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고백서 4장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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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는 영광을 위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영광을 위해 있는 것이다.
창조는 진화론과 싸우는 용도가 아니다.
중고등부 예배에 오신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신앙고백서 4장 창조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창조라는 말을 아마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들어본 이야기입니다. 창조가 뭘까요? 여러분들이 알기에 창조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말씀으로 명령을 해서 6일 만에 세상을 지으신 것, 그걸 창조라고 여러분들이 알고 있고 정확한 이야기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창세기 1장에 세상을 6일 만에 다 지으시고 여섯째 날에 사람이 등장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세상이 다 지어지기까지 시간이 얼마 안 걸렸는데 성경에 나온 세상의 역사를 글자 그대로 추측해서 계산해보면 한 만 년도 안 됩니다.
여러분 학교에서 어떻게 배웠습니까? 어릴 때 과학만화 많이 보셨죠? 거기에는 어떻게 나왔어요? 지구의 역사는 한 46억년 됐습니다. 생명체가 등장한건 한 30억년 전이예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등장한 게 300만년전입니다. 지구역사를 24시간으로 계산하면 인류가 등장한 시간은 1분 17초정도 밖에 안됩니다. 이게 과학자들이 지어낸 게 아니라 탄소측정법으로 계산을 해가지고 나온 거예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요? 성경을 보면 이 세상이 만들어진 게 며칠 만에 뚝딱 뚝딱입니다. 그런데 과학자들 주장으로는 불덩어리처럼 부글부글 끓는 지구가 식는 데 걸리는 시간 만해도 몇 억년이 지나갑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는 과학자들이 이걸 말이 되게 설명하기 위해서 온갖 이론을 다 만들어요. “성경에 나타난 하루가 하나님 입장에서는 하루인데 사람 입장에서는 아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몇 억년이 됐을 수도 있다. 이런 사람도 있고, “무슨 소리 그 하루는 우리가 아는 하루가 맞다. 과학자들이 탄소 반감기를 통해 측정하는 방법이 애초에 잘못됐다. 지구역사는 알려진 것보다 엄청 짧다.” 또 더 심한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시켜놓고 다 진화했다.” 이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서울경기지역에 SFC 수련회 하는데 유신진화론 이야기 하다가 난리가 한 번 난 걸로 알고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과학이랑 성경의 창조랑 말을 맞추고 싶어가지고 지나치게 끼워 맞추다 보니까 성경에 도 없고 과학에도 없는 이상한게 나오는 거예요.
우리가 창조에 대해 생각할 때 창조를 너무 진화론과 싸우기 위한 것으로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과학은 창조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성경이 과학적인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가 없어요. 물이 왜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원자 하나로 이뤄져 있는지 성경이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책이지 성경이 과학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과학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고 과학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으로 과학을 설명하는 것, 과학으로 성경을 설명하는 것 사실 무의미한 일입니다. 우리는 창조과 어떻게 이뤄졌는지 설명할 수 없다라고 해야 해요. 내가 성경에 나타난 내용에 따라 하나님을 믿고 창조를 믿지만 이걸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어.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모른다고 하는거랑 틀렸다고 하는거랑은 아예 다릅니다.
여러분 어른이 되면 네비게이션을 굉장히 자주 사용할텐데 네비게이션은 오차가 몇 미터 밖에 안될 정도로 정확합니다. 네비게이션을 작동시키기 위해 인공위성이 필요합니다. 인공위성이 지구 밖에서 계속 뱅글뱅글 돌면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특수상대성 이론 때문에 지구랑 인공위성이랑 시간 차이가 조금씩 생깁니다. 그래서 인공위성이 시간을 계속 수정합니다. 이걸 수정하는 기준이 지구 역사가 45억년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시간을 맞춥니다. 그래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지구 역사를 만년이라고 주장하는게 웃기는 거예요. 우리는 지구 역사가 얼만지 모른다고 해야 해요. 그게 솔직한거고 매너 있는 거예요.
이런 이야기는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셨을 때 아기로 지으셨어요? 다 큰 사람으로 지어주셨어요? 다 큰 사람으로 지어주셨죠? 그런 것처럼 하나님께서 지구를 지으셨을 때 45억년인 상태로 지으셨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알 수 없어요. 참고만 하는 거예요. 아침부터 이런 복잡한 과학 이야기 하는 이유는 여러분들이 언젠가 이 질문에 부딪치는 날이 옵니다. 이 질문 지금 여러분들이 바쁘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도 없고 쓸떼없는 이야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이것 때문에 교회 떠나는 사람들이 있고 이 문제 해결이 안되서 교회 못 다니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한 번은 제가 짚고 넘어갑니다.
정말 우리에게 중요한 거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지으셨나하는 창조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세상을 지으셨나 하는 목적입니다. 방식은 우리가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창조의 목적은 성경과 신앙고백에 분명하게 기록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하나님이 왜 창조를 하셨는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설교를 시작한 건 아닙니다. 설교 시간은 늘 정해져있어서 길어지거나 짧아지지 않으니 너무 싫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창조가 말하는 창조의 첫 번째 이유
창조가 말하는 창조의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 신앙고백서에 의하면 창조에 대한 고백은 1항과 2항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여러분들 기독교교리 어플 받아서 보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신앙고백서 오늘 하는 부분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서 제 4장 1항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영원한 능력, 지혜 선하심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태초에 무로부터,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이는 것이든지 혹은 보이지 않는 것이든지, 6일동안 창조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뭘까요? 뭔 것 같습니까? 한 번 물어봐야되겠다. (물어본 후) 영광이죠. 창조의 목적은 진화론하고 싸우라고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첫 부분에 보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라고 나오는데, 창조를 담당하신 분은 아버지 하나님 뿐 아니라 예수님도, 성령님도 창조에 관여하셨다는 거예요. 요한복음 1장에 보면 말씀으로 세상이 지어졌다고 하는데 그 말씀을 결국 누구라고 합니까? 예수님이라고 합니다. 또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는 삼위 하나님의 사역이고, 창조의 목적은 삼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거예요. 영광이 뭐라고 했죠? 영광은 하나님의 선하심, 빼어나심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기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 목적대로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어요. 창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신지, 선하신지, 아름다우신지 알게 하셨어요. 엄청나게 유명한 화가가 그림을 그리면 그 그림을 통해 화가가 엄청난 명성을 얻잖아요? 마찬가지로 삼위 하나님은 그분이 지으신 세상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창조를 배우는 이유는 “내가 이 창조라는 이야기를 가지고 진화론을 깨부숴야겠다. 진화론을 박살내서 저 무식한 불신자들 정신 차리게 만들어줘야 되겠다.” 이게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를 통해서 이 아름다운 세상을 지으신 분이 우리 삼위 하나님이시구나!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예요. 하나님이니까 저렇게 기가 막히게 세상을 만들지! 이렇게 하는 거예요. 높은 하늘에 구름이 작품처럼 배치되잖아요? 똑같은 모양이 없어요. 늘 조금씩 다릅니다. 광안리 바닷가 보세요. 바다위에 조그만 물결이 불규칙적이면서도 질서정연한 패턴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여러분 사촌동생이나 조카 태어난거 보세요.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는 생명체로 태어나지만 부모가 정성들여 키우면 마치 태어날 때부터 프로그래밍 된 것처럼 점점 배우고 자라나요. 창조를 생각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안 돌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창조를 배우는 이유는 삼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드디어 우리가 읽은 본문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계시록 4장 11절에 보면 하늘의 예배에 대해 나옵니다. 24장로가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경배하는데 이런 내용으로 고백을 합니다. “우리 주 하나님이시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이유가 바로 하나님이 창조주 되셨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선하게 창조되었는데 균형이 깨졌습니다. 어떤 사건 때문인지 잘 아시죠?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선악과를 따먹어서 세상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상은 선한데 완전히 죄에 물들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 고통과 슬픔이 섞여 있는 거예요. 사나운 짐승이 사람을 해치고, 천재지변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 괴롭게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부터 재림에 이르기까지 만유를 회복하고 계십니다. 중요한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와서 선한 균형이 깨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래 창조하셨던 세상이 선하다는 것을 고백하고 우리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고 선한 균형이 깨어져서 안 좋은 일들이 생깁니다. 질병이 생깁니다. 내가 아프기도 하고 또 살다보면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좌절하는 일이 생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세상이 선했기 때문에 회복이 있습니다. 아픈 것들이 다시 낫고 인간관계도 회복되고 절망도 희망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에 살면서 고생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그래요. 하지만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의 아픈 부분들, 어려운 부분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회복됐을 때 우리는 “역시 하나님이 만드셨으니 하나님께서 고치시는 거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자신의 영광을 위해 세상을 만드시고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이에요. 그걸 아니까 우리가 창조하시는 하나님께 미리 영광 돌리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위해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를 괴롭히는 모든 환경들이 선한 방향으로 바뀔 수 있도록 기대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창조가 말하는 두 번째 이유
그 다음으로 창조가 말하는 창조의 두 번째 이유는 무엇일까요? 2항의 내용을 제가 요약해보자면 1항은 만물 창조에 대해 말하고 2항은 인류를 창조하신 것을 말해요. 2항에서 중요한 키센텐스 두 가지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서” 라는 말과 또 마지막 줄에 “하나님과의 교제 가운데 행복했고“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자신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 하나님이 가진 특징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에요. 의롭고, 거룩하고, 지혜가 있어요. 하나님과 최대한 비슷한 존재가 사람입니다. 왜 이런 사람을 만드셨을까요? 그 답은 교제입니다. 교제는 다른 말로 하면 어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과 비슷한 존재를 만드셔서 함께 어울리고 싶으셨어요. 함께 대화하고 산책하고 놀고 싶으셨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때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은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의 창조 이유는 간단하게 교제입니다. 교제 가운데 우리 사람의 참된 행복이 있는 거예요. 비록 이 교제가 죄로 인해서 깨어졌지만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이 교제를 다시 회복할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예배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하늘의 예배의 장면에서 24명의 장로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아까 살펴본 것처럼 이 24장로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이유는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왜 세상을 만드시고 에덴동산을 만드셨을까요? 세상 위에 에덴 동산을 지으시고 그곳을 예배하는 장소로 정하셨어요. 그곳에 아담과 하와라는 예배자를 지으시고 세우셨어요.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신 것 자체로 영광 받으시고 그 세상 안에서 하나님을 닮은 존재들과 함께 교제하고 그들의 예배를 받으시고 싶어 하셨어요. 창조의 목적,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류창조의 목적은 바로 예배입니다.
그래서 강도사님이 선생님들이 교회 나와서 예배하라는 게 귀찮은 잔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신앙고백서 2장에 나온 것처럼 이 교제, 이 예배 가운데 있을 때 사람이 행복한 거예요. 예배가 되게 짜릿하고 흥미진진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예배가 없으면 사람은 공허하고 불안해요. 행복하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리라는 말은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진심으로 행복하게 살아라는 말이에요. 우리는 창조된 목적대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결론
설교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창조는 진화론이랑 싸우라고 있는게 아니예요. 성경은 과학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책입니다. 또 과학은 성경을 절대 설명하지 못합니다. 과학과 성경은 서로 싸우는 게 아니라 각자의 영역을 잘 지키면 됩니다. 우리는 창조를 성경 그대로 믿지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솔직히 이야기해야 합니다.
창조의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하나님의 영광이 창조를 통해 드러납니다. 창조가 하나님께 올려드릴 찬송의 제목이 됩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셔서 사람과 함께 교제하며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통해 행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창조 하시는 삼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배하는 우리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