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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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반갑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오늘 다시 말씀을 살피게 되어 좋네요. 오늘부터는 신약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장 1-17절까지의 말씀을 통해 신약 성경, 특별히 복음서가 증거하는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약 성경에는 네 개의 복음서가 있는데 복음서는 역사 중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마태, 마가, 누가는 비교적 기록 내용이 유사하고 공통된 방식이 교차하고 있어 공관 복음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복음서는 요한복음서라고 부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의 일대기를 기록하고 있는 신약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책입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의 역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예수님의 일대기를 기록한다는 점에서는 역사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일대기 중에서도 특별히 공생애만을 다루고 있어 오늘날의 의미에서 전기라고 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물론 일부 복음서는 예수님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대해 기록을 하고 있지만, 전체 복음서는 예수님의 생애 전체보다는 출생의 부분과 공생애 기록에 주력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마태복음의 서론 부분을 함께 보면서 마태복음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특별히 족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선 이 족보는 타이틀이 있습니다. 우리 마태복음 1장 1절을 같이 봅시다.
마태복음 1장 1절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는 자신의 복음서의 첫 문장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는 제목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이 말은 마태복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서언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창세기를 보면 창세기도 족보가 모인 책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 창세기를 족보로 분류한 내용을 한 번 봅시다.
네 이처럼 창세기는 족보들을 묶은 족보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마태는 자신의 기록을 이처럼 족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마태복음을 이러한 창세기의 관점에서의 연계성에서 보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마태는 복음서를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양식까지도 유대인들이 익숙한 창세기의 기록을 이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내용과 형식적인 면에서 마태복음이 충분히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쓴 문서임을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특별히 아브라함과 다윗은 유대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왔던 민족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하나님과 왕의 언약을 맺은 인물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밝혔고, 그의 후손을 통해 온 인류가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알려준 인물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앞으로 오실 아브라함의 씨가 이스라엘의 왕적 메시야로 오실 것임을 보여준 인물입니다. 이런 까닭에 이들의 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다윗의 왕권을 이어오는 왕의 자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마태복음 1장 1절은 마태복음의 주인공인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을 이어서 이 땅을 구원할 자로 오시는 자로 다윗 왕의 족보를 이어오는 왕의 후손임을 보여 줍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서론격으로 예수님이 왕의 족보를 이어서 온 다윗의 후손, 곧 메시야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는 마태복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면서 다윗 왕의 후손인 예수님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족보에는 이 족보가 왕의 족보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내용들이 있습니다.

마태는 아브라함에서 예수님에 이르는 긴 인물을 소개하면서 이 내용이 전체적으로 3부분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 17절을 봅시다.
마태복음 1장 17절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여기에 보면 세 번의 구분이 나옵니다. 어디에서 어디인가요? 첫째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둘째는 다윗부터 바벨론까지, 마지막으로 바벨론부터 그리스도까지로 구분을 했습니다. 우선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는 대체로 BC2,000년부터 BC1,000년까지이고, 다윗부터 바벨론까지는 BC1,000년부터 600년까지 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는 BC600년부터 BC 6년까지입니다. 이렇게 보면 마태는 이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단계가 처음에는 1,000년 정도, 둘째는 400년 정도,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600년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들 각각의 대수가 모두 14대라고 기록을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독자인 우리들이 보기에는 다소 어색한 기록입니다. 1,000년, 400년, 600년은 서로 간의 기간의 차이가 확연한데도 대수는 모두 동일하게 기록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이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마태가 정확한 역사적인 시간 간격보다는 큰 사건을 중심으로 해서 그 모든 단계가 열 네 대가 되었다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역사적인 시간 간격보다는 열 네 대라는 대수가 중요하다는 점을 말해 줍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왜 열 네 대가 중요한 것일까요? 왜 저자는 시간적 간격보다는 대수의 간격에, 그리고 14에 왜 초점을 맞추고 있을까요?
여기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면 마태의 시대나 사회로 가보아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왜 십사일까? 이것은 이방인인 우리들이 이해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부분입니다. 특별히 히브리어를 사용하지 않는 우리 한국 사람의 눈에 십사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십사인가를 알려면 다른 나라 말의 문법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경우에는 알파벳이 숫자로 사용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말은 기역, 니은, 디귿 이라고 하면 단순히 문자로만 이해하지만 히브리어의 경우는 여기에 1, 2, 3 등등 숫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특별히 다윗이라는 단어는 자음이 DVD가 됩니다. 여기에서 히브리어로 D는 숫자 4가 되고, V는 6이기 때문에 이 숫자를 모두 더하면 십사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넷, 즉 십사는 다윗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다윗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그리고 바벨론 포로에서 그리스도까지가 다 각기 열 네 대로 다윗의 이름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마태의 주장입니다. 이는 곧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 내려오는 족보 전체가 열 네 대가 세 번 반복되어 결국은 예수님의 족보가 다윗 왕의 족보라는 것을 지원하는 숨은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왕의 족보라고 기술을 하고 있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을 이 땅에 오신 다윗의 후손, 곧 왕의 오심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으로 이 족보가 왕의 족보라면 왕의 족보로서 가진 특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의 등장입니다. 고대 족보에는 일반적으로는 여성의 이름이 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예수님의 족보에는 여성의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우선 유다의 며느리 다말입니다.
마태복음 1장 3절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성경에도 윤리적으로 담을 수 없는 내용을 다루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창세기 38장입니다. 이 부분을 보면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서 쌍둥이 아들을 낳게 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기록이 마태에 의해 예수님의 족보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1장 5절에는 두 이방인 여성이 등장을 합니다. 5절을 봅시다.
마태복음 1장 5절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라합은 여리고 성의 창녀 혹은 기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아마 여리고 성의 이방 여사제라고 보는 경향도 있습니다. 당시 여사제들은 바알을 성적으로 자극하기 위해 남자 사제들과 함께 집단적으로 성적인 행위들을 제사의식으로 행하던 여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기생으로 번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룻은 이러한 기생 출신은 아니며 매우 신실한 여성이긴 하지만 이 여성은 이스라엘 출신이 아닌 모압 출신입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그의 두 딸 중 첫째와의 관계에서 생겨난 족속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기록하는 또 하나의 윤리적 혼돈을 주는 내용인 모압과 암몬의 출생 중 모압 자손에게 속한 여인입니다. 이 사람이 다윗 왕의 조상이 됩니다.
더하여 다윗은 솔로몬을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낳았다고 말합니다. 이 여인의 이름은 밧새바이며 사무엘하에는 다윗의 부패한 모습을 기록하는 데 그 때 자신의 충성스러운 헷 출신 신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의 관계에서 생긴 아기를 해결하려고 우리야를 죽인 이야기를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6절을 봅시다.
마태복음 1장 6절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여인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입니다. 16절을 봅시다.
마태복음 1장 16절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전체적으로 보면 마리아 외에는 정상적인 신분을 가진 이가 없다고 할 만큼 예수님의 족보에는 여인들이, 그것도 입에 담기 어려운 구약의 기록들이 등장을 합니다. 며느리, 딸, 창녀, 신하의 아내 등에게서 예수님의 족보는 이어지고 마침내 순결한 여인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님이 출생을 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기록들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 하고 의문을 가집니다. 왕의 족보라는 사실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Noble Family의 혈통으로 오신 예수님이 왜 이런 여인들의 후손으로 그려져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역사를 잘 알고 공동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는 마태는 왜 예수님의 족보에 이런 여성들을 기록해 두었을까요? 이들 모두가 다 극단적인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 왜 이들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그것이 바로 성경의 의도입니다. 성경이 지금 예수님을 인류의 구주로 소개하면서 이들 죄인들을 함께 언급함으로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의 구원이 죄인들을 위한 구원임을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는 이 땅에 오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왕의 혈통을 입은 분이시지만 동시에 그분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분이심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메시야, 그리스도는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마태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합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야라는 말로 기름부음을 입은 자라는 뜻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가 되심을 말합니다. 먼저 그는 예수님이 믿음과 왕의 족보를 이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임을 밝히고, 그가 다윗의 후손임을 열 네 대의 계대를 소개함으로 강조했습니다. 더하여 예수님은 죄인의 구주가 되심을 알려 주십니다. 왕으로 오신 메시야는 세상에서 범죄하고 죄인인 사람들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서는 세상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그러나 구주이신 예수님의 생애를 소개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인류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이 죄인의 구주이심을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왕으로 오신 구세주이심을 마음에 잘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오신 구원주이심을 마음에 잘 붙들고 죄용서의 은혜 안에 풍성히 거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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