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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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자가 얻는 복

A song for pilgrims ascending to Jerusalem. A psalm of David.

1.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LORD, my heart is not proud; my eyes are not haughty. I don’t concern myself with matters too great or too awesome for me to grasp.(NLT)
2.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미니 품에 있음 같에 하였나니 내영혼이
젖뗀 아이와 같도다

Instead, I have calmed and quieted myself,

like a weaned child who no longer cries for its mother’s milk.

Yes, like a weaned child is my soul within me.

3.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Israel, put your hope in the LORD—

now and always.

1.시편기자는 자신의 교만함을 부인함 :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내 눈이 높여지지 않았다”라고 되어 있는데
오늘날 ‘눈이 코아래 있는 사람들을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교만하지 않은 자신의 태도를 표현
악인들의 특징 : 눈이 들려진 자들이다.(잠30:13-14)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2.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시편 I–II 시편 131편.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이

시편 기자는 왕권을 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대신 그는 하나님의 시기를 기다리기로 한다(삼상 24장과 26장)

다윗은 자신이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그리고 자신이 장차 왕이 될것을 알았지만
자기 힘으로 왕권을 취하려 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다윗의 겸손함의 다른 형태이다.
하나님이 높이실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으며 인내 할줄알았다.
여기서 다윗이 말하는 “내가 큰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않은 내용”
(1)1차적 의미는 다윗이 사울왕을 죽일 기회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
하나님이 기름부은 자를 죽이는 것은 큰 죄라는 것을 것을 알았다.
하나님이 세운자에게 손을 댄다는 것은 정말 큰일이고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였다.
다윗은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사울에게 손을 못댄것이다.
다윗이 마음만 막으면 뭐든지 할수 있는 사람이었다.
밧세바 취하고, 우리아 죽임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하나님앞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라 여김
감당할수 없은 일을 저지르고 싶지 않은 것으로 봐아야 한다.
3.다윗이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편에 섰을때 얻게된 복(영혼의 상태)
그것이 3절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미니 품에 있음 같에 하였나니 내영혼이
젖뗀 아이와 같도다
Instead, I have calmed and quieted myself, like a weaned child who no longer cries for its mother’s milk. Yes, like a weaned child is my soul within me.(NLT)
(1)영혼이 고요와 평온한 상태를 가짐
(2)젖뗀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앉아 있는 상태른 누림
젖을뗀 아이: 장성한 아이 , 이유식을 하는 아이를 가리킨다.
젖먹이는 게속 엄마를 보채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젖뗀아이는 엄마와 함께 잇는것으로 만족하고 자립적인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보다 앞서가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앞에 겸손하게 때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임하는 복이 있는데,
- 영혼의 평안 , 이루말 할수 없는 안정감(모든 인간이 하나님 안에서 누리기를 원하는 것들)
진정한 만족과 안식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왜 ‘젖 뗀 아이’라고 했을까요? 젖먹이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먹을 것을 구합니다. 하지만 젖 뗀 아이는 더 이상 어머니 품에서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품에 안겨 있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 품에서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고 향기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다윗은 인간이 하나님과 나누어야 할 관계가 그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만족과 안식을 찾는 것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3절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권고합니다. ‘바라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야헬’yahel입니다. 무엇엔가에 희망을 두고 그것을 늘 추구하는 것이 ‘야헬’입니다. 젖 뗀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을 찾고 바라듯, 진정한 안식과 위로와 소망을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품을 찾고 바랄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의 상태가 내적이고 사적인 평안을 누리는 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시편 131편의 영성은 세상 모든 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품에 도피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믿음은 ‘영적 아편’이라고 비난받기에 충분하고, ‘영적 환각’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의 상태는 내면의 상태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삶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것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도 관계되는 말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관한 말이기도 하고,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말이기도 합니다.

신앙의 성숙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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