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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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한 말과 진실한 마음으로 살아가자

Notes
Transcript

[서론]
제가 예수님을 믿고 처음으로 변한 게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욕이 없어진 것입니다.
저는 전라도 사람이라서 욕을 정말 많이 한 사람입니다.
친구랑 전화하면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게 저였거든요.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예수님 믿고나서 감쪽같이 욕이 사라졌습니다.
워낙 오랫동안 습관이 돼서 욕이 올라오긴하는데 입으로 안나오더라구요.
참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예수님 믿고나면 먼저 바뀌는 것이 바로 우리의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언어생활을 다시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본론]
17절은 남의 싸움에 함부로 끼어들면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나가는 개의 귀를 잡아당기는 것과 같은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개의 귀를 잡아당기면 어떻게 될까요? 잘 모르시겠다구요? 한번 시도해보시기 바랍니다.
남의 싸움에 잘못 끼어들면 그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누군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고, 위험한 상황이라면 도와줘야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싸우는 이유나 배경도 잘 모르면서 오지랍에 남의 싸움에 끼어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친구 사이에서도 친구들끼리 서로 싸우는 전후 사정을 잘 모르면서 한쪽 편을 들었다가 문제가 더 꼬이거나 자신도 함께 그 다툼에 빠져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듯 남의 다툼에는 잘 모르면 끼어들지 않거나 끼어들 수 밖에 없다면 매우 신중을 기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임을 알려줍니다.
18절은 조금 다른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7절은 괜히 끼어들어서 자신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었다면 여기서는 아무한테나 마구 횃불과 화살을 쏘아 피해를 입히는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횃불이나 화살은 전쟁에서 공격용 무기인데 그걸 아무한테나 마구 쏘아댄다는 것입니다.
이건 남에 대해서 아무 막말이나 하는 그런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신이 무심코 던진 말이 횃불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불을 지를 수도 있고, 무심코 쏜 화살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박혀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우선 우리가 인터넷에 보면 이런 사람들 많습니다.
정말 아무 막말하는 사람들 많잖아요.
익명성때문에 남에게 상처주고 피해주는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터넷 실명제 같은 것을 시행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를거라고 생각하고 마음놓고 남에 대해 거짓 비방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어떤 연예인에게 너무 심한 악플을 달았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이 의사였던 적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익명성에 기대서 남에게 악한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에 걸맞는 책임감도 가져야 합니다.
내 말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와 아픔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잠언은 이렇게 막말하는 사람들을 마치 횃불이나 화살로 사람들을 공격하는 미친 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19절도 18절과 유사한데 조금 다릅니다.
이 사람은 이웃을 속이고도 그냥 농담이었다고 말합니다.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선“농담인데 뭐 그리 예민하게 구냐?” 주변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고보면 이런 사람들이 18절의 사람들보다 더 나쁜 사람입니다.
18절의 미친 사람은 자기 핑계는 대지 않잖아요.
그런데 19절에 나온 사람은 남에게 상처주고는 농담이라며 핑계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고 있기 때문에 더 나쁜 놈입니다.
상대방이 받게 될 고통이나 피해는 생각도 안하고 자기는 재미로 한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가 재미로 한 말이 누군가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농담이라고 말하면서 단지 자기 책임이나 수치심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에 더 나쁜 놈입니다.
친구중에 남을 깎아내리고 상처주는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말은 영향력이 있어 서로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남에게 말을 너무 가볍게 하는 사람을 잠언에서는 미친사람이라고 말합니다.
19절 마지막을 보십시오.
‘말하는 사람도 그러하다’’ 여기서 ‘그러하다’는 것은 앞에 나온 ‘미친 사람’을 의미합니다.
메시지 성경을 보니까 이 구절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남을 의도적으로 속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장난 삼아 그런거지" 하고 말하는 사람은,
연기 나는 모닥불을 내버려 두고 떠나는 부주의한 야영자보다 못하다.
경솔한 행동 하나가 산 전체를 태워버리듯 나의 경솔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20절부터는 앞 구절과는 조금 다릅니다.
남을 험담하는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20절에서 ‘남의 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남을 험담하거나 중상모략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험담이라는 것은 남의 약점을 들추고 헐뜯는 것을 말합니다.
중상모략이란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로 남을 해롭게 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을 20절에서는 뗄감과 불의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뗄감이 떨어지면 불도 꺼지듯이 그렇게 남을 험담하거나 중상모략하는 사람이 없으면 다툼도 그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험담하는 사람때문에 공동체에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해외에 있을 때에도 교회 내에 서로 험담하거나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는 바람에 서로 편가르고 다투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워낙 해외에서는 한인들이 모두 교회에 모이기 때문에 문제도 많이 일어나는데 주로 말과 관련된 일들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유학생은 그 지역에 자신에 대한 잘못된 소문이 퍼져 그것을 못 견디고 그 동네를 야밤도주한 적이 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공동체에서 남에 대해 험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경고하고 잘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가만 놔두면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고, 삽시간에 퍼져나가기 때문입니다.
가만 놔두면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깨뜨려 분열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신약성경에는 바울이 쓴 성경책이 많습니다.
최소 13권이상인데요.
바울이 교회에서 가장 경계하고 경고하는 것중 하나가 바로 이런 남에 대한 험담과 중상모략같은 것입니다.
당시에도 이단들이 참 많았는데 이단들이 그 교회 공동체를 깨뜨리기 위해 사용한 전략이 바로 이런 바울에 대한 험담과 중상모략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전에 봤던 고린도후서를 보면 바울이 자기 변론을 하고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 엄청나게 화를 내는 데 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을 가만두면 교회가 분열되기 때문입니다.
20절에서는 남을 험담하고 중상모략하는 자가 등장했다면 21절에서는 다투기를 좋아하는 자가 등장합니다.
남을 험담하는 자를 다른 측면에서 다투기를 좋아하는 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험담하는 자는 결국 남에게 싸움을 불러일으키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의 말은 마치 숯불 위에 숯을 더하는 것 같고,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남의 말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게 마치 불난 데 부채질해서 그 불이 더 번지게 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만큼 악독한 일이 어디있을까요?
22절은 18:8절에 동일하게 나온 구절인데요.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말이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같아서 그것을 들으면 들을수록 즐기게 됩니다.
남 흉보고나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르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나중에는 뱃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 오랫동안 자리잡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에 대한 험담이나 중상모략이 들은 사람의 마음에 깊이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남에 대한 험담은 말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에게도 안 좋고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내게 다른 사람 험담을 하면 그것을 제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건 내게도 피해가 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남의 험담이나 중상모략을 들어도 내 얘기가 아니고 남 얘기니까 그냥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안되는 이유는 그 험담이 결국 듣고 있는 내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험담하는 자 이야기였다면 23절부터는 말로 속이는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는 남에 대해서 칭찬하지만 속으로는 나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 사람의 말이 아무리 유창하고 좋더라도 그 사람의 속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것을 ‘은으로 입힌 질그릇’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이 은처럼 빛깔은 화려하지만 그 속은 싸구려 질그릇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누군가가 내게 하는 칭찬만 가지고 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합니다.
사람이란 누군가의 칭찬에 참 속기 쉽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칭찬해주면 안 좋아할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그런데 그게 바로 우리의 분별력을 흐려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24절은 더 구체적 상황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엄청 미워하면서도 말로는 그렇지 않는 것처럼 꾸미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말만 믿고 어리석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5절에서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겉으로는 좋은 말을 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역겨운 일곱가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7’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완전수이기 때문에 그 마음 속에 매우 역겨운 것, 다시 말해 미움과 증오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말로는 그렇지 않는 것처럼 ‘나이스’하게 사람을 속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26절에서는 결국 그러한 위선적인 말과 행동들이 다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면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을 분별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면의 악한 마음을 아무리 감추려 해도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악한 마음은 결국 삶으로 드러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속에서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때로는 뱀처럼 지혜롭게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들은 마냥 순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나 크리스천들이 바보같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는 물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거룩하게 살아가야 하지만, 세상을 분별하고 사람을 분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악한 자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일을 이루려는 계획을 알아차리고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제가 아는 형을 자꾸 이용해 먹는 것처럼 보여서 그 형에게 악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랬더니 그 형이 예수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잖아, 이렇게 말하는 거에요.
순간 당황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대답하실래요?
저는 그 형에게 그 구절을 이야기해줬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원수에게 당하고 살라고 하신게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서 원수와 함께 교제하는 게 옳은 것일까요?
전혀 아니죠.
원수는 사랑하되 악한 사람과는 교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27-28절은 앞에서 말한 위선적인 사람들의 결말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렇게 계속 남을 속이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결국 자기가 파놓은 함정에 자신이 걸려 치명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남을 해치기 위해 돌을 굴리려다가 그 돌에 자신이 깔려죽는 일을 겪게 될 것입니다.
악한 의도를 가지고 남을 속이는 일은 결국 스스로에게 해를 가하는 일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고 험담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이 한 말의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남에게 악을 행한 자를 그의 악으로 심판하십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성경 요 8:44 을 보면 사탄을 거짓말쟁이이자 거짓의 아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가 바로 거짓말과 속임수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과 하와를 속였던 사탄의 무기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켰고, 결국 하와를 꼬셨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험담하거나 중상모략한다면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크리스천으로서 대놓고 남의 험담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밀하게 교묘하게 남의 험담을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며, 더 악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도 솔직히 누군가를 험담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 말한 것처럼 욕은 안하는데 험담은 하는거죠. 물론 곧바로 회개하곤 하지만 험담하는 그 순간에는 멈추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제가 경험해보니 목사라는 자리가 많은 사람을 상대하다보니 남을 판단하기 참 쉬운 자리입니다.
또 설교, 상담 등 말을 많이 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참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부족한 지혜로는 남의 거짓말과 속임수를 잘 판단하기도 힘들고, 말을 절제하기도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해야 할일은 무엇일까요? 자주 잠언을 보며 말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예수님을 묵상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항상 그 상황이 주어져 있고, 그에 맞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솔직하셨지만, 적절했습니다.
예수님은 유머러스하셨지만, 농담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악은 꾸짖으시고, 허물은 덮어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닮는 우리 다카포 교회 식구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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