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믿음의 힘 (111-115문)

제네바 신앙교육서 해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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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Romans 1:17 NKRV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서론

1517년의 한 남자!

1517년 당시 골리앗과 같이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가톨릭에 맞서 싸우는 한 남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사실 자신이 맞서 싸우려는 그 가톨릭의 한 식구인 신부 그러니까 옛날로 치면 사제였습니다.
그렇다고 이 남자가 순탄하게 가톨릭의 사제가 된것도 아닙니다.
그 남자의 아버지는 그가 판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남자의 아버지는 당시 많은 돈을 벌어 부자는 되었는데, 귀족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판사와 같이 사람들이 존경하는 직업을 가지면 자신들도 괴족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른들이 판사, 의사, 검사 등 ‘사'자 직업을 가지는 것을 좋아하고, 그렇게 하는 것을 원하시는 것은 바로 돈은 얼마든지 장사를 통해서 벌 수 있지만 이 명예라는 것은 쉽게 가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남자의 아버지도 그가 판사가 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남자는 아버지의 바램을 져버리고 가톨릭의 사제가 되었다라는 것이죠.
그것도 당시 철저하게 금욕주의를 가종하는 소문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카톨릭의 신부가 된 그 남자는 왜 가톨릭과 맞서 싸우는 자가 되었을까요?
오늘 소개할 인물은 바로 마틴 루터입니다.
그리고 루터가 혼자 가톨릭을 향해 맞서 싸우는 자가 된 것은 바로, 오늘 말씀 때문입니다.
Romans 1:17 NKRV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렇다고 루터가 용기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루터가 아버지의 바램을 져버리고 가톨릭의 신부가 된 것은 바로 이 루터의 겁 때문이었습니다.
루터는 아버지의 바램을 따라 법학전문대학원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날 집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루터는 폭풍우를 만나게 되는데, 그때 루터의 바로 옆에 벼락이 떨어졌고, 그 순간 루터는 “성 안나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저는 수도사가 되겠습니다"라고 울며 간절히 빈 후 그는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지금 루터는 “으아악, 목숨만 살려 주시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라고 찌질한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지금 이 로마서 1:17 말씀 때문에 그 거대하고 막강한 힘을 가진 유럽의 모든 나라들을 쥐고 흔들었던 가톨릭을 맞서 그 가톨릭과 싸운다?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 중에 학교에서 직장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학교나 직장이 잘못한 것들을 보았을 때, 맞서 싸울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아니 싸워 보신 분이 계신가요?
없습니다. 물론 저를 포함해서 말이죠.
이것은 우리가 찌질한 것이 아니라 혼자 큰 거대한 힘을 가진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대상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이 세상의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루터가 가톨릭 앞에 맞서 싸운다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은 굉장한 힘을 가진 본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은 루터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이고, 우리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본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말씀을 함께 살펴봄으로 그 살아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오늘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루터가 골리앗 앞에 선 이유!: 면죄부!

그러기에 앞서 루터가 로마서 1:17 을 읽고 가톨릭에 맞서 싸우게 된 이유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이 당시 가톨릭에서 아주 인기있는 상품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면죄부라는 것이었습니다.
들어보셨죠? 면죄부 혹은 면벌부
아시면 다음으로 넘어가, 모르시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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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

면죄부란? 죄를 지은 사람이 가톨릭 교회의 성전에 나와서 헌금함에 돈을 넣고 그 동전이 바닥에 떨어지며 “땡그랑"소리를 내는 그 순간 죄를 지은 사람의 죄가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요?
역사적으로 보자면,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에서부터 아우구스티누스 황제에 의해 교회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되기 까지 교회는 사실 많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 오랜시간 지내왔고, 오랜시간 햇빛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이 교회에는 수많은 순교자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반역죄로, 혹은 억울한 누명을 듸집어쓰고 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했고, 동물의 밥이 되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들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그리고 이들의 그 순교 정신을 기리고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그 순교자들에게 “성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순교자들의 정신이 왜곡되고, 곡해되어서 루터가 살았던 가톨릭 교회는 지옥과 천국 사이에 ‘연옥'이 있다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은 다 죽으면 연옥에 가게 되고, 그 연옥에서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 결정받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결정될까요? 무엇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이 나뉠까요?
여기서 아주 기발한 생각을 합니다.
루터 시절의 가톨릭 교회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자, 여러분들이 보기에 ‘성인'들은 충분히 천국에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의 공덕을 가지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교회에 헌금함을 통해서 그러니까 헌금함에 동전을 넣고 그 동전이 바닥에 떨어지며 “땡그랑"소리를 낼 때, 연옥에 있는 우리의 가족과 우리의 지인들은 성인들의 그 충분한 공덕을 조금 때어 받아서 천국으로 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면죄부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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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런 가톨릭 교회를 바라보고 있던 루터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고 가톨릭 교회를 향해 맞서 싸우는 자가 되었다라는 것이죠.
오늘 본문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Romans 1:17 NKRV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본문번역

~때문에 의는 하나님의 그 것 안에서 그는 드러나진다. 믿음에서부터 믿음으로, 기록된 것과 같이(중간점) 그러나,또한 (나의) 의로운 그는 믿음으로부터 그는 살게 될 것이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 바로 그는 그 복음안에서 드러낸다. 믿음에서부터 믿음으로, 그는 ~처럼 기록되어 졌다. (중간점, 다시 말해서) 또한, 그 의로운 자 그는 믿음으로부터 살아갈 것이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그 의는 그 복음 안에서 믿음에서부터 믿음으로 가는 것을 드러낸다. “그 의로운 자 그는 믿음으로부터 살아갈 것이다"라고 기록되었던 것 있는 것처럼

본문해설

무슨 뜻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첫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

여기서 나타나다라는 동사는 가리워졌던 것을 밝히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복음에는 그 동안 가리워져 있었던 하나님의 의가 밝히 드러난다라는 것이죠.

둘째, 그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

여기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라는 것을 원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ἐκ πίστεως εἰς πίστιν, 바로 “믿음으로부터 믿음에게로” 라고 말이죠.
그러니까 믿음으로부터 믿음에게로 라는 말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에서부터 믿음에게로 가는 그 방향성을 드러내며 그 방향성이 바로 하나님의 의 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씀과 같은 것이다.

이부분을 원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ὁ δὲ δίκαιος ἐκ πίστεως ζήσεται. “또한, 그 의로운 자는 믿음에서부터 살게 될 것이다.”라고 말이죠.
그리고 이 말씀은 하박국 2:4 의 말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Habakkuk 2:4 NKRV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 2:4 은 하박국 선지자와 하나님의 대화 속에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박국 1:1 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Habakkuk 1:1 NKRV
1 선지자 하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누군가에게 경고하시겠다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고, 여기서 그 대상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박국의 호소를 통해서 보면,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은 겁탈과 강포 그러니까 폭력과 흉악한 일들이 가득하고, 변론과 분쟁 그러니까 법률적 다툼과 무력적 다툼이 가득한 상황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합 1:3)
그리고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에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이 바로 의로운 자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합 1:4)
따라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따르는 의로운 자들에게 어떻게 이런 폭력이 있을 수 있고, 흉악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으며, 법률적으로 무력적인 폭력에 시달려야 하는가?라는 것을 하나님 앞에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하박국의 한탄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대답하셨다라는 것이죠.
바로,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 아니 오히려 억울하고 누명을 듸집어써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갈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바로, 복음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 그러니까 믿음에서부터 믿음에게로 향하도록 하는 그 하나님의 의가 억울하고 누명을 듸집어써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그 때에 살아갈 수 있게 한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의, 그러니까 믿음에서부터 믿음에게로 향하게 하는 그 하나님의 의라는 것입니다.

결론

루터의 발견

지금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서 말씀을 읽으며 분명, 가톨릭교회가 성경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직시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가톨릭 앞에 루터는 너무 작고, 너무 연약하며, 무엇인가 하기엔 너무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루터는 하박국 선지자가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한탄하는 것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끌어가는 교회가 어찌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장사하고, 자신들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살아가는 저들이 어찌 더 우대받고 더 떳떳하게 살아갑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찌 저들이 심판받지 않고 저렇게 잘 살아갑니까?”라고 울부짖으며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시대를 한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17 의 말씀으로 루터에게 위로하셨고, 루터로 하여금 일어나 가톨릭을 향해 물맷돌을 던지도록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루터는 하박국서의 말씀을 통해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각종 폭력과 흉악한 일에 시달리며, 법률적이고 무력적인 억압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하나님의 의, 믿음으로부터 시작되어 믿음으로 이어져 가는 그 여정 속에서 발견되어지는 하나님의 의, 복음을 발견함으로 1517년 비텐베르크 성당의 문에 면죄부에 대한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며 골리앗과 다윗의 전투는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기 시작했다라는 것입니다.
루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루터는 유럽의 그 어떤 나라에서도 받아주지 못하는 망명자 신분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루터라는 것을 알릴 수 없는 그런 신분도, 족적도 없는 그런 그림자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삶 속에서 루터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이 말씀을 붙잡고 이 말씀으로 인하여 견디고 인내하며, 살아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여러분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성경을 읽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릴 수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이 로마서 1:17 의 말씀이 가진 힘 덕분이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믿음으로부터 믿음을 향하는 그 여정의 길에 참여했던 루터로 인하여 드러난 그 복음
그 복음의 힘이 여러분들을 자유케 했다라는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들은 모르셨겠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대해 그러니까 사도신경을 통해 드러난 그 삼위일체 하나님의 모습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그 사도신경의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사도신경을 우리가 왜 알아야 하고, 왜 우리가 예배시간마다 읊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살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참된 믿음이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루터가 발견했던 그 복음, 그 복음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 그것이 바로 사도신경을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해서 참된 믿음을 누리기 위해 알아야 할 기본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 참된 믿음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부터 시작되어 믿음으로 향해가는 그 여정의 길에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하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악한 사람들이 더 잘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탈세, 투기와 같은 편법을 통하여 부를 축적하고, 부정 부패를 통해 권력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더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길은, 그들에게 응징하고, 그들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루터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단지 그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그들의 죄를 드러내며,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무너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바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 그 복음의 삶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을 늘 기억하시며, 늘 마음에 새기어 항상 견디고 인내케 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시는 귀한 인생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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