서는 자녀를 훈계하라고 말합니다.
부모는 자녀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과도한 훈계는 오히려 자녀를 죽이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으로 보복하듯이 체벌하면 오히려 자식을 망치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정인이 사건, 구미사건 등으로 가정폭력, 아동학대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부모로서 자녀를 어떻게 훈육해야 할 지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오은영 선생님 나오는‘금쪽같은 내 새끼’라는 육아 프로그램을 보면 부모들 고민이 많더라구요.
자기 맘대로 아이가 움직이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걸 보면 부모가 아이들을 훈계한다기보다는 자기 기분에 따라 대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이렇게 부모가 자기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하는 훈계는 오히려 아이에게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5남매중 유일한 아들이라서 부모님, 특히 엄마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게 엄마가 저를 무조건 감싸주지 않으셨거든요.
제가 어릴 적 옆집 형하고 사고치고 돌아왔을 때 엄마는 정말 호되게 저를 때려주셨거든요.
아무튼 그 후로도 제가 잘못하면 분명히 엄마는 매를 드셨습니다.
그래서 가출하려고도 생각했으니까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참 감사하더라구요.
자녀 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자녀가 부모의 영광이 될 수도 있지만 수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가 어떠냐에 따라서 그 가정의 행복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세번째, 지혜로운 사람은 감
정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잠언은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절제가 부족한 사람과 가까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9절입니다.
“성격이 불같은 사람은 벌을 받는다. 네가 그를 구하여 준다고 해도 그 때뿐, 구하여 줄 일이 또 생길 것이다"
물론 자기 감정도 잘 통제해야 하지만 감정 통제가 안되는 사람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언에서는 자기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한 사람은 말도 절제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은 한 두번 봐주거나 도와줄 수 있지만 습관화되어 있는 분노를 근본적으로 다루지 않는 한 또다시 사고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20절에서 말하듯 그런 사람은 그때 그때 도와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성품을 고칠 수 있도록 징계하고 충고해야 합니다.
배우자를 얻을 때 이 부분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혈질인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요즘 데이트 폭력이 무섭잖아요.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는 상대는 만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하려는 친구들에게 한번 남자친구의 분노를 테스트 해보라고 권면합니다.
그 상대방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한번 건드려보라고 해요.
그거 건드려보면 다 나옵니다.
또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남자들이 운동할 때를 유심히 보라고 말해줍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인지 다 나옵니다.
평상시에는 안 보이는 모습이 운동할 때는 다 나오거든요.
아무튼 행복해지려면 이런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 안됩니다.
네번째,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맡기는 사람입니다.
21절입니다.
우리가 지난번 주일설교에서도 나눴던 것처럼 우리의 계획이 있을지라도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입니다.
내가 무슨 계획을 세우더라도 그것이 하나님 뜻에 맞지 않으면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차피 하나님의 뜻만 이뤄질테니 우리는 아무것도 계획을 세우지 말아야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분별하여 마음의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마음의 소원을 품게 하셔서 그것을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의 소원이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성취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하나님의 뜻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정말 주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입니다.
YES나 WAIT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NO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어야 주님께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긴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뜻을 구하며 내 미래를 하나님께 맡긴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럼 이렇게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긴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바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일입니다.
22절입니다.
“사람에게서 바랄 것은 성실이다. 거짓말쟁이가 되느니, 차라리 가난뱅이가 되는 것이 낫다.”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은 ‘성실함’입니다.
성실이란 몸에 배인 습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순간만 열심히 한다고 성실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죠.
여기서‘성실’이란 단어가 히브리어로는‘헤세드’입니다.
원래 이 ‘헤세드’라는 단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실패하지 않는 사랑’, ‘끊임없는 사랑’, ‘포기하지 않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faithful love, faithful truth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에게 적용하자면 ‘일관된 삶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가난하게 살더라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일관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자기 이익에 따라 이럴 때는 이 말하고, 저럴때는 저 말하는 그런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요즘 세상은 불법, 편법써서라도 어떻게든 부자만 되면 되고, 성공만 하면 되는 그런 세상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뉴스보면 주식시장이나 부동산 시장에서 순식간에 큰 돈을 벌려는 사람들이 있고, 가상화폐로 떼돈을 벌어보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어 마냥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노동이라는 가치를 추락시킬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문제인 것입니다.
가상화폐만 잘 관리하면 죽으라고 일해서 버는 한달 월급보다 더 많은데 누가 일하려고 할까요?
노동의 신성한 가치가 추락하는 것은 한 나라의 미래뿐만 아니라 인류의 미래에 좋지 않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누가 뭐라고 해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네 종류의 지혜로운 사람의 유형을 소개했다면, 이제 다음에 소개되는 사람들은 정반대편에 있는 네 종류의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첫번째, 24절, 게으른 사람입니다.
게으른 자는 밥그릇이 있어도 입에 떠서 넣기조차 귀찮아합니다.
“밥은 먹고 싶은데 숟가락을 들어올려 입에 넣기는 귀찮은 거죠.”
자신이 하고싶은 일인데도 그것을 실행할 의지조차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게으른 자는 기회가 주어져도 그것을 살리지 못합니다.
우리 삶에 많은 기회들이 존재하는 데 게으른 사람은 자신의 게으름 때문에 그것들을 다 놓치는 것입니다.
‘플로이드 델’이란 사람이 게으름에 대해 이런 말을 했는데 참 공감이 됐습니다.
‘게으름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게으름이란 잘 생각해보면 결국 자기 맘대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두번째가 25절, 오만한 사람입니다.
오만한 사람은 때려도 말을 잘 듣지 않는 고집 센 자들을 말합니다.
어수룩한 자는 차라리 때리면 말을 듣지만 오만한 자는 왠만해서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벌써 자신의 사고 방식, 삶의 방식이 고질적인 습관처럼 자리잡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명철한 사람은 꾸짖으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언제든지 잘못된 삶의 방식을 조정하려는 사람입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꽉 막힌 사람은 불행한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제 제가 올린 글 있죠?
“사람은 미련해서 스스로 길을 잘못 들고도, 마음 속으로 주님을 원망한다"
제 주위에도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안 들어요.
자신의 삶의 방식을 바꿀 의사가 아에 없습니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인데 잠언은 그런 사람을 바로 오만한 사람, 미련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세번째가 26절, 패역한 사람, 즉 부모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앞서 말한 게으르고 오만한 자식을 방치하면 결국 그것이 부모의 부끄러움과 수치로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대사회도 우리 동양사회처럼 ‘수치’의 문화가 있었습니다.
수치를 당할 거 같으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였죠.
그런데 부모를 무시하는 자에게는 이런 수치가 따를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근본원인이 바로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는 일에 대해서 십계명에 넣어서 말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에서 부모에 대한 권위를 무시하는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결국 사회에 있는 권위도 모두 무너뜨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신에게도 수치를 가져오는 미련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네번째는 28절, 조롱하는 사람입니다.
법과 정의를 비웃으며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이 없이 살아가는 자입니다.
다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로 모든 일을 판단하는 자를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 자들입니다.
이런 그들의 입은 마치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사람처럼 죄악을 통째로 삼키고 있는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독이 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법의 심판 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의 등에 매가 준비된 것처럼 법의 심판과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법과 정의를 비웃고 조롱하며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것처럼 굴지만 결국 미련한 자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잠언은 우리에게 두가지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래? 아니면 미련한 사람으로 살래?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따라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며,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경외하는 길이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믿음이 좋다고 말하면 예배 잘드리고, 기도 많이 하는 그런 종교행위를 잘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는데 잠언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삶 속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미련한 자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것이죠.
그러니 남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잘못된 삶의 사고방식들이 결국 그의 삶을 망칠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 말씀을 보면서 ‘~보다 ~가 더 낫다’라는 말씀이 마치 하나님의 시험처럼 느껴졌습니다.
“거짓말쟁이가 되느니, 차라리 가난뱅이가 되는 것이 낫다”
이 말이 너무 강력하게 다가왔습니다.
여러분 이 말 여러분 속으로 하실 수 있으신가요?
제 방식대로 바꿔보면 이런 말이 될 거 같습니다.
“하나님 방법이 아닌 것으로 큰 교회되느니 차라리 평생 작은 교회 목사가 되겠습니다”
이게 제 고백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 마음 속에 이런 삶의 고백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