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똥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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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바꾸자
훈련을 통해 우리의 삶을 바꾸자
아내와 같이 서산에 다녀왔습니다. 거기서 몇가지 경험을 했습니다.
아내랑 제가 아침에 가방을 챙기려는데 제가 매일 먹는 약통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제게는 조금은 비싸고 귀한 약이라서 아끼는 것인데 그게 사라진 거에요. 아무리 찾아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아내에게 “혹시 청소하시는 분이 가져간거 아닐까?”라고 한 거에요.
아내도 그럴 지도 모른다고 하구요.
왜냐하면 그 전날 보니까 청소하시는 분이 외국인 노동자신거에요. 한국말도 잘 못 알아듣고요.
약을 계속 찾다가 못 찾아서 결국 프론트에 전화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막 전화하려고 하는데 그 약통이 발견된 거에요.
뭔가에 가려져서 숨겨져 있었던거죠.
그런데 그걸 발견한 순간 기쁨보다는 너무 부끄러움이 올라오더라구요.
만약에 프론트에 전화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외국인 노동자분이 의심받고…아, 생각만해도 너무 싫은 거에요.
제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아~내가 참 편견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구나.
내가 외국인 노동자분들에게 관심이 많다고 하면서도 오히려 그 분들에 대해서 심각한 편견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도 또 비슷한 일이 생긴거에요.
이번에는 제 집 근처에 카페가 있는데 거기서 수박쥬스를 시켜먹었는데 그 속에 조각 수박 두 덩어리가 들어가거든요.
근데 그 날은 한 덩어리밖에 안 보인거죠.
그래서 또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이 사장님이 내가 단골이다보니 그냥 남은 한 덩어리만 넣어주신 거구나.
좀 비도덕적이시구나. 이렇게 생각한거죠.
근데 알고보니 먹다보니 얼음밑에 한 덩어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속으로 얼마나 찔렸던지…
아~내가 누군가를 오해하는 게 이렇게 쉬운 거구나 깨달았습니다.
내 안에 숨겨졌던 구부러진 마음들을 확인한 거 같아서 주님 앞에 부끄러웠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우리 안에 숨겨진 구부러진 마음들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곧게 펴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1-3절은 여섯번째 잠언으로서 나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초대에 쉽게 마음이 흔들리면 안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나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초대를 받으면 마음이 뭔가 그 사람에게 빚진 것 같은 상태가 되거든요.
이런 마음을 ‘감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그것에 상응한 어떤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과의 식사자리는 단지 선의가 아닐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3절 보십시오.
“그가 차린 맛난 음식에 욕심을 내지 말아라. 그것은 너를 꾀려는 음식이다.”
이 말씀처럼 이런 초대자리는 자신을 꼬득여서 뭔가 얻어내려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빚진 거 같은 마음때문에 초대해주신 분에게 마음문을 확 열어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잠언은 권력자들이 베푸는 식사초대뿐만 아니라 다른 호의조차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보통 사람들은 입이 즐거워지면 마음이 열리기 쉽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내 눈과 입을 즐겁게 해주는 것을 미끼삼아서 우리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 신중한 분별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심지어 2절에서 목에 칼을 대고서라도 먹는 것을 억제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혹의 자리는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만약 피할 수 없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라는 말입니다.
여러분들도 선배가 뭐 비싼 거 사주면 뭔가 무리한 요구를 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서 맛있게 다 먹었는데 그 후에 그런 요구를 말하면 안 들어줄 수도 없고, 매우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자리를 지혜롭게 피하는 게 상책인데 그럴 수 없다면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살다보면 간혹 이런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남의 호의를 무조건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것도 잘못된 것이지만 내게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누구냐를 잘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이런 게 잠언에 들어있다는 게 참 신기하죠?
이제 6-8절은 1-3절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1-3절이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 초대를 받은 것이라면, 6-8절에서는 인색한 사람의 초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원래 자기 욕심만 챙기고 이웃에게 베풀지 않는 인색한 사람인데 이 사람이 누군가를 초대했다면 그건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초대받았다고 좋아서 마음껏먹고, 그 주인한테 아첨하듯 좋은 말 많이 해주고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7절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 그가 말로는 ‘먹고 마셔라'하여도, 그 속마음은 너를 떠나있다.”
그 사람은 마음 속으로 계산하고 초대했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은 말로는 ‘마음껏 드세요’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꿍꿍이, 속셈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초대한 사람의 의도를 잘 모를 수 있는데 나중에 그걸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8절에 보십시오.
“네가 조금 먹은 것조차 토하겠고, 너의 아첨도 헛된 데로 돌아갈 것이다.”
그 사람의 의도를 알면 그 자리에서 자기가 아첨하며 했던 말, 먹었던 음식들 모두 다 토해내고 싶을 거에요.
이처럼 세상에는 겉으로 환대하고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검은 속셈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이유없는 환대나 선물에 대해서 조심해야만 합니다.
내 입과 눈을 즐겁게 해서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분별력과 절제력을 갖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아마 이런 잠언이 나온 것은 당시 사회가 초대하는 문화가 너무나 잘되어 있었기 때문일 거에요.
이스라엘 사회에서 ‘환대’란 너무나 중요한 예의, 문화였거든요.
심지어 지나가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사회적, 종교적 가치로 여겼습니다.
이런 것을 잘 못하면 사람들에게 조롱받고 수치받는 그런 문화였습니다.
옛날 우리 동양사회도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죠.
자기 사생활을 보호받으려고 하지 남을 집에 초대하는 그런 문화는 아닙니다.
그런데 외국은 좀 다릅니다.
저도 영국에 살면서 많은 집에 초대받았었거든요.
거기는 손님 초대해서 파티하는 게 문화더라구요.
아무튼 이런 문화 속에 있다보니 누군가를 초대하고 초대받는 게 매우 일상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문화 속에서 항상 조심해야 할 초대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겉과 속이 완전히 다르게 행동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탐욕때문입니다.
그것을 4-5절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4절 보시면 ‘부자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그런 생각을 끊어 버릴 슬기를 가져라.’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4절은 부자되지 말라는 것 같은데 사실 부자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의 헛된 욕망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물론 잠언은 근면, 성실하여 정직하게 부자가 되는 것을 주님의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게 아니라 “악착같이” 돈 벌어서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악착같이”입니다.
자기 몸을 혹사하고, 가족도 희생하고, 남을 어떻게든 밟고 일어서고, 이웃에게 베풀지도 않으면서 그렇게까지 해서 부자될 이유는 없다는 말입니다.
재물이라는 게 마치 독수리같아서 잡으려고 하면 날개치며 날아가버리듯 재물도 순식간에 날아가버리기 때문에 거기에 너무 목을 매면 그것과 함께 내 인생도 함께 날아가버릴 위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나 성공’은 잡으려고 하면 도망가기 때문에 오히려 쫓아오게 하는 것이 낫다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어떤 정신과 전문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훅 오더라구요.
이분은 자기 재산 다 털고, 빚까지 내서 주식을 했데요.
정신과 전문의니까 얼마나 자기 정신에 대해서 잘 파악하겠어요?
엄청난 멘탈을 가지고 있을텐데 이 분도 주식에 중독되었다고 그러더라구요.
처음에 좀 벌게 되니까 나중에는 전 재산에다가 빚까지 내서 하게 되었데요.
그런데 결과는 결국 -70프로까지 났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자기가 일하던 병원에서도 짤렸더라구요.
하도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주식을 확인하고 있으니까 이게 소문이 나서 병원장이 나가라고 했다더라구요.
인생이 완전히 다 날아가버린 거죠.
탐심은 사람 가리지 않습니다.
탐심에 대해 설교하는 목회자들도 큰 교회를 가지려고하는 탐심이 엄청납니다.
10절 역시 이런 탐심에 대한 경고입니다.
‘옛날에 세워놓은 밭 경계표’라는 것은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물려준 땅을 표시한 것을 말합니다.
아마 당시에는 돌을 세워서 자신의 땅을 표시했던 것 같아요.
그것을 경계표라고 하는거죠.
이스라엘에서는 ‘땅’이 조상들 대대로 물려온 그런 유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땅을 자기 가문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겼습니다.
열심히 그 땅을 개간해서 그 땅의 열매를 먹고 사는 것이 정직하고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권력자들이 자신의 땅을 넓히기 위해 이런 평범한 사람들의 땅을 빼앗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고아나 과부들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땅을 여러가지 수단과 방법으로 빼앗았습니다.
고아란 부모가 없는 존재라서 보호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과부 역시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해줄 사람이 없습니다.
당시 이렇게 보호해줄 사람이 없는 약자들은 쉽게 강자들의 희생양이 되곤 했습니다.
이런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압제하는 것은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 다시 말해서 하나님밖에 의지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렇게 탐욕스러운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9절은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말해줍니다.
바로 ‘완고함’, 즉 ‘똥고집’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이 확고하기 때문에 말해도 듣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자주 이야기했지만 미련한 자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런 마음의 ‘똥고집’입니다.
자기 삶의 방식이 옳다고 우기고, 절때 바꾸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슬기로운 사람의 말을 오히려 업신여기기까지 합니다.
평소에 이런 말 잘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너 그렇게 살면 바보되는거야, 세상 그렇게 사는 거 아니야”
뭔가 세상 원리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렇게 순진하게 살아가지고 절대 이 세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자신들 가치관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이런 사람들은 남의 말 잘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12-14절을 보시면 지혜자가 다시 한번 더 지혜를 호소합니다.
결국 모든 게 우리의 귀와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듣는다는 것은 그냥 듣는 게 아닙니다.
들어도 그냥 무시하거나 흘려들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성경에서는 ‘듣는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듣는다'는 건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젊었을 적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은 거에요.
듣기는 듣는데 / 들은 대로 하지는 않아요. 내 생각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나이가 젊으니까 내가 뭘 해도 저들보다는 낫겠지 이런 생각했거든요.
이게 젊을 때 많은 사람들이 하는 실수입니다.
내가 저 분 나이가 되면 나는 더 낫겠지? 이런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그 사람의 말이 귀에 안 들리는 거에요.
그 분들이 자신이 살아오면서 했던 실수들을 이야기하면 잘 들어야 하는데 잘 안 들리는거죠.
나는 그런 실수 안 할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자기 고집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훈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13,14절이 말합니다.
회초리를 들어서라도 자식을 훈계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육체적으로 아프게 할 지라도 훈계하여 지혜를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게 더 낫다는 말입니다.
댓가를 치뤄서라도 아이를 지혜롭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어릴 때 고치지 못하면 커서는 더 고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금쪽같은 내 새끼’프로그램을 보니까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이 있는데 그걸 고치려고 부모들이 많이 노력하더라구요.
그런데도 잘 고쳐지지 않으니까 거기 프로그램에 나오는 거에요.
그런데 대부분 문제는 아이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부모의 훈육방식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 많더라구요.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고치지 못하면 너무 큰 대가를 치뤄야하고 고치기도 훨씬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어릴 때 고치려고 하는 겁니다.
그럼 우린 다 컷는데 어떻하라는 건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훈계의 중요성입니다.
훈계가 필요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훈계를 받아 자신의 잘못된 사고방식들을 바꿔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훈계는 신앙의 훈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지혜의 길을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감사 한줄씩 올리는 것이 하나의 작은 훈련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세상살아가다보면 너무 바쁘니까 주님을 생각할 시간도 부족하고, 주님께 감사할 거리들을 잘 찾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다보면 작은 훈련이 되어서 나중에는 삶에서 중간중간에 주님께 감사할 것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마다 하려고하는 묵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묵상훈련은 우리가 날마다 우리의 영혼을 스스로 바라보게 도와줍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세상 참 살기 쉽지 않습니다.
사람 속을 잘 알수도 없고, 우리의 눈과 귀를 속이려는 많은 유혹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점에서 잠언은 우리에게 확실한 삶의 원칙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원칙대로 살면 때로는 손해볼 수도 있고,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원칙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니까요.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질서있게 만드셨고, 그 질서가 바로 잠언이 말하는 지혜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갈 때 거친 세상 속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잠언은 다시 한번더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생명의 길로 갈래? 아니면 죽음의 길로 갈래?
두가지 선택지를 제시해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그 길로 가는 게 쉬운 게 아닙니다.
우리는 벌써 많이 커버려서 쉽게 나의 생각과 가치관이 바뀌지 않습니다.
마치 결혼생활과 비슷합니다.
살아온 인생이 다르다보니 부부끼리 부딪히거든요.
그러면서 배우고 고쳐나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결혼생활은 나의 인격을 다듬는 훈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더욱 그렇습니다.
주님의 신앙훈련을 통해 우리의 생각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어서, 우리의 성품이 바뀌게 되고, 결국 우리의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한가지 기억할 것은 훈련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훈련이 쉽고 편하다면 훈련이 아닙니다.
예비군훈련은 말은 훈련인데 너무 편해서 우리가 훈련으로 안 칩니다.
그런데 군대 막 들어가면 신병훈련이 있는데 이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걸 통과하면 진짜 군인이 되는 겁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가 훈련을 통해서 평생 생명의 길을 걸으며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좇아살아가는 우리 다카포 식구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