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과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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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의 조종실을 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비행기를 탈 때 왼쪽을 보면 조종실이 가끔 열려있고 그 안의 모습을 잠시 볼 수 있습니다. 조종실은 좁은 공간에 복잡한 기계들로 가득 차있는 곳입니다. 이 조종실은 비록 좁지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 조종실에서 그 큰 비행기 전체를 조종하고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이 조종실 안에 있는 의자에 비행기 기장이 앉게 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기장은 복잡한 모든 기계 들을 사용할 줄 알고, 비행기를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동시킬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기장이 아니라 승객이 앉게 되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올바른 목적지로 이동시킬 능력이 그에게 없고 엉 뚱하고 다른 길로 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하 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넘어집니다. 주의 말씀을 하루도 온전히 순종하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순종하고자 하는 의지인 그 비행기 안 조종석에 제대로 된 기장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승객이 앉아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순종이라는 비행기가 어떻게 하면 온전하게 잘 순항하여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잘 비행할 수 있을지 살펴보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앞선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위한 간청을 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더 이상 종 이 아니라 사랑 받는 형제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며, 빌레몬이 바울을 맞아들이듯이 오네시모도 맞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오네시모가 이제는 사랑 받는 형제가 되었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 형제인 가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21절에서 “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라고 말하며 자신의 간청과 당부를 빌레몬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 확신합니다. 바울이 빌레몬의 확신을 확신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빌레몬에게 간청한 오네시모와 관련된 그 내용은 당시 로마 사회에서 주인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시대 때 종들은 그저 주인의 재산이나 소유물 정도로만 여겨지는 하찮은 존 재였습니다. 좁혀질 수 없는 신분의 격차에 있던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간청하며 그것을 빌레몬이 행할 것이라고 바울이 확신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 근거는 빌레몬이 보여준 믿음 과 사랑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믿음과 사랑 때문에 그의 순종을 확신하며 선포하고 있습니다. 앞 서 살펴본 것처럼 빌레몬은 자신의 집을 골로새 교회의 모임 장소로 제공했고, 어려움에 있는 성도들을 도우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빌레몬이 보여준 믿음과 사랑의 모습으로 인해 자신의 이 말도 안되는요 청에 순종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앞선 본문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 바울이 지금 ‘순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조금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결코 명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명령이 아닌 형제의 사랑으로 호소했습니다. 형제의 사랑으로 호소했으니 순종이라는 말은 여기서 사실 어울리지 않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순종’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빌레몬이 자신에게 순종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염두한 것입니다. 비록 바울이 지금 빌레몬에게 간청하며 편지를 쓰고 있지만, 자신이 간청하는 내용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 종을 형제로 받아들이는 것은 종과 자유인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합니다. 그렇기에 지금 바울이 말하는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바울은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자신이 궁극적으로 바라던 그 내용을 16절에 기록해 두었습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육신적인 상태로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인 상태인데 그를 용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를 종 이상으로,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들여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사랑받는 형제가 된 그 오네시모를 계속해서 종으로 대 하지 않아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이제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존귀한 아들을 어떻게 계속해서 노예로 여기며 살수가 있겠습니까.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바울은 오네시모
의 해방을 염두에 두고 그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을 바라고 확신한 것입니다.
오래 전 이탈리아의 유명한 귀족인 레오날드 우드 경이 프랑스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왕의 대사 자격으로 프랑스에 방문해 왕을 만났는데 잠깐의 만남으로 프랑스 왕은 레오날드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왕은 사람을 보내어 다음 날 있을 파티에 초대했는데, 레오날드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초대에 아무런 반응이 없자 왕은 기분이 매우 언짢은 상태로 잠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파티가 시작이 되고 왕이 참석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무리 중에 있던 레오날드를 발견했습니다. 왕은 그에게 다가가 비꼬는 말투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나는 여기서 당신을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된 일이오?”
그러자 레오날드는 몹시 당황한 얼굴로 되물었습니다.
“폐하께서 저를 초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소. 하지만 그대는 나의 초대에 아무런 응답도 보내지 않았소”
왕의 대답에 비로소 사태를 파악한 레오날드 경은 정중히 왕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왕의 초대에 제가 어떻게 승낙이나 거절을 하겠습니까. 신하에게는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빌레몬서를 살펴보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한 가족 됨을 말했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도 하지만 우리의 왕이시고 주인 되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 앞에서 레오날드 경처럼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순종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오직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받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순종하며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믿음의 사람이 되었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 볼 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으며 어떤 의무감을 가지고만 읽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의 말씀 에 우리는 얼마나 순종하고 있습니까. 매 주일 이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우리는 그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습니까. 왕의 초대에는 승낙이나 거절이 아니라 그저 순종 밖에 없다고 말한 이 탈리아 귀족의 그 생각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우리 하나님의 말씀에 그 말씀은 ‘오케이’, 이 말씀은 ‘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 말씀에 순종하는 아름다운 순종이 우리 안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게 됩니다.
둘째, 순종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는 말 로 시작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기를 바란다는 기원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은혜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나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등 다른 편지들에서도 은혜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은혜는 기본적으로 죄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호의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자기 백성이 복음의 진리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들을 보살피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관대한 행위가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그 누구도 이 세상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 수 없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은혜의 원천이 ‘주 예수 그리스도’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우리의 주님이시며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빌레몬과 그의 집에 모이는 교회에 은혜를 베푸실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빌레몬의 영과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빌레몬이 사랑의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가 오네시모를 맞아들이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빌레몬의 영과 함께 할 때에야 빌레몬은 비로소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사랑 받는 형제로 맞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빌레몬뿐만 아니라 빌레몬의 집에서 모이던 성도들의 영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함께 할 때 오네시모를 믿음의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 빌레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사랑받는 형제로서, 자유인으로서 그를 맞아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빌레몬이 아무리 믿음의 사람이고 사랑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지금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에게 재정적인 손해를 입히고 도망친 그 종을 용서하는 것은 당시 문화에서 결코 있을 수 없었던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그를 자유인으로 놓아주고, 교회의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주는 것은 그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할지라도 어려운 일인데 재정적 손해를 입히고 도망까지 간 종이니 그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 안에 노여움 없이 정말 사랑함으로 그런 일을 하기란 은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꾸역꾸역 어떻게 순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온전히 순종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창세기 12장에는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큰 결단을 요구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고대 사회 에서 남자는 자기 아버지 집의 핵심 구성원으로 여겨졌습니다. 집안을 대표하는 가장이 죽으면 그를 잇는 상속자는 아버지가 지녔던 호칭과 권리, 땅과 재산 등의 소유와 책임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당시에는 가족들과 친척들이 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던 때라 자신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는 하 나님의 명령은 결코 순종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지게 될 땅과 재산 등에 대한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이었고, 심지어 자신의 생존까지도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택한 백성인 아브람이 복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며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매 주일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예배시간에 함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다짐과 마음은 작심삼일이라는 말처럼 쉽게 무너집니다. 예배시간에 그렇게 다짐을 하지만 며칠이 되기도 전에, 심지어 월요일이면 그 말씀을 다 잊어버리고 살 때도 있습니다. 나의 힘으로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려 했는데 잘 되지 않으니 포기해 버립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순종의 비행기 조종석에 나의 의지가 타고 있으면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순종의 비행기 조종석에 엉뚱하게도 나의 의지가 앉아 있으면 결코 제대로 비행할 수 없고 흔들리다가 땅에 추락하게 됩니다. 타락한 죄인인 우리의 의지는 결코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비행기 조종석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순종의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서 이끌어가야만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이끌어가게 조종하는 유일한 기장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초등부 예배를 드릴 때 설교 마지막에 항상 믿음의 고백을 아이들과 함께 선포합니다. 이 선포의 내용은 말씀에 따라 조금씩 바뀌지만 항상 들어가는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들은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함께 계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고 인도해 달라고 외치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를 다짐합니다. 이런 외침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솔직히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의 은혜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 의지하여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내주 하시며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의 은혜를 소망하며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삼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우리로 하여금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항상 도우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배우 이순재씨가 보험 광고를 하면서 했던 문구를 한번쯤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묻지도 따지지 도 않습니다” 보험에 가입할 때 나이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이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우리의 모습이기를 소망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탈리아 귀족인 레오날드 경이 왕의 초대에 가타부타 하지 않고 당연히 순종하여 참석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나의 어떤 견해도 더하지 않고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저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우리
를 도우시는 삼위 하나님의 그 은혜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