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우선순위

성전 건축 이야기(학개)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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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여러분은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시나요? 만족하지 못하다면 무엇이 없어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내가 이것만 가진다면 내 인생이 조금이라도 더 풍성할텐데..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있지 않으신가요? 무엇인가를 가진다면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우리의 심령에는 무엇인가를 가져도 채울 수 없는 큰 공간을 가졌습니다. 이 공간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공간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채워 풍성하게 만드셨듯이 우리의 마음에도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야 온전히 채워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모른채 우리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우리의 심령에 채워나갑니다. 이것은 무엇을 채우고, 바라보느냐에 우선순위의 문제가 틀린 것에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무엇이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백성들이 자신들의 삶에 찾아온 궁핍한 삶과 계속되는 불만족이 온 나라에 울리고 있었습니다. 바벨론 포로지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힘들게 돌아온 백성들에게 넘치는 축복은커녕 힘든 일만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있는 것일까요? (학 1:6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입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본문은 그들이 많이 뿌려도 수입이 적었고, 먹어도 배부르지 못하는 흡족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좋은 것으로 많은 것으로 채우는데 도무지 그들에게 채워지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부족한 삶, 불 만족인 삶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어 있는데 있습니다.
적용 : 여러분들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십시오. 매일 좋은 것으로 채워도 흡족하게 채워지던가요? 공허한 마음에 사람들을 만나고 재미있는 것으로 하루를 모두 써도 잠시 동안은 그것을 잊어버리기야 하겠지만 다시금 우리들의 마음은 공허와 불만족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이러한 공허와 불만족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애석하게도 우리에게도 남 유다의 백성처럼 우선순위가 바뀌어 있어서입니다. 우선순위이신 하나님을 떠나서입니다.
오늘 학개서의 말씀처럼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십시오. (학개 1:5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펴 볼지니라 // 7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펴 볼지니라) 오늘 말씀은 자기의 소위를 되돌아보라고 말씀합니다. 이 자기의 소위를 살피라는 말씀은 “너희가 되돌아 온 길을 잘 생각해봐라, 너희가 한 일을 생각해보아라”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나누며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자신을 살피시는 성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화 및 적용 지갑을 잃어버렸다면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 돌이켜 내가 흘린 곳이 어디인지 살펴보지 않습니까? 내가 불만족에 빠져 있다면 내가 빠진 곳이 어디인지 살피고 되돌아가 빠져나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살핌으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인도하셨는가? 무엇으로 돌보시고 채우셨는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의 행위를 살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충만한 것으로 채우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뿐이지 하나님은 자신의 선하신 뜻을 세상에 세워 나가시는 분이셨습니다.
유다의 백성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두 가지의 문제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2절의 말씀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위 본문에서 백성들이 가진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너무나도 멀어져 있다는데 있습니다. 백성들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났을 때 쓰이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백성’입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는 백성에게 하나님은 ‘이 백성’이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이는 심리적이며, 정서적인 거리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이상한 사람을 만났을 때, ‘이 사람’ 왜이래?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제일 큰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마음에서 떠나 너무나도 멀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정서적 거리는 삶의 우선순위를 바꾸어 놓았고,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가지게 됩니다. 바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사실 이들의 이러한 발언은 이유가 있는 게으름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16년간 계속되어왔던 성전건축의 와해였습니다. 계속되는 패배는 무기력감을 주었고, 그들은 무엇을 하든지 안 될 것이라는 훈련된 무기력증에 빠져버렸습니다. 주전 536년에 성전건축이 시작되었으나 사마리아 사람들과의 방해로 16년이나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유는 맞지만 답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때의 문제는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하나님이 지금이라 하시면 때는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화 : 16년간의 공사중단은 정말로 처참한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시절 한 고층건물이 불에 타서 뼈대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건물주와 이익관계가 얽혀 소송과 싸움으로 6년간 뼈대만 남은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정말 보기 싫었습니다. 불에 탄 잔해와 공허한 모습, 공사재건에 실패하여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건물이었습니다. 손을 댈 수가 없어 아무도 나서지 못한 것입니다. 백성의 사명은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성전을 세워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왕권과 제사와 삶을 모두 이어가는 것으로, 성전 세우는 것은 그들의 사명이었는데 이 일을 포기해버린 것이죠. 손을 댈 수가 없어 포기해버린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4절과 9절의 말씀입니다. (4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이 말씀은 백성들의 우선순위가 상당히 바뀌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무너져 있는데, 자신들의 집은 완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판벽한 집’이라고 부르는데, 이 판벽은 패널드 하우스로 집의 모든 구조가 완벽하게 세워진 집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황폐하여 있는데, 자신들의 집은 안전하게 모든 구조가 세워진 것이죠.
이런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한재였습니다. 그들이 삶에 무엇을 채우던 채워지지 않는 불만족이 찾아왔습니다. 9절의 말씀처럼, 적고, 없고, 메마른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원어는 성전의 황폐함과 백성들의 삶의 한재와 황폐함이 같은 단어로 쓰여있습니다. 이 단어처럼 성전의 황폐함이 우리 삶의 황폐함과 같다는 것이죠. 우선순위가 바뀌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황폐해 지는 것처럼, 그리고 예배의 자리가 황폐해 지는 것처럼 우리들의 삶도 황폐하며, 한재로 가득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반증 :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떠났다고 벌을 주시는 분이신가? 우리가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신가? 라는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시기 원하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났을 때 생명에서 끊겨져 메마르는 것을 하나님이 더 잘 아시기 때문이십니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함같이 무엇이 중요한지 우리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 알게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백성의 삶의 중심에 서있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전을 건축하지 않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적용 : 그러나 여러분 우리들은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우리의 우선순위이시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때, 그들은 자신들의 우선순위로 향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완벽하고 안락한 집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성도들에게도 찾아옵니다. 먼저 성공하고 하나님을 믿겠다, 좋은 대학에 간 후에 신앙생활을 하겠다. 자신의 공부할 시간이 주일 오전 밖에 없다. 그러니 주일성수를 뒤로하고 개인공부를 하겠다. 이렇게 결정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시에 이런 결정을 한다고 무작정 징계를 하시지 않으시지만, 우리들의 우선순위는 중요한 때에 잘 드러납니다.
그러나 여러분 잠시잠간은 별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최후의 순간, 인생의 정말로 중요한 순간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여러분의 완벽한 집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성전이 황폐해졌듯이 우리의 삶도 한재가 들며 황폐해 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하나님을 우선순위 삼으시는 영동제일교회의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결론을 위한 적용 1) 영적 지도자들에게 권위를 주시고, 힘을 주심!!>
하나님이 우리의 우선순위가 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소망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사역이 시작하였습니다. 저에게도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힘을 읽은 사역자에게 사역이 시작되는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1절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모두가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있는 그 때에 하나님이 학개 선지자를 통해 유다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만나면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16년간 뭐했니?” 다윗의 왕가요, 지도자와 영적인 지도를 하는 대제사장이 16년간 맥을 못추고 있었다는게 궁금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니까, 그들은 다르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들이 힘을 잃고, 사역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지도자가 사역을 포기하니 누가 사역을 하겠습니까?
예화 : 포드의 대표, 망해가고 있는 회사에 한 사람의 대표가 들어옴, 긴 시간과 수 많은 돈을 들여 포드의 엔진을 인류최고로 만듦, 회사의 회생,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의 가르침)
그들의 무기력함으로 지도자의 권위가 사라져 보였지만, 하나님은 말씀으로 그들에게 권위를 주시고, 세워주십니다. 모든 권위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쉬운성경 2:4 여호와의 말씀이다. 그러나 스룹바벨아, 용기를 내어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용기를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여호와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할 테니 일을 하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들을 책망하시지 않고, 이해하시며, 힘을 주시고 있습니다. “힘내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나의 말이다.” 하나님이 권위를 세워주시니 사역이 살아나며 역사가 시작되기 시작하였습니다.
2) 첫 번째로 시작한 사역 : 우선순위 돌리기!!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마음의 우선순위를 회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그것은 일단 나무를 패서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백향목이 아니어도 되며, 금과 은으로 두른 나무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완전하지 않아도 되니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두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입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그들의 태도가 하나님이 하시면 한다는 태도로 바뀌게 된 것이죠. 이 말씀에 순종하면 보이시는 하나님의 응답이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리하면 “내가 그것으로 기뻐하고 영광을 받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적용 :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그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을 우선순위로 삼은 것을 회개합시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의 집을 짓기 빨랐던 우리의 죄악 된 본성을 회개하며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때를 보다, 자기의 때를 중시하던 우리의 태도를 회개하며, 지금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짓는 우리가 됩시다. 왜냐하면 성전을 짓는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고, 돌아온 자녀들이 하나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의 기쁨이 소망합니다.
3) 그러한 백성에게 하나님은 임재를 약속하십니다.(감동시키심)
우리의 지속적인 헌신은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시고 지속적인 언약의 말씀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이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계속해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인도하고 끌고가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그 약속에 대한 우리의 신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겠노라”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쳐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한다.”(13절) 라는 약속을 주시면 우리는 다시 힘을 얻을 것입니다.
이 함께 한다는 말씀의 보증은 “감동시키시매”(14절)에 나타납니다. 이 감동시키셨다는 신구약을 통틀어 인간의 마음에 이러한 감동과 흥분을 시키시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구별된 사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데 놓여있는 비밀은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 두 지도자 뿐만 아니라 실의와 패배에 잠겨 있는 백성들에게도 성령의 감동을 주셔서 힘을 주시고, 자신의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이 없이는 하나님의 일은 진행될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지속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들의 처음과 마지막입니다.
우리 삶의 잘못된 우선순위는 삶의 불만족과 하나님의 징계를 돌아보고 인정함으로써 다루어져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를 돌아볼 것을 명하십니다.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일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그것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들을 가지고 살아가는 쳇바퀴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것은 우리의 잘못된 우선순위를 고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맡겨진 사명은 성전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어야 하는 성전은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가 우리가 지어가야 하는 성전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자신이 구별되고 거룩해져가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이 역시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 자신에게서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 학개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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