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안으로 (121-127문)

제네바 신앙교육서 해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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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Mark 10:46–52 NKRV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서론

런런런! 안을 향하여 달리는 자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항상 달려가는 자들입니다.
공무원이라는 세계를 향해서 들어가기 위해 달려가는 자들이고, 우리가 원하는 회사, 단체 등 힘을 가지고 있는 집단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힘써 달려가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냐면, 우리가 어떠한 공동체로부터 버려져서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 굉장히 두려운 일이고, 불안감을 주는 일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그토록 특정한 공동체 안에 들어가려 할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존재가 공동체 안에서 정립되고 정의되며,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한번 비교해 봅시다.
이 곳이 삼성의 대주주들이 모이는 회의 자리라고 생각해 봅시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은 어떤 존재들일까요?
바로 대주주이죠.
삼성의 모든 방향을 결정하고 삼성을 쥐락 펴락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여러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이 곳이 교도소라고 생각해 봅시다.
그것도 범죄자 중의 가장 잔인하고 죄질이 심각한 사람들이 모이는 청송 교도소라고 생각해 봅시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은 어떤 존재들일까요?
바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인물들이라는 것입니다.
8시 뉴스의 메인 뉴스에 늘 등장했을 것은 물론이고, 신문 1면을 대서특필했을 인물이다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어디에 속해있는 가 라는 것이 곧 우리의 존재를 정의하고, 정립하며 증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특정한 공동체를 향해 그 공동체 안에 들어가기 위해 달려가는 것이죠.

본론

그리고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의 모습은 오늘 본문에서도 드러납니다.

본문해설: 길 안과 밖의 대립

오늘 본문 46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Mark 10:46 NKRV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 성의 입구를 지나실 때,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 그러니까 길 밖에 앉아 있었다라고 말해줍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 46절은 길 안에 있는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허다한 무리들과 길 밖에 있는 디매오의 아들 맹인 거지 바디매오를 함께 한 장면에 담으면서, 마치 바디매오라는 맹인 거지를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비롯한 허다한 무리를 통해서 바라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6절에서 그리고 있는 모습 그러니까 길 안에 있는 것과 길 밖에 있는 것은 이 단어로 인해 그 모습이 결정됩니다.
바로 “맹인 거지"라는 것입니다.
길 밖에 있는 바디매오는 “맹인 거지"였고, 길 안에 있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따랐던 허다한 무리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보여진다라는 것입니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추운 겨울날 한 집앞에 서서 창문을 통해 따뜻하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이 오늘 본문 46절은 길 밖에 있는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안에 있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허다한 무리의 모습을 길 밖에 서서 동경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춘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에서 살폈던 것처럼 우리가 특정한 공동체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것과 같이 지금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보통의 사람의 삶 안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어하는 갈망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의 갈망이 47절에 잘 드러납니다.
Mark 10:47 NKRV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예수님이시다라는 말을 듣자마자 “소리 질러 외칩니다" 우리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같이 이 맹인 거지 바디매오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이죠.
바로 이 부르짖음에 바디매오는 길 안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갈망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길 안과 밖의 차이: 맹인 거지

왜 바디매오는 길 안으로 들어가려 했을까요?
도대체 길 밖에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기에 길 안으로 들어가기를 원했을까요?
이것을 살피기 위해서 우리는 앞에서 살폈던 길 안과 밖의 구분점인 “맹인 거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 시대에 맹인에 대한 이해는 요한복음 9:1-2 을 보면,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갈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예수님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이 사람 본인의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님의 죄때문입니까?”라고 말입니다.
이처럼 이 당시 병에 걸린다는 것은 곧 죄의 결과물이라 여겼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부정한 자들이라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정하다 여겨진다는 것은 곧 공동체 안에서 퇴출된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비슷한 예로 민수기 5:2 을 보면,
Numbers 5:2 NKRV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모든 나병 환자와 유출증이 있는 자와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되
부정하게 된 자를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밖에 있다는 것은 이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버려진 자, 철저하게 제외되고 철저하게 무시당한 자라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하나님과도 원수가 된 자라는 것이죠.
한 마디로 해서 아싸 중의 아싸라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아싸 중의 아싸인 바디매오와는 달리 예수님의 모습은 인싸 중의 인싸로 비춰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4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이죠.
바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뒤 따를 만큼 영향력이 있는 분이고, 많은 사람들을 이끌 만큼의 능력과 힘을 가진 그런 존재로 비춰지고 있다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아싸 중의 아싸인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향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 지르며 외쳤을 때, 오늘 본문 48절과 같이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라고 그에게 면박주며, 그를 멀리 하려 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길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길 : 예수

하지만, 이 바디매오는 많은 사람들의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말이죠.
그때, 예수님께서 멈추어 서시면서 그 길 밖에 있는 맹인 바디매오를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무리들이 그제서야 그 맹인 거지 바디매오에게 “안심하고 일어나라 예수님께서 너를 부르신다"라고 말하고 이를 들은 바디매오는 겉옷을 내어 던져버리고 뛰어 일어나며 예수께 나아 왔다 라고 오늘 본문 50절은 아주 상세하게 묘사해줍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디매오는 내가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자 마자 바디매오는 바로 즉시 보게 되었고, 예수를 길에서 따르는 자가 되었다라는 결말로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놀라운 것은 분명 바디매오는 길 밖에 있었던 자였습니다.
그렇게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았고,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으며, 늘 외롭고 추운 곳에서 홀로 지내야 했던 자가 바로 바디매오였습니다.
그런데 그랬던 바디매오가 누구를 만나고 길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냐면, 바로 예수님을 만나면서 바디매오의 인생은 달라졌다라는 것이죠.
분명 바디매오는 46-47절 에 비추어 볼 때, 길 밖에서 예수님을 따랐던 자였습니다.
그러니까 남들의 무시속에서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렇게 예수님을 따랐던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무의미한 따름이었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 52절 마지막이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바디매오는 “예수를 길에서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바디매오를 길 안으로 부르심으로 인하여서 길 안으로 들어온 자가 되었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은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따르는 그 따름이 의미를 지니는 따름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핵심 : 길이신 예수님과 그 길을 따라가는 우리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길은 바로 예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에 함께 선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자들이다라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앞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바디매오, 그래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시받고 천대 받으며, 알게 모르게 괴롭힘 당했던 바디매오에게 무엇인가를 보고,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복 중의 가장 큰 행복일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BTS를 만나게 되었을 때, 여러분들이 아주 큰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바디매오는 이와 같은 행복을 느꼈을 것입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고, 아무도 찾지 않았던 인생이 지금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의 길 안으로 들어온 순간 그의 삶은 의미가 생겼고, 옆에 함께 할 동역자들이 주어진 인생이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길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걸어간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인생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이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 안에 거하기 이전에는 우리의 삶이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갔다면, 우리가 예수님의 길 안에 거하는 순간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인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이 어떤 차이를 지닙니까? 라는 고민을 하실 것이고 하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이런 고민을 했었는데요.
지금 이 고민에 대한 해답이 바로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어진다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길 안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사람들과 동일하게 일을 하고, 동일하게 하루를 보내며 하루를 살아가는 것 처럼 보이지만,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예수님의 길 안에서있는가? 아니면 예수님의 길 밖에 있는가?하는 차이의 문제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이라서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행하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동일한 사람이기에 세상 사람이건 그리스도인이건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동일한 사람일 뿐이다라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길 안에 함께 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바디매오와 같이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인하여 길 안에 들어섰다는 것 그것만으로 우리의 삶은 세상 사람들의 삶과 구별된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밥을 먹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밥을 먹고,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물건을 사고, 일을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로 인정받는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길 안으로 들어온 순간 우리가 행하고 드러내는 모든 것들이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을 때, 그들이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제사를 드릴 때, 그들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았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의 길 안에서 행해 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로 인정해 주시지만, 우리가 예수님의 길 밖에서 행할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라는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들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인 이 모임을 위해 여러분들이 시간을 내고 열정을 내는 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길 안에서 함께 하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모임을 통하여 교회된 우리의 자신들을 살피고 교회된 우리가 함께 예수님의 길 안에서 우리의 삶을 발견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길을 걸어가고 계십니까?
질문을 조금 바꿔서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인생이 되고자 하십니까?
길 밖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길 안에서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따라 살아가는 인생을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의 인생의 의미는 오직 예수님의 길 안에서 발견될 때, 그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5 은 이렇게 말합니다.
1 Peter 2:5 NKRV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이 시간 예수님의 길 안에서 여러분들 각자의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교회된 여러분들이 모여 만들어진 교회 안에서 여러분들의 존재를 정립하고 정의하며, 증명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다 함께 그 삶을 향해 나아가시는 귀한 공동체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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