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롭고 자비로우신 주 여호와

요나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55 views
Notes
Transcript

S1. 환영과 인사

네 반갑습니다.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시간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우리 좌우에 계신 분들에게 ‘은혜 충만하세요’하고 인사 나누십시다.
네 감사합니다. 모든 분들의 기도 덕분에 목사님들의 연수회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 학기 사역을 보고하고 또 진행했던 교육 프로그램들을 시범 수업을 통해서 점검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더하여 코로나 이후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 교구 사역에 대한 정비도 잘 할 수 있었고, 특별히 장로님들께서 방문해 주셔서 우리 지역에 일어나는 재개발을 통한 변화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변화들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지혜가 교회 내에 풍성하기를 함께 기도해 주시고 은혜 충만하기를 함께 구하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S2. 본문의 주제

우리는 지난 시간에 니느웨에 일어난 놀라운 회개의 역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선지자는 심판을 선포했는데, 이방 백성들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셨던 사십 일 이후의 재앙을 멈추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신 것에 대한 큰 분노를 소개합니다.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초기에 니느웨에 큰 변화가 있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난 사건을 목도 했지만, 그는 사십 일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니느웨가 보이는 곳에서 그 멸망을 기다렸으나 하나님은 그 성에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에 선지자는 몹시도 마음이 상하고, 분노하여 하나님 앞에 불평을 담은 기도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자비하심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과는 달리 은혜와 자비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뜻을 돌이키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자로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S3. 문제 제기

먼저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요나의 분노에 찬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자신의 분노를 토로하고 있습니다. 우선 1절 말씀을 보면 요나가 얼마나 이 사태에 대해 분노했는지를 보여 줍니다. 요나 4장 1절을 봅시다.
요나 4:1 NKRV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지금 요나는 우리가 감동하고 은혜로 여겼던 3장 후반부에서 일어난 회개와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지연 혹은 재앙을 내리지 않으신 사건에 대해 크게 분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실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시로 도망했다고 자신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2절 말씀을 봅시다.
요나 4:2 NKRV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는 자신이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말합니다. 기도한 이유는 하나님께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한 행위인데, 그는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분노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심지어 3절에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요나 4:3 NKRV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심지어 나를 죽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나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행하신다고 하시고는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용서하시는 그것에 대하여 결코 동의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아니 그럴꺼면 왜 나를 여기에 보내셨느냐 말입니다. 나는 심판을 선포했는데 하나님은 용서를 하시면 내가 선포한 메세지는 뭐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 되시겠느냐는 것이지요. 심판한다고 해놓고 벌을 안주고 그냥 넘어가시면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느냐고 요나는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권위가 떨어지고 선지자의 말이 성취되지 않을 바에야 뭣 하러 사역하며 뭘 보려고 말씀을 전하느냐는 것입니다.

J1. 하나님의 심정, 속성, 그리고 방법

우리는 충분히 선지자의 말에 동의를 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가 자신의 사역의 권위를 생각했던,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이 존중되지 않는 상황을 생각했던 분명 그는 심판없는 용서는 결코 사람들에게나 하나님에게 유익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동의가 됩니다. 어떻게 죄를 지었는데 그냥 내버려 두고 형벌없이 그냥 용서를 해 줄 수가 있습니까? 그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가?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러한 우리의 생각까지도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미치는 것인지 질문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통해 회개의 열매를 주신 그 니느웨를 용서하시기로 작정하셨고, 이를 불평하는 요나를 책망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니 칼빈은 이것은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정죄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 4절 말씀을 봅시다.
요나 4:4 NKRV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하여 자신의 판단과 감정을 통해 그것에 동의하지 않고, 하나님의 권위를 위한 것이라는 명분으로 오히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비판하는 선지자에 대해 정죄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무리 정의롭고 고상한 생각을 가진 것처럼 여겨진다고 해도, 결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해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자세를 가져서는 안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애가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에서 영원까지 변함없는 인자와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봅시다.
요나 4:2 NKRV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의 고백처럼 우리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해가 넘치시는 분이시기에 아담과 맺은 언약 안에서 사망의 심판에 놓인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 아들을 대신 죽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하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봅시다.
요한복음 3:16 NKRV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의 여호와이시기에 아담 안에서 이미 타락하고 부패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영원부터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시기로 작정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두고 성내는 것, 그것을 두고 불의하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닙니다.

J2. 하나님이신 예수님

성도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되돌리시는 구원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하나님은 죄인들을 향한 심판을 돌이키시고 죽음의 재앙을 우리에게서 떠나가게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성도인 우리를 속량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이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되신 예수님을 통해 재앙이 아닌 생명의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로마서 3장 21, 22절 말씀을 봅시다.
로마서 3:21–22 NKRV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신 그의 아들을 하나님의 이로 이 땅에 보내시어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가 하나님의 의가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심판과 재앙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성도는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의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재앙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J3. 사람이신 예수님

이러한 놀라운 은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심으로써 우리의 모든 타락과 부패의 열매들까지도 다 제하시고 우리를 의로우신 예수님 안에서 거하게 하심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속량의 은혜를 주신 그리스도는 자신의 피로써 화목제물이 되셨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5, 26절의 말씀을 같이 봅시다.
로마서 3:25–26 NKRV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우리 하나님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를 의롭다고 불러 주시는 놀라운 자비와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요나가 요구하는 대로 어떻게 악인을 향한 심판이 돌이켜질 수 있습니까? 하는 불평은 우리 하나님은 주님의 이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회개의 열매를 맺는 이들에게 용서의 은혜를 주시는 자비하심에 있다고 대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W1.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은혜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의 화목제물이 되어 주시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비하심의 은혜를 우리 가운데 보여주는 최고의 증거가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인을 향한 심판을 돌이키시고 재앙이 아닌 용서의 은혜를 베푸시는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인 것입니다.

W2. 이 자비하심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지신 부성적인 호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자비를 베푸실 때 어떤 조건에 의존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나님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죄인을 용서하시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요나의 요구처럼 죄인이 재앙을 멈추기 위해 어떤 노력과 헌신과 보상을 스스로 해야 하나님께서 용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은혜와 지비하심의 호의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W3.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사랑의 호의를 믿는 자들에게 베푸셨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 자비의 호의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내 힘이 아니라 오직 아들이신 예수님의 죽으심만이 나를 구원하는 능력이 되시기에 성도인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회의 안에서 구원의 은혜와 영적인 충만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요나 자신까지도 아버지의 이 자비의 호의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아가 선지자로 사역하는 자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T1. 요나는 하나님의 이 큰 호의를 감사함으로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3장으로 자신의 사역을 마감하지 않고 이렇게 4장의 사건을 기록한 것은 그 자신이 깨달은 바를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다음 주에 그가 발견한 하나님의 호의를 좀 더 깊이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만 지금 요나는 이방인들의 회심만을 증언하지 않습니다. 지금 요나서를 기록하는 이 시점에 그는 자신의 변화, 아버지의 자비하심의 은혜를 망각하고 살던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그 호의의 은혜를 깨닫은 자가 되었음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T2. 오늘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값없는 은혜의 비밀을 멸시하고 삽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인과와 공정한 질서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인과와 공정성, 이성과 경험의 일관성은 매우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하나님의 주권적 긍휼하심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로마서 9장 15, 16절 말씀을 봅시다.
로마서 9:15–16 NKRV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우리 시대는 지금도 여전히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쁘게 받고 그 앞에 내 생각을 접을 줄 알아야 합니다. 요나와 같이 자신의 생각으로 하나님 앞에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그렇게 고집하는 삶은 결코 옳은 삶이 아닙니다. 오늘의 시대에도 오직 내 마음을 겸손히 하고 하나님께 긍휼을 기대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T3. 이런 까닭에 성도는 지금도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값없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도리어 악한 삶을 살아온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시는 긍휼의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자신이 잘나서 혹은 하나님 앞에 공적을 쌓아 구원을 얻은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은 오직 은혜의 하나님이 주신 그 자비로운 호의의 선물을 누리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아들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이 자비의 은혜를 기억하며 그것에 감사하고, 완고한 심령, 나와 다르신 하나님께 노를 터뜨리는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L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오신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우리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은혜와 자비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무슨 자랑할 거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은혜와 아들의 사랑의 헌신 안에서 우리의 구원이 성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나의 함정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요나와 같이 정의와 공정을 과하게 주장하다 보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주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없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께서 우리를 향해 가지신 사랑은 은혜와 자비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따지거나 이유를 묻지 않고 하나님 안에 있는 은혜와 자비의 속성을 따른 호의를 베푸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죄인 됨을 간과하시고 사랑으로 베푸신 은혜의 선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L6.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주님이 주시는 이 은혜와 사랑을 마음에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성도는 요나와 같은 완고한 마음을 내려놓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은혜를 배우고 따르는 삶을 결단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나의 정의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인애와 자비를 베푸는 삶을 선택하여,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소원해야 합니다. 오늘 요나는 기도한다면서 하나님께 억지를 쓰고, 분노를 쏟아내며 자신의 생명을 거두시라고 대어 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권위를 위한 것이든, 선지자 자신의 명예를 위한 것이든,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낮으신 성품을 배우고, 나를 내려놓는 결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책망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이런 기도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도는 내 것을 요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 안에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참여하기를 결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도 주님의 그 자비하심을 소망하면서, 우리도 이웃들에게 주님의 이 풍성한 자비의 은혜를 증거하고 그렇게 용서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95장 자비하신 예수여...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