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1편
겸손한 자가 얻는 복
A song for pilgrims ascending to Jerusalem. A psalm of David.
Instead, I have calmed and quieted myself,
like a weaned child who no longer cries for its mother’s milk.
Yes, like a weaned child is my soul within me.
Israel, put your hope in the LORD—
now and always.
눈이 심히 높으며 눈꺼풀이 높이 들린 무리가 있느니라
시편 기자는 왕권을 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대신 그는 하나님의 시기를 기다리기로 한다(삼상 24장과 26장)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왜 ‘젖 뗀 아이’라고 했을까요? 젖먹이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먹을 것을 구합니다. 하지만 젖 뗀 아이는 더 이상 어머니 품에서 구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냥 품에 안겨 있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 품에서 어머니의 체온을 느끼고 향기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다윗은 인간이 하나님과 나누어야 할 관계가 그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만족과 안식을 찾는 것이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3절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라고 권고합니다. ‘바라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야헬’yahel입니다. 무엇엔가에 희망을 두고 그것을 늘 추구하는 것이 ‘야헬’입니다. 젖 뗀 어린아이가 어머니 품을 찾고 바라듯, 진정한 안식과 위로와 소망을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품을 찾고 바랄 일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의 상태가 내적이고 사적인 평안을 누리는 것으로 끝난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시편 131편의 영성은 세상 모든 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품에 도피하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믿음은 ‘영적 아편’이라고 비난받기에 충분하고, ‘영적 환각’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의 상태는 내면의 상태에 관한 것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삶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것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도 관계되는 말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관한 말이기도 하고,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