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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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다른 피조물들과 다르게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우리가 영혼을 가진 생령이 되게 하셨어요. 하나님처럼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한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창조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이유는 근본적으로 우리와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가지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아담을 먼저 창조하셔서 아담이 수고하여 에덴동산을 만들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이미 다 지어놓으시고는 아담을 그 곳에 두셨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그 동산 나무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7절에 함께 읽은 것 처럼 아담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한 번은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거에요. 하나님이 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만드셔서 아담이 죄를 짓게 하셨는가?, 아에 만들지 않으셨으면 아담이 죄를 짓지도 않았을 텐데...”
하지만, 선악과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인격적 관계를 만드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선악과는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도 있고, 지키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인 것이죠. 둘째로, 만약 선악과가 없었다면 우리는 자원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가 다른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서 그것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선택한 것이겠지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로봇과 같았을 겁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에 사랑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자신이 선택해서 사랑하고 순종할 수 있도록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거역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감수하기까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결정해서 하나님 자신을 사랑하고 순종하기를 원하셨던 것이에요. 그만큼 우리와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되,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원하셔서 창조하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하고 나서 아담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 타락이전에는 얼마나 친밀하게 아담과 교제하셨을지 알 수 있습니다.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은 아담을 부르시고, 아담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대답하는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깨뜨리고 나서도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를 포기하실 수 없으셨지요. 그래서 자신을 위한 백성을 세우시는데,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창세기 내용을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 땅에서 예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출애굽기를 보면 이집트에서 억압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세를 통해 10가지 재앙을 일으키시고 홍해를 가르셔서 시내산으로 인도하십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신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하나님을 위한 한 백성을 세우시기 원하셨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그 놀라운 권능과 능력을 행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광야를 통해 여기까지 인도하셨지요.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가장 주된 목적을 이스라엘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지신 근본적인 이유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인도하는 것 이전에 ‘하나님과이 친밀한 사랑이 관계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고, 대화하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인격적 관계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관심이 가나안 땅의 부유함에만 있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에서 떠났을 때 그들은 가나안에서도 쫓겨났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은 결국 실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은 유대인들과 이방인을 합해서 새 백성을 세우시지요.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곧 교회를 향한, 우리를 향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일들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지시기 위해 하신 일보다 차원이 다르게 위대합니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가장 주된 목적도 우리를 하나님 자신에게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인도하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명령 중 가장 큰 계명을 살펴보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지 알 수 있습니다.
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이 구절은 예수님도 하나님의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모든 길로 행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쉽게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9:3 이하의 말씀만 하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면 우리에게 놀라운 복을 주신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가 가장 먼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의 모든 길로 행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 무엇인지 찾고 구하는 자세로 살아갑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강제로 요구되는 명령과 억압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를 수 있는 특권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교제 가운데 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길로 행할 수도 없고(관심도 없겠지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자원하지 않는 사랑은 자원하여 헌신하지도 못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 시대에 등장한 바리새인들이 좋은 예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613가지로 요약해서 그것들을 철저하게 잘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누구보다 이 율법을 잘 지켰기 때문에 자신들은 의롭고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본인들은 명령과 규례를 잘 지켰기 때문에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인격체인 하나님을 전존재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길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지키지도 않았습니다. 전통에 따라서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몇 가지 규례를 선별적으로 지켰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교제는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것보다 우선입니다.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모든 의식보다 우선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여기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두가지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인애"를 원하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셨습니다. 여기서 ‘인애'는 ‘헤세드'라는 단어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는 것을 원하신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두 가지는 번제와 제사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서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으신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께서 번제와 제사를 원치 않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라기 시대에 번제와 제사를 멸시하는 제사장들을 매우 꾸짖으셨거든요. 이 말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핵심적인 것, 본질적인 것은 번제와 제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로 치면 예배를 빠짐없이 드리는 것, 성경말씀을 많이 아는 것, 헌금을 잘하는 것 등 우리가 드리는 의식입니다. 하나님은 이것 자체를 원하시기보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고 하나님을 날마다 알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 가운데 나아왔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원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기를 원하는 중심이 있는가? 헌금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이 세상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물질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향하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사랑하는 학생부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예배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헌금하는 등의 우리의 의식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뜻과 힘을 담은 사랑이 담겨있는지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 그것은 우리의 인격적인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가 단지 의무감에 드려지는 형식적인 예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온라인 예배를 함께하고 있지만, 우리 마음에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중심을 드리기를 뜻과 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에요. 주님은 우리의 그 마음을 다 알고 계신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중심을 드려 주님을 사랑하는 자리에서 벗어나 있다면 오늘 함께 회개합시다. 그리고 다시한번 우리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을 회복시켜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의 예배와, 우리의 성경읽기와 기도가 주님을 더 알기 원하고, 더 사랑하기 원하는 사랑의 실천이 되도록 은혜를 구합시다.
